여성의 성욕을 당당히 말할 수 있어야 [배정원의 핫한 시대]
  •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01 12:00
  • 호수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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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성욕 저하 치료제’ 출시가 반가운 이유…언제까지 남성의 성욕은 ‘능력’이고 여성의 성욕은 ‘음란’인가

얼마 전 출근길, 지하철을 탔다가 흥미로운 광고물을 보았다. ‘여성 성욕 저하 치료제 바이리시(Vyleesi)’의 임상시험 희망자를 구하는 광고였는데, 이런 광고가 지하철에 붙어있다는 것도 좀 놀라웠지만, 그 대상이 폐경 전 여성이라는 것이 더 놀라왔다. 마침 임상시험자가 필자와 잘 아는 관계여서 그에게 실험에 대해 물어봤더니 대상자를 구하는 것이 무척 어렵다고 난색을 표한다.

성욕은 흔히 수면욕, 식욕과 함께 사람의 3대 기본적인 욕구라고 하지만, 실제 성욕은 다른 욕구보다 훨씬 원초적이다. 수면욕과 식욕이 사람을 살게 하는 욕구라면, 성욕은 사람을 살게 하고 대를 잇게 하는, 생물이라면 가장 중요한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 성욕이 없으면 사람이라는 종은 멸종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사람만이 유일하게 이 원초적인 욕구를 터부시하고, 그것을 억압하는 것을 심지어 ‘교양’이라고 말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성욕은 단순히 사랑을 나누는 행위를 불러일으키는 것만이 아니라 사랑받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 관계, 애착, 행복감에 깊이 관련되어 있다. 그래서 성욕이 떨어지거나 없어진다는 것은 개인의 행복감과 존재감, 존중감의 저하뿐 아니라, 상대와의 친밀감을 높이는 정상적인 관계가 망가지는 결과로도 이어진다.

ⓒ일러스트 양선영
ⓒ일러스트 양선영

성욕 감퇴, 정상적인 관계 망가트리기도

성욕이 감퇴하거나 일어나지 않는 성욕장애는 남녀를 불문하고 대표적인 성기능 장애다. 몇 주가 지나도 도무지 사랑을 나누고 싶은 생각이 아예 없거나 현저히 줄어들고, 섹스를 나누는 것이 혐오스럽거나 싫어서 피하는 경우도 여기에 속한다. 대체로 치료가 필요한 성욕장애는 섹스 혐오까지는 아니더라도, 욕구가 안 생기거나, 줄어들어 커플 관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다.

이럴 땐 약물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데, 남성의 경우는 성욕 향상에 도움이 되는 약이 많이 개발되어 있다.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남성호르몬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이 직접적인 치료방법이다. 기력이 없고, 매사 짜증이 나고, 근육량이 적어지고 성욕이 안 생기는 경우에 테스토스테론 보충요법은 분명히 효과가 있다. 사용방법도 먹거나 주사를 맞거나, 크림으로 바를 수도 있어 그리 어렵지도 않다.

그 외에 1998년 화이자가 개발한 ‘비아그라’ 같은 발기부전 치료제도 남성의 성욕 향상에 도움을 준다. 비아그라·레비트라·시알리스 같은 발기부전 치료제는 성기의 혈관을 확장시켜 발기가 쉽고 오래가도록 하는 원리라서 사실 성욕장애 치료제가 아니라 발기를 돕는 성 흥분 치료제지만, 남성의 성 심리상 ‘자신감이 생기면’ 성욕도 분명히 증가한다. 그래서 발기부전 치료제지만 성욕을 향상시키는 데도 분명히 일조하는 셈이다.

그에 반해 여성의 성욕에 대해 관심을 가진 건 극히 최근이다. 무엇보다 여성의 성욕 자체가 남성의 그것보다 생리적·심리적·관계적·사회적 문제들과 더욱 긴밀하게 얽혀있어 문제 해결이 쉽지는 않은 것이다.

몇 년 전 미국에서 여성용 비아그라, 혹은 핑크 비아그라라고 하는 ‘에디(Addyi)’가 개발되어 성욕 저하로 고민하는 여성들에게 희망을 주었으나, 실제 약효가 그렇게 좋지는 않다는 평이 나왔다. 에디는 성적 흥분을 유발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과 노르에피네프린의 불균형을 조절하고 성 흥분을 억제하는 세로토닌 농도를 낮춰 성욕을 향상시키는 약이다. 그런데 에디는 복용하는 동안 금주해야 하고, 피임제나 항진균제를 복용하면 안 되며 무엇보다 고비용인 데다 어지럼이나 구역감, 실신, 저혈압 등의 부작용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반면 효능감은 높지 않아 미국 FDA에서도 승인이 세 번이나 반려되었다.

더욱이 여성단체들이 ‘여성의 성욕이 남성의 그것보다 가볍게 생각되고 있는 증거’라며 시위를 했기에 결국 FDA 승인을 얻을 수 있었다는 말도 있어 약효의 의학적인 효과가 아니라 여성평등이라는 사회적 기류 덕을 보았다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이번에 새로 여성 성욕장애 치료제로 개발되어 임상시험 중인 바이리시는 미국에서는 이미 시판되고 있는 약이다. 식욕 및 에너지 소비 조절과 연관된 멜라노코르틴 수용제에 작용해 성 반응과 욕구를 활성화시키는 기전의 약이다. 사람의 성욕 중추는 식욕 중추와 아주 가깝게 붙어있는데, 여성의 경우는 포만 중추가 더 가깝기 때문에 허기가 해결되었을 때 성욕이 더 생긴다고 하는데, 이런 원리를 이용한 듯하다.

매일 취침 전에 알약으로 복용하는 에디와 달리 바이리시는 성관계를 하기 45분 전에 허벅지나 배에 자가주사를 해야 하며 매일 사용하는 것은 주의하도록 돼있다. 즉 자기가 필요할 때 사용하면 된다고 하니 약 복용에 대한 부담은 좀 줄어들 것 같다.

물론 구역감이나 홍조, 두통 등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고 심장질환이 있는 경우는 사용하지 않아야 하지만, 현재 시판되고 있는 미국에서 이용자들이 보고하는 효능감은 높아 보인다. 또한 실험을 진행 중인 국내 의사들의 반응도 호의적인 것을 보면 성욕 저하로 고통받는 여성들의 고민 해결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아 다시 기대가 된다.

 

유독 여성의 성에 엄숙했던 잣대에 변화

성욕 감퇴의 원인은 나이, 호르몬 변화, 생활습관, 환경, 파트너, 스트레스, 질병 등 여러 요인이 있고, 여성의 성욕은 특히 생리적인 문제만 해결한다고 좋아지진 않는다. 혹자는 주사를 맞아서까지 성욕을 부추겨야 하느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남성처럼 ‘할 수 있고’ ‘해서 좋은 느낌’을 받는다면 분명 여성의 성욕은 더 좋아질 것이다. 또 건강하고 즐거운 섹스가 많은 세상은 분명 지금보다 더 다정해질 테고.

어쨌든 여성 성전문가로서 그동안 그림자처럼 여겨져 왔던 여성의 성에 대한 의학계의 관심이 새삼 반갑다. 우리 사회가 성에 대해 유난스레 이중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고, 특히 여성의 성에 대해서는 유독 자연스러움이나 즐거움의 효용가치보다는 엄숙한 도덕적인 기준의 잣대를 대왔던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남성의 성욕은 ‘능력’이고 여성의 성욕은 ‘음란’이라 생각했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여성 스스로도 자신의 원초적인 성욕에 더 민감해지고, 당당하게 드러내 요구도 한다면 더 좋은 일이다. 그렇지, 손뼉은 마주쳐야 소리가 나는 것을!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배정원 세종대 겸임교수 (보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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