꼼수와 눈치가 다시 판치는 동물 국회… 6·1 표심, 누굴 심판할까
  • 구민주 기자 (mjooo@sisajournal.com)
  • 승인 2022.04.29 10:00
  • 호수 16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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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수완박’ 갈등 속 너덜해진 국회 ‘입법권’, 지방선거 핵심 변수로 떠올라
“민주, 꼼수 통해 입법권 남용” vs “국힘, 尹 눈치 보며 입법권 훼손”

‘합의파기 협치파괴 국민의힘 규탄한다’ ‘검수완박 강행처리 입법폭주 중단하라’.

4월26일 오후 국회 본청 로텐더홀. 1시간 간격을 두고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곳에서 서로를 규탄하는 피켓을 들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사무실에선 이들 사이에 욕설이 섞인 고성과 삿대질이 오갔다. 법안 의결에 필요한 의사봉을 두고 쟁탈전을 벌이는 등 몸싸움마저 펼쳐졌다. 한동안 사라졌던 동물 국회가 재현되는 순간이었다.

이튿날 저녁 국회 본회의장.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에 돌입하며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 수사·기소 분리) 법안 저지에 나섰다. 민주당은 이른바 ‘회기 쪼개기’ 전술을 통해 무제한 토론을 시한부 토론으로 무력화시켰다. 지난 며칠 검수완박을 둘러싼 일련의 장면들은 새 정부 출범 전 여야 협치에 대한 기대를 일순 증발시켰다. 이번 법안 가결은 이들 간 갈등의 봉합이 아닌 또 다른 갈등의 시작이 될 조짐이다.

4월26일 국회 본청 로텐더홀 계단에서 더불어민주당(왼쪽 사진)과 국민의힘 의원들이 각각 검수완박(검찰 수사·기소 분리) 법안을 두고 서로를 규탄하는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국회사진취재단

민주, 독단적 이미지 따른 역풍 우려

요란한 싸움이 쓸고 간 자리엔 삼권분립의 한 축인 ‘입법권’이 남루히 남았다. 양당은 국회 입법권 훼손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렸다. 국민의힘은 172석 거대 민주당이 법안 강행 처리로 국회 입법권을 남용했다고 주장했다. 견제 없는 검찰 권력을 개혁한다고 입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정작 민주당이 입법 독재를 벌였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우려와 지적은 민주당 내부에서도 제기됐다. 거대 정당으로서 민심과 괴리된 독주를 펼쳐온 것이 이번 대선 패배의 이유 중 하나인데, 이를 반복하면서 독주 이미지만 더욱 굳히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한 초선 의원은 “실제 국민 다수에겐 검수완박의 내용적 디테일보다 민주당의 ‘단독’ ‘강행’ 처리 모습이 더욱 직관적으로 꽂힐 것”이라며 “국민의힘이 국회의장 중재안 합의를 번복하면서 물타기가 된 면은 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이런 독단적 인상은 민심의 역풍을 우려케 한다”고 전했다.

특히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에서 법안 처리를 수월히 하기 위한 민형배 민주당 의원의 ‘위장 탈당’은 안팎의 여론을 더욱 악화시켰다. 2020년 총선 전 위성정당을 출범시켜 국민적 비난을 받았던 때를 떠올리게 하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왔다. 국민의힘은 이를 ‘의회 민주주의’를 파괴한 행태로 규정하기도 했다. 여기에 길게는 문재인 정권 5년, 짧게는 지난 총선 압승 이후 2년간 속도를 내지 않다가 이제야 밀린 숙제하듯 법안을 처리한 데 대해서도 여전히 여론은 부정적이다.

국민의힘은 민주당이 ‘국회선진화법 정신’을 짓밟았다고도 비판한다. 민주당이 국민의힘의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하면서 법이 보장한 소수정당의 최후 발언권마저 박탈했다는 것이다. 2016년 박근혜 정부 당시, 야당이던 민주당은 테러방지법 처리를 막기 위해 192시간 이상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며 법안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따진 기억이 있다. 결과적으로 법안 저지에는 실패했지만 필리버스터 제도의 필요성을 공감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런 민주당이 ‘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는 자가당착을 보이고 있다는 게 국민의힘의 지적이다.

 

국힘, ‘민주 독주 심판’ 전략으로 선거 치를 듯

민주당은 마치 거울의 반사처럼 국민의힘으로부터 받은 비판 그대로를 되쏘았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이 국회의장 중재안 합의를 번복한 사태를 두고 국회의 입법권 침해이자 의회민주주의의 파기라고 규정했다. 4월22일 민주당보다 먼저 의원총회를 거쳐 중재안 합의 의사를 밝혔던 국민의힘은 불과 사흘 만에 ‘중재안은 민심에 반한다’며 재논의 방침을 밝혔다. “박병석 의장이 자신이 불러준 대로 합의문을 작성했다”고까지 말했던 권성동 원내대표는 자신의 ‘판단 미스’였다며 머리를 숙였다. 합의 당일 권 원내대표에게 동의 의사를 밝혔던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 역시 “합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선회했다.

민주당은 그 과정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특히 한 후보자의 입김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고 확신했다. 한 후보자와 검찰 조직의 거센 반대가 윤 당선인을 움직이고 그것이 국민의힘을 움직였다는 것이다. 이를 두고 행정부 차기 권력이 국회 입법권을 침해하고 삼권분립을 무너뜨린 것이라는 비판이 제기됐다. 또한 민주당은 야당 원내대표가 합의하고 의원총회에서 중지를 모은 사안을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번복한 과정에 대해서도 의회민주주의를 무시한 처사라고 비난했다. 4월27일 법사위에서의 법안 처리를 국민의힘 의원들이 몸으로 저지한 데 대해서도 국회선진화법상 ‘회의 진행 방해 금지’ 규정을 위반했다고 몰아세웠다. 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무력화해 국회선진화법 정신을 짓밟았다는 국민의힘 지적을 그대로 맞받아친 것이다.

국민의힘 내 중재안 합의 번복의 여파는 권성동 원내대표의 책임론과 사퇴론으로 나타나고 있다.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권 원내대표가 중재안에 합의만 하지 않았어도 검수완박 독주와 민형배 의원 위장 탈당까지 민주당이 국민의 지탄을 독식했을 텐데 이를 희석시켜 버렸다. 이러한 여지를 준 것에 대해 당원들의 비난도 거센 상황이다. 윤심(尹心)에서 완전 이탈까진 아니어도 거리가 생긴 것도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중재안 합의 번복은 사실 국민의힘으로서도 상당히 부담스러운 결단이었다. 검수완박 반대 여론에 고심하던 민주당에 활로를 열어준 셈이기 때문이다. 4월27일 필리버스터에 앞서 당내에서 공유된 지침 내용만 봐도 합의 번복에 따른 역풍에 국민의힘이 얼마나 신경 쓰고 있는지 엿볼 수 있다. 지침에 따르면, 필리버스터에 참가하는 의원들은 중재안 자체에 대한 언급이나 중재안을 마련한 박병석 의장에 대한 비판을 자제하고 검수완박에 따르는 국민적 피해를 언급하는 데 초점을 맞추도록 했다.

그럼에도 부담스러운 번복을 한 배경엔 한 달가량 남은 지방선거에 대한 판단 역시 짙게 깔려있던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 당 지도부는 현장에서 선거를 뛰고 있는 국민의힘 후보들로부터 민심이 심상치 않다는 의견을 상당수 전달받은 것으로 전해진다. 기초단체장에 출마한 한 국민의힘 후보는 “권 원내대표가 중재안에 합의한 이후 지역에서 견딜 수 없이 많은 항의 연락을 받았고 어딜 가나 성토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양당이 국회의원 특권을 지키려고 담합했다는 비난이 가장 많았다”고 설명했다.

강한 대치를 벌인 국민의힘은 이번 지방선거 역시 ‘민주당 독주 심판’ 전략을 중심으로 치를 것으로 보인다. 선거 때는 여당이지만, 여전히 야당의 전략을 택하는 셈이다. 여기에 윤 당선인이 지방선거와 함께 검수완박 법안을 국민투표에 부칠 것을 깜짝 제안하면서, 선거까지 검수완박을 여론전으로 이어가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중재안 합의가 무산된 후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국민의힘을 향해 “검찰 눈치를 보는 것으로 오해받지 않으려면 ‘민심’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일갈했다. 4월27일 필리버스터 첫 번째 주자로 나섰던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사마천의 <사기>를 인용해 “‘국민’과 맞서 싸우는 정치가 최악의 정치”라며 “제발 ‘국민’이 원하는 방향으로 정치를 하자”고 제안했다. 국민이 절반으로 갈려 치러진 대선이 끝나고 정치권이 국민대통합을 약속한 지 50일, 양당은 여전히 절반의 국민만을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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