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동치는 한반도] 중국, 어떤 보복의 칼날을 벼릴까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5.31 11:00
  • 호수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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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EF 출범으로 반도체 세계 공급망에서 자국 배제될까 위기감 고조
한국 이어 대만까지 참여하면 격한 반발 예상

5월23일 중국 광둥성 광저우에서 ‘아시아·태평양경제사회위원회(ESCAP)’ 연차총회가 열렸다. 비록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대부분의 국가가 화상으로 참석했지만, 중국에서는 왕이 외교부장이 직접 참석했다. 왕 부장은 기조연설에서 같은 날 출범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를 겨냥해 “아태 지역에 어떠한 군사집단과 진영 대결을 끌어들이려는 시도를 분명히 거부한다”고 말했다. 전날 왕 부장은 중국을 방문한 파키스탄 외교장관과 회담 뒤 가진 기자회견에서는 더욱 강도 높은 발언을 쏟아냈다.

왕 부장은 “인도·태평양 전략은 자유와 개방의 기치를 내걸고 있지만, 패거리를 지어 소그룹을 만드는 데 열중하고 있다”며 “목적은 중국 포위 시도로, 아태 지역 국가를 미국 패권의 앞잡이로 삼으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일본 순방에 나섰던 5월20일 중국 관영 언론 ‘글로벌타임스’는 “IPEF의 목표는 중국을 고립시키려는 것”이라며 “글로벌 무역 사상 지정학적 분할에 초점이 맞춰진 협력 틀은 성공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2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고위급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5월23일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인도·태평양경제프레임워크(IPEF) 고위급 화상회의에 참석하고 있다.ⓒ연합뉴스

“IPEF 출범의 목적은 중국 포위 시도”

이처럼 중국이 IPEF 출범을 비난하는 이유는 향후 세계 공급망에서 자국이 배제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사실 5월초까지 중국은 IPEF에 대해 신중히 대응했다. 지난해 10월 동아시아정상회의(EAS)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IPEF를 처음 제안한 뒤 구체적인 청사진을 선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바이든은 IPEF를 “디지털, 공급망, 청정에너지 등 새로운 통상 의제에 공동 대응하는 인도·태평양 지역의 포괄적 경제협력체”라고 규정했다. 또한 “상품과 서비스 시장의 개방을 목표로 하는 기존의 무역협정과는 다르다”고만 밝혔다.

그렇기에 가입 대상이나 배제할 국가 등 실체를 알 수 없었다. 중국이 지난 몇 달 동안 대놓고 비판하지 않은 배경이다. 하지만 5월초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일본 순방길에 IPEF를 출범시킬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면서 기류가 바뀌었다. 5월11일부터 관영 매체를 앞세워 IPEF를 비판하기 시작했다. 글로벌타임스는 무기명 칼럼을 통해 “바이든 행정부는 IPEF가 양질의 무역을 촉진하고 공급망 복원력을 향상할 새로운 협력이라고 하지만, 중국을 공급망 밖으로 밀어내 아태 지역의 소규모 경제권을 형성할 뿐이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5월16일 열린 한중 외교장관 화상회담에서도 IPEF를 겨냥한 언급이 나왔다. 왕이 부장은 박진 장관에게 “각각의 이익과 공동의 이익에서 출발해 디커플링과 망 단절의 부정적인 경향에 반대하고 글로벌 산업망과 공급망을 안정적으로 유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마침 같은 날 윤석열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한미 정상회담에서 IPEF를 통한 글로벌 공급망 협력 강화 방안을 논의하겠다”고 천명한 직후였다. 왕 부장의 발언에는 중국을 배제한 채 미국이 주도하는 공급망에 한국이 동참하지 말 것을 요구하는 취지가 분명했다.

이날 중국의 이런 대응은 IPEF 참여국과 구체적인 협력 방안이 수면 위로 떠올라 더욱 노골적이었다. 당시 8개국이 가입 의사를 밝혔는데 미국·일본·호주·뉴질랜드·인도·베트남 등 미국의 동맹국이거나 중국과 관계가 껄끄러운 나라가 대다수였다. 그래서 중국은 IPEF가 내세운 목표는 외교적 수사에 불과하고 새로운 대중(對中) 견제책의 일환이라고 판단했다. 이는 IPEF가 무역 촉진, 디지털 경제 및 기술 표준 정립, 공급망 회복, 탈탄소화와 청정에너지, 인프라 구축, 탈세 및 부패 방지 등에서 협력하려는 데서 뚜렷이 드러난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것은 미국이 반도체·전기차 등 첨단 ICT 제품에서 중국을 배제한 채 역내 공급망을 구축하는 행보의 연장선이다. 미국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재임 시절부터 강력한 대중 반도체 수출 통제를 밀어붙여왔다. 그로 인해 화웨이·중싱 등 중국의 5G 이동통신 기기와 장비 업체들은 큰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미국은 IPEF를 출범시켜 이를 전체 ICT 제품으로 확대할 의도인 셈이다. 다만 중국은 당장 반도체에서 미국의 중국 배제가 집중될 것으로 보고 있다. 반도체는 미국이 확고한 기술 우위를 보이는 품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5월19일 글로벌타임스는 “반도체 공급망 협력이 IPEF의 주요 초점이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 중국은 세계 최대 반도체 수입국이라 타격이 더욱 클 수밖에 없다. 중국이 달리 주목하는 사안은 대만의 IPEF 가입 여부다. 미국이 대만을 IPEF에 가입시키려는 움직임을 계속 보여왔기 때문이다. 지난 3월 미국 하원의원 200명은 연명으로 대만의 IPEF 참여를 지지한다는 서신을 미 행정부에 보냈다. 5월18일에는 상원의원 50명이 비슷한 내용의 서신을 바이든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이에 대해 대만 당국도 즉각 화답했다.

5월19일 왕메이화 대만 경제부장은 “미국과 소통할 수 있는 직통 파이프라인을 가지고 있다”며 참여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만약 대만을 IPEF에 가입시키면 중국 대외정책의 기본 원칙인 ‘하나의 중국’이 깨지게 된다. 게다가 대만은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에서 중요한 위상을 차지하고 있어 파급력도 크다. 2020년 대만의 반도체 수출액은 1232억 달러로, 954억 달러인 한국보다 많았다. 대만이 코로나19 사태 아래서도 2020년 3.4%, 2021년 6.3%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배경에는 급증한 반도체 수출의 힘이 컸다.

중국 왕이 외교부장ⓒAP 연합

“한국은 장기적으로 불이익 볼 것”

물론 대만이 IPEF에 가입할 경우 받을 타격도 만만치 않다. 현재 반도체 공급망에서 대만은 대중 수출에 크게 의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대만의 대중 수출액은 1888억 달러로, 전년보다 42.9%나 증가했다. 대만의 전체 수출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42.3%에 달했다. 그에 반해 대미 수출 비중은 14.7%에 불과했다. 또한 절반이 넘는 수출 품목이 반도체로, 중국 반도체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34.2%에 달했다. 만약 중국이 대만을 표적 삼아 무역 보복을 가할 경우 큰 피해를 받을 수 있는 공급망 구조다.

이는 IPEF 가입국인 한국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한국의 대중 수출 비중은 25.3%, 수입 비중은 22.5%에 달해 최대 교역국이다. 반도체는 비중이 더욱 커 2020년 전체 수출의 43.2%를 중국이 차지했다. 18.3%로 2위인 홍콩까지 합치면 무려 61.5%다. 한국은 이미 미국의 대중 반도체 수출규제로 인해 피해를 본 전례가 있다. 중국 업체가 한국 메모리 반도체의 구매를 중단하면서, 중국 반도체 시장에서의 점유율이 2018년 24.7%에서 2021년 19.2%로 감소했다. 게다가 삼성전자·SK하이닉스 등은 중국에 대규모 생산거점을 보유하고 있다.

이런 현실을 잘 아는 중국은 관영매체를 내세워 한국을 겨냥했다. 글로벌타임스는 “한국이 미국의 반도체 협력 계획을 거부하기 어렵다”면서도 “한국 업계가 미·중 간 경쟁 구도에서 편들기를 피하고 미묘한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미국의 위협에 굴복한다면 반도체 공급망에서 장기적으로 불이익을 볼 것”이라고 위협했다. 기업계에서도 중국의 보복 조치를 우려하고 있다. 한 중국 진출 기업 관계자는 “대중 수출 비중이 높고 중국에서 진행하는 사업이 많은 업체는 최근 상황이 불안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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