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윤영관 “한·미 관계가 튼튼해야 워싱턴을 설득할 수 있다”
  • 감명국 기자 (kham@sisajournal.com)
  • 승인 2022.05.30 10:00
  • 호수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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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이 진단하는 긴박한 한반도 정세
“尹 정부, 강경한 대북 원칙 유지하더라도 대화 병행해야”  

[시사저널=감명국 기자]

한반도가 다시 요동치고 있다. 대한민국의 새 정부가 출범하면서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열하루 만에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며 굳건한 한미 동맹을 과시했다. 이에 더해 대중(對中) 견제용인 IPEF(인도·태평양프레임워크)의 한국 참여를 확정 지으면서 중국을 자극했다. 북한도 가만있지 않았다. 바이든 대통령이 미국으로 돌아가자마자 5월25일 ICBM 등 미사일 3발을 발사했다. 윤 대통령도 즉각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소집해 강경한 대응을 지시했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미국과 중국도 사실상 총성 없는 전쟁을 벌이고 있는 긴박한 국제정세 속에서 외교안보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로 “그 어느 때보다 윤석열 정부의 원칙 있는 자세와 신중한 대처가 필요해 보인다”고 말한다. 시사저널은 윤영관 전 외교통상부 장관과 대화를 나눴다. 때마침 윤 전 장관은 미국 정계 싱크탱크인 윌슨센터의 초빙으로 워싱턴을 방문 중이었다. 인터뷰는 한국시간으로 5월25일과 26일 전화통화로 이뤄졌다. 윤 전 장관은 노무현 정부 초대 외교부 장관(2003~04년)을 지냈고, 현재 서울대 명예교수로 국제정치학을 연구하고 있다.

윤영관 전 외교부 장관 ⓒ뉴스뱅크이미지

지난해 5월 문재인-바이든 한미 정상회담에 이어 딱 1년 만인 5월21일 윤석열-바이든 회담이 열렸습니다. 두 회담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일까요.

“몇 가지 차이가 보입니다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건, 이번 정상회담에서 공급망 문제 등 경제안보 이슈와 관련한 광범한 협력이 강조되었다는 점입니다. 이는 미·중 갈등에 더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인한 공급망 문제가 세계적으로 더욱 크게 부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IPEF 가입이 합의된 것이 그 사례입니다. 또한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올해 초부터 빈번한 미사일 발사 상황을 반영한 듯 대북 확장억제 강화에 초점이 모아졌습니다.”

이번 바이든 대통령의 한국·일본 방문은 북핵 문제 등 안보협력보다는 중국 견제를 위한 경제협력에 더 초점이 맞춰졌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바이든이 경제적 성과를 노리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되는데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에서 보면 삼성 반도체나 현대차의 미국 투자를 유도해 일자리를 창출함으로써 중간선거에 도움이 되게 하려는 의지는 있었을 겁니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과거부터 미국 정계나 지식인 그룹에서는 한국이 성장한 국력에 비해 너무 한반도 문제에만 매달려 국제사회에서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는 시각이 있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바이든 대통령도 한국을 국제무대로 끌어내 글로벌 차원의 협력을 하고 싶어 했을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도 ‘글로벌 중추국가’를 선거공약으로 내세웠고, 그것을 실현할 구체적 계기를 이번 한미 정상회담을 통해 잡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가 미·중 사이 전략적 모호성을 폐기하고 한미 동맹 강화를 분명히 한 만큼 중국의 반발이나 보복이 뒤따를 것이란 전망도 나옵니다.

“실제로 한국은 중국과 FTA 개정 협상을 진행 중이고, 중국이 주도하는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런 맥락에서 얼마 전 ‘한·미 동맹 강화가 한·중 관계를 등한시하는 것은 아니다’고 한 박진 외교부 장관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물론 윤석열 정부의 외교 전략 기조가 동맹 중심으로 바뀐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해 중국이 어떤 방식으로 반응해 올지는 좀 두고 볼 일입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중국에 대해 과거보다 좀 더 의연하게 대할 필요가 있습니다. 중국을 의식해 우리가 국익 차원에서 해야 할 바를 못 해서는 안 되겠지요. 물론 중국 측 반응의 모든 가상 시나리오에 대해 정부가 세밀한 대응 방안을 미리 준비해 놓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문재인 정부 한반도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십니까.

“한반도 평화를 구축하겠다는 것에 대한 진정성과 2017년의 한반도 안보 위기를 대화 국면으로 전환한 것은 긍정적으로 봅니다. 그러나 두 가지 면에서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는 국제사회에서 존중되는 보편적 가치 기준을 소홀히 하고 감성적 민족주의로 북한이나 일본 문제에 접근했습니다. 그 결과, 문재인 정부가 추구하는 대북정책이나 동북아 정책이 국내외적으로 큰 지지를 받지 못했고 국제적으로 우방을 확보하지도 못했습니다. 외교를 보는 시야가 좁아지고 국력에 걸맞은 국제적 위상도 높이지 못했습니다. 둘째로 외교의 세계는 권력의 논리가 작동하기에 그 작동 방식과 게임에 정통한 전문성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전문성을 무시하다 보니 실수가 반복되고 그것을 수습하기에 바빴습니다. 미·중 갈등이 심화될수록 중국은 미국으로부터 한국을 떼어내 자기네 세력권으로 끌어당기기 위해 오히려 우리에게 접근하며 아쉬운 소리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난 5년을 보면 거꾸로 돌아갔습니다. 외교를 전문성이 아니라 선제된 이념의 관점에서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현 정부의 초대 국가안보실장을 맡은 김성한 실장은 대선 직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한미, 한중 관계를 같이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게 가능할까요.

“어렵긴 하겠지만 불가능하다고 볼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고민하는 나라가 한국만 유일한 게 아닙니다. 우리보다 훨씬 규모가 작은 싱가포르나 베트남 등이 미·중 사이에서 어떻게 외교를 잘해 왔는지 들여다볼 필요가 있습니다. 나름의 원칙, 그것을 지키려는 꾸준한 노력과 결기, 그리고 국민적 단합이 있으면 됩니다. 문제는 우리 스스로가 그런 것들을 갖추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소국 의식과 체념론에 빠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그동안 북한을 보면, 한미 간 공조 관계가 굳건하고 대북 대응이 강경해질수록 오히려 도발 강도가 더 높아지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역으로 한미 공조가 흔들리면 북한은 그 틈을 벌리면서 한국을 자기네 페이스로 끌고 가려 할 것입니다. 한국이 오히려 북한을 리드해야 할 텐데 말이죠. 우리가 어떤 나름의 원칙을 가지고 북한을 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원칙이란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보편적인 가치 기준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없으면 우리의 대북정책이, 그리고 한반도 전체가 표류하게 될 것입니다. 원칙 있는 포용정책과 유화정책은 구분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확장억제는 강화하되, 동시에 북한과의 대화 노력은 진지하게 시도해야 할 것입니다.”

워싱턴이 북한에 대해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분위기입니다. 바이든 대통령도 김정은 위원장을 만날 의지가 없어 보이는데요.

“지난 30년간의 대북 비핵화 외교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참 아쉬운 순간이 많습니다. 한미 공조하에 북한을 포용하고 비핵화를 추진할 수 있었던 김대중-클린턴 시대가 조지 W 부시의 당선으로 정반대 방향으로 악화된 것,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영변 비핵화에 대한 비현실적인 대가 요구 등이 그렇습니다. 어찌 되었든 이제 미국의 비핵화 접근법은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중·러가 북한 비핵화에 협조하리라는 가정도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미국이 새로운 접근법을 개발해 교착상태를 돌파하려는 의지나 여유가 없다는 점입니다. 미국 입장에서 우크라이나·중국·이란 등 한반도 문제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다급한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우리 대미 외교의 큰 과제입니다.”

지금 한반도 문제를 둘러싸고 소위 ‘민족’이 우선이냐, ‘동맹’이 우선이냐 하는 프레임이 또다시 상충되고 있습니다.

“대북 포용정책을 추진한 김대중 대통령 때만 해도 민족과 동맹을 이분법적으로 보면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당시 한미 관계가 좋아 공동으로 대북 포용정책을 발표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그 후 이 둘을 배타적 관계로 보는 이상한 논법이 힘을 얻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많은 문제를 야기했지요.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한반도 평화를 정착시키려면 남북끼리만 잘하면 된다는 생각은 비현실적인 것입니다. 평화 정착과 비핵화를 하려면 북한의 생각을 바꿔야 되고, 그러려면 미국을 움직여야 하며, 이는 한미 간 신뢰가 튼튼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과거 1970~80년대 서독에서는 민족 관계를 중시하는 사민당의 동방정책과 동맹을 중시하는 기민당의 친서방정책이 공존하며 상호 시너지 효과를 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반대로 엉뚱한 이분법 논리의 포로가 되어 남남갈등만 심화되고 남북관계에서도 정작 이룬 것은 하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사태가 북한 김정은에게는 어떤 효과나 교훈을 줄 수 있다고 보십니까.

“핵에 대한 집착을 더 강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우크라이나처럼 당하지 않으려면 핵이 있어야 한다고 믿겠지요. 그러나 코로나19로 인한 자발적 국제 고립에다 지속적인 대북제재로 북한 경제가 대단히 어려운 상황인데, 중국도 경제가 사상 최악이라 북한에 크게 도움이 될 여력이 없습니다. 그런 상태에서 미국은 러시아와 중국에 집중하느라 북한에 관심을 돌릴 여유가 없습니다. 북한이 미국의 관심을 끌어 현상을 돌파하기 위해 도발할 가능성도 있지만,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도 있다고 봅니다.”

워싱턴 정가가 여야를 불문하고 모두 북한에 대해 적대적인 기류가 강한 분위기입니다. 이는 한미 동맹 강화가 남북대화의 여지를 더 좁게 만들 수 있다는 또 다른 주장의 근거가 되고 있는데, 이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미국 정가에 북한에 대한 적대적 기류가 강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거기엔 북한에도 상당한 책임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오바마 대통령은 전임 부시 대통령의 대북 강경책이 부작용을 불러왔다고 보고 북·미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려는 의지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취임 후 그런 정책을 시작할 여유도 안 주면서 북한이 바로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를 감행했죠. 이런 것들이 계속 쌓이면서 미국 내에서 ‘선(先)비핵화, 후(後)보상론’이 형성된 것입니다. 문제는 이게 북한으로서도 받기 힘들다는 것이지요.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부분 비핵화와 부분 제재 해제를 맞바꾸는 하노이 방식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이 그런 방향으로 정책을 틀도록 유도해야 하는데, 한미 관계가 튼튼하고 상호 신뢰하지 않으면 미국을 설득하기 어렵다는 점입니다. 한미 동맹 강화가 남북대화의 여지를 좁게 만든다는 주장은 피상적인 이분법 논리라고 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 도착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영접하고 있다ⓒ대통령실 제공

마침 어제(5월25일) 북한이 미사일 3발을 발사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한국·일본 방문을 마치고 미국으로 되돌아간 직후의 도발인데, 미국 현지 반응은 어떻습니까.

“여기(워싱턴)서는 올 초부터 도발이 계속되는 맥락에서 특별하게 놀라거나 의미를 부여하는 그런 느낌은 없는 듯합니다. 또 미사일 발사에 대해서는 미국도 어떤 특별한 대안이 없는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다만 추가적으로 핵실험을 감행하게 되면 중국이 북에 반발할 수도 있다는 기대감은 나옵니다. ICBM 발사와 달리 핵실험에 대해서는 중국이 움직이지 않겠느냐는 것이죠. 실제 중국은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 강화에 한미가 강력 대응하고, 그런 과정에서 혹여 북한이 의도하지 않은 실수나 오해에 의해 위험한 국면을 야기하지 않을까 우려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정부도 어제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린 문재인 정부와 다르다”며 강대강으로 맞서는 분위기입니다. 2008년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한반도 긴장이 급격히 고조됐던 상황이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과거 두 가지 사례를 들겠습니다. 1972년 북한과 7·4 공동성명을 발표하면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적의 한 손을 잡고 있으면 다른 손이 무엇을 하려는지 알 수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북한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대화는 필요하다는 점을 말한 것입니다.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케네디 미 대통령이 소련 미사일의 쿠바 배치에 대해 해상봉쇄라는 강력 대응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소련 내부 정책 결정자들과 끊임없이 소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덕분에 소련의 체면도 살리고 미국 체면도 유지하는 해법을 제시해 핵전쟁 일보 직전의 위기를 풀었던 바 있습니다. 원칙은 강경하더라도 대화를 병행해야 합니다. 그래야 오해에 따른, 의도하지 않은 불상사를 막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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