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고객이 낸 폰뱅킹 통화료, 은행이 통신사로부터 되돌려받아
  • 이원석 기자 (lws@sisajournal.com)
  • 승인 2022.05.27 06:00
  • 호수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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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 금융사들에 “불공정거래 소지” 지적…KB국민은행, 올해도 같은 행태 반복해 논란
ⓒ일러스트 김세동
ⓒ일러스트 김세동

폰뱅킹·콜센터를 운영하는 금융사들이 전화회선에 대한 통신사 선정 권한을 이용해 통신사로부터 금융사 내부 IT 장비 등 수백억원 규모의 투자금을 받아온 것으로 드러났다. 고객들이 전화로 금융 업무를 보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통화료를 금융사들이 돌려받는 방식의 계약이 이뤄져왔던 것이다. 금융사는 금융 서비스에 대한 수수료와 함께 이중으로 본인들이 투자해야 할 IT장비 구축 및 운영 비용까지 사실상 고객에게 전가하고 있었던 셈이다.

통신사들 역시 업계 경쟁 등으로 인해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사업에 ‘울며 겨자 먹기’로 입찰을 할 수밖에 없어 금융사의 ‘갑질’이란 시각도 있다. 또 통신사의 손해는 이용자들에게 통화료 인상 등으로 이어져 결국 고객에게 불이익을 주는 행위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이에 대해 지난해 국회에서 문제 제기가 있자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문제점을 인식하고 시정을 약속했으나, KB국민은행이 이를 무시하듯 1년도 안 돼 지난 4월 같은 방식으로 투자 입찰을 진행한 것으로 드러나 더욱 논란이 예상된다. 

 

통신사 투자 규모 1조 넘는 것으로 추산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금융사들이 폰뱅킹·콜센터 등에 사용되는 전화회선을 근거로 통신사들로부터 투자를 받아온 것은 일반 소비자들은 잘 알지 못하는 업계의 오래된 악습으로 보인다. 우선 통신사 등을 통해 확인한 결과 15XX, 16XX, 18XX 등으로 시작되는 대표번호를 가진 대부분의 금융사 콜센터·폰뱅킹·ARS는 이용자가 통신사에 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유료 서비스다. 대표번호로 전화를 거는 경우 일반통화와 달리 부가음성통화로 분류돼 요금이 더 비싸다. 

무제한 요금제를 이용하더라도 부가음성통화는 대부분 별개로 요금이 부과된다. 요금제에 따라 30~300분 정도 제공되는데, 해당 제공량을 모두 소진할 경우 별도 발신 요금이 부과된다. 요금은 이용자가 통신사에 가입한 요금제에 따라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3분에 350원가량이다. 요금은 통화가 연결된 순간부터 상담원과의 상담을 위해 대기하는 시간 등에도 계속 부과된다. 대기 시간과 업무처리 시간이 상대적으로 긴 금융사 콜센터는 고객 부담이 더 큰 셈이다. 금융사 등 콜센터를 운영하는 주체들은 통화료 부과 등의 내용을 고객들에게 알려야 하지만, ARS는 물론 홈페이지 등에서도 이를 제대로 확인하기 어렵다. 심지어 대부분의 금융사는 080 등으로 시작되는 수신자부담번호를 보유하고 있으나 이를 고지하는 경우는 드물다.

이렇듯 금융사 고객들을 통해 통신사들이 얻는 수익이 적지 않게 발생하자 과거 금융사들은 보유한 통신회선 수량을 근거로 자신들이 통신사에 내는 통신요금을 할인받는 식으로 입찰을 진행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점차 폰뱅킹이 대중화되고, 통신사 간 경쟁이 과열되자 통신사가 금융사에 콜센터 운영 등에 필요한 IT 장비를 투자하는 방식으로 확대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연히 투자 금액도 크게 늘었다. 시중은행을 기준으로 2000년대 초반 50억원 이내였던 투자 금액은 5~10배로 불어나 최근 수백억원 수준인 것으로 확인된다. 

금융사들은 3년에서 5년 단위로 통신사로부터 수백억원 규모의 통신 장비 등을 투자받았다. 계약 기간이 끝나면 금융사들은 다시 입찰을 진행한다. 이런 방식으로 금융사는 3~5년마다 콜센터 장비를 새롭게 교체해 왔다. 여기서 통신 장비란 전화기·서버 등 하드웨어를 비롯해 소프트웨어 등 통신 서비스 운영에 필요한 시스템 일체다. 금융사들은 고객들이 낸 통화료를 되돌려받는 방식이 문제가 될 것을 인지해 통신사가 직접 장비를 구매해 대여 방식으로 제공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실제로는 금융사 소유나 다름없다는 게 통신업계 시각이다. 아울러 장비뿐만 아니라 유지·보수 비용까지도 매년 추가로 통신사들이 부담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통해 확보한 자료에 따르면 금융사들이 통신사들로부터 장비 등에 대해 투자를 받아온 금액 규모는 1조원대를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몇 년 새 KT, LG유플러스, SK브로드밴드 등 통신 3사가 시중은행·카드사에 콜센터 시스템에 투자한 금액은 대략 1800여억원이다. 구체적으로 농협은행 602억원, 농협카드 107억원, 신한은행 190억원 , 신한카드 320억원, 우리은행 157억원, 우리카드 233억원, 하나은행 80억원, 하나카드 195억원 등이다. 국민은행은 지난 2014년 300억원 규모로 같은 방식의 투자를 받았으나 이후 자체적으로 시스템을 구축해 투자를 받진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KB국민은행 여의도 사옥 ⓒ시사저널 최준필
KB국민은행 여의도 사옥 ⓒ시사저널 최준필

KB, 통신사에 “외부 유출 금지” 확약서 요구

최근 형태를 보면 투자하는 통신사들은 계약 시 금융사로부터 수익을 보장받기도 하지만, 보장받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시장점유율 등 업계 내 경쟁을 해야 하는 통신사 입장에선 금융사의 입찰에 뛰어들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통신업계 관계자는 “주요 금융사의 입찰의 경우 통신 3사 간 경쟁이 치열해 대부분의 사업은 통신사가 수익성 없이 입찰에 참여하고 사업을 진행할 수밖에 없다”며 “콜센터 회선과 같은 대규모 기반 사업은 일단 회선을 유지하고 있어야 그에 따른 부속 사업의 참여 기회가 생기고 사업의 상징성이 있어 보통 마이너스 수익으로 입찰에 참여해야만 수주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또 “최근 콜센터 이용 빈도 감소 추세가 반영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를 하면 통신사 수익은 더욱 악화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특히 국민은행의 경우 지난해 국회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으나 올해 또다시 같은 형태의 입찰을 진행한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될 전망이다. 취재에 따르면 지난해 9월경 국회 김병욱 의원실은 금융사와 통신사 간의 이 같은 거래 형태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 리베이트 제공 등의 소지가 있을 수 있다며 비공개적으로 금융사들에 자율 개선을 요청했다. 이에 대부분의 은행사와 카드사는 추후 콜센터 운영 장비 등을 자체적으로 조달하겠다고 개선 의지를 밝힌 뒤 이를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국민은행은 약속을 뒤로한 채 지난 4월 통신 3사에 ‘통신 인프라 재구축 자원(콜센터 전화망) 구매’에 대한 입찰을 제안했다. 최근까지 자체 시스템을 구축해 사용했던 국민은행이 다시 통신사로부터 투자를 받는 방식을 통해 통신 장비 재구축에 나선 것이다. 국민은행은 이번 입찰을 위해 대형 로펌에서 법률적 자문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은행의 입찰에 통신 3사가 모두 참여해 최종적으로 1, 2사업자가 약 200억원에 가까운 규모의 투자금을 제시해 낙찰됐고, 현재 계약만 남겨놓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특히 이번 국민은행의 입찰은 지금까지 금융사들이 해왔던 장비 입찰 방식이 아닌 통신사가 최대 투자 금액을 제시해 낙찰을 받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이 같은 방식으로 입찰을 진행한 건 최근 들어 국민은행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사저널은 국민은행이 입찰을 위해 통신 3사에 발송한 제안요청서(RFP)를 입수했다. 요청서엔 국민은행 콜센터의 전화회선 수량과 통화 건수 등 상세내역과 함께 견적서 표본이 첨부돼 있다. 통신사가 적어 내야 하는 견적서엔 투자 금액과 함께 국민은행이 발신하는 비용에 대한 통신료도 제안하게 돼있다. 첨부 자료엔 국민은행이 통신사에 지급하는 통화료 현황도 있다. 즉 통신사가 낙찰을 받으려면 투자 금액이 최대가 돼야 함은 물론 국민은행 발신 통화료까지 깎아줘 손해가 더 커질 수밖에 없는 형태인 셈이다. 

시사저널이 입수한 국민은행 ‘통신 인프라 재구축’ 사업 제안요청서(RFP)
시사저널이 입수한 국민은행 ‘통신 인프라 재구축’ 사업 제안요청서(RFP)

“통신 소비자에게 돌아갈 이익 부당하게 수취”

아울러 국민은행은 입찰자들에게 확약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하기도 했다. 확약서엔 ‘본 제안과 관련해 인지한 모든 정보, 파일 및 문건에 대하여 당행의 허락 없이 어떠한 경우에도 외부에 유출하지 않겠다’ ‘당행의 업체 선정 결과에 대하여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겠다’ 등의 조항이 담겨있다. 국민은행은 이에 대해 “모든 입찰 때 받는 서류”라고 해명했다.

국민은행은 통신사 투자 입찰에 대해 “국민은행은 본 사업과 관련해 일반경쟁입찰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였으며, 이러한 방식은 은행뿐 아니라 일정 규모의 콜센터를 운영하는 공공기관, 금융기관 등에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는 걸로 알고 있다”며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은행 측은 고객들의 통신료로 은행이 무료로 콜센터를 운영하는 것 아니냐는 시사저널 질의에 “통신사는 통화료를 발신자에게 과금하고 있으며, 국민은행도 발신 통화에 대해 통신사에 요금을 납부하고 있다”며 “또한 은행은 콜센터 구축과 운영을 위해 은행의 자본을 직접 투자하고, 전산센터 및 인력 운영 등을 위한 비용을 지출하고 있다”고 답했다. 

통신사에 대한 갑질로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될 수 있지 않냐는 지적에 대해선 “국민은행은 금번 사업을 진행하며 정보제공요청서(RFI) 및 제안요청서(RFP)에 사업과 관련한 내용을 사전에 제공했다”며 “입찰 참여자는 국내 주요 통신사들로 입찰 참여 여부 및 응찰 조건은 각 회사의 자율적인 판단에 따라 결정된다. 따라서 현실적으로 은행이 통신사에게 불이익을 줄 수 없다”고 입장을 밝혔다.

법무법인 온다의 이동호 변호사는 “국민은행 등 금융사들의 이 같은 행태는 공정거래법 제45조 1항 6호의 일반 불공정거래 행위 중 거래상 지위남용에 해당하고, 더 구체적으로는 이익 제공 강요에 해당될 소지가 충분히 있다”며 “보통 입찰을 할 땐 제안자가 돈을 지불해야 하는데 오히려 투자금을 받는 형태로, 이에 대한 합리적 이유를 찾을 수 없다. 또 통신사의 손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는 결국 엄청난 이자 수익을 얻고 있는 은행이 통신 소비자에게 돌아가야 할 이익 또한 부당하게 수취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어 명백히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 문제와 관련해선 현재 국회 김병욱 의원실이 계속해서 국민은행 등 여러 기관에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된다. 아울러 오랜 시간 통신료 인하 등을 위해 힘써온 시민단체 녹색소비자연대는 시사저널에 금융사와 통신사의 이 같은 거래 행태에 대해 조만간 공정위에 고발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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