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식 업계 ‘터줏대감’ 껌이 ‘단물’ 빠진 까닭
  • 한다원 시사저널e. 기자 (hdw@sisajournal-e.com)
  • 승인 2022.06.16 10:00
  • 호수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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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점 계산대 앞자리 내주고 구석으로 몰려
젤리 등 대체 간식 수요 증가 따라 시장 축소

‘껌값’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이 말처럼 껌은 낮은 가격으로 과거 서민의 무료함과 공허함, 허기를 달래주는 간식 역할을 톡톡히 했다. ‘씹는 행위’는 육체노동의 고됨을 날리는 데 큰 역할을 했고, 초등학생은 동전 몇 푼이 생기면 친구들과 껌 한 통을 나눠 먹으며 우정을 다졌다.

한때 서민 간식이며 국민 간식이었던 ‘껌’의 인기가 최근 추락하고 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 계산대 앞 가장 잘 보이는 매대를 장악하던 껌의 위치가 어느새 구석으로 밀려났다. 과거 껌은 배고픔을 달래거나 식사 후 입가심용으로 씹는 에티켓 제품으로 선호도가 높았지만 최근 껌을 대체할 간식거리가 생겨나면서 구매율이 낮아진 것이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마스크 착용이 일상화되고, MZ세대를 겨냥한 간식거리인 젤리나 사탕류가 인기를 얻은 점도 껌의 인기 하락에 영향을 미쳤다.

ⓒ연합뉴스
코로나19 팬데믹과 대체 간식이 늘어나면서 ‘국민 간식’으로 불리던 껌의 판매가 크게 줄고 있다. 사진은 서울의 한 대형마트 껌 판매대의 모습ⓒ연합뉴스

롯데 후레쉬민트, 재출시 1년 만에 생산 중단

국내에서 껌의 인기는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 때부터 시작된다. 1921년 울산에서 태어난 신 명예회장은 울산농업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1942년 일본으로 건너갔다. 1940년대 초반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껌이 선풍적 인기를 끄는 것에 주목, 사업에 나서 큰돈을 벌었고 1948년 지금의 롯데를 탄생시켰다. 껌이 롯데그룹을 만들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롯데는 껌을 시작으로 캔디·비스킷·아이스크림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넓혔고 현재까지도 롯데제과는 국내 껌 시장 부동의 1위를 유지하고 있다.

껌은 1972년 국내 슈퍼마켓에서 ‘롯데껌 삼총사’(쥬시후레쉬·후레쉬민트·스피아민트)로 불리며 국민 간식의 강자로 자리 잡았다. 그러나 최근에는 생활수준 향상, 대체 먹거리 증가 등으로 껌 시장 규모가 급격히 줄었다. 대표적으로 롯데제과는 지난 2017년 롯데껌 삼총사 중 가장 판매율이 저조한 후레쉬민트 생산을 중단하고 자일리톨·후라보노 등 인기 있는 껌들에 초점을 맞춰 ‘선택과 집중’ 전략을 펼쳤다. 하지만 지난해 레트로 열풍이 불자 롯데제과는 다시 후레쉬민트 생산·판매에 나섰으나 재출시 1년 만에 중단했다. 후레쉬민트 마니아의 향수를 자극해 껌 판매율을 높이려 했지만 경쟁 제품과의 차별성을 부각시키지 못했고 껌 인기 감소 등의 이유로 결국 생산을 중단했다.

껌의 인기 감소는 지표로도 뚜렷하게 드러난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식품산업통계정보에 따르면 국내 껌 시장 규모는 지난 2015년 3210억원을 기록한 이후 2019년 2590억원, 2020년 2540억원으로 줄었고 오는 2025년에는 2500억원까지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실제로 롯데제과의 껌 매출은 2019년 1733억원에서 2020년 1598억원, 2021년 1362억원으로 해마다 줄었다. 껌 브랜드도 롯데제과는 자일리톨·아이디·쥬시후레쉬 등 11종이고, 오리온은 닥터유·더 자일리톨·와우·후라보노 등 4종, 해태제과는 아카시아·해태은단 등 4종에 불과하다.

미국에서도 껌 소비량이 줄어드는 추세다. 시카고 소재 시장조사기관 IRI는 미국 껌 시장이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2년간 7억5500만 달러(약 9577억원)의 손실을 입었다고 분석했다. 제과 업계 관계자는 “과거에는 간식이라고 할 만한 제품이 별로 없어 껌 수요가 많았지만 요새는 요거트·아이스크림·커피류 등 후식·디저트 문화가 발달해 껌의 인기가 예전만 못하다”며 “충치 예방을 내세웠던 기존 껌 마케팅도 소비자들에게 힘을 잃어 인기가 후퇴하고 있다”고 밝혔다.

유통 업계는 껌의 인기 하락 요인으로 코로나19를 지목한다. 롯데제과 관계자는 “껌 시장은 자일리톨과 같은 스테디 껌 제품을 중심으로 성장 흐름을 보여왔다”며 “그러나 코로나19 이후 마스크 착용으로 취식이 불편해 껌 판매량이 줄어들었다”고 말했다. 오리온 관계자도 “껌을 대체할 젤리류나 사탕이 많아지다 보니 소비자의 관심도 다른 기호식품으로 옮겨졌다”며 “다양한 식감의 껌을 생산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 종식되면 껌 인기도 돌아올까

코로나19 종식 이후 껌 수요가 되살아날지는 미지수다. 껌 수요가 줄어드는 동안 대체 간식으로 젤리 시장이 급격히 증가했기 때문이다. 특히 편의점의 펀슈머(Fun+Consumer·재미를 찾는 소비자) 마케팅이 더해지며 젤리 수요가 커졌다. GS25의 껌·캔디·젤리의 연도별 매출 비중을 보면 젤리는 2019년 42.9%, 2020년 47.2%, 2021년 49.5%로 점차 오르는 반면, 껌은 같은 기간 20.4%, 15.7%, 13.1%로 줄어들고 있다. CU에서도 젤리 매출 비중은 2019년 52%, 2020년 54%, 2021년 57.1%로 60%대에 육박했지만 껌은 같은 기간 23.4%, 17%, 13.7%로 급감했다.

껌에 대한 소비자 선호도도 낮아지는 추세다. 일주일에 5회 이상 젤리를 구매한다는 8년 차 직장인 박아무개씨(32)는 “젤리는 식감이 좋기도 하고 껌처럼 오래 씹지 않아도 업무가 가능하고 마스크를 끼고도 간편하게 즐기기 좋다”며 “껌은 구매한 지 오래됐지만 젤리는 어릴 때보다도 훨씬 자주 찾고 있다”고 말했다. 대학생 유아무개씨(25)도 “껌은 5분 정도 씹으면 단맛이 금방 빠지고 질겨지지만 젤리는 그에 비해 식감도 다양하고 새로운 제품도 출시돼 거의 매일 구매한다”며 “코로나19 이전에도 그렇고 주변 친구들도 껌을 구매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전문가들도 소비자들과 비슷한 견해를 내놓았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코로나19로 인한 마스크의 영향도 있지만 소비자들의 다양성 추구 욕구 때문에 껌 수요가 감소했다고 본다”며 “더 재미있고 맛있는 것을 원하는 상황에서 껌과 유사한 다른 간식류가 많이 늘어났고, 이에 따른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지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껌은 상대적으로 마스크를 끼고 씹기에 번거롭다 보니 수요가 자연스레 줄어들게 된다”며 “특히 유통업체 중에서도 편의점은 유행과 소비자 반응이 민감한 곳이기 때문에 소비자 수요가 줄어들면 상품의 가치가 떨어졌다고 판단해 해당 제품을 매대에서 빼거나 제품 구색을 다르게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소비자들의 껌 수요가 코로나19 이후에도 현재와 비슷할지 지켜봐야겠지만 당분간 부진한 흐름을 이어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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