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추문 터져도 일단 ‘버티고’ 보는 日 의원들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1 07:30
  • 호수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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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진, 젊은 의원 할 것 없이 성 스캔들 끊이지 않아…성인지 부족한 자민당, 근본적 해결 없이 ‘꼬리 자르기’만 반복

출범 이후 비교적 순항하던 일본 기시다 내각이 끊이지 않는 성추문으로 흔들리고 있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가 이끄는 ‘기시다파’ 소속 중의원 요시카와 다케루 의원(40)이 지난 5월 18세 여대생과 음주 후 고급 호텔을 찾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을 빚고 있으며, 현직 중의원 의장을 맡고 있는 호소다 히로유키 의장(78)이 여성 기자에게 성희롱 발언을 일삼은 것으로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요시카와 의원의 원조교제 논란은 2019년 3월에도 그의 지역구인 시즈오카현에서 자민당 의원이 준강간 및 도촬 논란으로 의원직을 사퇴한 적이 있어 더욱 주목받고 있다. 요시카와는 딸을 2명 둔 유부남으로 평소 ‘가정적인 아빠’라는 이미지를 부각시켜왔던 정치인이다. 그러나 주간지 ‘슈칸포스트’ 6월9일자 보도에 따르면, 요시카와는 5월27일 법적으로 음주가 불가능한 18세 여대생과 술을 마신 뒤 오다이바의 고급 호텔로 이동해 현금 4만 엔(약 40만원)을 건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해당 여성은 슈칸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요시카와가 “18세에 흥미 있다”고 발언했으며, 요시카와의 권유로 술을 마셨다고 증언했다. 이에 대해 요시카와는 해당 여성이 20세 이상이라고 생각했으며, 식사 후 조금 더 술을 마시기 위해 호텔 내 다른 가게로 이동했을 뿐 객실에 들어가지는 않았다고 반박했다.

기시다 후미오(가운데)가 2021년 10월4일 일본 중의원에서 총리로 선출된 뒤 동료 의원들로부터 박수받고 있다.ⓒAP 연합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정조회장 시절인 2019년 2월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열린 요시카와 다케루 후원 모임에서 발 언하고 있다.ⓒ도쿄 연합
기시다 후미오(가운데)가 2021년 10월4일 일본 중의원에서 총리로 선출된 뒤 동료 의원들로부터 박수받고 있다. ⓒAP 연합

기시다 총리의 미온적 대처에 비난 커져 

슈칸포스트의 보도 직후 기시다 총리는 “본인으로부터 어떠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의원직 사퇴 여부는) 본인이 설명 책임을 다하는 가운데 스스로 결정할 문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원조교제 의혹이 확산되자 요시카와는 결국 6월10일 당에 민폐를 끼쳤다며 탈당계를 제출했다. 탈당계 수리 이후 기시다 총리는 13일 중의원 결산위원회에서 “(요시카와) 본인은 국민들에게 어떠한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 탈당하더라도 국회의원으로서의 설명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본인이 사실을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자민당 내에서는 기시다 총리의 대응이 불충분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7월10일 참의원 선거까지 한 달도 남지 않은 가운데, 일부 참의원 의원이 당 차원의 대응에 대해 “너무 미온적이다” “위기감이 부족하다”며 문제점을 지적하고 나선 것이다. 세코 히로시게 참의원 간사장도 요시카와의 의원직 사퇴를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제1 야당인 입헌민주당의 이즈미 겐타 대표는 “탈당한다고 끝날 문제가 아니다. 자민당 내에서도 의원직 사퇴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인데, (요시카와는) 사퇴하는 게 당연한 것 아닌가. 긴장감이라곤 전혀 없는 자민당 정치에 대해 할 말은 하는 역할을 입헌민주당이 해야만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베 신조 전 총리가 소속돼 있던 ‘호소다파’(현 아베파) 리더이자 현직 중의원 의장인 호소다 히로유키의 여성 기자 성희롱 의혹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주간지 ‘슈칸분슌’에 따르면 호소다는 심야시간에 여성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오지 않을래?” “옆에서 잠만 잘게” 등의 발언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의혹 보도 이후 기시다 총리는 “(호소다) 의장이 적절히 대응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구체적인 언급은 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회에 제출된 호소다 의장에 대한 불신임 결의안도 다수의 반대로 결국 부결되었다. 민주당 정권하에서 총리를 역임한 바 있는 하토야마 유키오는 “호소다 의장의 여성 기자 성희롱 문제를 어째서인지 주요 매체에서는 크게 다루지 않고 있다”며, 그 이유로 “주요 매체들은 정치인들과의 원활한 취재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여성 기자들을 보내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정치인의 몰상식한 행동뿐 아니라 미디어의 취재 방식에도 문제가 있다는 것이다.

한편 호소다 의장 및 요시카와 의원에 대한 자민당의 대응이 이중적이라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두 사람 모두 성추문 의혹 보도 이후 제대로 된 해명에 나서지 않고 있음에도 젊은 의원인 요시카와에 대해서는 “설명 책임을 다해야 한다” “의원직을 사퇴해야 한다”와 같은 강한 비판을 제기하는 반면, 파벌의 수장을 맡는 등 당내에 견고한 세력 기반을 가진 거물급 정치인 호소다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해명을 요구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시다 총리는 6월13일 참의원 결산위에서 ‘호소다 의장의 성희롱 의혹에 대해 사실 확인을 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행정부의 장으로서 발언할 문제가 아니다”고 답하는 등 해당 사건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회피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렇듯 자민당 의원들의 성인지 부족은 과거에도 수차례 지적돼 왔다. 2006년 6월에는 자민당 소속 지바현 의회 의원 오카다 게이스케가 술에 취해 아사히신문 여성 기자를 성추행한 뒤 해당 기자에게 음란 메일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의원직을 사퇴했다. 오카다는 사퇴한 지 1년 만에 지방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낙마했다. 2014년 6월에는 도쿄도 의회의 스즈키 아키히로 의원이 임신·출산·불임 관련 여성 지원에 대한 논의 도중 여성인 시오무라 아야카 의원에게 “본인이나 빨리 결혼했으면 좋겠다”고 발언해 논란을 일으켰다. 스즈키는 해당 발언을 인정하고 사죄했으나 의정활동을 계속 이어나가 2019년에는 도쿄도의회 자민당 간사장을 맡았다. 

기시다 후미오(가운데)가 2021년 10월4일 일본 중의원에서 총리로 선출된 뒤 동료 의원들로부터 박수받고 있다.ⓒAP 연합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정조회장 시절인 2019년 2월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열린 요시카와 다케루 후원 모임에서 발 언하고 있다.ⓒ도쿄 연합
기시다 총리가 자민당 정조회장 시절인 2019년 2월 일본 시즈오카현에서 열린 요시카와 다케루 후원 모임에서 발 언하고 있다. ⓒ도쿄 연합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 자민당 의원들의 성추문 

2014년 8월에는 여성 의원의 성추행 의혹이 파문을 일으켰다. 일본 스케이트연맹 회장을 맡고 있던 하시모토 세이코 참의원 의원이 소치동계올림픽 뒤풀이 자리에서 피겨선수 다카하시 다이스케에게 포옹 및 키스를 강요한 것으로 알려지면서다. 그러나 해당 문제는 별다른 징계 없이 무마됐으며, 하시모토는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올림픽조직위원장에 취임하기까지 했다.

원조교제 의혹에 휩싸인 요시카와 의원 역시 자민당을 탈당했을 뿐 의원직은 계속 유지하고 있다. 자민당 의원들이 성추문 이후에도 버젓이 의원직을 유지하는 모습은 자민당이 성 관련 스캔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보다 단순히 사건을 무마하거나 보여주기식 꼬리자르기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는 비판을 초래하고 있다. G7 선진국의 일원인 일본이 국력에 비해 끊임없이 지적되는 ‘젠더 후진국’이라는 오명에 시달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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