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비오, 트라우마 극복하고 세계 무대로 비상할까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19 12:00
  • 호수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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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비오, 안티팬 방해 논란에 3년 전 ‘손가락 욕설’ 악몽 재소환
KPGA 대표 스타 자리매김 뒤 PGA 재도전 의지 내비쳐

누구의 잘못일까. 스타 부재에 시달리는 국내 남자골프(KPGA)에 몇 안 되는 스타급 선수로 자리매김하고 있는 김비오(32·호반건설)에 대한 이야기다. 3년 전 ‘손가락 욕설’ 논란으로 선수 생명 위기까지 겪은 뒤 힘겹게 재기에 성공한 그는 지금 제2의 전성기를 맞으며 KPGA 최고의 스타로 거듭나고 있지만, 최근 다시 한번 ‘안티팬’의 비매너 논란이 불거지며 의도치 않게 예전의 악몽이 재소환되는 상황을 맞고 있다.

사건은 ‘안티팬’으로 추정되는 한 갤러리가 경기 중 연이은 사진 촬영으로 방해 행위를 하면서 불거졌다. 6월12일 경남 양산의 에이원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PGA투어 ‘with A-ONE CC’ 대회. 치열한 선두 다툼을 벌이던 김비오가 16번홀에 들어서 티샷을 하는 순간 갤러리의 카메라 셔터 터지는 소리가 나왔다. 움찔했던 김비오의 공은 러프로 떨어졌다. 문제는 그다음. 김비오가 경사가 심한 어려운 여건에서 두 번째 샷을 할 때 또 갤러리의 카메라 셔터 소리가 들리자 캐디가 발끈하며 “계속 이렇게 하시면 어떻게 하느냐”며 항의했다. 그러자 김비오는 캐디를 말리며 갤러리들을 향해 “죄송합니다만 스윙할 때만 좀 조심해 주면 좋겠습니다”라고 허리를 숙였다. 그로선 3년 전 악몽을 다시는 되풀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김비오가 6월5일 제주 서귀포 핀크스 골프클럽에서 열린 SK텔레콤 오픈 최종 라운드에서 8언더파 63타를 쳐 4라운드 합계 19언더파 265타로 우승했다.ⓒ연합뉴스

최경주도 “김비오 징계는 너무 과한 느낌”

3년 전 상황이란 뭘 말하는 걸까. 2019년 9월29일 경북 구미시 선산 컨트리클럽에서 열린 KPGA투어 DGB 볼빅 대구경북오픈 4라운드 16번홀. 당시 김비오가 티박스에서 티샷을 하는 순간 갤러리가 휴대전화 카메라로 촬영하면서 소음이 일었다. 이 때문에 그는 티샷 실수를 했다. 스윙을 멈추려 했지만 이미 임팩트가 끝나 볼은 날아갔다. 비거리는 겨우 100야드밖에 나가지 않았고, 볼은 러프로 들어갔다. 화를 참지 못한 김비오가 그만 갤러리를 향해 ‘손가락 욕설’을 한 것이다. 그러고도 화가 풀리지 않았던 탓인지 드라이버 헤드로 바닥을 내려치기까지 했다. 그런데 이 장면은 JTBC TV 생중계 화면을 통해 전국에 전파를 탔다.

순간적인 화를 참지 못한 그의 잘못된 행동은 엄청난 후폭풍을 야기했다. 협회 사무실에는 “프로 선수들이 이런 행동을 하면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느냐”는 항의 전화가 빗발쳤다. 여론이 나빠지자 협회는 상벌위원회를 열어 그에게 3년 자격 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벌금 1000만원에다 대상포인트 등 2019년 KPGA 코리안투어의 모든 기록을 삭제하는 엄청난 불이익이 그에게 내려졌다. 사실 미국프로골프(PGA)투어에서도 톱스타들이 자기 화를 참지 못하고 욕을 내뱉거나 클럽을 부러뜨리고 심지어 내던지도 한다. 하지만 징계는 경미한 편이다. 

김비오에 대한 국내 징계에 대해 미국에서 활동하는 케빈 나 선수는 공식 기자회견에서 “그가 프로답지 못한 행동을 한 것은 사실이나, 사과할 기회를 주는 것도 좋다. 그의 아내가 임신 중인데 힘든 시기가 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케빈 나의 캐디는 ‘김비오의 징계를 풀어달라’는 의미가 담긴 ‘Free Bio Kim’ 문구를 모자에 새기고 나오기도 했다. 최경주는 “그의 징계는 벌금으로 끝나도 된다고 보지만, 출전 정지를 내린다면 6개월 또는 6개 대회 정도가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선수로서 당연히 해서는 안 될 행동을 한 것은 맞지만 3년 징계는 너무 과했다는 느낌이다. 이런 일을 계기로 앞으로 우리 갤러리 문화도 선수를 보호하는 쪽으로 달라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골프장에서는 ‘환경미화원’이라고 할 정도로 인성이 남달랐던 김비오가 한순간의 실수로 나락으로 떨어졌을 때 그에게 큰 힘이 되어준 것은 아내 등 가족이었다. 5월8일 GS칼텍스 매경오픈에서 우승하고 난 뒤 세리머니보다는 그린 옆에 있던 아내와 두 딸을 포옹했다. 6월5일 SK텔레콤 우승 뒤 인터뷰에서 그는 “지난 우승들과 비교해 더 겸손한 모습을 보이고 싶었다. 골프팬들께 내 실수를 뉘우치고 있다는 진심을 조금이나마 보여드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힘든 시간 동안 옆에서 큰 힘이 된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손가락 욕설로 논란을 일으킨 김비오가 2019년 10월1일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한국프로골프협회에서 열린 상벌위원회를 마친 뒤 무릎 꿇고 사죄하고 있다. ⓒ뉴스1

11년 전 최연소 PGA투어 도전했다 실패…“다시 미국 진출하겠다”

지금이야 완벽하게 재기에 성공했지만 사실 김비오의 골프 인생은 롤러코스터처럼 결코 평탄치 않았다. 1m82cm, 75kg의 체격. 겉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지만 맥박이 불규칙적으로 뛰는 부정맥이라는 심장질환으로 마음에 짐을 안고 산다. 실제 경기 도중 페어웨이에서 쓰러진 적도 있다. 12세 때부터 5년간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건너왔다. 2008년 골프 명문 신성고 시절 국가대표를 지냈고, 일본과 한국에서 아마추어 내셔널 타이틀을 동시에 따낼 정도로 촉망받던 그였다. 2009년 프로에 데뷔한 뒤에도 2010년 코리안투어 조니워커 오픈에서 우승했고, 레이크힐스 오픈과 한·중 투어 KEB인비테이셔널 2차 대회, 한국오픈 등에서 준우승하며 KPGA 대상, 덕춘상(최저타수상), 명출상(신인상) 등을 석권했다. 

그의 목표인 세계 무대 진출을 위해 PGA투어 큐스쿨에 도전해 4위로 통과하며 PGA투어 출전 티켓을 손에 쥐었다. 2011년 PGA투어에 최연소로 진출했지만, 시즌 내내 부진을 면치 못해 시드 확보에 실패했다. 2012~13년 2부 투어인 콘페리 투어에서도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하자 그는 2014년 꿈을 접고 다시 국내에 복귀했다. 하지만 미국 도전 실패의 슬럼프 탓에 이후 국내 성적도 신통치 않았다. 그러던 중 2019년 4월 NS홈쇼핑 군산CC 전북오픈에서 무려 7년 만에 우승컵을 안았다. 그 여세를 몰아 5개월 뒤 DGB 볼빅 대구경북오픈에서 정상에 오르며 시즌 첫 다승자가 됐지만, 바로 그 대회에서 있었던 불미스러운 일이 그를 다시 깊은 수렁에 빠뜨리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무릎을 꿇고 팬들에게 사죄했다. 징계가 너무 가혹하다는 탄원이 이어지며 다행히 징계가 1년으로 줄었지만, 재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시즌 최종전인 LG 시그니처 플레이어스 챔피언십에서 우승하며 무르익은 실력을 과시했고, 올 시즌 GS칼텍스 매경오픈에 이어 SK텔레콤오픈에서 연이어 정상에 오르며 다시 미국 진출의 꿈을 키워가고 있다. 그는 미국 도전 실패 원인에 대해 “심리적인 문제가 컸다. 한국에 돌아가고 싶기도 했고, 가족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물론 완벽하게 준비하지 못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아직도 목표는 PGA투어에서 세계적인 선수들과 뛰는 것이다. 마스터스도 나가고 싶고, US오픈도 출전하고 싶다. 아시아프로골프투어도 병행하고, 올가을에 PGA 콘페리 투어 퀄리파잉스쿨 응시도 생각하고 있다. 올해가 꼭 아니더라도 PGA투어에 진출하겠다는 꿈을 접지 않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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