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눌렸던 ‘성범죄 은폐’ 폭발의 도화선 된 탕산 집단폭행
  • 모종혁 중국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1 07:30
  • 호수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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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에서 성추행하던 남성들, 여성 4명 집단폭행 사건 파장 확산
“시진핑의 ‘남성다움 강조’ 정책 맞물려” 지적도

6월10일 새벽 2시40분 중국 허베이(河北)성 탕산(唐山)시의 한 불고기 식당. 일행 6명과 함께 식당 밖 테이블에서 술을 마시던 천지즈가 식당 안에서 식사하던 여성 4명 중 한 명에게 다가갔다. 천지즈가 흰 티셔츠를 입은 여성의 등에 손을 얹고 말을 걸었으나, 여성은 손을 뿌리치면서 밀어냈다. 하지만 그는 개의치 않고 여성의 얼굴을 만지려 했다. 여성이 다시 그를 밀쳐내며 항의했다. 그러자 천지즈는 갑자기 여성의 뺨을 때리면서 주먹을 휘둘렀다. 이에 이 여성과 앞좌석 여성이 병을 휘두르며 저항했다. 여성의 다른 일행들은 셋을 말렸다.

그런데 식당 밖에 있던 천지즈 일행이 들어오더니 접시·의자 등을 집어던지며 여성들을 폭행했다. 특히 그들 일행은 병을 던진 두 여성의 머리채를 잡고 식당 밖으로 나가 내팽개치더니 사정없이 발길질을 했다. 이렇게 폭행은 4분 넘게 지속됐다. 이후 천지즈와 그 일행은 차를 타고 도망쳤다. 결국 피해 여성 중 2명은 심각한 중상을 입었다. 당초 이 사건은 현지 공안 당국에 의해 일상적인 폭행 사건으로 치부됐다. 하지만 당일 오후 식당 안팎에 설치된 CCTV 동영상이 SNS로 공개되면서 중국 사회에 큰 충격파를 일으켰다.

6월12일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CCTV 동상 캡처 화면. 한 남성이 10일 중국 동북부 탕산시 한 식당에서 여성 들을 폭행하고 있다.ⓒREUTERS
6월12일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CCTV 동상 캡처 화면. 한 남성이 10일 중국 동북부 탕산시 한 식당에서 여성 들을 폭행하고 있다. ⓒREUTERS
6월12일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CCTV 동상 캡처 화면. 한 남성이 10일 중국 동북부 탕산시 한 식당에서 여성 들을 폭행하고 있다.ⓒREUTERS
6월12일 로이터통신이 입수한 CCTV 동상 캡처 화면. 한 남성이 10일 중국 동북부 탕산시 한 식당에서 여성 들을 폭행하고 있다. ⓒREUTERS

성추행에 저항한 여성을 잔혹하게 폭행

중국 네티즌들은 “청나라 시대로 돌아간 것이냐. 어떻게 이런 일이 2022년에 벌어질 수 있냐” “힘없는 여성을 저렇게 무차별 폭행하는 범죄자는 다시 사회에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등 분노를 쏟아내며 당국에 엄벌을 촉구했다. 일부 네티즌은 폭행 사건을 일으킨 남성들이 조직폭력배와 연관이 있고, 지역 공안과도 친밀한 관계라는 의혹도 제기했다.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탕산시 공안국은 전국적인 수배령을 내리고 수사팀을 급파했다. 결국 6월11일 멀리 장쑤(江蘇)성까지 도망쳤던 천지즈를 포함한 일행 7명을 모두 체포했다.

하지만 탕산 폭행 사건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적지 않은 네티즌이 단순한 폭행이 아닌, 힘없는 여성에 대한 집단 린치와 안전 문제라는 젠더적 관점에서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현장 상황이 크게 작용했다. 천지즈 일행의 일방적인 구타로 식당 안팎이 아수라장이 됐지만, 주변에 있던 남성들은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오히려 여성들이 공안에 신고했고 폭행당한 여성들을 부축해 주다가 맞기까지 했다. 게다가 공안은 신고가 접수된 뒤 4시간이 지나서야 출동했다. 이렇듯 젠더 문제로 번지며 공안 당국이 비난받자 중국 관영매체들이 나섰다.

6월12일 ‘글로벌타임스’는 “이번 사건은 여성의 권리나 성평등 문제가 아니라 공공안전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탕산 폭행 사건의 피의자 중 5명은 전과가 있고, 천지즈는 불법 도박장을 운영했다는 후속 보도도 이어졌다. 그러나 탕산 시민들의 반응은 달랐다. SNS에 실명을 공개하며 “그동안 공안 당국이 폭력배 사건 처리에 미흡했다”며 성토했다. 여성에 대한 폭행과 성희롱 제보도 적지 않았다. 특히 한 여성은 직장에서 상사에게 폭행당하고 구금됐던 사실을 공개했으나, 경찰은 오히려 그녀에게 전화를 걸어 동영상을 삭제하라고 압력을 넣었다.

이렇듯 사회적 파장이 가시지 않자, 6월13일 탕산시는 폭력·갈취·도박·매춘·사기 등 각종 범죄를 소탕하는 작전을 2주 동안 실시한다고 발표했다. 같은 날 중국 최고의 사정기관인 중앙기율검사위원회(기율위)도 나섰다. 기율위는 “공공안전에 대한 위협이 증가하고 있다”면서 “폭력행위는 반드시 무관용으로 대처하고 엄중히 법대로 처벌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탕산 폭행 사건은 관영매체의 주장처럼 공공안전의 문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남성의 성추행에 저항하다가 여성이 폭행당한 사건이라는 점에서 중국인들이 갖는 시각은 다르다.

 

덮이거나 무시당하기 일쑤인 중국 내 성범죄

왜냐하면 중국 사회 곳곳에서 여성에 대한 성추행과 성희롱이 끊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탕산 폭행 사건 이후 중국 SNS에는 피해 여성들의 폭로가 잇따르고 있다. 한 여성은 사내에서 성추행당한 일을 고발했고, 다른 여성은 대학교 내 여학생 욕실에서 벌어진 불법 촬영을 폭로했다. 오랫동안 중국에서 살아온 필자도 중소도시와 농촌에서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희롱을 수없이 목격했다. 문제는 이러한 성범죄가 당국과 사회로부터 그냥 덮이거나 무시당하기 일쑤라는 점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세계적인 테니스 스타 펑솨이와 알리바바 여직원 성폭행 사건이다.

지난해 11월 펑솨이는 장가오리 전 국무원 부총리에게 성폭행당했다고 폭로했다. 그러나 2월6일 베이징동계올림픽 기간 중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다. 그사이 수개월 동안 펑솨이는 공식 석상에서 사라져 중국 당국의 감시 아래 놓였다. 지난해 7월에는 알리바바 여직원이 직장 상사와 고객사 직원으로부터 성폭력을 당했다고 폭로했다. 하지만 여직원은 허위사실을 SNS에 게재하고 사내에서 소란을 피워 회사에 악영향을 끼쳤다는 이유로 지난해 12월 해고됐다. 그에 반해 직장 상사는 당국으로부터 구류 15일 처분만 받았을 뿐이다.

물론 중국은 1992년 여성의 권익을 보호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여성권익보장법에는 가정·직장·학교 등에서 여성 차별을 금지하고 성범죄를 예방토록 했다. 그러나 각종 상황에서 벌어지는 성추행과 성희롱에 대한 정의와 내용이 부족하고 이에 대한 명확한 처벌 규정이 없다. 또한 가정·직장·학교 등에서 벌어지는 성범죄를 근본적으로 막기 위한 시스템도 부실하다. 중국 당국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하고 지난해 12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회가 개정안을 제출받아 법안 심의에 들어갔다. 하지만 개정안 통과는 아직도 감감무소식이다.

더욱 심각한 사안은 성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중국 당국의 노골적인 차별이다. 지난해 7월 중국 주요 대학 내 성소수자 모임 SNS 계정 수십 개가 폐쇄됐다. 모두 성 다양성뿐만 아니라 양성 평등과 미투 운동을 공개적으로 펼친 단체였다. 모임 측은 SNS 업체에 왜 계정을 폐쇄했는지 질의했으나, 자세한 설명 없이 “규정을 위반했다”는 말만 들어야 했다. 그 뒤 일부 대학에서 학내 성소수자 학생들의 심리상태·정신건강·정치적 지향 등을 조사했던 사실도 드러났다. 현재 중국 내 성소수자는 약 7000만 명으로 추산된다.

2020년 한 온라인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7%가 동성 간 결혼에 찬성하는 등 중국인들의 인식은 바뀌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 1월 교육부는 모든 학교에 남학생의 여성화 차단을 지시하는 지침을 하달했다. 9월에는 국가광전총국이 여성적인 외모를 한 남자 아이돌을 연예계에서 퇴출시켰다. 또한 외국 영화와 드라마에서 성소수자 관련 장면을 모두 삭제시키고 있다. 영국 BBC는 이런 추세를 “시진핑 국가주석이 강한 국가적 스탠스와 남성다움을 강조하며 ‘중국형 사회주의자’를 길러내려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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