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공화국’이나 ‘서오남의 나라’로 만들려 해선 안 된다 [유창선의 시시비비]
  • 유창선 시사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0 07:30
  • 호수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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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만 개방할 게 아니라, 인사에서도 자기 사람들만의 울타리 걷어내고 개방하는 노력 보여야

“글쎄, 뭐 필요하면 또 해야죠.” 용산 대통령실 출근길에 ‘검찰 출신 편중 인사’를 묻는 기자들에게 윤석열 대통령이 답했던 말이다. 같은 날 아침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제가 (윤 대통령과) 통화해서 ‘더 이상 검사 출신을 쓸 자원이 있느냐’고 하니 ‘없다’고 말했다”며 진화에 나섰던 것을 뒤집어버리는 말이었다. 하루 전날 나온 같은 질문에 대해서는 “과거에는 민변이 아주 도배를 하지 않았나”라며 정면으로 반박하기도 했다. 보수 성향 언론들까지 포함한 대다수의 언론과 여론이 검찰 편중 인사를 비판하고 있건만, 윤 대통령은 귀를 닫아버리는 태도를 보인 것이다. 

ⓒ시사저널 박은숙
이복현 신임 금감원장이 6월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가상자산 시장의 공정성 회복과 투자자 보호대책 긴급점검 당정간담회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특정 분야 출신만 중용하면 다양한 가치 반영 어려워

하지만 검찰 편중 인사는 윤 대통령의 그런 한마디 말로 정리될 만큼 단순하지 않다. 그동안 계속된 청와대와 정부 인사에서 검찰 출신들의 중용은 줄을 이었다. 초대 내각 인사에서는 법무부 장관에 검찰 시절 최측근이던 한동훈 검사를 임명했다. 법무부 차관에는 서울중앙지검장 시절 부하였던 이노공 전 수원지검 성남지청장을 기용했다. 이완규 법제처장은 검찰총장 직무 집행정지 당시 윤 대통령의 소송을 대리해준 검사 출신 변호사다. 국가정보원 기획조정실장에는 조상준 전 서울고검 차장검사, 차관급인 국무총리 비서실장에는 박성근 전 서울고검 검사를 임명했다. 금융감독원장에 이복현 전 부장검사가 임명되었는데, 금감원장 자리에 검찰 출신 인사가 기용된 것은 1999년 출범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대통령실 핵심 보직에도 검사 출신이 대거 발탁되었다. 대통령실에 아예 검찰조직이 이사온 듯한 느낌마저 불러일으킨다. 윤재순 총무비서관, 강의구 부속실장, 이시원 공직기강비서관, 주진우 법률비서관, 복두규 인사기획관, 이원모 인사비서관 등은 모두 검찰 시절 윤 대통령과 가까운 인연을 맺어왔던 인물들이다.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니까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들을 선호하는 심리는 알겠지만, 과도한 검찰 편중이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의 인사에서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는 물론 대학 시절 동문을 대거 중용한 점도 눈에 띈다. 김성한 국가안보실장은 초등학교 동기이고, 왕윤종 경제안보비서관은 2년 후배다. 김용현 경호처장은 고교 1년 선배이고,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고교와 서울대 법대 4년 후배다. 이렇다 보니 윤석열 정부의 인사는 온통 서로 잘 알고 지내던 사람들끼리 한데 모인 결과를 낳았다.

문재인 정부 시절의 인사를 보던 느낌 그 이상이다. 문재인 정부 시절 5년 내내 지적받아 왔던 것이 자기 진영 내부의 사람들만 중용하는 코드 인사였다. 문 전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집권하면 탕평 인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이전부터 서로 잘 알고 지내던 ‘86’ 출신 선후배들이 한데 모이게 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던 2017년 말을 보면, 청와대 비서관 31명 중 17명(54%)이 민변과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 출신 인사들이었다. 청와대·정부·민주당 모두 ‘86’ 그룹 출신들이 주도권을 갖고 정권이 운영되었다. 

같은 이념과 신념으로 뭉친 선후배들이 모여 국정을 운영하다 보니 의견의 다양성도, 서로에 대한 견제도 있기 어려웠다. 민심이반을 낳은 내로남불 행태도, 부동산 폭등을 낳은 선무당 같은 부동산 정책도 모두 이들의 획일화된 ‘신념의 통치’가 낳은 결과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민을 통합하는 정부로 가는 일을 포기하고 자기 진영만의 정부로 가는 인사 정책에 매달렸다. ‘운동권 출신’들이 모여 국정을 운영하던 문재인 정부가 바뀌고 나니, 이제 ‘검찰 출신’들이 모여 국정을 운영하는 정권이 등장한 셈이다. 똑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만 모여 정권이 운영되면 다양한 생각과 가치가 국정에 반영될 수 없음은 마찬가지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만을 세상의 전부로 착각하는 오류

검찰 시절 자신의 뜻대로 조직을 장악하는 힘이 대단히 강했던 것으로 알려진 윤 대통령이다. 그러하기에 편중 인사가 낳을 상황에 대한 우려는 더욱 크다. 대선을 치르는 과정에서도, 대선 이후에도 참모들이 그의 말을 거스르는 의견을 제기하기 어려웠다는 얘기는 공공연한 사실처럼 전해지고 있다. 검찰 시절에 자신이 거느리고 있던 사람들을 참모로 기용했을 때, 그 관계는 오직 지시와 복종만이 존재하는 수직적 위계가 될 수밖에 없다. 민심을 읽으며 객관적 시야 속에서 다른 의견도 내놓고 쓴소리도 할 수 있는 참모를 곁에 두기가 어렵게 된다.

초대 내각 인사의 특징으로 지적된 ‘서오남’(서울대 출신 50대 남성) 편중 인사도 마찬가지였다. 주변이 온통 서오남으로 둘러싸였던 윤 대통령에게는 편중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인사로 여겨졌을 것이다. 능력 있는 사람을 찾아보니 결국은 서오남이더라는 생각을 윤 대통령은 갖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 또한 자신이 살아온 세계만을 세상의 전부로 착각하고 자기 경험을 절대화하는 오류다. 우리는 많은 것을 경험함으로써 시야를 넓히게 되지만, 반대로 자신의 경험을 과신함으로써 시야를 좁게 만들기도 한다. 검사 출신들만 일을 잘하고, 서오남들만 능력 있다고 생각한다면 이는 경험의 오류에 갇혀버리는 결과를 낳기 쉽다. 

윤 대통령은 늘상 “우리 인사 원칙은 적재적소에 유능한 인물을 쓰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어째서 대한민국의 유능한 인물들은 검찰에만 있었고, 윤 대통령 주변에만 있었다는 말인지 알 수가 없다. 세상에는 검사 출신도, 서오남도 아니면서도 능력 있고 실력을 갖춘 인재가 많다. 다만 윤 대통령의 주변에 그런 사람들이 쉽게 보이지 않을 뿐이다. 그러니 자신의 인재풀이 협소함을 성찰하며 그 폭을 넓힐 고민을 해야지, 대한민국을 ‘검찰공화국’이나 ‘서오남들의 나라’로 만들려 해서는 안 된다.

‘검찰공화국’이라는 조어는 민주당과 그 지지층들이 윤 대통령을 공격할 때 사용해 오던 정치적 프레임이었다. 그런데 의아한 것은 정작 윤 대통령이 그런 프레임을 무력화하는 인사를 하는 대신, 오히려 검찰공화국이라는 멸칭의 설득력을 키워주는 길을 택한 광경이다.

윤 대통령은 ‘구중궁궐’이었던 청와대에서 나와 용산 집무실로 이전한 것을 자신의 치적으로 내세운다. 물론 청와대를 시민에게 개방하고 출근길에 기자들과 문답을 나누는 대통령의 모습은 무척 신선해 보인다. 하지만 대통령이 하나같이 똑같은 생각을 가진 참모들에 둘러싸인 생각의 구중궁궐에 갇힌다면, 몸은 밖으로 나왔지만 생각은 여전히 갇혀있는 셈이 된다. 청와대만 개방할 것이 아니라, 인사에서 자기 사람들만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개방하는 노력이 있어야 할 일이다.

검찰 편중 인사에 대한 비판에 윤 대통령은 “그게 법치국가 아니겠습니까”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법을 앞세워 나라를 다스리려 하기 이전에 좋은 정치로 국민의 마음을 얻는 사람이어야 한다. 법치에 앞서야 할 것이 정치임을 윤 대통령이 생각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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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창선 시사평론가
유창선 시사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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