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음식 치킨의 배신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6.22 10:00
  • 호수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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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킨 ‘3만원 시대’ 초읽기에 거세지는 진실 공방…업계 “원가 부담” vs 소비자 “실제 원가율 공개해야”

언젠가부터 “대표적인 K푸드가 뭐라고 생각하나”라고 물으면 ‘치킨’이라고 답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국인의 소울푸드 치킨은 해외에서도 뛰어난 맛으로 이름나 있다. 우리 국민 70.8%가 일주일에 한 번 이상 닭고기를 소비(2020년 기준)하게 된 데 치킨의 역할이 지대했음을 모르는 이는 없다. 하루가 멀다 하고 새로운 치킨 프랜차이즈와 동네 치킨집이 생겨나는 나라는 전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이렇게 끈끈한 국민과 치킨 사이의 균열이 가속화하고 있다. 가격 인상의 급행열차를 탄 치킨 프랜차이즈 때문이다. 국내 치킨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하는 프랜차이즈들은 지난해 말 또는 올해 들어 마리당 가격을 1000원 이상씩 올렸다. 이제 치킨 프랜차이즈 점포에서 한 마리를 배달시켜 먹으려면 평균 2만원 정도 써야 한다. ‘치킨값 2만원 시대’를 맞은 소비자들은 극렬한 저항감을 나타내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 더 비싸질 여지가 많다는 점이다. 치킨값 인상의 끝은 어디일까. 그리고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왜 소비자 반발에도 아랑곳없이 가격 인상 기조를 완강하게 밀어붙이는 걸까. 

ⓒfreepi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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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원’ 둑 허물어져…3만원 시대 곧 올 것”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한 결과, 현재 치킨 프랜차이즈들은 소비자가격과 가맹점 대상 원부자재 공급가 등 가격에 관한 전략을 수립하는 데 사활을 걸고 있다. ‘빅3’(교촌치킨, bhc, BBQ)를 중심으로 치킨 판매가가 재편되는 추세에서 자사 이익과 고객 관리 등 어느 부분도 놓치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다. ‘지금의 결정이 향후 10년을 좌우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 유례없는 긴장감에 오너들이 직접 나서 관련 전략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대외적으로 밝힐 수 있는 지위에 있지 않아 익명을 요구한 치킨 업계 관계자는 “인건비와 원부자재 가격 상승, 배달 애플리케이션 중개 수수료 부담으로 가격 인상이 필요하다는 논의는 치킨 프랜차이즈 대부분이 수년 전부터 해왔다”면서 “그동안 비판 여론에 가로막혀 못 하다가 전방위적인 물가 상승기를 맞아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빅3 업체의 오너들이 총대를 메고 가격 인상 드라이브를 거니 나머지 업체도 다 따라간다”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이미 ‘2만원’이란 둑은 허물어졌고, 3만원 시대도 생각보다 빨리 오지 않을까 예상한다”며 “지난 10년간 유지돼온 치킨 업계의 가격 경쟁 구도도 급격히 재편되는 느낌이다. 업체마다 정체성에 맞는 가격 정책을 구상하느라 고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프랜차이즈들의 가격 인상 러시는 지난해 11월 시작됐다. 업계 1위 교촌치킨이 메뉴 가격을 평균 8.1%(품목별로 500~2000원) 올리며 포문을 열었다. 교촌오리지날(1만5000원→1만6000원) 등 한 마리 메뉴와 순살 메뉴는 1000원, 원가 부담이 높은 교촌허니콤보(1만8000원→2만원) 등 부분육(콤보·스틱) 메뉴는 2000원 비싸졌다. 교촌이 가격을 인상한 건 2014년 이후 처음이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는 “너무 비싸다” “가뜩이나 서민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가격을 꼭 올려야 했나” “앞으로 교촌치킨을 이용하지 않겠다”는 등 소비자들의 성토가 이어졌다.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씨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1인 1닭에 2만원이다. 겨우 닭튀김에 1인이 2만원을 지불한다는 것은 한국 서민 주머니 사정으론 너무 큰 부담”이라고 했다. 

격앙된 여론이 무색하게 2위 BHC는 한 달 만인 지난해 12월 치킨 품목 가격을 1000~2000원 인상했다. 올해 2~3월에는 굽네치킨, 지코바, 또래오래, 멕시카나, 네네치킨 등이 최소 5.2%에서 최대 10.6%가량 치킨값을 올렸다. 그즈음 3위 BBQ를 이끄는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치킨값 2만원 시대에 대중이 부담을 느낀다’고 사회자가 지적하자 “치킨값이 (더 올라) 3만원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원가를 고려하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불길에 기름을 붓는 것과 다름없는 발언이었다. 지난 2월 2022 베이징동계올림픽 선수단장직 수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한 달여 만에 폭탄선언을 한 윤 회장의 행보가 고도로 계산됐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마치 능수능란한 협상가가 협상 초반부터 높은 기준점을 제시해 가격 논의를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끌고 가는 듯한 모습이어서다. BBQ는 곧이어 치킨 메뉴 전체의 판매가를 2000원 인상했다. 

일부 소비자가 보인 치킨 프랜차이즈 보이콧 움직임엔 힘이 실리지 않았다. 고가(高價) 논란 속에 발표된 빅3의 개별 기준 지난해 매출은 교촌치킨(교촌에프앤비) 4935억원, bhc(bhc그룹) 4771억원, BBQ(제너시스BBQ) 3624억원으로 모두 사상 최대였다. 영업이익률은 각각 8%, 27.3%, 18%로 식품 업계 평균 수준(5%)을 웃돌았다. 올해 실적도 견조한 흐름을 보인다. 코로나19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 국면에서 배달 수요는 줄어들었으나, 늘어난 매장 취식 수요가 이를 상쇄한다. 오는 11월 열릴 2022 카타르월드컵 역시 치킨 업계에는 대형 호재다. 아울러 주요 치킨 프랜차이즈는 사업 다각화, 해외 진출 등을 통해 실적의 ‘퀀텀 점프’를 꾀하고 있다. bhc와 BBQ가 상장에 도전할 것이란 관측도 꾸준히 제기된다. 앞서 교촌치킨은 2020년 치킨 업계 최초로 증권시장에 입성한 바 있다.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이 4월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치킨연금 행복전달식에 참석해 환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윤홍근 제너시스BBQ 회장이 4월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치킨연금 행복전달식에 참석해 환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치킨값 비싸다고 느끼는 소비자 탓해선 안 돼” 

이런 가운데 치킨 프랜차이즈들의 가격 인상이 정당한지를 둘러싼 갑론을박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치킨 업계의 대변자 역할을 자처한 윤홍근 회장이 명분으로 든 것은 가맹점주 수익 개선이다. 윤 회장은 “(원가에 비춰보면) 본사가 수익을 남기는 게 아니다. 소상공인은 점포를 얻고 노동력을 투입해 서비스까지 해서 치킨을 파는데, 고객 시각 때문에 마음대로 가격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윤 회장은 생닭이 치킨으로 만들어져 가정에 배달되는 과정과 원가 구조도 소개했다. 그는 “(치킨에 쓰이는) 생계 1.6kg 시세가 4160원이고, 도계비 1000원을 보태면 5160원이다. 요즘 이마트에서 팔리는 1kg 생계가 8000~9000원 선”이라며 “치킨 한 마리를 튀길 때 파우더는 2000원어치,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유는 3000~4000원어치 들어간다”고 설명했다. 인건비, 상가 임대료까지 대입해 원가를 산출할 경우 가맹점주들은 최저임금 수준도 못 챙겨가는 신세로 전락했다고 윤 회장은 토로했다. 

‘가맹점주의 수익을 늘려줘야 한다’는 취지를 두고 이견을 제기할 이는 거의 없다. 국내 최대 온라인 자영업자 커뮤니티인 ‘아프니까 사장이다’에선 윤 회장의 발언에 일정 부분 공감한다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서울 광진구에서 프랜차이즈 가맹점이 아닌 치킨 가게를 운영하는 김태완씨(56)는 “식용유와 밀가루는 물론 소스, 주류, 포장용기, 비닐 가격까지 어느 하나 빠짐없이 무섭게 오르는 만큼 치킨 판매가격 상승은 불가피하다”면서 “프랜차이즈든 아니든 치킨집 사장들이 재료비, 임대료, 공과금, 세금 등을 제하고 보통 매출의 30% 정도를 남기던 시절은 옛말이 됐다”고 말했다. 그는 “게다가 코로나19 엔데믹 이후 임대료도 들썩이고 있다. 사실 물가 상승보다 더 자영업자들을 고통스럽게 하는 요소가 임대료”라며 “나는 배달앱, 종업원 등을 쓰지 않고 임대료 변동 폭도 적어 겨우 버티지만, 그게 불가능한 프랜차이즈 가맹점주들은 더 힘들 듯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유튜브 채널 ‘미트러버’의 진행자 황사장(닉네임)은 업로드한 영상에서 윤 회장의 발언이 논점을 흐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의 책임을 교묘히 회피하고 있다는 것이다. 황사장은 “BBQ는 치킨값을 올릴 때마다 (원가를 설명하며) 소매가와 도매가, 다른 제품의 판매가까지 다 섞어서 언급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본사의 원가율은 공개하지 않은 채 사람들이 단순히 ‘BBQ의 원가가 매우 높구나’라고 착각하게끔 한다”고 말했다. 윤 회장이 ‘식당에서 돼지고기 삼겹살 1인분(150g)은 1만5000원 정도다. 치킨 한 마리 무게인 1kg가량을 먹으려면 10만원 이상’이라고 한 데 대해 황사장은 “닭은 기르는 데 30일, 돼지는 6개월 걸린다. 전 세계 어디에서나 돼지고기가 닭보다 비싼 데다 삼겹살집에선 불을 피워주고 다양한 반찬도 제공한다”며 “동일선상에 있지 않은 품목을 단순 비교하니 분노하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 치킨값은 고물가로 유명한 미국보다 비싸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윤 회장 말처럼) 치킨 한 마리가 3만원에 이르러 전 세계에서 가장 비싸질지도 모르겠다”며 “BBQ는 소비자의 인식만 탓하지 말고 본사 차원에서 치킨을 사랑하는 소비자에게 어떤 보답을 했는지, 하다못해 가맹점주 요구는 잘 들어주고 있는지 곱씹어야 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6월15일 서울 시내 한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 앞에서 시민이 메뉴판을 살펴보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6월15일 서울 시내 한 치킨 프랜차이즈 매장 앞에서 시민이 메뉴판을 살펴보고 있다.ⓒ시사저널 최준필

‘미공개 원가율’ 놓고 의구심 확대 

BBQ 등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의 논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은 소비자 단체에서도 제기됐다.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물가감시센터가 국내 치킨 업계 상위 5개 프랜차이즈의 재무제표와 주 원재료인 닭고기 가격을 분석해 5월18일 내놓은 결과에 따르면,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상위 5개 브랜드의 가맹점 평당(3.3㎥당) 평균 매출액이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본사의 매출액과 영업이익 역시 5년간 꾸준히 늘어났다. 매출액의 경우 굽네치킨이 8.8% 증가했고 나머지 4개 업체는 10% 이상 늘어났다. 5년간 연평균 영업이익은 BBQ가 33.8% 뛴 것을 비롯해 5개 업체 모두 12% 이상씩 증가했다. 협의회는 “지난 5년간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의 평균 영업이익률은 2020년 도매 및 소매업 평균보다 약 5.7배 높다”면서 “매출액과 영업이익률이 상승세를 보이며 가격 인상을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안정적 손익 구조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주 원재료인 닭고기의 연평균 시세는 9~10호 크기를 기준으로 2015년 kg당 3297원에서 2020년에는 2865원까지 하락했고 지난해에는 3343원으로 다시 상승했다. 협의회는 “6개월에서 1년 단위로 닭을 안정적으로 공급받는 프랜차이즈 본사가 닭고기 가격을 핑계 삼아 가격 인상을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기 어렵다”면서 지난해 닭고기값 상승만으로는 판매가 인상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치킨 프랜차이즈 본사는 가맹점과의 상생을 위해 가격을 인상한다고 주장했지만, 가맹점에 공급하는 제품 가격 인상 등에 비춰 본사만의 이익 증가를 위한 가격 인상은 아닌지 의구심이 든다”며 본사들에 원부자재 원가 공개를 촉구했다. 

일반적인 프랜차이즈 본사와 달리 기타 비용 절감 등을 통해 판매가를 올리지 않는 곳도 있다. ‘두 마리 치킨’(프라이드 두 마리 가격 2만2500원)으로 잘 알려진 티바두마리치킨 관계자는 “물가 상승 압박이 큰 건 사실이라 가맹점 대상 원부자재 가격을 조금 올리긴 했으나, ‘박리다매’라는 정체성을 지켜야 소비자들이 계속 찾고 본사와 가맹점 모두 상생할 것 같아 가격을 동결하고 최대한 버티는 중”이라며 “아예 역발상으로 판매가를 낮춰보자는 논의도 해본 적이 있다”고 전했다.  

■ 올해 들어 가격 가장 많이 오른 외식 품목은 치킨 

치킨은 올해 들어 가격이 가장 많이 상승한 외식 품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5월 외식 물가지수는 지난해 12월보다 4.2% 올라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3.4%)을 웃돌았다. 39개 외식 품목 가격이 모두 지난해 말보다 비싸졌는데, 치킨(6.6%)의 상승률이 가장 높았고 짜장면(6.3%), 떡볶이(6.0%), 칼국수(5.8%), 짬뽕(5.6%) 등이 뒤를 이었다. 

김밥(5.5%), 라면·커피(각 5.2%), 볶음밥(5.0%), 소주·맥주(각 4.9%), 스테이크(4.8%), 된장찌개 백반·해장국·탕수육(각 4.7%), 김치찌개 백반·햄버거(각 4.5%), 냉면·돈가스·피자·도시락(각 4.4%) 등의 가격도 많이 올랐다. 

외식물가는 농·축·수산물과 가공식품 등 원재료 가격 상승분이 누적되고 코로나19로 위축됐던 소비가 회복되면서 가파른 오름세를 이어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각국의 원자재·식량 수출 제한 조치는 원재료값 인상 압박을 한층 더 키웠다.  

외식물가 상승은 국민, 특히 서민 생활에 직접적인 충격을 안긴다. 올 1분기 소득 하위 20% 가구는 가처분소득의 40% 이상을 외식 등 식비로 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체 소득에서 세금 등 필수 지출을 뺀 가처분소득의 절반 가까이를 식비로 지출한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가계의 생계비 지출이 늘어나는 가운데 식품·외식 등 생활물가가 큰 폭으로 상승하며 서민과 저소득층의 실질 구매력이 제약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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