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코인 시장은 닷컴 버블 때와 비슷”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7.07 07:30
  • 호수 17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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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코인 전도사’ 변신한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
“구조적으로 취약한 기업들 연쇄적으로 붕괴될 것”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코인 전도사’로 변신했다. 그는 2014년 국민은행 주전산기 교체 문제로 당시 임영록 KB금융지주 회장과 첨예한 갈등을 빚었다. 그해 9월 국민은행장을 사임한 그는 평소 관심 있던 암호화폐 생태계에 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가 초빙교수로 있는 KDI 국제정책대학원에서 비트코인과 블록체인을 주제로 강의했을 정도다.

현재 그는 금융혁신연구회 대표를 맡고 있다. 최근까지 출간한 암호화폐 관련 저서도 여럿이다. 올해 3월과 6월 《탈중앙화와 크립토 시스템》과 《코인의 과거, 현재, 미래》를 각각 출간했다. 2021년 7월 출간한 《비트코인의 방법》까지 더하면 모두 3권이다. 그는 “책 한 권에 모든 내용을 담기에는 주제가 너무 컸다”면서 “그동안 연구한 내용과 강의 주제를 바탕으로 책 3권에 나눠 담았다”고 설명했다.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최근 암호화폐에 관해 출간한 책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최근 암호화폐에 관해 출간한 책

이 전 행장은 우선 최근 논란이 된 테라-루나 폭락 사태는 시장 상황을 감안할 때 당연한 결과라고 지적한다. 그는 “각국 중앙은행이나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최근 디파이(DeFi·코인 기반 금융)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있었다”면서 “구조적으로 취약한 코인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말했다.

이 전 행장은 최근 암화화폐 시장이 2000년 초 불거진 닷컴 버블 붕괴 때와 비슷하다고 말한다. 그는 “과거 닷컴 버블 붕괴 당시 수많은 IT 기업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아마존과 같은 회사가 생겨났다”면서 “최근 계속된 코인 가격 하락으로 글로벌 디파이 플랫폼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경쟁력이 약한 업체는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되면서 새로운 코인 생태계가 만들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6월27일 금융혁신연구회 사무실이 있는 서울 중구 을지로에서 이 전 행장을 만났다.

6월27일 서울 중구 금융혁신연구회 사무실에서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6월27일 서울 중구 금융혁신연구회 사무실에서 이건호 전 국민은행장이 시사저널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임준선

최근 암호화폐 관련 책을 잇달아 출간했다.

“블록체인 기술을 처음 접하고 깊이 있게 연구할 필요성을 느꼈다. 내가 초빙교수로 있는 KDI 국제정책대학원에 제안해 강좌도 개설했다. 그러다 보니 제대로 정리해 보자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책 한 권에 모든 내용을 담기에는 주제가 너무 컸다. 지난 7년간 연구한 내용과 강의 주제를 바탕으로 책 3권에 나눠 담은 것이다.”

암호화폐 기술이 기존 화폐 시스템을 뒤집을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어떻게 보나.

“암호화폐는 크게 두 가지 역할이 있다. 비트코인으로 대표되는 화폐 기능이 첫 번째다. 비트코인은 정부나 금융사와 같은 중재자 없이 ‘개인 간 거래’가 가능하게 설계됐다. 탈중앙화에 처음으로 성공한 가상화폐다. 이더리움의 경우 프로그래머블 머니다. 기존의 법적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스마트 컨트랙트가 가능한 게 특징이다. 모두 혁신적이지만 기존의 화폐 시스템을 뒤집기는 힘들 것으로 본다. 기존 화폐와 새로 생긴 암호화폐가 서로 보완하는 관계라고 보는 것이 적절할 것 같다.”

최근 테라-루나 폭락 사태로 논란이 일고 있다.

“시가총액 10위권 코인인 루나의 가치가 불과 며칠 사이에 99.99%나 하락하면서 휴지조각이 됐다. 파장이 클 수밖에 없다. 한때 3조 달러를 상회했던 코인 시장의 시가총액이 몇 달 사이에 2조 달러대로 주저앉았다.”

원인은 무엇이라고 보나.

“테라 사태 피해자들이 현재 회사와 경영진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다. 법적인 부분은 소송 결과를 좀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 다만 코인 기반의 금융인 디파이는 그동안 많은 문제를 낳았다. 겉으로 봤을 때 작동 원리는 기존 금융 시스템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은행이나 펀드처럼 코인을 가지고 예금과 대출, 심지어 투자를 하고 수익을 공유한다. 하지만 자세히 보면 문제가 있다. 지나치게 레버리지에 집착한다. 초단기에, 높은 수익만을 추구하다 보니 시장에 버블이 끼었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시장이 무너지는 것은 당연한 결과다. 투자자들 역시 이런 코인의 실체를 정확히 이해해야 하는데, 투자 대상으로만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묻지마 투자’만 하고 있어 안타깝다. 최근 암호화폐 관련 책을 잇달아 출간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른 코인 플랫폼에도 리스크가 확산될 수 있다는 얘긴가.

“그렇다. 최근 들어 코인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 가격이 최고조에 달하던 작년 11월 대비 90% 이상 빠진 것으로 보고 있다. 구조적으로 취약한 플랫폼부터 연쇄 붕괴가 진행될 수 있다. 예를 들어 글로벌 디파이 플랫폼인 셀시우스 네트워크는 그동안 코인 은행 역할을 해왔다. 코인을 예치하고 이자를 받거나 보유 가상자산을 담보로 맡기고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코인 가격이 급락하면서 셀시우스의 파산 가능성이 외신에서 제기되고 있다. 가상자산 헤지펀드인 스리 애로즈 캐피털(3AC) 역시 6억70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약 8600억원의 대출을 갚지 못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졌다. 지금의 암호화폐 시장은 2000년대 초 불거진 닷컴 버블 붕괴 시기와 비슷하다고 본다.”

과거 닷컴 버블 붕괴 당시 수많은 IT 기업이 사라지면서 투자자들이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 코인 시장의 상황이 그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아픔은 있었지만 수많은 IT 기업이 생겨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면서 자연스럽게 시장이 구조조정됐다. 다른 시각에서 보면 구글과 아마존 등 경쟁력 있는 IT 기업들은 이 과정에서 경쟁력을 얻게 됐다. 코인 시장 역시 같은 흐름이 될 것으로 본다.

우려스러운 점은 각국의 중앙은행이나 국제기구를 중심으로 디파이에 대한 규제 움직임이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닷컴 버블 때만 해도 수많은 비즈니스 모델이 생겨났다. 그래서 경쟁력 있는 기업들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 하지만 코인 생태계의 경우 잠재력은 있지만 결제 시스템과 스마트 컨트랙트 플랫폼이라는 하부구조를 이제 갖추는 단계다. 이 하부구조 위에서 본격적으로 가치를 창출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찾는 것이 향후 과제가 되고 있다. 최근의 규제 움직임은 시장이 갖춰지기도 전에 싹을 망가트릴 수 있다는 점에서 걱정이 된다.”

과잉 규제일 수 있다는 얘긴가.

“중앙화(규제)와 탈중앙화(시장) 사이의 충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지난 3월 공개한 110대 국정과제에 ‘디지털자산(암호화폐) 인프라 및 규율체계 구축’이 포함돼 있다. 윤석열 대통령도 당선인 시절 ICO(Initial Coin Offering·초기 코인 공개)를 촉진하기 위해 안전장치가 마련된 IEO(Initial Exchange Offering·거래소 발행)부터 우선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어떻게 생각하나.

“우리나라의 코인시장은 대형 소매상인 원화거래소 5개가 전부다. 대형 거래소가 시장의 역할을 하는 현재의 체제는 정상적이지 못하다. 국내 5대 원화거래소는 딜러와 브로커, 즉 플레이어인 증권사에 해당한다. 시장과 대형 플레이어의 역할 분리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공정 경쟁과 투명성 확보, 소비자 보호 등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시장과 플레이어의 역할 분담이 구분되지 않은 상태에서 코인 발행시장을 IEO나 STO(Security Token Offering) 중심으로 정비할 경우 정책이 시장에 끌려다닐 수도 있다. 미래를 내다보고 제도적으로 큰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과 플레이어를 구분해야 한다. 한국거래소와 같은 정부 기관을 통해 완충지대를 두고 시장을 관리해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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