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위기 악몽 되살린 무역수지 적자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0 12:00
  • 호수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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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율 상승→자본 유출→달러 부족 악순환 우려
“무역수지 계산에 빠진 항목 감안하면 경상수지는 흑자”

7월3일 정부는 비상경제장관회의를 열고 무역금융을 올해 계획한 261조3000억원에서 약 40조원을 더 늘리기로 했다. 수출 업계 인력난 완화를 위해 현행 주 52시간 제도는 개선하고, 비자 제도도 고쳐 외국인 고용을 확대하는 방안도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 고환율에 따른 수입업체의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1조3000억원 규모의 수입보험도 공급한다.

대대적인 수출 활성화 방안이 나온 배경은 물론 올 상반기에 발생한 무역적자다. 무역수지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적자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발표에 따르면 올 상반기 수출은 지난해 동기보다 15.6% 증가한 3503억 달러, 수입은 26.2% 늘어난 3606억 달러였다. 이에 따라 무역수지는 103억 달러 적자를 기록했다. 상반기 기준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외환위기 때인 1997년 상반기 무역적자 91억6000만 달러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상반기의 무역적자 64억 달러를 앞질렀다. 월별 기준으로 3개월 연속 무역적자를 기록한 것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던 2008년 이후 처음이다.

14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가 3개월간 계속되면서 달러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화물선이 접안해 있는 부산신항ⓒ연합뉴스
14년 만에 무역수지 적자가 3개월간 계속되면서 달러 부족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화물선이 접안해 있는 부산신항ⓒ연합뉴스

3개월 연속 적자로 위기감 증폭

무역수지 적자는 에너지와 원자재 가격이 급등해 관련 수입액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지금 상황으로 보면 한동안 적자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국제 공급망 교란과 인플레이션 가속화에 따라 원자재 가격의 고공행진은 앞으로도 상당 기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올해 연간으로도 무역수지는 적자가 될 수 있다. 무역수지가 마지막으로 연간 적자를 기록한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이었다.

일부에서는 무역적자로 국내에서 달러가 빠져나가면서 환율이 오르고, 그러면 상승한 환율 때문에 수입물가가 더 오르는 악순환을 우려하기도 한다. 코로나19 충격이 가시면서 2021년 초 달러당 1080원까지 떨어졌던 환율은 불과 1년 반 만에 1300원을 돌파했다. 달러당 1300원대 환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무역수지 적자와 환율 급등은 우리에게는 외환위기 악몽을 상기시킨다. 2001년 발생했던 닷컴 버블 붕괴와 9·11 테러 사태, 2008년 리먼브러더스 파산과 미국발 금융위기 때도 환율은 모두 1300원을 넘었다. 환율 상승은 자본 유출을 부추기고 자본 유출은 달러 부족으로 이어진다.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의 무역수지 적자와 환율 급등으로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때를 연상하는 것은 무리다. 기축통화가 아닌 데다 중소 개방경제라는 속성 탓에 원화는 대외 변수에 민감하다. 하지만 미국 연준의 긴축 공세나 지정학적 갈등, 나아가 글로벌 스태그플레이션 위험에도 현재 국내 외화자금 시장에서 달러 유동성 경색 현상은 나타나지 않고 있다. 외평채 CDS 프리미엄은 코로나 충격 직후보다 오히려 낮다. 우리나라의 외환보유액 역시 7월5일 기준 4382억 달러로 세계 9위 수준이며 국내총생산(GDP)의 28%에 달한다. 더구나 순대외금융자산은 외환보유액보다 더 많아 지난 1분기 말 기준 6960억 달러에 이른다.

무역수지만을 지표로 보는 것도 옳지 않다. 무역수지와 경상수지는 다르다. 통관 기준으로 수출과 수입의 차이만을 보는 무역수지가 아니라 상품과 서비스, 소득수지와 이전수지를 모두 합친 개념이 경상수지다. 경상수지 적자는 말 그대로 돈이 그만큼 나라 밖으로 빠져나갔다는 뜻이다. 그러나 현재 거래 상황을 보면 무역수지에서 적자가 나더라도 경상수지는 흑자일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국내 조선 업계는 8년 만에 최대 수주 실적을 달성했다. 무역수지에서 계산되지 않는 선박 수출에 따른 선금과 중도금이 반영되면 결론이 달라질 수 있다. 서비스와 본원소득수지도 국내 운송사들의 수입 증가, 내국인의 해외 투자로 인한 배당금 증가 등으로 적자 폭이 축소되거나 흑자 폭이 확대되면서 전체 수지에 보탬이 되고 있다. 무역수지에서 계산되지 않는 중계무역 역시 호황을 누리고 있다. 흑자 폭은 줄어들 수 있어도 경상수지가 아예 적자로 돌아서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 경제 버팀목인 반도체도 비상

걱정할 게 없다는 뜻은 아니다. 수출이 둔화 조짐을 보이는 건 확실히 문제다. 수출 증가세는 최근 들어 빠르게 꺾이고 있다. 지난 6월에는 전년 같은 달과 비교해 수출이 5.4% 증가하는 데 그쳤다. 수출 증가율이 한 자릿수를 기록한 건 2021년 2월 이후 16개월 만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수출가격은 꾸준히 하락했음에도 수출금액이 증가한 것은 주로 물량이 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올해 들어 대다수 품목의 수출물량이 작년보다 줄어들고 있다.

수출의 25.3%를 차지하는 중국과의 무역이 흔들리고 있는 점 역시 불안 요소다. 28년 동안 흑자를 기록했던 대중(對中) 무역수지는 지난달 12억1400만 달러 적자를 기록하면서 두 달 연속 적자로 내려앉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의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수출 대기업들은 올 하반기 수출 증가율이 작년 동기와 비교해 0.5% 증가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마침 우리 경제의 버팀목 구실을 하는 반도체 시장도 좋지 않다. 최근 시장조사기관들은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하반기부터 본격적으로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인플레이션으로 정보통신기기에 들어가는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줄고 경기 침체를 우려한 클라우드 업체들이 투자를 줄이면서 서버용 반도체 수요도 위축되고 있기 때문이다. 반도체 가격지수는 이미 4월부터 현저히 떨어지는 추세다. 반도체에 비상이 걸리면 한국 경제 전체가 흔들린다.

하지만 아예 달러가 부족했던 외환위기 때와 지금 상황은 다르다. 무역적자 혹은 무역흑자 축소는 크게 보면 국내 저축과 투자 간 불균형 완화라는 차원에서 볼 수도 있다. 1300원의 환율도 세계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인 건 아니다.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하면서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대다수 국가의 통화가치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요 6개 통화에 대한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로 계산해 보면 올해 6월24일까지 통화가치 하락률은 일본(14.6%)이나 영국(9%)이 우리나라(8.4%)보다 높다.

물론 우리나라의 경제환경은 앞으로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에너지 위기와 인플레이션을 불러온 우크라이나 전쟁이 어떻게 끝날지 예측할 수 없고, 미국의 물가 상승과 금리 인상 행진이 언제쯤 마무리될지도 예상하기 어렵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무역수지 악화는 앞으로도 이어질 것이다. 중국 경제의 침체는 수출에 타격을 줄 것이다. 물가 상승은 서민층의 생활을 압박할 것이고, 소비 수요의 감소로 이어진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것은 언제나 바람직하다. 하지만 이 정도를 두고 전면적인 위기가 임박했다고 하는 것은 지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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