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공공기관 ‘알박기’ 논란…“인사권 법제화해야”
  • 조해수 기자 (chs900@sisajournal.com)
  • 승인 2022.07.08 12:00
  • 호수 1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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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자력·경제 등 180도 다른 정책이 추진되는 부문에서도 전 정권 인물 자리 보전…“한국판 플럼북 만들자”

여당인 국민의힘이 문재인 전 정부의 임기 말 ‘알박기 인사’를 연일 비판하며 당시 임명된 정부기관 및 국책연구기관 기관장들의 자진사퇴를 촉구하고 있다. 국민의힘이 지난 3월 자체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6개월을 앞두고 임명한 공공기관장은 모두 59명이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문재인 전 대통령의 임기가 6개월 남은 시점에 52개 기관에서 13명의 기관장, 이사·감사 46명 등이 임명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 대부분이 더불어민주당 및 문재인 정부 청와대 출신으로, 전문성과 무관한 보은성 인사로 평가된다”면서 “이 중 임기가 2024년까지인 인사가 28명, 2025년까지는 14명으로, 새 정부의 임기 절반에 이르는 동안 자리를 보전하게 된다”고 비판했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019년 12월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호텔에 서 열린 소득주도성장 국제컨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홍장표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이 2019년 12월3일 오전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 호텔에 서 열린 소득주도성장 국제컨퍼런스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尹 정부, ‘원전 확대’ 에너지 정책 확정

윤석열 정부는 몇몇 분야에서 문재인 정부와 180도 다른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와 정책 보조를 맞춰야 할 공공기관·공기업 경영진이 전 정권 사람들로 채워져 있어 국정운영 동력이 크게 떨어지고 있다”면서 “이는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분야가 ‘원자력’ 분야다. 문재인 정부는 ‘탈(脫)원전’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추진했다. 이른바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이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는 7월5일, 대통령 주재 국무회의에서 제3차 에너지 기본계획을 폐기하고 ‘새 정부 에너지정책 방향’을 심의·의결했다.

핵심 내용은 2030년 원전 비중을 30%로 확대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신한울 3·4호기 건설을 추진하고, 운영 허가가 끝나는 원전 10기에 대한 계속운전을 추진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문재인 정부에서 18기(2030년 기준)로 줄었던 원전은 윤석열 정부에서 28기로 늘어나게 됐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지난 2월, 임기 만료 3개월을 앞두고 김제남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에 임명했다. 임기는 3년으로 2025년 2월까지다.

이와 관련해 김용태 국민의힘 청년최고위원은 “김제남 이사장은 문재인 정권 시민사회수석이고, 정의당에서 탈핵에너지전환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며 “탈원전 정책을 적극 공유한 인사를 원자력 안전과 산업 기반 강화를 목표로 하는 원자력안전재단에 임명한 것도 애초 이해가 가지 않았지만, 정권까지 바뀌었는데 국정철학이 전혀 다른 윤석열 정부의 기관장으로 임기를 고집하는 게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김제남 이사장과 마찬가지로 안남성 한국전력국제원자력대학원대학교 총장도 문재인 정부 탈원전 정책의 핵심 인물로 꼽히고 있다. 안남성 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신에너지 공약과 정책을 만든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원전 분야 외에도 ‘에너지 관련 공공기관에 알박기가 다수 있다’는 것이 국민의힘 측 주장이다.

국민의힘 측은 청와대 민정수석실 선임행정관 출신인 임찬기 한국가스안전공사 상임감사, 민주당 의원 보좌관 출신인 유휘종 한국에너지공단 신재생에너지센터장과 김명수 한국남부발전 상임감사 등을 지목했다.

이 밖에 신동미 한국가스공사 비상임이사, 명희진 한국남동발전 상임감사위원, 선한길 한국남부발전 비상임이사, 김철 한국가스기술공사 감사, 이희진 한국석유관리원 비상임이사, 주영남 한국에너지재단 상임이사 등이 국민의힘이 지적한 알박기 인사들이다.

왼쪽부터 김제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시사저널 박은숙·이종현·최준필·연합뉴스
왼쪽부터 김제남 한국원자력안전재단 이사장,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 전현희 국민권익위원장,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시사저널 박은숙·이종현·최준필·연합뉴스

‘소주성’ 홍장표 KDI 원장, ‘민주성’ 尹 정부에서 결국 사퇴

홍장표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도 윤석열 정부의 정책과 동떨어진 인물이다. 홍장표 원장은 문재인 정부의 초대 경제수석이자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위원장을 지냈다.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 설계자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지우고, ‘민간주도성장’(민주성)을 추진하고 있다. 경제 중심축을 민간과 시장에 넘기고 정부는 이를 뒷받침할 세제·정책 지원에 주력하겠다는 것이다.

‘사퇴 압박’이라는 총대는 한덕수 국무총리가 멨다. 한덕수 총리는 6월28일 기자단 간담회에서 홍 원장의 거취를 두고 “소득주도성장 설계자가 KDI 원장으로 있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윤석열 정부랑 너무 안 맞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이에 발맞춰 감사원은 KDI에 내부 규정이나 예산, 연구사업 등에 대한 자료를 요구했다.

결국 홍장표 원장은 7월6일 “정권이 바뀌고 원장이 바뀐다고 해서 KDI와 국책연구기관들의 연구보고서가 달라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연구기관의 자율성은 존중되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생각이 다른 저의 의견에 총리께서 귀를 닫으시겠다면, 제가 KDI 원장으로 더 이상 남아있을 이유는 없다”면서 사퇴의 뜻을 밝혔다.

한상혁방송통신위원장,전현희국민권익위원장, 정해구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등은 이들 자리가 갖는 중요성 때문에 전방위적인 사퇴 압박을 받고 있다.

문재인 정부 시절, 장관급인 한상혁 방통위원장과 전현희 권익위원장은 국무위원도 아니고, 필수 참석 인원도 아니지만 보통 국무회의에 참석해 왔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후 국무회의에 두 사람을 위한 자리는 더 이상 없다. 윤석열 대통령은 “비공개 논의도 많이 하는데 굳이 올 필요 없는 사람까지 다 배석시켜 국무회의를 할 필요가 있나”라면서도 “임기가 남아있는 만큼 본인들이 알아서 판단할 문제”라고 말했다. 사실상 ‘자진사퇴’를 압박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국무총리실 산하에 있는 경제인문사회연구회(경사연)는 국책·출연 연구기관 20여곳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KDI뿐 아니라 대외경제연구원,보건사회연구원, 산업연구원등도 경사연이 원장·감사임면권과 평가권을 행사한다.

문재인 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 국가정보원 개혁발전위원회 위원장 출신인 정해구 이사장의 임기는 2024년 3월까지로 아직 2년이 남았다.

그러나 이를 두고 볼 윤석열 정부가 아니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문재인 정권과 민주당은 2017년 6월19일 국정원 적폐청산을 내세워 정해구 위원장 주도로 국정원 개혁발전위를 출범시켰고, 국가안보에 헌신한 직원을 적폐 세력으로 몰아 40여 명을 사법처리했다”면서 “당시 국정원 적폐청산 과정에 사법적으로 큰 문제가 있었다고 알고 있다. 이에 국정원 차원의 엄정한 진상조사를 촉구한다. 당 차원에서도 필요하면 관련자 고발 등을 통해 진실을 명백히 밝히겠다”고 초강수를 뒀다.

7월6일 과천 정부청사 정문 앞에서 1인 시위자가 문재인 정부 시절 알박기 인사들의 사퇴를 요구하는 선전물을 들 고 있다.ⓒ염순태 제공
7월6일 과천 정부청사 정문 앞에서 1인 시위자가 문재인 정부 시절 알박기 인사들의 사퇴를 요구하는 선전물을 들 고 있다.ⓒ염순태 제공

어공의 ‘국정철학 이해도’와 늘공의 ‘전문성’ 모두 살려야

알박기 인사들에 대한 사퇴 압력은 당이 주도하는 ‘공중전’을 통해 이뤄지고 있다. 이들이 ‘버티기’에 나서면 정부로서는 뾰족한 방안이 없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은 박근혜 정부가 임명한 산하 기관장들에게 사퇴 압력을 가한 혐의(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로 지난 1월 대법원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이 확정됐다.

백운규 전 산업부 장관은 13개 산하기관장에게 사직서를 제출하도록 요구한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다. 즉, 임기가 있는 이상 정권이 바뀌더라도 공공기관장의 퇴진을 강제할 수 없게 된 것이다.

반면, 정권이 바뀌었다고 모든 공공기관장에게 사퇴를 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까.

이와 같은 고민에서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는 것이 대통령의 인사권을 법제화하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른바 한국판 ‘플럼북(Plum Book)’이다.

미국은 대선 후 차기 대통령이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는 행정부 및 공공기관의 리스트와 자격 요건을 규정한 플럼북을 공개한다. 정식 명칭은 ‘미국 정부 정책과 지원 직책(The United States Government Policy and Supporting Positions)’으로, 표지가 자두색이어서 ‘플럼(Plum, 자두)북’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플럼북에는 미 연방정부의 약 9000개 주요 직위의 명칭, 현직자 이름, 임명 형태(대통령 임명직, 상원 청문, 경력직·비경력직, 한시적 임기, 별정직 여부), 보수 등급과 직급, 임기 여부, 임기 만료일 등에 관한 정보가 담겨 있다. 이를 바탕으로 새 정부는 주요 직위에 관한 인사 계획을 수립해 추진한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어떨까. 인사혁신처가 발행하는 ‘국가주요직위명부록’에 따르면, 국가정보원 등 보안이 필요한 일부 기관을 제외한 행정부 47개 기관 과장급 이상 인사는 7800여 명에 이른다.

정부의 예산이나 운영자금 지원을 통해 운영되는 공공기관들까지 합하면,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직책은 3만 개 정도까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한국판 플럼북의 핵심은, 대통령 또는 실세 몇몇의 ‘줄 세우기’식 인사를 지양하고 ‘시스템’에 따라 인사를 하자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문성도 살릴 수 있다. 공공기관장을 정무직과 전문직으로 분류한 다음, 대통령과 국정철학을 함께하는 것이 중요한 정무직은 임기를 일치시키고, 전문성·중립성이 중요한 전문직은 임기를 보장하면 되기 때문이다.

여권 관계자는 “우리나라에서는 ‘어공(어쩌다 공무원, 정무직)’은 전문성이 없다고 욕을 먹고 ‘늘공(늘 공무원, 전문직)’은 영혼이 없다고 비판을 받는다”면서 “명확한 시스템을 도입하면 이와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즉, 임기와 역할을 구체화해 국정철학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어공, 자기 분야에서 전문화한 늘공의 장점만 살리자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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