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현상이 보여주는 콘텐츠 파워
  • 정덕현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6 12:00
  • 호수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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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만 좋으면 이제 어디 있든 찾아서 본다

최근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화제다. ENA라는 낯선 채널에서 방영됐지만 차츰 입소문이 퍼지면서 엄청난 신드롬을 일으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현상은 그러나 이 작품만의 성취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ENA 제공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포스터ⓒENA 제공

특별한 신드롬 만든 케이블 방송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첫방을 시작할 때 그런 드라마가 있었는가 싶을 정도로 존재감이 미미했다. 사실 드라마의 첫 방송 존재감이란, 그 드라마가 방영되는 플랫폼의 힘과 등가를 갖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 드라마는 ENA라는 케이블 채널에서 방영됐다. 그런 채널이 있었는지도 모를 정도로 낯선 채널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니 으레 B급 드라마가 아닐까 여겨지기도 했다. 이런 약한 존재감은 그대로 시청률에 반영되었다. 첫 회 시청률 0.9%(닐슨 코리아). 사실 인지도 없는 케이블 채널에서 이런 시청률도 결코 낮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반전은 그 후 신드롬급으로 진행됐다. 2회에 1.8%를 찍고 이 채널 최고 시청률을 내더니, 3회에는 무려 4.0%를 경신했다. 그리고 4회는 5.1%로 계속 상승세를 이어갔다. 도대체 무엇이 이런 반전과 신드롬을 만들어낸 걸까. 

그건 입소문이었다. 첫 회를 본 시청자들은 우영우(박은빈)라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진 변호사라는 매력적인 캐릭터에 열광하게 됐다. 장애를 갖고 있지만 당당하게 변호사로서 억울한 송사를 하게 된 의뢰인들을 돕는 인물. 그것도 멀쩡한 로펌의 다른 변호사들은 보지 못하는 사건의 진실을 찾아내거나, 틀에 박혀 있어 대안을 내지 못하는 변호사들과 달리 새로운 관점으로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모습은 그 자체로 큰 울림을 줬다. 변호사가 법으로 싸우는 법정 드라마지만, 단지 선으로는 이길 수 없어 악과도 손잡는 여타의 법정 드라마들이 가던 길과는 정반대로 ‘선이 이긴다’는 메시지를 담은 그 선택도 주효했다. 극악하고 자극적인 스토리에 지친 시청자들은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착한 드라마를 더 응원하게 됐다. 여기에 ENA라는 낯선 채널에서 방영된다는 사실 또한 반전효과로 작용했다. 이렇게 착한 드라마가 좀 더 세상에 알려져야 한다는 마음들이 오히려 모아진 것이다.

물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ENA에서 본방을 보여주면서 동시에 넷플릭스에서도 서비스되는 드라마였다. 따라서 아무래도 접근성이 더 좋은 넷플릭스를 통해 먼저 접한 시청자들이 이제는 ENA 본방을 보게 되는 흐름을 만들었다. 신드롬이 확산되면서 화제성 지수 1위, 동시간대 시청률 1위, 심지어 넷플릭스 TV쇼 부문 국내 1위, 전 세계 9위(플릭스 패트롤 7월10일 기준)를 기록했다. 지난 4월 채널명을 바꾼 ENA(이전에는 SKY였다)는 이로써 단 몇 달 만에 채널 인지도를 끌어올리게 된 셈이다. 작품이 좋으면 이제 어디에 있든 찾아 본다는 콘텐츠 소비자들의 새로운 흐름이 읽히는 대목이다.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한 장면ⓒENA 제공

다양해진 채널, 찾아 보는 시청자들 

사실 시청률이 무색해진 건 이미 몇 년 전부터 벌어졌던 일들이다. 그건 채널이 다양해져서다. 이제 시청자들은 지상파, 케이블, 종편의 본방 편성 시간대를 기다려 콘텐츠를 소비하지 않는다. 대신 최근 몇 년간 늘어난 OTT들을 구독하고 이를 통해 원하는 콘텐츠들을 찾아 본다. 넷플릭스는 물론이고 디즈니 플러스, 애플 플러스 같은 글로벌 OTT들은 물론이고, 티빙, 웨이브, 왓챠, 쿠팡플레이 같은 토종 OTT들도 저마다 오리지널 시리즈들을 내놓으며 구독자들을 기다리고 있다. 최근 이들 OTT에서 경쟁적으로 내놓은 오리지널 시리즈가 어떤 면에서는 그 플랫폼의 인지도를 만들어내는 자양분이 되는 상황이다. 

티빙 오리지널로 제작된 드라마 《유미의 세포들2》는 시즌1에 이어 시즌2도 폭발적인 인기를 끌며 티빙이라는 OTT의 구독자를 늘리고 있고, 여기에 《결혼과 이혼 사이》 같은 OTT여서 가능한 수위의 리얼리티쇼나, 또 김태호 PD의 《서울체크인》 같은 셀러브리티 리얼리티쇼가 큰 인기를 끈 바 있다. 웨이브도 마찬가지다. 지상파와 종편 채널의 콘텐츠 다시보기를 근간으로 하고 있지만 웨이브는 최근 기성 플랫폼에서는 시도조차 할 수 없었던 실험들을 선보이고 있다. 《메리퀴어》 같은 성소수자들이 출연하는 연애 리얼리티쇼가 그것이다. 왓챠는 《시맨틱 에러》 같은 BL 드라마를 선보여 좋은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최근에는 이병헌 감독의 《최종병기 앨리스》라는 독특한 액션 학원물로 주목받았다. 쿠팡플레이 역시 작년에 방영되어 인기를 끌었던 오리지널 시리즈 《어느날》에 이어 《안나》로 최근 다시 이목을 끌었다. 한편 iHQ에서 방영되는 《에덴》 역시 출연자들의 스펙을 지우고 오직 본능으로만 선택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의 연애 리얼리티로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에덴》은 iHQ에서 본방되지만 웨이브로도 서비스되면서 그 저변을 넓혔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ENA와 넷플릭스라는 OTT 투 트랙으로 방영되고 있고, 《에덴》 역시 iHQ와 웨이브라는 OTT로 방영되고 있는 상황은 우연이 아니다. 이제 콘텐츠는 본방으로 방영되는 플랫폼과 더불어 OTT를 투 트랙 삼는 전략을 쓰고 있다. 이것은 기존 지상파나 케이블, 종편이 해왔던 전략으로 본방은 물론이고 OTT를 통한 시청으로 시청률과 화제성의 선순환을 만들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최근에 이 전략에서 달라진 부분은 본방 채널을 선택하는 데 반드시 지상파나 tvN 같은 케이블, JTBC 같은 종편처럼 굵직한 힘을 발휘하는 플랫폼에 목숨을 걸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아직까지도 이러한 플랫폼의 힘이 여전한 건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보여주듯이 굳이 지상파 같은 플랫폼에 연연하지 않아도 콘텐츠가 확실히 좋다면 시청자들은 따라오게 마련이라는 게 분명해졌다. 

 

굳이 지상파를 갈 이유가 없다 

그리고 이러한 선택에는 제작진들이 갖는 기성 플랫폼 제작 시스템에 대한 불만과 불편함도 뒤섞여 있다. 즉 유력 기성 플랫폼의 편성을 받으려면 그간 제작진에게 행해졌던 불편한 관행들을 여전히 겪어야 한다는 점이다. 편성을 준다는 조건으로 기획안을 갖고 이리저리 수정을 요구하기도 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다 편성이 물 건너가기도 한다. 또 제작 과정에서 외부의 요구가 많아져 제작진들에게 부담이 되기도 한다. 차라리 이럴 바에는 다소 작은 채널을 선택하는 것이 더 좋은 조건으로 제작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도 한다는 것이다. 

이미 OTT 같은 다양한 플랫폼이 생겨날 때부터, 플랫폼보다 콘텐츠가 중요해지는 시대가 도래하리라는 건 누구나 예상했던 일이다. 하지만 그 구체적인 사례로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등장했다는 건 이제 이러한 예상이 현실로 조금씩 만들어지고 있는 변화들을 감지하게 한다. 그다음 이야기는 당연히 레거시 미디어가 된 기성 플랫폼의 힘이 약화되는 것이다. 물론 새로운 주력 플랫폼으로 등장한 OTT들은 레거시 미디어들과 비교해 훨씬 강력한 지위와 힘을 갖게 되겠지만, OTT들 역시 콘텐츠 파워 앞에서는 줄을 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결국 하나의 좋은 콘텐츠에 여러 OTT가 경쟁하는 구조가 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콘텐츠 파워의 시대가 열렸고,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그 문을 활짝 열어버린 콘텐츠로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충분히 완성도 높은 작품이라면 굳이 기성 플랫폼을 찾아갈 필요가 없게 되는 시대가 조금씩 도래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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