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배구, 이제 김연경은 잊어라…세대교체 주력해야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8 12:00
  • 호수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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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올림픽 4강’ 신화에서 1년 만에 ‘VNL 전패’ 수모

12전 전패. 성적표가 참담하다. 예상은 했다. 하지만 1승도 못 거둘 것이라고는 짐작조차 못 했다. 불과 1년 전 ‘올림픽 4강 신화’로 박수를 받았던 팀이 맞나 싶다. 여자 배구 대표팀 얘기다.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은 2022 국제배구연맹(FIVB)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5월31일~7월17일)에서 역대 최악의 성적을 남겼다. 12차례 경기에서 단 한 번도 풀세트 접전 없이 패했다. 9경기는 0대3 완패를 당했고, 3경기에서는 겨우 1세트를 따내면서 1대3으로 졌다. VNL 대회에 참가한 이래 처음으로 승점을 하나도 챙기지 못했다. 지난해 도쿄올림픽에서 한국에 패한 일본(8승4패·승점 25)을 비롯해 중국(8승4패·승점 26), 태국(5승7패·승점 15) 등 다른 아시아 국가들이 8위 이상의 성적을 낸 것과 대비된다. 2022 항저우아시안게임이 예정대로 9월에 열렸다면 한국의 성적이 어땠을지 짐작 가능하다. 

6월20일 브라질에서 열린 2022 국제배구연맹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예선 라운드 8차전에서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터키 대표팀에 득점을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연합뉴스
6월20일 브라질에서 열린 2022 국제배구연맹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예선 라운드 8차전에서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터키 대표팀에 득점을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연합뉴스

배구협회, 김연경에 ‘대표팀 복귀’ 비공식 요청

사실 대표팀 부진은 예견돼 있었다. 도쿄올림픽 직후 김연경(흥국생명), 양효진(현대건설), 김수지(IBK기업은행)가 대표팀 은퇴를 선언했다. 이들은 맨 처음 4강 신화를 이뤘던 2012 런던올림픽 때부터 10년 넘게 대표팀을 이끈 대들보였다. 특히 김연경의 존재는 막강했다. 월드클래스의 공격력으로 대표팀 득점을 전담했고, 도쿄올림픽 때는 ‘원팀’이 되는 데 구심점 역할을 했다. 

선수뿐만이 아니다. 도쿄올림픽 4강을 지휘했던 스테파니 라바리니 감독도 올림픽이 끝난 뒤 폴란드 대표팀으로 이적했다. 배구협회 쪽은 재계약을 추진했으나 라바리니 감독이 개인적, 직업상 이유로 유럽에서 활동하길 희망해 대표팀과 작별했다. 배구협회는 대신 라바리니 감독을 3년간 보좌했던 스페인 출신의 세자르 에르난데스 곤잘레스 코치를 신임 사령탑으로 선임했다. 그동안 대표팀 선수들과 잘 소통해 왔다는 이유가 컸다. 

세자르 신임 감독으로서는 VNL이 배구 사령탑 첫 데뷔전이었다. 초보 사령탑이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게다가 VNL 대표팀 면면을 살펴보면 도쿄올림픽 때와는 많이 달라졌다. 세대교체 중인 대표팀이 손발을 맞출 시간도 많이 부족했다. 게다가 세자르 감독은 대회 출국 이틀 전인 5월25일 진천선수촌에 합류해 선수단을 지도했다. 선수들은 경기를 치르면서 세자르 감독의 배구에 녹아들어야만 했다. 

역대 VNL 참가 성적을 보면 올해의 부진이 그리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여자 배구 대표팀은 2018년부터 VNL에 참가해 왔다. VNL은 이전까지 월드그랑프리로 불린 국제대회다. 한국은 첫 출전 때 5승10패 승점 14로 16개 팀 중 12위를 했다. 2019년 대회 때는 3승12패 승점 9로 15위를, 2021년 대회 때도 3승12패 승점 10으로 역시나 꼴찌에서 두 번째 순위(15위)에 머물렀다. 2019년, 2021년 대회 모두 라바리니 전 대표팀 감독이 지휘했고, 2020년 대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치러지지 않았다.

특히 2021년 대회는 도쿄올림픽을 앞두고 치러진 전초전 성격이 강했고, 김연경까지 참가했는데도 최하위권에 머물렀다. 당시에도 큰 우려를 낳았으나 대표팀은 도쿄올림픽 본선 때 기적과도 같은 성적을 냈다. 김연경이 7월초 홍천 서머매치 출전을 앞두고 가진 국내 복귀 기자회견에서 “VNL 성적이 항상 좋지 못했기 때문에 점점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고 밝힌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6월20일 브라질에서 열린 2022 국제배구연맹 발리볼네이션스리그(VNL) 예선 라운드 8차전에서 한국 여자 배구 대표팀이 터키 대표팀에 득점을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연합뉴스
2021년 8월8일 도쿄올림픽 여자 배구 세르비아와의 동메달 결정전. 김연경 등 한국 선수들이 득점 후 환호하고 있다.ⓒ연합뉴스

세계 랭킹 19위까지 하락…파리올림픽 출전 못 할 수도

그러나 문제는 대표팀의 현재가 아닌 미래를 봐도 물음표가 달린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배구협회에서 비공식적으로 김연경에게 대표팀 복귀를 요청했을까. 그만큼 김연경의 빈자리를 메울 공격수가 보이지 않는다. 과거 학교폭력(학폭) 문제로 사실상 국내 리그에서 퇴출된 이재영의 공백 또한 커 보이는 게 사실이다. 이재영은 학폭이 불거지기 전까지 김연경과 함께 대표팀 주 공격수로 활약했다. 

배구협회 측이 대표팀 성적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올림픽 참가 기준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여차하면 한국 배구는 2024 파리올림픽에 참가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금까지 올림픽 본선 출전국은 세계 예선 뒤 대륙별 예선전을 통해 정해졌다. 세계 예선에서 부진하더라도 대륙별 예선을 통해 올림픽 본선 무대에 오를 기회가 있었다. 도쿄올림픽 때도 한국은 세계 예선에서 떨어진 뒤 대륙별 예선을 통해 본선 진출권을 따낸 바 있다.

 하지만 파리올림픽부터는 철저히 세계 순위 기준으로 출전권이 부여된다. 개최국 프랑스를 제외하고 11개 팀에 파리행 티켓이 주어지는데, 이 중 6개 팀은 내년 9·10월 열리는 3차례 세계 예선 토너먼트를 통해 추려진다. 세계 예선에는 총 24개 팀이 참가하는데 대회 참가 자격은 올해 여자팀의 경우 10월17일 세계 순위(남자팀은 9월12일)로 정해진다. 본선에 출전할 나머지 5개 팀은 2024년 6월 세계 순위 기준으로 할당된다.

한국 여자 배구는 VNL의 부진으로 세계 순위가 19위까지 하락했다. 대회 직전 순위는 14위였다. 내년에 열리는 올림픽 세계 예선 참가를 위해서는 세계 24위 이내 순위를 반드시 유지해야만 한다. 9월24일 개막하는 세계여자선수권(30개 팀 참가)에 총력을 기울여야만 하는 이유다.

 한국은 네덜란드와 폴란드 일대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에서 B조에 속해 라바리니 감독이 지휘하는 폴란드를 비롯해 튀르키예(터키), 도미니카공화국, 태국, 크로아티아 등과 경쟁한다. 10월16일까지 계속되는 세계선수권 성적은 그대로 세계 순위에 반영돼 올림픽 예선 참가 자격을 가른다. 

‘포스트 김연경 팀’은 세계선수권에 대비해 8월1일 재소집돼 세자르 감독의 제대로 된 지휘 아래 본격적인 훈련을 하게 된다. 김연경은 이에 “세계 배구의 흐름이 스피드를 추구한다. 브라질이나 미국 등 많은 나라가 스피디한 배구를 하고 있다”고 조언하기도 했다. 김연경의 말처럼 확실한 주 공격수가 없는 현재, 이동 공격과 시간차 공격 등을 중심으로 하는 빠른 배구가 대안일 수 있다. 전통적으로 한국 배구의 강점은 속공과 속도였다는 것을 고려해도 그렇다. 

한때 남자 배구의 들러리로 치부되던 여자 배구는 런던(2012년), 리우(2016년), 도쿄(2021년) 등 올림픽 무대에서 연이은 선전으로 현재 프로야구 시청률을 능가하는 인기를 구가 중이다. 지금의 인기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꾸준한 국제대회 성적이 필요한데, 김연경은 이제 잊어야만 한다. 세계선수권까지 시간이 많지 않다는 점이 우려스럽지만, 세대교체는 언젠가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다. VNL의 참패가 약이 됐을지, 독이 됐을지는 대표팀의 향후 행보가 말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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