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사실혼 여성 명의로 재산 은닉 의혹
  • 송응철 기자 (sec@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8 07:30
  • 호수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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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 전 회장 자필 진술서에 담긴 ‘황제의 여인’ 부당 축재 과정 공개

시사저널은 지난 호에서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그룹 공중분해 전에 계열사들이 보유한 채권으로 비자금을 조성한 의혹을 단독 보도했다(시사저널 1706호 ‘[단독] ‘황제노역’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1400억원대 채권 횡령 의혹’ 참조). 심층 취재 과정에서 사실혼 관계인 황아무개씨 등의 명의로 수천억원대 재산을 쌓아둔 정황이 추가로 확인됐다. 사재와 대주그룹 계열사 자금 등을 동원해 황씨 명의의 회사에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연합뉴스·freepik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연합뉴스·freepik

개인회사 설립 후 계열사 자금 등으로 키워

이런 사실은 허 전 회장이 2017년 황씨 측과 재산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자필 진술서를 통해 드러났다. 시사저널이 확보한 진술서는 허 전 회장이 황씨를 만나 동거하기까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아래는 진술서 내용의 일부다.

“결혼 후 딸만 2명 낳고 (중략) 8대 종손으로서 아들이 없다는 것이 선조에 대한 불효라고 늘 생각하던 차 38살 때 우연히 (중략) 황씨(22세)를 만나 풋사랑을 하다 보니 정이 들어 (중략) 그 사이 큰딸이 탄생하여 (광주광역시 서구) 농성동에 집을 사고 개축·증축하여 건축면적 99.5평의 2층집이 탄생하게 되었으며….”

허 전 회장은 이후 황씨와 해당 저택에서 거주하며 슬하에 2남2녀를 뒀다. 그는 2000년과 2001년 HH레저와 HH개발을 각각 설립했다. HH개발은 허 전 회장(20%)과 황씨(20%), 이들의 4자녀(15%씩) 등이 지분 100%를, HH레저는 허 전 회장과 황씨가 각각 50%씩 100%의 지분을 보유했다. HH라는 상호는 허 전 회장과 황씨 성의 이니셜로 알려졌다.

이 중 HH레저는 2003년 고(故)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가 운영하던 동두천의 현대다이너스티(현 담양레이나CC)를 인수했다. 당시 다이너스티 골프장 가액은 회원권과 채권 등을 더해 1150억원으로 추산됐지만 실제 거래는 152억2000만원에 이뤄졌다. 허 전 회장은 골프장 매입 비용 전액을 대주그룹 계열사를 통해 조달했다고 밝혔다.

“(현대다이너스티 인수 당시) HH레저는 현금 100원도 없었으며 서류상 세무상 정리했습니다. 회사 이름만 차명으로 빌린 상태입니다. 현대다이너스티를 인수한 후 지금까지 회사에서 모든 것을 투자하고 금융가와 회사에서 자금 차입 시 본인이 보증을….”

허 전 회장은 이후 골프장 개·보수 및 확장 등에 투입된 자금도 모두 자신이 마련했다고 주장했다. 사재 70억원을 대여해 토지 구입 및 지반공사 등을 진행했고, 대주그룹을 운영하면서 조성한 비자금으로 투자했다는 설명이다.

“회사가 망했을 때 노후 대책으로 담양다이너스트를 고급스러운 명문 골프장으로 만들고 싶었습니다. (중략) 2~3년에 걸쳐 토지 약 30만 평을 매입하여 2006년에 완성했습니다. (여기에 들어간 비용 650억원 정도는) 대주건설에서 전액 투자하였고….”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HH레저는 지난해 기준 자산총액 982억원, 연매출 113억원의 레저기업으로 성장했다. HH레저는 현재 최대주주(50%)인 황씨가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그의 형부인 차아무개씨가 대표이사를 맡고 있다.

허 전 회장은 HH레저와 비슷한 방식으로 HH개발에도 120억원을 투자했다. 이 자금으로 HH개발은 부동산 임대업과 매매업을 영위했다. 또 HH개발이 지분 100%를 보유한 뮤제오를 통해 가구를 수입해 판매하는 사업도 벌이며 수익을 올리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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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H레저가 운하는 담양레이나CC ⓒ담양레이나CC 홈페이지 캡쳐

허 전 회장 “HH레저·개발로 간 건 내 돈” 

허 전 회장은 대주건설에서 HH레저와 HH개발로 넘어간 자금이 실제로는 자신의 사재라고 주장했다. 1998년 IMF 외환위기로 대주그룹 전반에 자금난이 발생하자 허 전 회장이 당시 보유 중이던 현금 1600억원 중 약 1200억원을 대주건설에 대여했는데, 이 자금을 HH레저와 HH개발에 투자하도록 했다는 것이다.

“HH레저에 800억원, HH개발에 120억원 등 총 920억원은 허재호가 회사(대주건설)에 빌려준 돈에서 반환받아 투자하였고 (중략) 골프장에 (개인 명의로) 빌려준 대여금은 채권 압류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허재호’에서 ‘주주임원 차입금’으로 바꿨습니다.”

따라서 황씨는 차명 소유자일 뿐 자신이 HH레저와 HH개발의 실소유주라는 것이 허 전 회장의 주장이다. 허 전 회장은 2015년 뉴질랜드로 출국하기 직전까지 자신이 이들 회사에 대한 실질적인 경영권을 행사했다고도 밝혔다.

“2014년까지 (HH레저의) 대표이사와 사내이사 선임 등 경영을 하였으며, 나의 소지품도 2014년 11월까지 골프장에 있었습니다. (2014년 3월) 광주교도소 출소 후 골프장을 숙소로 짐작하고 기자들 수십 명이 대기하였습니다.”

이런 가운데 허 전 회장이 HH레저 등을 상대로 대여금을 돌려 달라는 취지의 소송을 제기한 건 그가 뉴질랜드로 출국하기 직전인 2014년 무렵 경영에서 배제됐기 때문으로 보인다. 허 전 회장은 수백억원대 횡령 및 탈세 등의 혐의로 수사를 받던 2010년부터 2014년 사이 자신의 HH레저 지분 50%를 뮤제오(23%) 등 황씨 측에 넘겼고, HH개발의 경우는 허 전 회장의 지분율이 20%에 불과해 사실상 경영권을 행사할 수 없던 상황이다.

“HH레저는 2014년 회계장부 열람을 원했는데도 불구하고 거부하였으며 또한 황씨는 근무하지도 않고 월급은 사장보다 훨씬 많이 받아가 착복하고 (중략) HH개발 측은 골프 연습장(약 150억원)과 빌딩(약 200억원) 등 핵심 자산을 주주총회도 열지 않고 공매공고….”

그러나 허 전 회장은 HH레저 등을 상대로 한 소송에서 중도하차했다. 그 배경에 대해 허 전 회장의 측근은 “허 전 회장은 현재 황씨와 결별한 상황”이라며 “하지만 황씨가 쥐고 있는 재산이 결국 그와의 사이에서 낳은 4명의 자녀에게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생각해 소송을 중단하기로 마음먹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2017년 사실혼 관계의 황아무개씨 측과 재산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자필 진술서 ⓒ시사저널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2017년 사실혼 관계의 황아무개씨 측과 재산 분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재판부에 제출한 자필 진술서 ⓒ시사저널

분양대금으로 황씨 회사 막대한 수익

허 전 회장의 은닉재산으로 의심되는 황씨 명의의 법인은 HH레저와 HH개발뿐만이 아니다. 한때 대주그룹 계열사로 분류된 태전건설도 그런 경우다. 2006년 12월 허 전 회장의 지분 100%로 설립된 태전건설은 이듬해인 2007년 12월 최대주주가 황씨로 변경됐다. 당시 황씨는 태전건설 지분 45%를 225만원에 사들였다. 헐값에 태전건설 경영권을 확보한 것이다. 나머지 주주들도 허 전 회장과 황씨의 지인들로 채워졌다.

태전건설은 대주그룹 계열사이던 지에스건설(GS건설과 무관)로부터 자금을 지원받아 막대한 부를 일궜다. 문제는 이 자금이 지에스건설이 2006년 분양한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공세지구 피오레 아파트 분양대금이라는 점이다.

지에스건설에는 2006년(1634억원)과 2007년(990억원) 해당 아파트 분양대금 2624억원이 입금됐다. 분양대금 대부분은 대주그룹 계열사들로 흘러갔다. 태전건설(404억원)과 미래알에이씨(221억원), 한마루(90억원), 대주건설(468억원), 대한건설(48억) 등에 총 2588억원을 대여 형태로 전달했다.

이처럼 아파트 건립에 사용돼야 할 분양대금의 98% 이상이 외부로 유출된 건 대주그룹이 계열사들의 자금을 통합금전거래 방식으로 운용했기 때문이다. 관련 내용은 허 전 회장의 자필 진술서에도 등장한다.

“대주건설을 모기업으로 하고 약 30개의 자회사를 운영하면서 모회사인 대주건설 회계부에서 현금을 통합관리하여 그때그때 회사 사정에 의해 자금이 오고 갔습니다. (자금의) 처음과 끝만 가지고 정산을 했습니다.”

그 결과 분양자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분양대금 유출로 공기가 계속 지연되면서, 입주 예정일인 2008년 12월까지도 아파트가 완공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분양 피해자들은 지에스건설을 상대로 분양대금 반환 청구 소송을 제기했고, 대법원 승소 확정판결까지 받아냈다. 그러나 여전히 분양대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다. 지에스건설의 자금이 바닥났기 때문이다.

반면, 태전건설은 분양 피해자들의 분양대금을 통해 막대한 이익을 누리게 됐다. 태전건설은 설립 직후인 2006년 12월 지에스건설로부터 직접 넘겨받은 404억원과 대주건설을 거쳐 전해진 137억원 등 총 541억원에 금융권 대출을 더해 광주시에 있는 아파트 건립을 위한 부지를 726억원에 매입했다.

태전건설이 해당 부지에 대한 개발사업에 착수한 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태전건설은 2015년부터 2019년 사이 허 전 회장의 측근으로 분류되는 조아무개씨 주도로 태전동 부지에 태전7지구 태전힐스테이트 1·2차 3600여 세대와 타운하우스 등을 건립해 분양했다. 이를 통해 태전건설이 올린 수익은 15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황씨는 사업 시작 시점 전후로 보유 중이던 태전건설 지분 전량을 자신의 측근에게 넘겼다. 지분 거래가격은 225만원이었다. 막대한 수익이 예상되는 회사 지분을 헐값에 매각했다는 점에서 차명 보유가 의심되는 상황이다.

피오레 분양 피해자 모임 관계자는 “허 전 회장과 황씨는 서민들의 분양대금을 횡령해 자신들의 회사에 은닉한 후 그 자금을 기반으로 사업을 벌여 비교적 최근까지 막대한 부당이득을 올렸다”고 지적했다. 시사저널은 HH레저 및 HH개발의 입장을 듣기 위해 황씨와 그 주변인들을 상대로 계속 연락을 취했지만 아무런 입장도 들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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