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피격 사건, ‘정치 테러’냐 ‘자폭 테러형 범죄’냐
  • 박대원 일본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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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중 도쿄대 명예교수 “아베 피격 사건, 정치적 메시지 안 보여”…최근 사회적 불만 폭발하는 범죄 잇따라

아베 신조 전 총리가 7월8일 나라현에서 실시된 참의원 선거 유세 연설 도중 총격으로 사망했다. 전직 해상자위대원 출신으로 알려진 야마가미 데쓰야(41)가 직접 제작한 총기와 탄환으로 아베에게 총격을 가한 것이다. 야마가미는 범행 직후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가택 수사 결과 총기류 및 사제 폭탄이 발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에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초로 발생한 전직 총리 피살 사건을 두고 일본의 주요 정치인과 언론들은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테러 행위” “정치 테러는 용납할 수 없다”며 규탄에 나섰다.

아베 전 일본 총리의 시신을 실은 차량(왼쪽)이 7월12일 도쿄에서 장례식을 마친 뒤 조조지 사찰을 나서고 있다. ⓒ AP 연합
아베 전 일본 총리의 시신을 실은 차량(왼쪽)이 7월12일 도쿄에서 장례식을 마친 뒤 조조지 사찰을 나서고 있다. ⓒ AP 연합

정치인을 대상으로 하는 테러 끊이지 않아

일본 근현대사에서 1921년의 하라 다카시(19대 총리) 살해 사건, 1930년의 하마구치 오사치(43대 총리) 피격 사건과 같이 현직 총리가 칼에 찔리거나 총격으로 사망하는 사례는 드물지 않다. 전후에도 각료 및 정치인에 대한 습격은 다수 발생해 왔다. 특히 우익단체에 의한 정치 테러가 빈번했다. 먼저, 아베 신조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 재임 중이던 1960년 7월14일, 우익단체 소속 괴한에게 허벅지를 찔려 중상을 입었으며, 같은 해 10월12일에는 사회당의 아사누마 이네지로 위원장이 우익 세력의 칼에 찔려 사망했다.

1963년에는 우익단체가 고노 이치로 건설대신의 자택에 방화를 저지렀으며, 1975년에는 미키 다케오 당시 총리가 사토 에이사쿠 전 총리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직전 괴한에 의해 폭행당했다. 현직 총리에 대한 습격 사건 발생은 일본 경시청이 SP(시큐리티 폴리스) 조직을 설치하는 등 요인에 대한 경호를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 

1990년대 들어서는 1992년 3월 가네마루 신 자민당 부총재가 북·일 국교 정상화 교섭을 위한 방북 이후 우익단체 소속 남성으로부터 총격을 받는가 하면, 1994년 5월 호소카와 모리히로 전 총리가 총리직 사임 후 총격을 당하는 사건 등이 발생했다. 가네마루와 호소카와 두 사람은 모두 피해가 없었다. 또 우익단체에 의한 범행은 아니나, 2007년 4월에는 이토 잇초 나가사키 시장이 선거 유세 후 일본 최대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 조직원의 총격에 의해 사망했다. 

이처럼 일본 근현대사에는 정치인을 대상으로 한 습격이 반복되어 왔으나,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은 2007년 나가사키 시장 피격 사건 이후 15년 만에 발생했다는 점, 총리직 사임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며 내각의 ‘실력자’ 역할을 한 핵심 인사의 사망이라는 점, 총기 사건이 드문 일본에서 사제 총을 사용한 범행이 발생한 점에서 ‘테러리즘’이 주요 화두로 재부상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아베에게 총격을 가한 야마가미의 진술이 일부 공개되고 특정 종교단체에 대한 원한이 범행 동기로 지적되면서 이번 사건이 ‘정치 테러’에 해당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방위대학교 교수 미야사카 나오후미는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유명 정치인이 총격을 당해 사망한 것을 두고 ‘테러’라고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면서도 “테러는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이뤄지는 불법적인 폭력행사 혹은 위협”을 뜻하는 것이라며, 이번 아베 피격 사건은 테러라기보다는 일반적인 범죄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재일교포이자 도쿄대 명예교수인 강상중 교수도 테러는 ‘정치적 메시지’를 갖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하는 행위라며, 이번 사건의 경우 그러한 정치적 메시지가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물론 이런 견해에 반대하면서 “정치 테러는 정치적 목적이 아니라는 것을 위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종교단체에 대한 원한이 범행 동기라는 가해자의 진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주장도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7월8일 아베를 총기로 저격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아래·41)가 범행 직후 제압당하고 있다. ⓒ 나라 로이터 연합
7월8일 아베를 총기로 저격한 용의자 야마가미 데쓰야(아래·41)가 범행 직후 제압당하고 있다. ⓒ 나라 로이터 연합

도쿄대 흉기난동·핼러윈 방화, 같은 맥락 

이처럼 아베 피격 사건에 대한 해석이 엇갈리면서 일본 사회 전반에 확산되고 있는 이른바 ‘자폭 테러형 범죄’(붙잡힐 것을 각오하고 일으키는 범죄를 뜻하는 말)의 연장선에서 아베 피격 사건을 바라보는 시각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올해 1월 도쿄대 진학을 희망하던 한 고교생이 도쿄대 정문 앞에서 수험생을 흉기로 찔러 상해를 입힌 사건이나 지난해 가을 핼러윈을 맞아 조커 분장을 한 남성이 게이오선 열차 내에서 승객에게 흉기를 휘두르고 방화를 시도한 사건 등이 자폭 테러형 범죄의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도쿄대 흉기 난동과 핼러윈 흉기 난동·방화 사건이 무차별적 범행이었던 반면, 아베 피격의 경우 특정 인물, 유명 정치인이 범행 대상이 되었다는 점에서 차이점도 분명 존재한다. 그러나 세 사건 모두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사건이라기보다는 사회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형태로 범행이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존재한다.

아베 피살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가운데 대다수 일본 국민은 아베 피격 사건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정치 테러’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요미우리신문이 7월11~12일 이틀간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3%가 아베 피살과 관련해 폭력에 의해 일본의 민주주의가 위협당하고 있다는 불안을 느낀다고 답했다. 자민당 압승으로 이어진 참의원 선거 결과와 관련해서는 응답자의 86%가 아베의 사망이 선거 결과에 영향을 미쳤다고 답했다. 기시다 내각에 대한 지지율도 지난달에 비해 8%포인트 상승한 65%로 나타났으며, 기시다 총리에 대해서는 응답자의 52%가 임기가 끝나는 2024년 9월까지 총리직을 계속해 주었으면 좋겠다고 답했다. 기시다가 이끄는 자민당의 장기집권 체제에 대한 기대감이 엿보이는 부분이다.

아베의 갑작스러운 사망과 참의원 선거 승리로 자민당 내에서의 입지를 강화한 기시다 총리는 내각 지지율 상승에 힘입어 향후 안정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7월11일의 선거 결과 발표 직후 실시된 기자회견에서 기시다는 국방력의 반격능력(적 기지 공격능력), 자위대 존재 명기 등을 포함한 개헌을 가능한 한 빨리 추진하고 싶다며 개헌에 관한 국민투표를 실시하고 싶다고 말했다. 전후 체제로부터의 탈피를 외치며 헌법 개정을 주장해 왔던 아베의 ‘필생의 과업’은 아베의 죽음을 계기로 달성될 수 있을까. 올해 말 발표를 앞두고 있는 일본의 신(新)국가안전보장전략(NSS)은 포스트 아베 시대의 일본 외교·안보정책의 방향성을 규정하는 이정표가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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