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 빠지는 지식산업센터, ‘곡소리’ 커지나
  • 길해성 시사저널e. 기자 (gil@sisajournal-e.com)
  • 승인 2022.07.19 07:30
  • 호수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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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출 70~80%·전매 제한 無’로 아파트 대체재 각광
공급 과잉에 금리 인상까지 겹치며 급매물 속출

저금리 시대 아파트 대체상품으로 투자 광풍이 불었던 지식산업센터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공급 과잉에 이어 금리 인상까지 겹쳐 수익률 하락 우려가 커졌기 때문이다. 일부 단지에선 ‘마피’(분양가보다 떨어진 가격) 매물이 속출하고 있다. 낮아진 수익률과 공실 부담으로 매물 던지기가 본격화할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식산업센터는 자금 환경이 넉넉지 않은 중소기업의 사무공간 공급을 위해 지어진 건물이다. 제조업·지식산업·정보통신사업 등의 사업장과 그 지원지설이 복합적으로 입주할 수 있는 3층 이상 집합건축물 형태를 띠고 있다. 과거 ‘아파트형 공장’으로 불리다가 2010년 명칭이 변경됐다. 기존에는 기계·전자·봉제 등 제조업체가 주를 이뤘다면 최근에는 IT산업·벤처기업 등 첨단 업종이 주로 들어서고 있는 추세다.

저금리 시대, 아파트의 투자 대안으로 투자 광풍을 이끌었던 지식산업센터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은 지식 산업센터 조례 개정에 반대하는 금속노조 경남본부ⓒ연합뉴스
저금리 시대, 아파트의 투자 대안으로 투자 광풍을 이끌었던 지식산업센터 시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사진은 지식 산업센터 조례 개정에 반대하는 금속노조 경남본부ⓒ연합뉴스

저금리 기조 아래 투자 열풍 넘어 광풍

지식산업센터가 수익형 부동산으로 주목받기 시작한 건 2019년부터다. 주택 규제 강화로 투자처가 막히자 상대적으로 규제에서 자유로운 지식산업센터로 뭉칫돈이 몰렸다. 지식산업센터는 사업자등록만 증빙하면 개인·법인에 상관없이 분양받을 수 있다. 개인 사업자·투자자는 분양가·매매가의 70%, 법인의 경우 최대 80%까지 대출이 가능하다. 1억원짜리 지식산업센터 상품을 구입하는 경우 실투자금이 2000만~3000만원에 불과하다는 의미다. 주택 수 산정은 물론 보유세나 양도소득세 등 각종 과세에서 자유롭고 전매 제한도 없어 값싸게 분양받은 뒤 전매를 통해 시세차익을 노린 개인투자자들이 몰렸다. 저금리 기조 아래 투자 열풍은 광풍이 됐다.

개인투자자가 늘면서 분양 완판이 계속되자 개발업체들은 앞다퉈 지식산업센터 공급에 나섰다. 한국산업단지공단에 따르면 2010년 전국 481곳에 불과했던 지식산업센터는 올해 6월말 1369곳으로 늘었다.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돼 있다. 수도권 소재 지식산업센터는 △경기 643개 △서울 367개 △인천 79개 등 1089곳으로 전체의 80%를 차지한다. 특히 새롭게 승인된 지식산업센터는 2014년 36곳에서 꾸준히 증가해 2019년 130곳, 2020년 139곳, 2021년 130곳 등 3년 연속 100개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지식산업센터가 우후죽순 들어서다 보니 기존 투자자들 사이에선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공급이 워낙 많은 탓에 임대료가 그대로거나 오히려 떨어지고 있어서다. 공실 위험도 높아졌다. 지식산업센터가 집중된 경기도에선 화성 동탄과 하남시 등 신도시 인근 지식산업센터들이 높은 공실률을 보이고 있다. 한 지식산업센터 분양 대행사 관계자는 “입지가 괜찮은 곳도 실제 입주율이 70~80% 수준이다”며 “공실이 많으면 임차료가 낮아지고 수익률도 크게 떨어지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지식산업센터 붐이 시작된 2019~20년 승인된 센터들이 대거 준공되고 있어 공실 리스크는 더욱 커질 전망이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 금리 인상은 지식산업센터 투자자들에게 직격탄이 될 전망이다. 상대적으로 대출 비중이 높은 지식산업센터 특성상 금리가 급등하면 수익성이 빠르게 악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는 7월13일 역사상 처음으로 한 번에 기준금리를 0.5%포인트 올렸다. 국내 기준금리가 단숨에 2.25%로 뛰면서 가파른 대출금리 상승이 예고되고 있다. 현재 수도권 내 지식산업센터 수익률은 2~3% 정도로 대출금리(3~5%)보다 낮은 상황이다. 금리 인상이 예고된 상황에서 수익률이 금리보다 낮으면 투자 수요가 유입되기 어렵다. 업계에선 공급 물량 증가와 수요 감소가 맞물린다면 시세 하락도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분양가보다 가격 떨어진 ‘마피’ 매물도 등장

수익률이 낮아지다 보니 분양을 받았다가 급매물로 내놓는 경우도 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1200실 규모인 경기도 광명시 G지식산업센터는 지난해 말 입주가 시작된 이후 최근 분양가 이하 매물이 등장했다. 김포시의 S지식산업센터에선 분양가보다 2000만원 낮은 급매물이 나왔다. 수원시 T지식산업센터의 기숙사 한 곳은 최근 분양가보다 1000만원가량 낮은 가격으로 새로운 주인을 찾고 있다.

업계에선 수도권을 중심으로 매물을 던지는 투자자가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새 정부가 주택 규제 완화정책을 펼치고 있는 만큼 지식산업센터의 투자 매력이 크게 반감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동안 지식산업센터의 부상은 문재인 정부의 주택 규제 강화에 따른 풍선효과가 일조했다. 하지만 윤석열 정부는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세제 완화, 대출 확대 등의 정책을 주진 중이다. 개인이나 기업 투자자가 다시 주택시장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여기에 정부가 과열된 지식산업센터 투자를 규제한다는 방침이어서 시장은 더욱 위축될 전망이다. 최근 지식산업센터 시장은 기업이 아닌 소액 투자자를 위한 분양상품이 대부분인 데다 투자자를 현혹하는 과장 광고까지 즐비해 투기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투자 과열로 중소기업들이 피해를 보고 있다는 점도 규제에 나서는 배경으로 꼽힌다. 수요가 몰리면서 시행사와 건설업자들은 분양가를 계속 높여왔다. 가산디지털단지 내 지식산업센터의 3.3㎡당 분양가는 과거 600만~700만원 수준에서 최근 2000만원까지 뛰어올랐다. 송파나 성수 등의 지식산업센터는 3000만원에 근접한 상황이다. 이런 곳에서 오르는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운 중소기업들은 경기도 외곽으로 밀려나고 있다.

삼정KPMG 경제연구원은 지난 4월 발표한 ‘수익형 부동산 블루칩, 지식산업센터의 넥스트 퀘스트(Next Quest)’ 보고서에서 “중소기업에 비교적 저렴한 오피스 공간을 제공하겠다는 본래의 도입 취지와 달리 지식산업센터가 투기 상품으로 변질되고 있다”며 “불법 투기 근절을 위해 단시일 내 전매 금지 등 규제와 관리·감독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진단했다.

전문가들은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가격 조정 이후 수익률을 보면서 투자에 나서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인만 부동산경제연구소 소장은 “지식산업센터는 주택 규제 회피처로 2020~21년 수익형 부동산 중 최고 호황을 누렸지만 금리 인상으로 인한 타격도 그만큼 클 수밖에 없다”면서 “공급 과잉과 금리 인상 영향으로 향후 수익률 하락이 예상된다”고 말했다. 이어 “낮아진 수익률과 공실 부담으로 2~3년 내 여기저기서 ‘곡소리’가 날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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