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사벽 무너뜨리는 무서운 10대 조세혁, 세계 테니스도 정복한다
  • 김경무 스포츠서울 전문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9 14:00
  • 호수 17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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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의 무대’ 윔블던 U-14부에서 우승하며 세계를 놀라게 해…공격적 플레이에 강한 멘털까지 갖춰

“테니스는 경기 태도가 중요한데, 그의 플레이는 대범하고 공격적이다. 그런 점이 좋다. 그의 경기를 본 테니스인들이 모두 앞으로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 회장), “어린 선수치고 서브의 기초가 잘돼 있고 메커니즘도 좋다. 포핸드 공격력도 좋다. 피지컬도 떨어지지 않는다.”(박용국 대한테니스협회 전무 겸 방송해설위원)

국가대표와 코치·감독 등 지도자 생활을 두루 거친 테니스인들은 이처럼 한결같이 그에 대한 기대감을 감추지 않는다. 주인공은 7월10일(현지시간) 열린 2022 윔블던 챔피언십 14세 이하부(U-14) 남자단식 결승전에서 미국의 커렐 오브리엘 응구누에를 2대0으로 제치고 ‘깜짝 우승’을 차지하며 혜성처럼 등장한 조세혁(14·남원거점스포츠클럽)이다. 물론 세계 정상급 강호들이 득실거리는 시니어나 주니어(18세 이하) 무대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즌 세 번째 그랜드슬램대회로 ‘꿈의 무대’로 통하는 윔블던에서, 그것도 한국 관중에게는 생소한 잔디코트에서 한국 선수가 새롭게 만들어진 최저 연령대 부문 챔피언에 올랐기에 그 의미는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윔블던 테니스대회 홈페이지
ⓒ윔블던 테니스대회 홈페이지

‘레전드’ 이형택·정현 비해 서브·포핸드 강점 갖춰

과거 2000년대 초반부터 차례로 한국 테니스를 대표하며 세계무대의 문을 두드렸던 이형택과 정현, 그리고 현재도 ATP투어를 누비고 있는 권순우 등이 있지만, 14세 유망주 조세혁의 등장은 그 어느 선수보다 임팩트가 강하다 할 수 있다. 선배들과는 다른 그만의 장점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형택은 2003년 ‘아디다스 인터내셔널’에서 한국 선수로는 처음으로 ATP투어 단식 첫 우승 쾌거를 달성했던 레전드다. 2008년 8월에는 한국 남자선수로는 당시 역대 최고인 세계랭킹 36위까지 올랐다. 정현은 2017년 11월 ‘넥스트 제너레이션 ATP 파이널스’ 단식에서 7명의 전 세계 유망주를 제치고 우승하는 쾌거를 달성했다. 2018년 호주오픈 남자단식에서는 노박 조코비치 등 강호들을 잇따라 물리치고 4강까지 올라 로저 페더러와 격돌하며 전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이형택과 정현은 그다지 공격적인 스타일이 아니었다. 특히 정현의 경우 양손 백스트로크는 월드클래스급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서브가 약한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신체의 불균형으로 인한 고질적 허리 부상으로 안타깝게 투어 무대에서 멀어져 갔다.

반면 조세혁은 상당히 공격적이다. 6세 때부터 테니스를 가르쳐온 부친 조성규씨(전북테니스협회 전무)도 “서브와 포핸드 스트로크를 잘 친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그의 경기를 지켜본 전문가들의 평가도 다르지 않다. 조세혁은 이번에 ATP투어나 4대 그랜드슬램(호주오픈·롤랑가로스·윔블던·US오픈) 정복을 위해 필수적인 서브와 포핸드에서 향후 시니어 무대에서도 충분히 통할 잠재력을 보여줬다. 부친 조씨는 무엇보다 아들이 “어릴 적부터 자신보다 한두 살 위인 형들을 상대로 이기는 테니스를 쳐왔다”는 점을 특히 강조하고 있다. 어떤 불리한 상황에서도 이길 줄 아는 능력, 그것도 그의 장점 중 장점이라는 것이다.

테니스 경기에서는 한두 번의 화려한 플레이가 중요하지 않다. 스트로크 등 기량도 중요하지만, 상대와의 긴 랠리 때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강인한 멘털이 승리에 필수적이다. 조세혁은 그런 면에서도 가능성을 충분히 보여줬다. 그는 어린 나이에도 경기 중 감정의 기복이 없다. 조씨는 아들이 “심리적 트레이닝도 받고 있다”고 털어놨다. “4년 전부터 1·2주에 한 번꼴로 심리상담을 받아왔다”는 것이다. 전주 전일중 2년 재학 중이던 그는 지난 6월 해외투어 전념을 위해 학교를 중도에 그만뒀다. 

2022 윔블던 남자단식 결승에서 ‘악마의 재능’을 갖췄다는 닉 키리오스(27·호주)를 3대1로 제압하고 4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노박 조코비치(35·세르비아). 그는 경기 중 때론 판정에 항의하며 심판에게 화를 내고 종종 라켓을 부수는 등 비매너를 보이지만, 상대와 랠리 중 거의 흔들리지 않는 멘털로 라파엘 나달(36·스페인)과 함께 세계 최고로 군림하고 있다.

ⓒ윔블던 테니스대회 홈페이지
7월10일(현지시간) 윔블던 테니스 대회 14세 이하 남자단식에서 우승하며 초대 챔피언에 오른 조세혁ⓒ대한테니스협회 제공

좋은 지도자, 든든한 후원자, 협회 지원 등 ‘환경’도 중요

사실 이번 윔블던 U-14 남자단식에서 조세혁은 5번 시드를 배정받았다. 우승 후보는 아니었다. 그도 이번 대회 출국에 앞서 “4강 진출이 목표”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지구촌 유망주 16명이 출전해 라운드 로빈 방식으로 치른 이번 대회 예선 3경기에서 단연 뛰어난 경기력으로 3전 전승을 거뒀다. 4강전에서는 1번 시드인 이반 이반노프(불가리아)를 2대1로 꺾는 등 파죽지세였다. 조세혁은 특히 3세트 타이브레이크 승부에서 강력한 포핸드 리턴샷을 성공시키며 10대9 매치포인트를 만들었고, 자신의 주특기인 폭발적인 서브로 상대 리턴샷 실수를 유발하며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장차 그랜드슬램 무대를 누빌 유망주로 급부상한 조세혁이지만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다. 주니어 때 화려한 빛을 발하고도 성인이 돼서는 사라져 버린 유망주 사례는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헤아릴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중반 각광받던 전웅선이나 김선용이 대표적 케이스다. 김선용은 주니어 남자단식 세계랭킹 1위까지 올랐으나, 1년 동안 지속된 코치와의 심한 갈등으로 심리적 슬럼프에 빠져 결국 테니스에 흥미를 잃고 이후 잊힌 선수가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량만 좋다고 성인 무대에서 성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주변 여건도 중요한 셈이다. “코치나 부모의 역할이 중요하다. 무엇보다 좋은 코치를 만나야 한다. 선수를 후원해줄 기업도 필요하고, 테니스협회의 지속적 관심과 지원도 필수적이다. 몸도 잘 만들어야 한다. 종합적으로 테니스에 필요한 것이 병행돼야 한다.” 과거 삼성증권 테니스단 감독으로 이형택과 WTA투어에서 활약한 조윤정을 키워낸 주원홍 전 대한테니스협회 회장은 이렇게 강조한다. NH농협은행 여자테니스단 감독 출신인 박용국 해설위원도 “전에 없던 유망주가 발굴됐으니 이제 후원기업도 필요하다. 그러나 부모들의 지나친 개입은 안 된다. 기량적인 면에서는 좋은 지도자를 만나 풋워크와 순발력, 민첩성도 키워야 한다. 강서브에 이은 3구 공격을 강화하고, 경기 중 코트에서 당당함도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세혁은 1m81cm, 69kg의 오른손잡이로 신체조건도 자신의 나이대에서는 상당히 좋은 편이다. 부모가 모두 테니스 선수 출신으로 테니스 DNA도 물려받았다. 불가능에 가깝던 종목에서도 세계무대를 하나하나씩 정복해 가고 있는 한국 스포츠의 위대함이 이제 조세혁으로 인해 테니스에도 뻗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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