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政 갈등으로 깊어지는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 이상욱 영남본부 기자 (sisa524@sisajournal.com)
  • 승인 2022.07.1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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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불법행위로 규정…“점거 중단하고 대화 나서야”
노동계 “공권력 투입하면 즉시 20만명 총파업”

7월11일 오전 11시20분쯤 경남 거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제1도크(dock). 배를 물에 띄우는 진수 작업 현장인 이곳은 가동을 멈췄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하청지회) 유아무개 부회장이 6월22일부터 제1도크 내 건조 중인 30만톤급 원유 운반선 바닥에서 가로·세로·높이 1m 크기의 철제 구조물에 들어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그는 시너 통까지 들고 들어간 상태다. 또 다른 조합원 6명은 바닥에서 20m 높이에 있는 난간에서 점거 농성 중이다. 원유 운반선 난간에는 ‘임금 30% 인상 단체협약 체결 대우조선과 산업은행이 답하라’는 현수막이 걸렸다. 일부 하청지회 조합원들은 선박으로 들어가는 출입구를 막고 있다. 이날 경찰은 농성 현장 인근에서 김아무개 하청지회장에게 7월13일 나오라는 출석요구서를 전달했다. 

현재 농성 중인 하청지회의 요구사항은 임금 30% 인상과 상여금 300% 인상, 노조 전임자 인정, 노조 사무실 지급 등 9가지다. 특히 하청지회는 임금 인상과 교섭단체 인정을 최우선과제로 내세우고 있다. 현장에서 만난 유 부회장은 “제도권 내에서 비정규직 노동자가 자신의 권리를 지킬 방법이 없다”며 “임금 인상은 어차피 교섭으로 해결하는 것인데, 교섭 자체를 열지 않으려고 하니 괘씸하다”고 말했다. 이어 “제가 이곳에서 농성한 지 20일째인데, 회사 피해가 발생하는 것을 모르겠냐”면서 “대우조선해양이 이런 피해를 안고서도 노동조합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유를 되묻고 싶다”고 했다. 

또다른 하청지회 관계자는 “올해가 노동조합을 인정받고, 대우조선 하청노동자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권리를 합법적으로 쟁취할 수 있는 가장 좋은 해로 생각한다”며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의 노동권을 보장하라고 요구하는데, 강경한 대치가 왜 필요한지 의문”이라고 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하청지회) 유아무개 부회장이 7월11일 제1도크 내 건조 중인 30만톤급 원유 운반선 바닥에서 가로·세로·높이 1m 크기의 철제 구조물에 들어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이상욱
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하청지회) 유아무개 부회장이 7월11일 제1도크 내 건조 중인 30만톤급 원유 운반선 바닥에서 가로·세로·높이 1m 크기의 철제 구조물에 들어가 농성을 벌이고 있다. ⓒ시사저널 이상욱

대규모 손실 입은 대우조선해양 발동동 “불법행위에 수사해달라”

대우조선해양에는 원청 직원 1만여 명과 사내 하청 직원 1만1000여 명 등 2만1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현재 파업을 벌이는 노동자들은 100여 개 하청 업체 중 22개 업체에 속한 이들로, 하청지회에 가입한 조합원 400여 명 중 120여 명 정도로 알려져 있다. 6월18일부터 시작된 이들의 농성으로 현재 선박 3척의 진수 또는 건조작업이 중단됐다. 다른 공정에도 여파가 미치는 상황이다. 2도크와 플로팅 도크 역시 인도가 4주 지연됐고, 안벽에 계류된 일부 선박들도 1~3주 인도가 늦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대우조선해양은 매일 259억원의 매출 손실과 60억원의 고정비 손실이 발생해 현재까지 약 5700억원의 손실을 입고 있다. 또한 납기를 준수하지 못하면 매달 130억원의 지체 배상금을 물게 된다.

대우조선해양은 지난해 1조7000억원의 대규모 손실을 봤고, 올해 1분기도 강재가 추가 상승으로 인해 4700억원의 영업 적자를 기록했다. 부정적 환경에도 지난해 연말부터 LNG선을 중심으로 선박 발주시장이 살아나며 올해 현재까지 26척 59억3000만 달러를 수주(달성률 66.4%)하면서 3년치의 안정적인 일감을 확보했다.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은 하청지회 농성으로 연일 피해가 불어나자 7월7일 긴급 기자간담회를 열고 “조선소의 심장인 도크가 폐쇄되면서 사내 직영과 협력사 2만명, 사외 생산협력사와 기자재 협력사에 소속된 8만명 등 총 10만여 명의 생계 또한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고 했다.

박 사장은 “지금 피해는 대우조선해양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전체 조선업으로 확산해 대한민국 조선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할 수 있다”며 “국가기간산업에서 벌어진 작업장 점거, 직원 폭행, 설비 파손, 작업 방해와 같은 모든 불법행위에 대해 철저히 수사하고 법질서를 바로 잡아달라”고 호소했다. 대우조선해양 사내 협력사들도 7월11일 용산 대통령실 근처에서 집회를 열고 하청지회의 불법 파업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개입해 달라고 호소했다. 

협력사의 피해는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파업으로 인해 5곳의 대우조선해양 협력사가 문을 닫았고, 70명 안팎의 협력사 직원들의 일자리가 사라졌다. 앞으로도 현금 여력이 부족한 업체 순서대로 문을 닫으면서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게 협력사 측의 설명이다. 더 큰 문제는 선박 수주에 미칠 영향이다. 거제 옥포조선소에 파견된 해외 선주 감독관들은 카메라로 불법 파업 현장을 촬영해 보고하기 시작했다. 옥포조선소에서 근로자들의 근무를 방해하고 기자재를 망가뜨리는 모습이 그대로 촬영돼 해외 선주들에게 전달되는 셈이다.

하청지회의 농성과 이에 따른 선박 진수(進水) 작업 중단이 길어지면서, 대우조선 정규직 노조가 하청지회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조합원 중 상당수는 민주노총 금속노조에서 탈퇴하기 위한 총회 소집도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대우조선지회는 7월11일 낸 성명서에서 “하청지회 투쟁 장기화로 발생하는 피해 규모가 눈덩이처럼 불어나 쉽게 회복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며 “대우조선 전 구성원의 공멸을 막기 위해 하청지회 도크 투쟁 철수 결단을 요청한다”고 밝혔다. 하청지회와 같이 민주노총 금속노조를 상급 단체로 둔 대우조선지회 내에서는 민주노총 탈퇴 목소리까지 나오기 시작했다. 7월13일 일부 대의원들은 금속노조 지회인 노조의 조직 형태를 산별노조에서 기업별 노조로 전환하기 위한 지회 총회 소집요구안을 지회 집행부에 제출했다. 

거제시민들도 우려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대우조선해양 임직원과 가족, 거제시민들은 7월14일 오후 5시30분부터 1시간 동안 도크 투쟁 철수를 요구하기 위해 약 3000명이 참석하는 인간 띠 잇기 행사를 계획하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정문부터 남문과 서문, 열정교를 이어 옥포매립지 오션플라자 구간 외곽 도로까지 약 3.5㎞에 달하는 구간을 인간 띠로 연결한다는 구상이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7월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7월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문가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 처리, 윤석열 정부 노동 정책 향방의 시금석”

급기야 정부 부처들도 하청지회의 점거 농성을 불법행위로 규정하고 중단을 요구하고 나섰다. 하지만 노동계가 정부와의 대화를 촉구하면서 대우조선해양 파업은 노정 갈등이 더 심해질지 여부를 가늠할 일차 분수령이 될 전망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7월14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주재한 제3회 국정현안점검조정회의를 통해 “조합원이 점거를 중단하고 대화에 나서면 정부도 적극적으로 교섭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앞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과 이창양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정부서울청사에서 각각 발표한 대국민 담화에서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노조 ‘선박 점거 농성’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중단을 촉구했다.

반면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에 관한 정부의 대국민 담화문에 금속노조는 “산업은행과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정부 입장을 명확히 해야 교섭의 시동이 걸린다”고 반박하고 나섰다. 금속노조는 7월14일 ‘기어 중립에 놓고 핸들은 사측으로 꺾는 정부’라는 제목의 성명문을 내고 “금속노조는 오늘 발표 내용이 과연 국가를 운영하는 행정부의 시각으로 적절한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또 한 총리 등이 특히 “산자부 장관과 다르게 법적 절차를 따른 정당한 쟁의행위를 근거도 없이 ‘불법’으로 규정한 노동부 장관의 발언에 주목한다”고 지적했다. 

올해 상반기 화물연대 파업부터 대우조선해양 하청노조 파업에 이르기까지 노정 갈등 경색 국면은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7월12일 윤석열 정부의 반노동 정책에 맞서 오는 11월12일 10만 조합원이 집결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총궐기를 개최하겠다고 밝히면서다. 이에 앞서 7월6일 금속노조 경남지부는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우조선 파업에 공권력이 투입될 경우 즉시 20만명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경고했다. 특히 노동계는 정부가 중대재해법을 완화하는 방향의 대책을 내놓을 시기에 맞춰 대정부 시위가 격렬해질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경남지역 대학의 한 사회학과 교수는 “파업은 노조의 권리지만, 정부가 불법행위를 용인하는 것은 직무 유기”라면서 “(정부가)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를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윤석열 정부 노동 정책 향방의 시금석이 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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