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영우와 경쟁하는 ‘권민우’식 정의가 진짜 평등일까 [남인숙의 귀여겨 듣기]
  • 남인숙 작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3 16:00
  • 호수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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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를 통해 본 차별의 의미
우리 사회의 구조적 차별, 호흡처럼 일상에 녹아있어

요즘 연일 화제에 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신생 채널 ENA에서 방영되고 있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다. 7월14일 6회 방송 후 9.6%의 시청률을 기록했는데, 이는 지상파 채널로 보면 50%에 육박하는 성과라고 한다. 자폐 스펙트럼이라는 장애와 천재성을 동시에 가진 주인공이 변호사가 되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이 사랑스럽고 따뜻하게 묘사된다. 각본·연기·연출 면에서 웰메이드 드라마라는 것 외에 이렇게나 많은 이의 마음을 잡아끌 수 있는 힘은 주인공을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에게서 나온다. 

ⓒENA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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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목소리 커진 여성들, 약자답지 못하다?

어떤 극이든 이야기는 갈등을 맺었다 푸는 식으로 펼쳐지고, 대다수 드라마는 악역을 갈등의 도구로 활용한다. 그런데 이 드라마에는 딱히 악당이라고 할 만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시청자는 차별적이지 않으면서도 주인공을 장애인의 눈높이에서 배려하는 주변 인물들을 보며 사회적 약자를 대하는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운다. 시청자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것은 평범한 사람들 대다수의 내면에 부분적으로 존재하나 현실에서는 쉽게 표현되지 못하는 선의다.   

그런데 주변 인물 중 유일하게 ‘우영우’에게 적대적 포지션의 캐릭터가 있다. 같은 신임 변호사로 로펌 내에서 경쟁관계에 있는 ‘권민우’다. 그는 장애 때문에 회전문을 통과하지 못하는 우영우를 도와주지 않는 걸 당연시하고,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고객에게 거부당하고 방황하는 우영우를 배려하는 상사에게 반발하기도 한다. 일부러 우영우를 따돌려 업무에서 배제시키는 모습까지 보인다. 하지만 힐링 드라마라고 찬사받는 드라마답게 이 캐릭터도 일상성을 벗어난 악의까진 보이지 않는다. 장애인이라곤 하지만 자신보다 월등한 능력을 갖고 있고, 게다가 주변의 배려까지 받는 우영우에게 느낄 감정도 이해 범주 안에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바로 이 일상성에 주목하게 된다. 

혹자는 권민우가 오히려 ‘자폐에 대해 가장 편견이 없는’ 캐릭터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우영우를 비장애인과 똑같이 대하며 전력을 다해 경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별을 없앤다는 것이, 분명히 존재하는 핸디캡을 없는 듯 무시하고 일률적으로 똑같은 조건에서 경쟁하게 만드는 것일까? 그 답을 찾는 과정에서 지금 우리 사회를 들끓게 하는 성별 논쟁과 같은 맥락을 만나게 되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후보 시절 언론 인터뷰에서 ‘구조적 성차별은 없다’고 말했다. 그리고 같은 생각을 가진 지지층의 기여에 힘입어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드라마 밖의 수많은 권민우는 학창 시절 더 좋은 성적을 받고 군대에 다녀오지 않는 또래 여성들이 차별을 받는 존재라는 인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 권리는 똑같이 누리면서 약자 행세를 하며 여성 전용 주차공간, 임신부 배려석 같은 혜택만 누리려는 이기적인 집단으로 보일 뿐이다.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한 것이, 이미 권리를 누리고 있는 집단은 상대적 약자에게 눈에 보이는 순정함을 요구하기 마련이다. 약자다운 태도와 모멸당하는 환경이 선명해야 한다. 그게 눈에 보이지 않으면 차별은 없는 것이고, 상대가 도태되는 것은 개인적인 됨됨이와 능력 탓이다. 요즘 들어 목소리가 커진 또래 여성들은 약자답지 못하다. 따라서 차별도 없다. 

권민우는 우영우가 능력도 뛰어나고 사람들의 배려까지 받으니 자신이 역차별을 받고 있다고 느낀다. 하지만 드라마 속 판타지를 뺀 현실 버전으로 경쟁의 결과를 예측하자면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권민우가 정규직으로 발탁될 것이다. 그리고 권민우는 순전히 자신의 능력으로 그 자리를 얻어냈다고 느낄 것이다. 

올해 초 대법원은 KB국민은행 임직원에 대해 ‘남녀차별법 위반’을 이유로 유죄를 확정 지었다. 남성 지원자들의 점수를 임의로 올려 여성 지원자를 탈락시키는 등 의도적인 남녀 차별의 정황이 사실로 드러났기 때문이다. 바로 지난 6월21일 인권위 권고 내용에 따르면 한국해양대는 여학생들의 현장실습 참여를 제한해 취업 필수조건 기회를 남학생들에게 몰아주었고, 이는 5년간 남녀 각각 80% 이상, 50% 이하 취업률이라는 결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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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우 변호사와 동료 신입 변호사 권민우 ⓒENA제공

젊은 남성들 박탈감, 여성 아닌 ‘알파’ 때문 

이처럼 현재진행형으로 남성들은 자신의 능력과 노력으로 획득했다고 믿어지는 것들을 여성들보다 더 많이 얻고 있다. 위 사례와 같이 숫자나 판결로 드러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경우가 호흡처럼 일상에 녹아있다. 능력이 동일하다면 무조건 비교우위에 놓이게 되는 성별이면서도 그렇게 생각하게 된다. 이건 개인 하나하나가 이기적이어서가 아니라 그걸 일깨우지 못하는 사회 탓이며, 그것이 다름 아닌 구조적인 차별이다.   

상대적 우위에 있는 남성들까지 차별에 대해 깨달아야 하는 이유는 그래야 남성을 포함한 사회 구성원 모두가 좀 더 사람답게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약자를 대하는 방식은 한 집단에만 적용되지 않는다. 여성을 차별하는 사회는 장애인, 어린이, 노인도 차별한다. 출신 지역이나 학벌에 따른 차별도 당연히 여긴다. 그러면서 그것을 차별이 아닌 상대방이 가진 절대가치의 산물이라고 여긴다. 

사람은 다면적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한 사람의 남성이 좀 더 유리한 위치로 산다고 해도 다른 차별 요소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어린이였던 시절을 지나 어린이를 키워야 하는 부모가 될 것이고, 불의의 사고를 만나거나 더 시간이 지나면 장애인이나 노인이 될 것이다. 횡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차별이 만연한 사회에선 같은 남성 집단 안에서도 소수의 알파(alpha)만이 특권을 독점하고 대다수 남성은 도태 집단이 된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젊은 남성들이 박탈감을 느끼고 있는 것은 여성들이 아니라 자원을 독점하고 있는 알파 메일(male)들 때문이다. 

2022년 세계불평등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 상위 10%가 전체 부(富)의 58.5%를 차지해 1인당 소득이 비슷한 국가들에 비해 심각하게 불균형한 구조다. 한국 주요 기업 중 여성 임직원이 가장 많은 삼성전자에서 남성 임원 비율이 93.5%(2022년 기준)인 점 등으로 유추해 보면 젊은 남성들이 가졌어야 할 것을 가져간 누군가가 여성들이 아닌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다른 지점에서 출발한 주자들을 오로지 결승 테이프를 끊는 순서대로만 주류로 끌어올리는 권민우식 정의가 진짜 평등인지 생각해볼 일이다. 

남인숙 작가
남인숙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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