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개혁에도 실력이 필요하다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5 12:00
  • 호수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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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정부 규제 혁파 약속했지만 성과는 미미
기득권 집단 많은 ‘덩어리 규제’ 혁파가 윤석열 정부 과제

윤석열 정부의 경제정책 방향은 규제 혁파와 기업 활력 제고를 첫 번째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기존 틀을 깨는 과감한 조치로 민간과 기업의 투자를 활성화하겠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기업 활동을 방해하는 규제를 모래주머니에 비유하기도 했다.

이렇듯 규제 개혁은 한국 경제의 성장동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수단이다. 지금까지 모든 역대 정부가 규제 혁파를 약속했다. 이명박 정부는 ‘규제 전봇대’를 뽑겠다고 했고, 박근혜 정부는 ‘손톱 밑 가시’를 빼겠다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혁명적 접근’을 약속했다. 모두 성과는 미흡했다. 규제 혁신을 외쳤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5798건의 규제가 신설됐다. 지금의 추경호 경제부총리 자신도 박근혜 정부에서 국무조정실장을 맡아 ‘규제 기요틴’을 추진했었다. 비효율적이거나 시장원리에 맞지 않는 규제를 단기간에 대규모로 개선하는 방식의 규제 개혁이었지만 썩 좋은 평가를 받지는 못했다. 노동, 금융 등 파급력이 큰 핵심 분야의 규제 혁파가 부진했기 때문이다.

7월15일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운데)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성공적인 규제개혁 방안 정책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7월15일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운데)가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윤석열 정부 성공적인 규제개혁 방안 정책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규제 전봇대’에서 ‘모래주머니’까지

규제 개혁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논리적으로 보면 규제 개선을 위해서는 현재의 규제에 대한 필요성과 적정성 여부의 판단이 선행돼야 한다. 얻는 것과 잃는 것을 정확하게 비교해 잃는 게 더 많은 규제라면 고치거나 폐지하는 게 맞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불필요한 규제나 적정 수준 이상의 규제는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고 하지만, 정확히 어떤 이득과 비용을 초래하는지 수치로 나타내기는 어렵다. 각자의 가치 기준에 따라 긍정적인 측면과 부정적인 측면이 다르게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직접비용이나 직접적인 편익은 추정이 어느 정도 가능하다고 해도 규제 탓에 발생하는 생산성 감소 같은 간접비용과 환경 보전이나 국민의 안전 제고 같은 간접편익은 계산하기가 어렵다. 따지고 보면 모든 규제는 나름대로 필요성이 있어 만들어졌다고 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경우 규제의 의도는 선량했을 것이다. 지난 정부의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이나 집값을 안정시키기 위해 시행된 수많은 부동산 규제도 마찬가지다.

규제 개혁은 여론의 지지를 받기도 어렵다. 규제는 만들어지는 순간, 이익집단을 만들고 그 이익은 기득권화한다. 일단 기존의 규제 체계로 인해 이득을 보는 집단의 입장에서는 개혁에 반감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규제 개혁이라는 추상적인 슬로건을 지지하는 것처럼 보이는 언론도 정작 구체적인 현안과 부닥치면 논조가 바뀐다. 산업재해가 불거지면 안전에 대한 규제 강화를 촉구하고, 금융 사고가 터지면 소비자 보호를 위한 규제를, 건물 붕괴 사고가 발생하면 건설과 관련한 규제 강화를 촉구하는 식이다. 그러니 사건·사고가 터질 때마다 압박하는 여론에 급해진 정부는 대개 규제 강화를 대책이라고 내놓는다. 당국으로서는 규제가 많이 있어야 규제 미비로 인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책임을 피할 수 있다는 점을 다시 확인하게 된다.

타성에 젖어 움직이지 않는다고 자주 질타를 받는 현장 공무원들도 할 말이 있다. 많은 규제가 시행령이나 지침, 지방정부 인허가 사안으로 위임돼 있다. 그러나 행정 현장에서 공무원은 법령에 따라 업무를 처리해야 한다. 문제가 생기면 책임은 현장이 져야 한다. 자의적으로 판단할 경우 감사나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니 위에서 아무리 규제 철폐를 외쳐도 현장 공무원들은 움직이지 못한다.    

규제도 정부가 국가 리스크 관리라는 기능을 수행하는 수단이다. 국가가 가진 사회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지켜야 할 행위 수준을 결정하는 일이다. 규제의 문제는 주로 그 적용이 획일적일 수밖에 없다는 점 때문이다. 경제환경의 변화로 좋은 의도로 도입된 규제도 긍정적 효과보다 부정적 효과가 더 커지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규제는 다른 어떤 수단도 없을 때 생각해 봐야 하는 마지막 수단이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나라의 규제 수준을 적은 편이라고 할 수는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에서는 5년 주기로 상품시장규제지수(product market regulation index)를 발표한다. 우리나라의 상품시장규제지수는 2018년에는 36개국 중 33위를 차지해 규제가 많은 편에 속했다.

물론 규제 개혁을 단순히 규제 숫자를 줄이는 일로만 생각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기재부는 과도한 규제 신설을 방지하기 위해 하나를 새로 집어넣으면 기존의 둘을 뺀다는 ‘원 인, 투 아웃(one in, two out)’ 룰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규제를 신설하거나 강화할 때 예상되는 규제 순비용의 2배에 달하는 기존 규제를 폐지하거나 완화하겠다는 것이지만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제도다. 자잘한 규제 2개 없애고 대신 중요한 규제 하나 만들면 의미가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미국과 영국이 먼저 도입했지만 모두 폐지한 것도 이유가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입법 규제도 문제다. 의원 입법도 규제 개혁의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 21대 국회에서 제·개정한 법률은 2890개에 달한다. 80% 이상이 규제 강화 내지는 신설이었다. 정부 규제는 형식적이라고 해도 규제 영향 분석을 거치고 규제개혁위원회 심사를 통해 어느 정도 걸러지지만 의원 입법은 이와 달리 사전 영향 평가가 의무화돼 있지 않다. 행정부의 규제 심사를 피하려고 관료들이 의원 입법이란 편한 길을 스스로 택하는 경우도 많았다. 규제 개혁을 위해서는 역시 행정문화와 공직자의 업무 행태에도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규제 혁신 시스템을 만들고 인사혁신처는 공직문화 혁신지표를 개발한다지만 그 정도로 될 일이 아니다.

 

美·英이 ‘원 인, 투 아웃’ 룰 폐지한 이유

결국, 규제 개혁의 관건은 이른바 ‘덩어리 규제’를 혁파하는 데 있다. 덩어리 규제란 여러 부처가 관련된 다양한 규제망을 말한다. 수도권과 교육, 노동, 중소기업 보호 규제 등이 대표적인 덩어리 규제다. 덩어리 규제는 규제로 파생된 기득권 집단이 많은 만큼 광범위한 이해가 전면적으로 충돌하는 경우가 많아 좀처럼 손대기 어렵다. 그러나 핵심적인 규제를 건드리지 않고 개혁의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올바른 규제 개혁은 이익집단의 저항 앞에서도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어야 가능하다. 정치적 의지가 중요한 건 물론이지만 의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실력이 필요하다. 규제도 혁신적이어야 한다. 규제라고 해서 무조건 없애기만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소비자를 보호하고 환경을 보전하며 인간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한 규제는 언제나 필요하다. 혁신적 규제는 효율적이어서 목표 달성에 기여하면서도 제도적인 안정성으로 산업의 경쟁력 제고에도 도움이 되는 규제다. 방향이나 의도만이 아니라 속도와 절차도 문제다. 규제 개혁 역시 실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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