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심 버리고 시청률 택한 《미운우리새끼》
  • 하재근 문화 평론가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3 15:00
  • 호수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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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단적 설정 예능으로 변질됐지만 인기 여전한 이유
과거 《패밀리가 떴다》 《나 혼자 산다》 등 실패 사례 유념해야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이하 《미우새》)가 7월10일 300회를 맞았다. 2016년 프로그램이 시작된 지 6년 만이다. 초기부터 돌풍을 일으켰는데 아직도 건재하다. 300회 2049 타깃 시청률은 5.1%로 2주 연속 주간 예능 1위에 올랐다. 순간 최고 시청률은 18.5%까지 치솟았다. 

7월17일 방송된 회차는 시청률 14.9%로 모든 일요 예능 프로그램을 통틀어 유일하게 두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했다. 2위 KBS 《1박2일》 9.8%, 3위 KBS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6.6%로 이 세 프로그램을 제외한 모든 일요 예능 프로그램이 5% 미만이었다. 이렇게 5% 이하 한 자릿수 시청률이 보편화된 시대에 꾸준히 두 자릿수 시청률을 올리는 《미우새》의 인기는 불가사의하다. 

언론에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초심을 잃었다’는 식의 비판이 자주 나온다. 이 프로그램이 더는 유지될 이유가 없다는 식의 기사가 최근에 포털 연예면 메인을 장식하기도 했다. 그렇게 비판받으면서도 왜 건재한 걸까?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 300회 한 장면ⓒSBS 제공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 300회 한 장면ⓒSBS 제공

언론에서 비판받는데도 시청률은 승승장구 

《미우새》는 처음에 늦은 나이가 되도록 결혼을 안 한 남자 연예인의 짠한 일상을 공유하면서 시작됐다. 관찰예능인데, 어머니들이 나온다는 차별성이 있었다. 관찰 대상 남자 연예인의 어머니가 스튜디오에서 아들의 일상을 지켜보는 설정이었다. 스튜디오에선 자식의 생활 모습을 보는 어머니들의 한숨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것이 재미와 공감을 동시에 줬다. 

시청자들은 일반적으로 평균 이하라고 여겨지는 존재에 재미를 많이 느낀다. 배삼룡, 심형래, 맹구가 인기를 끈 이유다. 어머니가 한숨을 쉬도록 만든 연예인도 뭔가 모자란 존재로 비쳤기 때문에 시청자에게 재미를 줬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한숨이 우리나라 많은 가정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일이기 때문에 공감도 느끼게 한 것이다. 홀로 사는 사람이 많아지는 사회 추세를 반영한 내용이기도 했다. 

이래서 《미우새》는 출범하자마자 돌풍을 일으켰다. 한때 시청률이 30%를 넘나들었고, ‘현존 최고 예능’이라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2018년 12월에 분당 시청률 32.2%를 찍었다. ‘2016 SBS 연예대상’에서 신동엽 대상, 올해의 예능 프로그램상, 방송작가상, 프로듀서상 등을 휩쓸었고, ‘2017 SBS 연예대상’에선 어머니들이 단체로 대상을 받기도 했다. 철부지 김건모와 박수홍, 궁셔리 이상민 등이 제2, 제3의 전성기를 맞았고, 승츠비 승리도 주목받았다. 공교롭게도 이들이 모두 나중에 풍파를 겪게 되는데 어쨌든 당시엔 화제의 중심이었다. 

이렇게 승승장구하던 프로그램에 2020년경부터 비판이 쏟아졌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초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그런 비판이 현재까지 이어진다. 처음엔 진솔한 내용으로 공감의 지점들이 있었는데, 이젠 그냥 유명 연예인들이 우르르 나오는 일반적 예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어머니도 대상자의 어머니가 아닌 그냥 고정 출연하는 어머니 패널이 스튜디오에 앉아 남의 아들을 지켜보는 구도가 됐다. 그래서 진정성과 인기가 떨어지고 존재의 이유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흔히 초심을 절대적 가치로 여기고, 언론에선 으레 ‘초심을 되찾으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초심은 절대적 가치가 아니다. 상황이 달라지면 초심도 버릴 수 있다. 중요한 건 초심이 아니라 ‘현재 그 프로그램이 무엇을 만들어내고 있는가’다. 

《미우새》는 요즘, 예능인들의 집단적 설정 예능으로 변질됐다. 방송 초엔 진정성을 느끼게 했지만 요즘은 설정, 조작의 느낌이 매우 강하다. 그렇게 변질된 결과, 인기를 유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초심대로 혼자 사는 남자의 짠한 일상만 계속 내보냈다면 이내 시청자들이 식상해했을 것이다. 《미우새》는 진정성을 지키는 대신 웃음을 선택했다. 이젠 거의 시트콤 같은 느낌이다. 

프로그램의 놀라운 점은 웃기는 데 성공했다는 부분이다. 웃기고 싶다고 누구나 웃길 수 있는 게 아니다. 《미우새》 제작진은 출연자 선정과 설정 세팅을 절묘하게 진행했다. 이렇게 빵빵 터뜨리는 프로그램이 드물다. 이 프로그램은 가히 예능 어벤져스를 모은 느낌이다. 이들이 모였을 때 나타나는 티키타카가 현존 예능 최고 수준이다. 웃기는 사람들을 모아 웃기는 상황을 잘 설정했다. 웃기니까 조작도 용서가 된다.

진실성을 중시하는 시청자들은 이미 이탈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미우새》 반장 선거로 출연자들이 열을 올린다는 식의 말도 안 되는 상황극을 웃으며 봐주는 사람들만 시청층으로 남았다. 예능은 원래 웃기는 방송이다. 하지만 요즘 예능은 리얼리티, 공감으로 흐르면서 안 웃겨졌다. 그런 상황에서 《미우새》가 웃기는 걸로 차별성을 보이자 두 자릿수 시청률이 나왔다. 아이러니하게도 초심에서 벗어나 프로그램의 동력을 유지한 셈이다.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 300회 한 장면ⓒSBS 제공
SBS 예능 《미운우리새끼》 300회 한 장면ⓒSBS 제공

설정의 선을 넘으면 위기 맞을 수도

하지만 리얼리티 관찰을 내세우면서 설정 방송을 하는 건 기본적으로 정당성이 떨어진다. 언제 대중 정서가 돌아설지 모른다. 논란의 담장 위를 걷는 상황이어서, 줄타기를 잘해야 한다. 

올해 초에 설정 방송 의혹에 대한 질타가 터진 적이 있었다. 김종민과 지상렬이 ‘동물의 왕은 사자 vs 호랑이’라는 주제로 《미우새》에서 입씨름을 벌였는데, 이 내용이 이말년 작가의 유튜브 영상과 유사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비판이 커지자 제작진이 해당 콘텐츠를 참조했다고 시인하며 사과했다. 

출연자의 방송 내용에 대해 제작진이 무언가를 참조했다고 사과하는 것 자체가 이 프로그램 내용이 순수한 관찰이 아니라는 걸 드러냈다. 말로는 관찰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제작진의 설정에 따라 방송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사실 설정이 아니고는 《미우새》의 황당한 내용들이 설명되지 않는다. 그래서 이미 많은 이가 설정이 있을 거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는데 ‘동물의 왕’ 입씨름 사건으로 그 일단이 드러난 것이다. 

지금까지의 성공에 도취한 제작진이 시청자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으로 설정의 선을 넘는다면 위기가 닥칠 수 있다. 과거 《패밀리가 떴다》가 과도한 설정 논란으로 타격을 받았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현재 절정의 합을 보여주는 출연진의 관계성이 무너져도 위기가 닥칠 수 있다. 《나 혼자 산다》도 출연진의 관계와 캐릭터 티키타카로 인기를 끌다 그것이 약화되자 전성기가 꺾였었다. 이러한 위험요인들은 있지만 어쨌든 현시점에선 《미우새》가 가장 웃기는 예능 중 하나다. 그것이 승승장구의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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