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전쟁을 끝낼 사람은 결국 푸틴이다” [조경환 기고]
  • 조경환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6 10:00
  • 호수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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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사태’ 러시아가 승기를 잡아간다는 시각이 대체적
가치 뒤에서 실리를 계산 중인 국제사회의 냉혹한 현실도

2007년 2월10일, 비효율의 병든 러시아를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에게서 물려받은 지 7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뮌헨 안보컨퍼런스에서 미국을 “일극 지배와 무제한적이고 과도한 힘의 사용자”로 칭했다. 미국이 주도하는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의 확장을 정면 비난했다. 서방은 놀랐다. 로버트 게이츠 당시 미국 국방장관은 “늙은 스파이들은 직설적으로 말한다”고 웃어넘긴 뒤 “에너지, 자원을 정치적 압력 수단으로 쓰는 것은 국제사회 안정에 역행한다”고 응수했다. 냉전 시대 라이벌인 KGB(소련 국가보안위원회)와 CIA(미국 중앙정보국) 출신들이 신냉전의 문턱에서 다시 맞붙은 셈이다.

옛 소련 제국의 부활이든, 2036년(84세)까지의 집권 야욕이든 ‘푸틴의 러시아’는 2월24일 우크라이나 침공을 감행했다. “해결되지 않은 역사의 내폭(內爆)”이 빚은 산물이라고도 한다. 러시아계 유대인인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의 용기와 리더십은 단기에 끝날 전쟁을 5개월 이상 끌어간다. 서방과의 대리전을 만들어냈다. 그런데 미국의 가용 수단은 경제제재와 배후 군사지원까지다. 

푸틴은 미군이 지난해 8월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할 때 미국의 한계를 간파했을 것이다. 러시아는 나폴레옹과도, 나치 독일과도 장기전에서 이긴 경험이 있다. 결국 러시아가 승기를 잡아간다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전쟁을 일으킬 때마다 국내에서는 인기다. 전장인 우크라이나의 젊은 병사와 약자는 스러져 간다. “4만명 가량 숨지고 1200만 명의 피란민이 생겼다”고 한다. 러시아의 전사자도 수만 명일 것이다. “이 전쟁을 끝낼 사람은 푸틴”이라는 말이 국제사회의 정설이 돼간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주 추후이프 주택가에서 현지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무너진 아파트 잔해 속에서 부상당한 친구의 서류를 찾고 있다.ⓒAP 연합·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주 추후이프 주택가에서 현지 주민들이 러시아군의 포격으로 무너진 아파트 잔해 속에서 부상당한 친구의 서류를 찾고 있다.ⓒAP 연합·연합뉴스

국제관계, 흑과 백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회색

신냉전의 전선은 선명한 듯 희미하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일관되게 추구해온 ‘민주주의 대 권위주의’의 국제질서 프레임을 완성해 가려 한다. 6월29일 나토 정상회의에서 유럽과 나토, 미국과 인도·태평양은 자유와 인권,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 유지라는 가치·규범으로 연대하고 확장한다. 러시아의 침공을 규탄하는 글로벌 컨센서스를 확인했다. 러시아와 1300km의 국경을 맞대고도 1948년 이후 74년 동안 군사 중립을 지켰던 핀란드, 1814년부터 두 차례 세계대전 와중에도 비동맹을 택했던 스웨덴이 나토에 가입한다.

푸틴은 그토록 포함되고 싶었고 경제적으로 긴밀했던 유럽과의 절연을 준비한다. 18세기 초 러시아 제국의 표트르 대제가 유럽을 동경해 유럽을 옮겨놓은 신도시인 상트페테르부르크. 이곳이 고향인 푸틴이기에 아이러니하다. 그는 새 국제질서를 도모한다. 중국이 기계와 장비, 기술을 가지고 대(對)러시아 교역을 선도한다. 독일을 대체한다. 인도는 전통적인 러시아 무기 수입국이다. 사우디아라비아와 UAE는 주요 산유국 협의체에서 러시아의 협력 파트너다. 이란도 러시아 대열에서 빼놓을 수 없다. 푸틴은 6월22일 브라질·인도·중국·남아공 등 브릭스(BRICS) 회원국들에 서방을 뺀 ‘자급자족의 독자경제권’을 제안했다.

국제관계는 흑과 백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회색이다. 가치·규범 뒤에서 경제와 안보에 기초해 실리를 따진다. 미국의 인지적 동맹인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규탄하지만, 러시아를 거명하진 않는다. 대러 제재에도 동참하지 않는다. 우크라이나의 부상병 치료 및 로켓 요격체계인 ‘아이언돔(Iron Dome)’을 비롯한 방어용 무기·장비 요청도 거부한다. 시리아와 이란의 위협에 따른 군사안보적 이해 때문에 조심한다. 나토의 일원인 튀르키예(터키)는 미·러의 경계선을 오간다. 인도는 미국 주도의 반중(反中) 클럽인 ‘쿼드(QUAD)’ 멤버이면서도 유엔의 2월25일 안보리와 3월2일 긴급특별총회의 러시아 규탄 결의안에 모두 기권했다. 인도는 중국 등과 함께 러시아산 원유를 할인가로 수입하고 있다. 

바이든의 ‘중산층을 위한 외교’ 역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외쳤던 “미국 우선”의 연장선 위에 있다. 경제를 성장시킬 실리가 외교의 중심에 있다. 바이든은 5월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자유 등 핵심 가치 토대의 포괄적 전략동맹을 공고히” 하고서 삼성전자와 현대차의 투자의향을 얻어냈다. 7월15일 중동 순방길에 사우디 실권자인 모함메드 빈 살만 왕세자와 회담했다.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 살해 배후로 지목해 모함메드 빈 살만을 배척했던 바이든이다. 유가 안정과 이란 견제 등 정치적 필요는 반인권과의 타협도 감수한다. 모함메드 빈 살만 왕세자는 ‘2030 리야드세계박람회’ 유치에 전념하며 부산과 경합하고 있어 신경이 더 쓰이는 대목이다. 

ⓒAP 연합·연합뉴스
 미사일 공격을 받은 현장에서 우크라이나 소방대원과 구조대원들이 수색하고 있다.ⓒAP 연합·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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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사일 공격을 받은 현장에서 우크라이나 소방대원과 구조대원들이 수색하고 있다.ⓒAP 연합·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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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월14일 우크라이나 비니치아에서 러시아 미사일 공격이 있은 후 아기 유모차가 도로에 부서져 있다.ⓒAP 연합·연합뉴스

경제안보가 최우선…글로벌 불균형 불가피

5월22~26일 ‘세계경제포럼’은 탈세계화와 탈동조화를 주요 의제로 다뤘다. 30년간의 세계화는 끝났다고 결론 냈다. 상호의존성을 무기화한 후과다. 세계화와 자유무역주의 덕에 성장한 중·러가 국제질서를 교란한 반작용이다. 세계화가 모든 국가에 부(富)를 줄 것이라는 믿음은 깨졌다. 각자도생이다. 공급망의 효율보다 안전과 안정이다. 상호의존성은 이제 뜻이 맞는 국가 간 국제분업 체제로 재정렬된다. 경제안보가 최우선이다. 글로벌 불균형 확대와 인플레는 불가피해졌다.

영국 이코노미스트지의 2021년도 ‘민주화지수’는 첫 발표 해인 2006년 이래 가장 낮다. 167개국 중에서 민주주의 국가는 74개국(44.3%)이고 비민주주의 국가는 93개국이다. 세계 80억 인구의 54.3%가 비민주 국가에서 산다. 한국은 일본을 한발 앞서 16위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군에 속한다. 

한국이 세계 10위권 경제력에 걸맞게 가치 중추국을 지향함은 옳다. 한미 동맹을 기반으로 서방과 함께하는 전략적 명료성은 대중·대러 및 대북관계에 큰 레버리지다. 이제는 실리다. 그게 실력이다. 그래야 가치가 지속성을 지닌다. 미·중·일·러에 둘러싸이고, 고도화 일로인 ‘김정은의 핵’을 마주한 한국에는 외교적 지혜가 숙명이다.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조경환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

■조경환은 누구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가정보원 고위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 박사다.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거쳐 현재 강원연구원 초빙연구위원, 통일연구원 초청연구위원으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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