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키운 선수 하나 열 광고 안 부럽다
  • 이석 기자 (ls@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3 12:00
  • 호수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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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마케팅 통해 브랜드 이미지와 매출 ‘두 마리 토끼’ 잡는다

#박세리는 1998년 7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 메이저대회인 US오픈에 출전해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했다. 해저드에 빠진 공을 치기 위해 양말을 벗고 연못에 들어간 것이다. 어렵게 해저드 탈출에 성공했고, 박세리는 처음으로 메이저대회 우승을 거머쥐었다. 당시 한국은 IMF 관리체제에 있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기였다. 박세리의 맨발 투혼은 외환위기로 신음하던 국민에게 많은 위로와 희망을 던져줬다.

롯데 자이언츠는 창단 40주년을 맞아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 통천 언베일링 행사를 진행했다. ⓒ롯데자이언츠 제공
롯데 자이언츠는 창단 40주년을 맞아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 통천 언베일링 행사를 진행했다.ⓒ롯데자이언츠 제공

박세리의 성공이 재계에 던진 화두

박세리는 전 세계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고된 훈련 과정과 힘들었던 미국 생활이 뒤늦게 공개되면서 감동 스토리가 만들어졌다. 박세리의 후원사였던 삼성 역시 덩달아 주목을 받았다. 박세리가 US오픈에서 우승하면서 삼성이 얻은 광고 효과만 1억7000만 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평가된다. 삼성의 가전이나 IT 제품 등 상품 판매에 미친 영향까지 감안하면 스포츠 마케팅 효과는 아무리 적게 잡아도 몇 배 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 코로나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5월의 일이다. 전염병 확산으로 미국 메이저리그를 포함한 모든 스포츠 경기가 중단됐다. 미국 ESPN은 한국프로야구(KBO)의 중계권을 딴 후 미국 전역에 생중계했다. 스포츠 팬들의 갈증이 컸던 만큼, 한국 특유의 야구 문화인 ‘빠던’(배트플립) 세리머니가 미국 야구팬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 야구팬들의 이목을 끈 인물이 있다. 바로 개그맨 김준현이다. 어린이날 대구 삼성라이온즈파크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NC 다이노스의 개막전 경기가 발단이었다. 외야 방향으로 공이 갈 때마다 펜스에 설치돼 있던 ‘피자 광고판’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 익살스러운 표정으로 피자를 들고 있는 김준현의 모습이었다. 김준현은 당시 미국 야구팬 사이에서 ‘피자 가이’ 혹은 ‘피자맨’으로 불리며 큰 궁금증을 자아냈다. 김준현을 모델로 썼던 ‘피자헤븐’ 역시 브랜드 이미지뿐 아니라 매출 상승에도 상당한 효과를 본 것으로 전해진다.

재계가 최근 스포츠 마케팅에 적극 나서는 이유다. 단순한 상품 광고는 이제 더 이상 고객에게 감흥을 주지 못한다. ‘각본 없는 드라마’로 통하는 스포츠는 얘기가 다르다. 경기에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의 모습은 대중에게 많은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기업이 유명 스포츠 선수나 구단을 후원하면서 브랜드 이미지를 끌어올리는 전략은 이제 선택이 아니라 마케팅의 필수 코스가 됐다.

유통업계 맞수인 신세계와 롯데가 우선 주목된다.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초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를 인수했다. 3월 창단식에 구단주 자격으로 참석한 정용진 부회장은 “야구에 열정적이면 본업인 유통과 연결시켜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SSG 랜더스의 도전에 든든한 조력자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신세계그룹은 SSG 랜더스 창단 이후 공격적인 투자를 이어오고 있다. 올해 1월 2군 경기장인 SSG퓨처스필드 실내연습장에 5억원 규모의 공조 시스템을 구축했다. 3월에는 40억원을 들여 SSG랜더스필드 클럽하우스와 덕아웃의 전면 리모델링을 단행했다. 단순히 시설에만 투자한 것이 아니다. 지난해 창단과 함께 메이저리거인 추신수와 김광현 등을 잇달아 영입했다. 올해 SSG 랜더스의 평균 연봉은 프로야구 10개 구단 중 가장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선수와 시설에 대한 투자는 성적으로 이어졌다. SSG 랜더스는 올 시즌 압도적인 1위를 이어가고 있다. 홈경기 평균 관중 수는 8412명으로 평년 대비 62%나 증가했다. 팬들의 관심은 자연스럽게 신세계 계열사의 매출로 이어졌다. 이마트는 지난 4월 SSG랜더스필드에 140여 종의 상품을 판매하는 SSG랜더스 굿즈숍을 오픈했는데 반응이 폭발적이다. 굿즈 매출이 4~5월 두 달 만에 2019년 연간 매출을 넘어섰다. 여기에 고무된 신세계는 현재 굿즈 판매처를 이마트의 전국 점포로 확대 중이다.

이마트 왕십리점에 꾸며진 스타워즈 행사장에서 모델들이 관련 상품을 홍보하는 모습(위 사진), 2022 랜더스데이 행사를 맞아 스타필드 고양 미디 어타워에서 모델들이 기념촬을 하고 있는 모습ⓒ롯데자이언츠·이마트 제공
이마트 왕십리점에 꾸며진 스타워즈 행사장에서 모델들이 관련 상품을 홍보하는 모습(위 사진), 2022 랜더스데이 행사를 맞아 스타필드 고양 미디 어타워에서 모델들이 기념촬을 하고 있는 모습ⓒ롯데자이언츠·이마트 제공

신세계와 롯데의 장외 경기 주목

많은 관중이 경기장을 찾으면서 F&B (Food&Beverage) 매출도 증가하고 있다. 올해 SSG랜더스필드 F&B 월평균 매출은 2019년 대비 67%, 2018년 대비 2배나 증가했다. 신세계푸드가 운영하는 노브랜드 버거 SSG랜더스필드점의 판매량도 홈런 행진 중이다. 일평균 판매량은 1500개로 지난해 하루 최대 판매량 500개 대비 3배 이상 증가했다. 김광현 선수의 KBO 복귀전이 열렸던 4월9일과 정용진 구단주가 시구를 했던 4월16일 판매량은 2000개를 넘어서기도 했다.

물론 신세계 측은 팬덤을 단순히 계열사 매출로 연결 짓는 것에 대해 조심스러워 하는 반응이다. 그룹 관계자는 “야구 산업에 대한 투자는 단순히 그룹의 유통사업과 랜더스 야구의 연결 수준을 넘어선다”면서 “대한민국 야구판 전체를 키우고자 하는 노력으로 팬들에게 다가서고 있다”고 말했다.

롯데 자이언츠가 올해 창단 40주년을 맞는 만큼 롯데그룹도 다양한 스포츠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롯데컬처웍스는 5월7일 ‘KBO리그 40주년 클래식 매치 CINEMA VIEWING PARTY’를 개최했다. ‘삼성 라이온즈 vs 롯데 자이언츠’ 경기와 ‘KIA 타이거즈 vs 한화 이글스’ 경기를 대형 스크린과 첨단 사운드가 있는 롯데시네마에서 상영한 것이다. 롯데그룹의 한 관계자는 “각 상영관 앞에는 KBO 아카이브센터에서 보유 중인 롯데 최동원 유니폼과 해태 선동열 유니폼 등을 전시해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면서 “특히 삼성-롯데 경기가 상영되는 월드타워 8관에서는 삼성과 롯데 치어리더들이 합동 응원공연을 펼쳐 경기장의 현장감을 더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롯데그룹의 스포츠 마케팅 전략은 신세계와는 결이 조금 다르다. 롯데는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으로 평가받는 사직야구장과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등을 활용해 2030 부산세계박람회 유치 활동을 우회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롯데 자이언츠가 7월13일 개최한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 ‘플라이 투 월드 엑스포’가 대표적이다. 이날 롯데 자이언츠 선수단은 부산시를 상징하는 동백유니폼에 부산 엑스포 유치 기원 패치를 부착하고 경기에 나섰다. 사직야구장 안팎에도 엑스포 유치를 기원하는 LED 조명을 유치 성공 때까지 밝힐 예정이다.

CJ그룹의 경우 상대적으로 인기가 낮은 비인기 종목이나 남자 골프 시장에 눈을 돌리고 있다. 국내 유일의 LPGA 및 PGA투어 개최뿐 아니라 국내 최초 프로 레이싱대회 창설, 대한스키협회 최초 전 종목 후원사 등이 CJ그룹의 스포츠 마케팅에 붙는 수식어이기도 하다.

CJ그룹은 골프 유망주 발굴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2001년 이선화 선수를 시작으로 박세리, 박희정, 배경은 등 국내 정상급 여자 선수들을 후원하며 스포츠 마케팅을 시작했다. 현재는 PGA투어에서 활동하는 대다수 선수를 후원하면서 유망주를 발굴해 세계 정상급 선수로 육성하는 작업도 병행 중이다. PGA투어 2승의 김시우, 아시아 최초 PGA투어 신인상 수상자인 임성제 등이 그 결과물이다. 지난해부터는 대한민국 수영의 미래로 불리는 황선우(서울체고)와 테니스의 정윤성, 이은지 등도 후원하고 있다. 이들을 통해 CJ 브랜드가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CJ그룹은 2024년 파리올림픽 정식종목으로 채택된 브레이킹을 후원하며 하나의 문화로 만들어가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기업은 젊은이들의 꿈지기가 돼야 한다’는 이재현 회장의 경영철학에서 꿈지기 역할이 시작됐다”면서 “특히 브레이킹 종목은 스포츠를 넘어 또 하나의 문화 콘텐츠로 확대해 나가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 중이다”고 말했다.  

ⓒCJ·NH농협은행·롯데 제
2021 The CJ CUP 경기 모습ⓒCJ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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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H농협은행 소프트테니스팀 단체사진ⓒNH농협은행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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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금융그룹은 하나금융스포츠단을 통해 그룹의 스포츠 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롯데 제공

금융권도 스포츠에 빠지다

손흥민·김연아 등 일찍 발굴해 홍보 효과 ‘톡톡’

이제 금리나 이자 혜택이 전부인 시대는 지났다. 금융권 역시 고객의 선택을 받기 위해서는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한다. 그 대안으로 꼽히는 것이 스포츠 마케팅이다. 하나금융그룹은 최근 ‘손흥민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하나금융그룹은 현재 하나금융스포츠단을 통해 그룹의 스포츠 사업 전반을 총괄하고 있다. 하나금융스포츠단은 2018년부터 손흥민을 광고 모델로 발탁했다. 잠재력 있는 선수를 발굴하는 스포츠단의 전략은 적중했다. 손흥민은 2019년 아시아 베스트 풋볼러에 선정됐다. 2020년에는 국제축구연맹 푸스카스상(올해의 골), 올해는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에 올랐다.

손흥민 선수의 인기가 올라갈수록 하나금융의 마케팅 효과도 커졌다. 손흥민이 출연하는 ‘함께가 힘이다, 하나가 힘이다’ 유튜브 영상은 공개 한 달 만에 1000만 조회 수를 돌파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하나금융은 지난 6월 축구 국가대표팀 간 친선경기를 주도해 개최했다.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 이집트와의 친선경기 4연전이다. 예매를 진행한 자체 뱅킹 앱 하나원큐의 하루 이용자 수와 설치 건수 역시 크게 늘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KB금융은 2006년부터 김연아 선수를 후원하고 있다. 김연아가 세계적으로 두각을 보이기 전이었다. KB의 우산 속에서 김연아는 꾸준히 성장했고,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금메달,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은메달 등을 수상했다. 김연아 효과로 KB국민은행이 2014년 출시한 KB트리플빙상여제정기예금은 7영업일 만에 3000억원 한도를 전액 소진했다.

신한은행은 2018년부터 3년간 240억원 규모의 한국야구위원회(KBO) 스폰서 계약을 체결했다. 야구 마케팅의 효과로 모바일 앱인 쏠(SOL)의 접속자 수는 3배가량 증가했다. KBO 예·적금 상품 계좌 수도 같은 기간 9.4% 늘어났다. 신한은행은 2021년 KBO와 계약을 1년 더 연장했다. 

NH농협은행은 생활체육 중심의 스포츠 마케팅에 집중하고 있다. 현재 여자 소프트테니스(옛 정구)와 여자 테니스, 그린포스 당구팀 등을 운영하고 있다. 지난 6월 경북 경주 블루원리조트에서 열린 프로당구 2022~23 시즌 개막전 ‘경주 블루원리조트 PBA-LPBA 챔피언십’ PBA 결승전에서 스페인의 다비드 사파타를 꺾고 우승한 조재호 선수 역시 NH농협카드 소속이다. 아울러 스포츠 재능기부나 생활체육대회 등을 통해 스포츠 저변 확대에도 공을 들이고 있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NH농협은행 스포츠 마케팅의 모태는 1959년 창단한 소프트테니스팀이다”면서 “이후 60년 넘게 팀을 운영해 왔으며 비인기 종목의 유소년 선수 후원으로 스포츠 인재 육성에도 앞장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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