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로에서] ‘과학방역’의 실력을 보여 달라
  • 김재태 편집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5 08:00
  • 호수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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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나설 때면 아무런 망설임 없이 마스크부터 챙긴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가 해제된 지 80여 일이 지났지만 길 위에서도 이 습관은 여전하다. 요즘처럼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계절에 마스크는 숨 막힐 듯 답답하다. 그런데도 이렇게까지 알뜰하게 마스크를 챙겨 쓰는 이유는 간단하다. 여태까지 크로나19에 감염되지 않고 잘 버텨 왔는데 이제 와 무력하게 주저앉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서다.

그렇게 답답함을 잘 참으며 견뎌왔다고 여겼는데, 최근 흐름은 마스크 속보다 더 답답하기만 하다.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서다. 재유행이 올 것이라던 전문가들의 예측은 틀리지 않았다. 7월 들어 크게 늘어난 확진자 수도 그렇지만, 더 걱정스러운 것은 감염재생산지수에 따른 두려움이다. 감염재생산지수는 이미 1.40을 돌파했다. 이 수치가 1보다 높으면 감염 유행이 확산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

7만3582명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발생, 83일 만에 최다를 기록한 19일 오전 서울 송파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7만3582명의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발생, 83일 만에 최다를 기록한 19일 오전 서울 송파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검사를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상황이 이렇듯 급변했는데 정부의 대처는 어떠한가. 아무리 들여다봐도 별다른 변화가 없다. 지난 7월13일에 내놓은 ‘코로나19 재유행 대비 방역·의료 대응 방안’에도 특별한 조치가 보이지 않았다. 고위험군 보호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내용 외에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거리 두기 지침도 마찬가지다. 국민참여형 거리 두기를 하되 ‘치명률이 높아질 경우’ 선별적 거리 두기를 도입하겠다고만 밝혔을 뿐이다. 정부가 선제적으로 나서기보다는 국민 각자의 ‘자율’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뜻이다. 그러면서 코로나19 격리생활 지원금 지급 대상은 축소했다. 이제 우리 국민은 코로나19 전선에서 또다시 각자도생의 길로 내몰려 있는 셈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대선 기간에 문재인 정부의 ‘위드코로나’ 방역 지침을 비판하며 “과학에 근거하지 않고 말로 하는 방역은 전부 탁상공론”이라며 ‘정치방역’이 아닌 ‘과학방역’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었다.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나서서 “문재인 정부의 방역 정책은 정치방역으로, 원래 방역은 사실에 근거한 과학적 해결 방법을 동원한 과학방역이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그토록 ‘과학방역’을 방역 정책의 핵심으로 내세웠던 윤석열 정부가, 앞서 언급한 ‘밋밋한’ 방역 지침을 내놓으며 ‘과학’이 아닌 ‘자율’을 더 강조하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의아하다는 반응과 비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누리꾼들 사이에서는 “정치방역 말고 과학방역 노래를 부르더니 고작 백신 맞으라고?” “과학방역=치료비 부담시키기” 같은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전파력이 더 강하다는 일명 ‘켄타우로스’ 바이러스까지 국내에 침투해 있는 상황에서 코로나19의 위협은 바로 코앞에 닥쳐 있는 위기다. 그런데도 방역 정책은 여전히 느슨하고 방역 실무를 지휘해야 할 보건복지부 장관은 두 번의 낙마 끝에 여전히 공석인 상태다. 이런 시기일수록 컨트롤타워의 기능을 더욱 단단히 세우고, ‘말로만 과학’이 아닌 진짜 과학방역 체계를 확고히 세워야 할 텐데 염려되는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본격적인 여름휴가철은 이미 다가와 있고, 전문가들이 말하는 진짜 방역 위기는 아직 오지도 않았다. 지금이야말로 정부가 그토록 큰소리쳤던 과학방역의 실체를 확실하게 드러내 실력을 발휘해야만 할 때다. 이전 정부의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것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만의 차별화된 강점을 보여 달라는 얘기다. 가뜩이나 힘든 3고(고물가·고금리·고환율)에 고(高)확진까지 겹치면 그야말로 최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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