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부터 ‘경기 침체’ 직감한 기업들…현금 보유 예년보다 늘려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6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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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기업 중 7곳, 지난 1분기보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 늘려…‘비상경영’ 돌입한 재계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서울 서초구 삼성 서초 사옥의 모습 ⓒ연합뉴스

물가가 상승하고 경기가 침체하는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대기업들은 이미 이를 감지하고 위기 대응을 위해 ‘곳간’을 채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년에 비해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늘어난 것이다. 이에 대해 위기 상황을 예견해 현금을 비축하는 동시에 또 다른 투자 기회를 타진하는 경영 활동의 한 수단이라는 것이 전문가의 분석이다.

 

SK하이닉스, 현금성 자산 123% 늘어…삼성전자는 49조원 육박

관련업계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매출 상위 10개 대기업 중 2021년 1분기 대비 2022년 1분기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늘린 곳은 총 7곳이다.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가장 많이 늘린 곳은 SK하이닉스다. SK하이닉스의 지난 3월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4조983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23% 늘었다. LG화학은 78% 늘어난 9조520억원을, 현대자동차는 28% 늘어난 14조1510억원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규모만 따져보면 삼성전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가장 많다. 지난해 3월 기준 41조390억원을 보유했던 삼성전자는 올해 3월 48조9450억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약 19%의 증가율이다.

충북 청주 SK하이닉스 M15 공장 전경 ⓒSK하이닉스
충북 청주 SK하이닉스 M15 공장 전경 ⓒSK하이닉스

1분기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이 줄어든 곳은 한화, LG전자, SK이노베이션이었다. 한화는 예년보다 19% 줄어든 4조원을, LG전자는 10% 감소한 5조6190억원의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7% 줄어든 4조3550억원을 갖고 있다.

통상 기업들이 현금을 늘리는 이유는 경기 전망을 보수적으로 보고 이에 대한 대응 전략 차원으로 볼 수 있다. 동시에 투자 차원에서의 현금 비축으로도 해석할 수 있다.

유정주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제도팀장은 “기업마다 산업과 업황이 달라 단순 비교할 수 없다”면서도 “기본적으로 경기 전망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밝혔다. 매출 상위 10개 기업 가운데 7곳이 현금성 자산을 늘렸다는 것은 그만큼 예년보다 올해의 경기 상황이 좋지 않다고 판단하고 취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유 팀장은 그러면서도 “경기가 좋지 않은 상황 속에서도 인수합병(M&A) 등 대규모 투자를 통해 돌파구를 모색하는 차원에서 현금을 모으는 경우도 있다”며 “대규모 장치 산업을 영위하는 SK하이닉스와 LG화학의 현금성 자산을 늘어난 경우는 투자를 위해 현금성 자산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4대 그룹은 이미 ‘비상경영’…“위기와 기회 혼재된 기업의 숙명”

현금성 자산을 늘리는 것에서 더 나아가 재계는 지금 비상경영에 돌입한 상황이다. 삼성그룹은 지난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1박 12일의 유럽 출장을 마치고 난 직후인 20일 계열사 사장단 25명이 참석해 7시간 동안 마라톤 회의를 열어 사업 부문별 리스크 요인을 점검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했다. LG그룹은 지난달 23일 구광모 회장 주재로 상반기 사업보고회를 열었고, SK그룹도 지난달 17일 최고 경영진들이 모인 ‘확대경영회의’를 개최했다. 현대차·기아는 지난 22일 글로벌 권역본부장회의를 소집했다.

최근에는 포스코그룹이 최정우 회장 주재로 사장단 및 전 임원이 참석한 가운데 ‘그룹경영회의’를 개최한 가운데 국책은행인 산업은행도 ‘KDB 비상경제대응체제’를 선포하기도 했다.

유정주 팀장은 “연말까지 예고된 미국의 금리인상으로 인한 경기 위축과 함께 원자재 가격 상승, 고환율 등의 이유로 기업들이 올 하반기 경영 환경을 부정적으로 보고 있다”며 “늘 그렇듯 기업은 위기와 기회가 혼재된 상황에서 헤쳐 나갈 수밖에 없다”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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