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림보 열차’ 경전선 전철화사업 두고 논란 가중
  • 정성환·박칠석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7.27 1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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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2월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90년 만에 고속화 개량
순천 도심 통과 노선 두고 갑론을박…순천시-국토부·전남도 ‘갈등’
순천시 “외곽 우회 노선 추진해야” vs 국토부 “사업 무산 우려”

“오늘 전남도를 방문해 김영록 지사님과 순천 현안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잘 되다가 경전선을 외곽으로 우회하는 논의에 이르러 배석한 정무부지사와 언쟁이 있었습니다. 부지사는 기재부에서 이 문제를 다뤘던 사람이더군요.” 노관규 전남 순천시장이 19일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이다. 화를 삭이지 못했는지 노 시장은 다음날 페이스북에 적은 글에서 “순천의 희생 위에 이 사업을 밀고 나가려는 부지사는 우주 화성의 부지사냐 경남부지사냐”며 “경전선 고속화사업은 어느 자치단체의 희생 위에 진행되어선 안 된다”고 날을 세웠다. 

광주역에서 순천을 거쳐 부산 부전역까지 연결하는 경전선. 하루에 한 번 운행되는 목포~부산 간 무궁화호는 총 42개역, 388㎞를 무려 6시간33분간 달린다. 목포에서 출발해 광주 송정리역까지 한 시간 만에 주파한다. 하지만 광주 송정역에서 출발한 무궁화호는 서광주역~화순역~보성역~벌교역을 경유해 순천까지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이 구간이 바로 ‘느림보 열차 구간’이다. 89년이 지난 지금도 단선 비전철 굴곡 노후선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다. 화순군 앵남면 철도건널목 부근 경전선 철도 ⓒ시사저널 정성환
광주역에서 순천을 거쳐 부산 부전역까지 연결하는 경전선 무궁화호는 총 42개역, 388㎞를 무려 6시간33분간 달리면서 ‘느림보 열차’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사진은 화순군 앵남면 철도건널목 부근 경전선 철도 ⓒ시사저널 정성환

전남도 부지사-순천시장 “무례하다” 언쟁 배경

이렇듯 최근 노관규 전남 순천시장과 전남도 정무부지사가 언쟁을 벌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경전선 전철화 순천 도심통과 논란이 커지고 있다. 노 시장은 지난 19일 도청에서 김영록 지사에 경전선 도심우회에 공동대응해 줄 것을 요청했으며 배석한 기획재정부 출신 박창환 정무부지사가 부정적으로 반응하자 “무례하다”며 고성을 지르는 등 언쟁을 벌였다. 노 시장은 연 이틀 이런 사실을 페이스북에서 소개하며 불편한 심기를 여과 없이 드러냈다. ‘고졸 검사’ 출신 노관규(62) 순천시장과 ‘행정관료’ 출신 박창환(50) 전남도 정무부지사는 띠 동갑이기도 하다. 박 부지사는 기재부 예산총괄과장이었던 올해 1월 전남도 정무부지사로 부임했다.

두 사람 사이에 오간 설전에서 현재 경전선 전철화 사업 순천 도심 통과를 둘러싼 전남도(국토교통부)와 순천시 간 뚜렷한 입장 차가 읽힌다. 국토부와 전남도는 노선 변경의 경우 총사업비 증가에 따른 예비타당성 재조사로 인해 사업 무산마저 우려된다며 오는 2029년까지 사업을 마무리 짓기 위해선 원안대로 추진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반면에 순천시는 경전선의 5㎞ 도심 통과에 따라 도시발전 저해는 물론 안전사고, 소음 발생 등이 우려되므로 다소 늦어지더라도 외곽으로 우회하는 노선 변경이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느림보 열차 경전선이 100여 년만에 겨우 ‘속도’를 따라 붙을 기회를 잡았으나 ‘갈 길’에서 헤매는 형국이다.  

 

국토부, 도심통과 노선 기본계획 발표하자 순천시 ‘반발’

실제로 광주역에서 순천을 거쳐 부산 부전역까지 연결하는 경전선. 하루에 한 번 운행되는 목포~부산 간 무궁화호는 총 42개역, 388㎞를 무려 6시간33분간 달린다. 목포에서 출발해 광주 송정리역까지는 한 시간 만에 주파한다. 하지만 송정역에서 출발한 무궁화호는 서광주역~화순역~보성역~벌교역을 경유해 순천까지 2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이 구간이 바로 ‘느림보 열차 구간’이다. 90년이 넘은 지금도 단선 비전철 굴곡 노후선로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서다. 전국적으로도 구간 길이 200㎞ 이상 4대 간선철도(경부·호남·중앙·경전선) 중에서 비전철 구간으로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다. 그동안 경제성 논리에 막혀 개량화 사업이 수십년째 진척을 보이지 못하면서 호남 소외의 상징이 됐다. 

그러던 차에 2019년 12월19일, 영·호남 주민들의 오랜 염원이었던 경전선 전철화를 위한 마지막 퍼즐이 마침내 맞춰졌다. 경전선 광주 송정~순천 구간 전철화 사업이 ‘예비타당성’ 재조사를 통과한 것이다. 경전선 전철화 사업은 1930년 건설 이후 90년이 넘도록 한 번도 개량되지 않았던 광주~순천 구간 122.2㎞를 단선 전철화 하는 사업이다. 총사업비는 1조7703억원으로 전액 국비가 투입된다.

이 사업은 남해안 철도인 경전선 구간의 마지막 개량사업으로 사업이 시행되면 광주와 목포에서 부산까지 준고속 철도망이 완성되는 남해안 고속철도망의 핵심 사업이다. 고속전철이 개통되면 광주송정~순천 44분, 기존 5시간 이상 걸렸던 부산까지는 2시간대로 단축된다. 이동 시간이 2시간 대로 단축되면서 영호남 교류, 지역 간 균형을 꾀할 것으로 기대된다.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이후 국토부는 지난 3월 보성~순천 구간 노선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전남권과 경남권 지역 주민들이 거는 기대는 컸다. 그러나 오래가지 못하고 순천 지역사회의 반발이 큰 상황이다. 정부가 당시 경전선 전철화사업 예비타당성 재조사에서 경제성을 이유로 순천시 구간은 기존 노선을 활용하는 것으로 통과시킨 것으로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가 철도망 구축계획도 ⓒ순천시
국가 철도망 구축계획도 ⓒ순천시

순천시 “30분에 한 대꼴로 도심통과 교통체증·소음 시달려”

국토부 계획대로 기존 노선을 활용해 철도가 도심을 가로지르면 철도 운행횟수 증가, 소음과 진동, 고압전철 구조물 설치 등 여러 사유로 인해 철도망 영향권에 있는 시민 생활에 적지 않은 피해가 우려된다. 우선 순천시내 평면교차로 10곳에서 기존 하루 6회에서 46회로 열차 운행횟수가 증가해 30분에 한 대 이상 고속열차가 도심을 관통한다. 현재보다 7배 이상 운행이 증가하는 셈이다. 또 7m의 고압 구조물이 설치돼 도심경관을 훼손하게 된다. 이에 따라 별량면, 도사동, 남제동, 장천동 등 철도 인접 지역에 거주하는 주민의 철도 분진과 소음 피해는 물론 교통정체와 교통사고 등의 위험성도 높아지게 된다.

시민들은 타 지역과의 형평성 측면에도 잔뜩 화가 났다. 국토교통부는 수도권에서는 GTX건설 계획과 SRT를 개통하면서 도심부는 물론 농림지역도 지중화선로를 기본으로 하고 있다. 하지만 순천시 도심 통과 구간은 5㎞ 이상 해당된다. 더구나 이미 전철화가 이뤄진 순천과 이웃한 중소도시인 남원이나 광양, 진주시는 전철화 이후 도심부를 관통하는 노선이 외곽으로 이설되고 도심부에 남겨진 선로나 역사는 시민문화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순천 도심 지역만 이들 도시들과 큰 차이를 보여 시민들이 분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순천시를 관통하는 전라선과 경전선은 무려 100년 전 건설된 느림보 철도로 도심을 3등분으로 단절시켜 도시 발전을 크게 저해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노관규 순천시장은 “1930년 건설 이후 100년 만에 추진하는 사업이고, 조 단위의 사업비가 투입된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는 사업인 만큼 장기적 관점에서 순천의 발전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 수십회 고속으로 시내 중심을 관통하며 온갖 문제를 야기할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도시계획을 세워 도시발전을 할 수 있겠느냐”며 “시민의 뜻을 모아, 정부와 여당, 전남도 등 관계기관과 적극 협력해 경전선이 도심 우회 노선으로 추진될 수 있도록 모든 행정력을 집중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초 도심 구간 2.9㎞의 지중화를 대안으로 제시한 순천시는 최근 우회 노선을 검토해달라며 추가 건의했다. 순천시 안은 벌교역에서부터 시 외곽으로 우회해 서면 전라선으로 연결되는 노선이다. 순천시는 대안이 반영되면 국가정원과 원도심을 잇는 녹지축 조성계획을 마련한다는 구상이다. 

장창영 순천시 도로시설과장은 “다시 예비타당성 조사를 실시해서 사업추진 기간이 지연되더라도 순천시 안인 우회노선으로 정부에 다각적인 방법으로 설득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장 과장은 “철도 노선을 시 외곽으로 변경한다면 예상되는 피해는 물론 기존의 도심 소음, 교통사고, 교통체증 등 여러 불편 사항까지도 해소할 수 있다”며 “도심을 가르던 기존 철도 노선은 도심 속 정원, 도로, 주차장 등 도시 기반시설로 활용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도심 우회노선 ‘총사업비 15%’ 초과…국토부 “별도사업 검토, 지자체 몫” 

하지만 노선을 변경할 경우 ‘사업 무산’ 우려가 나온다. 사업비가 늘어나는 것은 물론, 조기 착공도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두 차례의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비용 대비 편익(BC) 수치와 종합평가(AHP) 결과로 사업 추진이 결정된 만큼, 예산 1조7000억원의 15%를 초과하면 예비타당성 조사를 다시 진행해야 해 BC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국토부의 설명이다. 순천시가 지난해 말 실시한 자체 용역에서도 우회노선(안)의 경우 사업비가 2584억원이 증가해 경제성(B/C)이 0.37로 원안 0.88보다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순천 도심을 통과하는 경전선 열차 ⓒ순천시
순천 도심을 통과하는 경전선 열차 ⓒ순천시

국토부는 기존 노선을 활용하는 원안대로 추진한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국토부 관계자는 26일 시사저널과의 전화통화에서 “순천역을 벗어나는 것은 상위계획에 부합되지 않기 때문에 차기 국가철도망계획에 들어가야 하는 부분이다”며 “기준점이 달라지면 예비타당성 검사를 다시 해야 하고 사업비가 너무 늘어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예타와 똑같은 과정을 거치면 경제성이 안 나와 사업이 무산될 가능성도 있어 원안을 계획을 한 것”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예비타당성 조사가 4년 만에 어렵게 통과된 만큼 소음 피해 등 순천시의 우려는 실시설계 단계 등에서 보완하고, 가급적 예비타당성 재조사로 안 가는 방향으로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노선 지중화에 따른 추가 건설 비용이 3500억~5000억 원 정도가 소요되며 우회 노선을 건설하는 데는 7000억 원 정도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순천시의 요구를 수용할 경우 예산 1조7000억 원의 15%를 초과해 예비타당성 조사를 다시 받아야하기 때문에 경제성에 맞지 않아 사업 변경 추진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경전선 전철화 사업은 계획대로 추진하되 문제가 되는 광주~순천 구간만 별도사업으로 진행하는 ‘투 트랙’ 전략이 맞는다고 보고 있다. 전남도 또한 이 같은 입장에 동조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토부 관계자의 말이다. “경전선 광주~순천 구간 전철화사업은 남해안 철도 구축의 마지막 구간이다. 부산~창원~진주~광양~순천은 복선화가 이뤄졌고, 전철화가 이뤄졌다. 만약 순천 구간이 노선변경 추진으로 예비타당성 재조사 등으로 단절 구간으로 남게 되면 전철이 호남 쪽만 못 다니고 예전처럼 무궁화호가 다녀야 한다. 그래서 전남도 또한 빨리 해달라고 재촉하고 있다. 이 와중에 순천시가 이견을 제시하고 노선 변경을 해달라고 하니까 저희들로선 난감한 상황이다. 그래서 지난해 찾아 온 주민들에게 방법론적으로 별도사업으로 추진 방안을 제시한 것이다.” 

이 관계자의 이어진 말이다. “우회노선은 2026년에 있을 5차 국가 철도망 구축계획에서 경전선 외에 별도 노선, 즉 지선 개념으로 지자체가 검토해 볼만하다. 다만, 이 경우에도 예비타당성 조사는 거쳐야 한다. 물론 예타 통과를 장담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전선 전철화사업이 4년씩 걸렸던 이유가 광주~순천 노선 길이가 122㎞로 장거리 구간이어서 비용이 많이 들어 편익 확보가 쉽지 않았다. 이에 비해 순천 우회노선 구간은 거리가 짧아 경제성 측면에서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싶다. 최종 판단은 지자체의 몫이다.”  

하지만 순천시는 우회 노선 내지 지중화를 ‘별도사업’으로 추진을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이 경우 별도사업이 언제 추진될지 불투명해 그 사이 고속열차의 도심통과에 따른 피해를 고스란히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기재부의 검토결과를 받는 대로 빠르면 8월 중에 경전선 전철화사업 기본계획을 고시한 뒤 올해 12월 기본 및 실시설계를 완료하고 2023~2027년 토지보상과 공사추진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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