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차의 한국인 CEO ‘이유 있는 열풍’
  • 박성수 시사저널e. 기자 (holywater@sisajournal-e.com)
  • 승인 2022.08.02 07:30
  • 호수 171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회사 내부 장악력과 책임감 강점
실적 내기 급급해 불협화음 큰 외국인 CEO와 비교돼

국내 수입자동차 업계에 한국인 최고경영자(CEO) 열풍이 불고 있다. 통상 수입차 업계에선 한국인과 외국인이 밀물과 썰물처럼 서로 번갈아가며 득세하는데, 최근에는 한국인 CEO에게 힘이 실리는 분위기다. 한국 시장이 빠르게 커지면서 해외 본사 측에서도 한국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고, 현지 사정에 정통한 한국인을 대표 자리에 앉히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실적도 나쁘지 않다. 한국인이 대표를 맡은 브랜드들이 가파른 성장세를 기록하면서 한국인 CEO를 새로 선임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무엇보다 전기차 시대 전환을 맞아 보조금이나 충전 인프라 확충 등 정부 정책과 보폭을 맞춰야 하는 상황이다. 한국인 CEO가 정부와의 소통에 유리한 부분도 작용한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왼쪽부터)한상윤 BMW코리아 대표, 임현기 아우디 부문 사장, 이윤모 볼보자동차코리아 대표ⓒ BMW 그룹·아우디·볼보자동차코리아 제공
(왼쪽부터)한상윤 BMW코리아 대표, 임현기 아우디 부문 사장, 이윤모 볼보자동차코리아 대표ⓒBMW 그룹·아우디·볼보자동차코리아 제공

BMW·아우디·볼보 등에 한국인 CEO

실제로 국내 수입차 상위권 브랜드인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 BMW코리아, 폭스바겐그룹코리아 아우디 부문(이하 아우디코리아), 볼보자동차코리아 중 벤츠를 제외한 3곳의 CEO가 현재 한국인이다. 과거 ‘수입차 4강’으로 꼽혔던 벤츠, BMW, 아우디, 폭스바겐의 경우 BMW를 빼면 모두 외국인 CEO였다. 벤츠는 전통적으로 외국인 CEO를 선호했다. 아우디 역시 작년까진 계속 외국인이 CEO를 맡아왔다. 폭스바겐의 경우 박동훈 전 사장이 2005년부터 2013년까지 역임한 후 슈테판 크랍 및 사샤 아스키지안 사장 등 외국인이 대표 자리를 담당했다. 하지만 아우디가 최근 한국인 CEO를 선임한 데 이어 한국인 CEO인 볼보가 폭스바겐을 제치고 4위 자리에 오르면서, 수입차 4강 중 한국인 CEO가 세 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BMW코리아는 한국인 CEO의 대표적 성공 사례로 꼽힌다. 김효준 전 회장의 경우 국내 수입차 시장을 키운 일등 공신 중 한 명이다. 2000년대부터 BMW코리아 대표를 맡은 1세대 수입차 CEO이자, 20년 가까이 대표를 지낸 수입차 최장수 CEO다. 김 전 회장이 2019년 대규모 화재 사고로 인한 리콜 사태로 물러난 후에는 한상윤 대표가 자리를 물려받아 회사를 이끌어왔다. 한 대표는 리콜 사태로 추락한 BMW의 이미지 및 판매량 회복에 집중했고, 짧은 시간에 회사를 정상 궤도에 올려놨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19년 BMW코리아 판매량은 4만4191대로 전년 대비 12.5% 감소했으나 2020년 5만8393대, 2021년 6만5669대 등으로 증가했다. 올 상반기에는 3만7552대를 판매하며 1위인 벤츠와의 점유율 격차를 1%포인트 수준까지 좁혔다.

아우디코리아도 7월1일부로 한국인 임현기 사장을 선임했다. 임 사장은 아우디코리아가 2004년 한국에 출범한 후 최초의 한국인 대표이자 첫 여성 리더다. 임 사장은 2005년 폭스바겐그룹코리아에 합류한 이후 아우디 네트워크 부문 이사를 지냈다. 지난해 2월에는 중국으로 자리를 옮겨 FAW-아우디 합작법인 ‘FAW 아우디 세일즈 컴퍼니’에서 딜러 네트워크 관리 총괄직을 맡았다.

아우디가 한국인 대표를 임명한 것은 최근 국내에서 계속되는 판매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조치로 분석된다. 아우디코리아는 2015년 3만2538대를 판매하며 정점을 찍었으나, 2016년 디젤게이트 이후 판매량이 급감했다. 2016년 이후 3만 대를 계속 넘지 못하고 있으며, 올 상반기에는 전년 대비 21.5% 감소한 8470대 판매에 그쳐 2만 대 판매도 불투명한 상황이다. 특히 아우디는 디젤게이트 이후 환경부 인증 문제 등으로 인해 새 모델 출시나 물량 확대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인 CEO를 구심점으로 정부 부처와의 소통과 점유율 회복에 집중할 것으로 보인다.

볼보코리아는 이윤모 대표가 2014년부터 회사를 맡아 꾸준히 사세를 키워왔다. 이 대표는 ‘경쟁력 있는 정가’를 고수하며, 국내 판매가격을 해외보다 낮게 유지하는 데 집중했다. 상대적으로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후발주자인 볼보가 자리를 잡기 위해선 디자인·품질은 물론, 가격 경쟁력이 뒷받침돼야 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스웨덴 본사를 자주 방문해 한국 사정을 설명하고, 본사 협력까지 이끌어냈다. 그 결과 볼보는 10년 연속 두 자릿수 성장을 기록하고 있으며 지난해 벤츠, BMW, 아우디에 이어 수입차 4위 자리에 새로 이름을 올렸다. 올 상반기에도 7013대를 판매하며 4위를 유지 중이다.

 

전기차 전환 과정에 정부와의 소통 중요해져

한국인 CEO의 강점이라면 우선 회사 내부 장악력을 꼽는다. 국내 수입차 업체의 경우 그룹 입장에선 해외 지점 중 하나에 불과하다. 본사에서 온 외국인 대표의 경우 그룹 전체로 보면 임원 중 한 명이다. 그렇다 보니 당장 실적을 내서 다시 본사 고위직으로 돌아가는 데 급급한 모습을 보일 때가 많다. 이 과정에서 무리한 실적을 요구하며, 한국 직원 및 딜러사와 마찰이 잦았다. 실제로 한국인에서 외국인으로 대표직이 바뀐 일부 브랜드의 경우 외국인 사장과 한국 직원의 불협화음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한국인 CEO의 경우 직원들과 상대적으로 원활한 소통은 물론, 계속 한국에 남아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책임감을 갖고 근무하는 경우가 많다.

또 다른 강점은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 정부와의 소통이 원활하다는 점이다. 글로벌 완성차 기업들이 최근 앞다퉈 전기차 전환을 예고하고 있다. 수입차 업체들도 한국에서 규모를 키우기 위해선 결국 전기차 판매량을 늘려야 한다. 한국은 물론 세계 주요 국가에서 전기차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는데, 대부분 현지 기업들에 유리하게 정책을 짜다 보니 정부와의 소통이 어느 때보다 중요한 상황이다. 또 전기차의 경우 충전 인프라가 무엇보다 중요한데, 인프라 확대를 위해서는 정부와의 긴밀한 논의가 절실하다. 이를 반영하듯 전기차 전용 브랜드인 테슬라코리아나 폴스타코리아의 경우 각각 김경호 대표와 함종성 대표를 선임해 한국에서 전기차 판매 확대에 집중하고 있다.

아울러 커넥티드카, 자율주행차 등과 관련해서도 국내 통신사와의 기술 결합이 필요한 만큼 한국인 대표를 통해 현지 기업들과의 협업을 강화하기 위한 차원으로 풀이된다. 실제 BMW와 볼보의 경우 SKT와 협업해 자사 주요 모델에 티맵과 인공지능 음성인식 시스템 등을 적용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한국인 CEO는 국내 사정에 밝고 회사 내부 장악력이 강하다. 또 한국 정부와의 소통도 원활하기 때문에 각종 정부 정책 관련 내용에도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며 “특히 전기차 전환 시대를 맞아 정부와의 협업이 중요시되고, 일부 수입차 브랜드의 경우 인증 문제 등도 엮여 있어 한국인 CEO를 선호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관련기사
이 기사에 댓글쓰기펼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