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되는 한일전 참패, 한국 축구 ‘위기의 시그널’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7.30 16:00
  • 호수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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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투호, 동아시안컵에서 일본 2진에 완패…한일전 2연속 대패 불명예
‘월드클래스’ 손흥민 한 명만으로는 우위 못 누려…구조적 개선 필요

숙명의 라이벌. 한일전 앞에 붙는 가장 익숙한 타이틀이다. 종목을 가리지 않고 일본은 일단 이기고 봐야 하는 상대라는 인식이 전 국민의 뇌리에 있다. 특히 해방 후 처음 일본을 꺾고 1954년 스위스월드컵에 진출했던 기억은 국가적 자존심을 고취시켜준 계기였다. 이후 축구 한일전은 이겨도 또 이겨야 했고, 질 경우 감독의 거취까지 크게 요동치는 승부가 됐다.

최근 A대표팀의 한일전은 이 라이벌이란 표현이 무색한 결과를 낳았다. 출발은 지난해 3월25일 일본 요코하마에서 열린 한일 평가전이었다. 당시 대한축구협회는 코로나19 국면에서도 일본 원정을 추진했다. 결과는 0대3 완패. 2011년 삿포로에서 당한 0대3 패배 이후 10년 만의 참사였다. 같은 스코어는 불과 1년 만에 재현됐다. 7월27일 일본 나고야에서 열린 EAFF E-1컵(이하 동아시안컵) 최종전에서 한국은 또다시 0대3으로 무릎을 꿇었다.

파울루 벤투 감독은 1998년 차범근 감독 이후 24년 만에 한일전에서 2연패를 당한 A대표팀 감독이 됐다. 차 감독 당시 2연패는 지금과 상황이 달랐다. 월드컵 최종예선 통과를 확정 지은 상황에서 주전 일부가 빠진 채 경기를 치러 0대2로 패배했다. 이어 다이너스티컵에서도 1대2로 져 지금과 같은 충격적인 결과는 아니었다.

7월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동아시안컵 3차전에서 한국은 일본에 0대3으로 패했다.ⓒ뉴시스
7월27일 일본 아이치현 도요타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2 동아시안컵 3차전에서 한국은 일본에 0대3으로 패했다.ⓒ뉴시스

첫 패배보다 더 참담했던 두 번째 패배

벤투 감독에게도 지난해 한일전 첫 완패 당시엔 면죄부가 주어졌다. 손흥민·황의조·김민재·황희찬 등 주요 선수가 코로나19 이슈로 합류하지 못한 상황이었다. 이강인을 최전방에 세우는 제로톱 전술을 가동했을 정도로 무리한 운영이 불가피했다. 이 때문에 월드컵 최종예선을 앞두고 무리하게 한일전을 추진한 대한축구협회에 비판의 초점이 맞춰졌다. 결국 축구협회는 정몽규 회장 명의의 대국민 사과문을 내고 “패배의 책임을 벤투 감독에게 묻는 것은 온당치 않다. 최상의 지원을 못 한 협회의 책임이 더 크다”며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이번 패배는 성격이 완전히 다르다. 동아시안컵의 경우 애초에 양국 모두 유럽파가 오지 못하는 것을 감안하고 선수 선발을 했다. 벤투 감독은 김진수·조규성·나상호·조현우·권창훈·권경원·박지수·홍철 등 K리그와 J리그에서 뛰는 정예 멤버를 불렀다. 엄원상·조유민·김동현 등 지난 6월 A매치 4연전에 소집돼 활약한 선수들도 함께했다. 반면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A매치 출전 경험이 15번도 안 되는 새 얼굴 중심의 2진을 꾸렸다. 원정이라는 점을 빼면 한국에 유리했던 상황에서 또 한 번의 참사를 낸 것이다.

경기 내용은 더 참담했다. 벤투 감독이 늘 강조해온 경기 주도력은 전혀 나오지 못했다. 경기 내내 일본에 끌려다녔다. 상대의 강한 전진 압박에 당황했으며 상대가 정교한 패스 플레이로 밀고 들어오면 수비가 무너졌다. 유효 슈팅은 송민규가 기록한 단 1개에 불과했다. 한국은 비기기만 해도 우승이 가능한 상황이었는데, 이번 패배로 동아시안컵 4회 연속 우승도 무산됐다. 카타르월드컵을 3개월여 앞두고 대표팀을 향한 시선이 불안감과 불신으로 번질 수밖에 없는 결과다.

좁게 보면 벤투 감독의 판단 미스가 부른 연패라고 볼 수 있다. 이번 나고야 참사에서는 센터백 권경원을 수비형 미드필더로 기용하는 변칙을 썼다가 중원에서부터 무너졌다. 권경원은 학창 시절 수비형 미드필더를 맡았지만 성인이 된 후에는 센터백으로 포지션을 전업했다. 평소 하지 않던 기용을 굳이 한일전에서 감행했다가 쓴맛을 본 것이다.

자신의 축구 스타일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K리그에서 검증된 최상급 선수를 A대표팀에 부르지 않은 것이 이런 결과를 낳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지난 시즌 K리그 득점왕 주민규와 MVP 홍정호는 물론, 최근 최상의 기량을 보인 이승우·양현준도 선발하지 않았다. 수비형 미드필더 포지션에도 신진호·최영준·이창민 등이 리그에서 활약했지만 벤투 감독에겐 한 번도 선택받지 못했다.

문제는 A대표팀에만 그치지 않는다. 최근 각급 대표팀이 일본에 대패를 당했다. 지난 6월에는 16세 이하 대표팀이 0대3으로 졌다. 나흘 뒤 황선홍 감독이 이끄는 23세 이하 대표팀도 0대3으로 패했다. 양국 대학 선발팀이 치르는 덴소컵에서는 0대5 패배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명예회복을 해줄 거라 기대를 모았던 A매치에서도 0대3 패배가 나온 것이다. 한일 A대표팀 역대 전적은 42승 23무 16패로 한국이 절대 우위를 점하고 있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각급 대표팀이 처참하게 패하며 위기감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이번 승리 후 일본은 한국을 넘어섰다는 확신에 고취된 분위기다. 모리야스 감독은 “과거 한국을 어려워했던 징크스를 극복했다고 보나”라는 일본 취재진의 질문에 동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현재 일본 선수들은 한국에 심리적인 면에서 밀린다는 열등감이 전혀 없다. 아시아 국가와 경기를 하면 높은 확률로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있다”고 답했다.

거듭되는 한일전 참패는 양국 축구의 전반적인 격차 탓일 수도 있다. 한국은 지난 시즌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득점왕을 차지한 손흥민의 존재에 열광했다. 아시아 최고의 선수를 넘어 부정할 수 없는 월드클래스 손흥민의 존재는 다른 아시아 국가로부터 부러움을 사고 있다. 근래에 최정예로 맞붙은 한일전이 없었던 만큼, 손흥민이 합류하면 결과는 다를 것이라는 위안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 손흥민은 없어도 우리보다 훨씬 많은 유럽파 선수가 있고, 좀 더 체계화된 선수 육성 시스템으로 한국에 대한 콤플렉스를 극복해 나가고 있다.

7월27일 일본과의 경기가 종료된 후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연합뉴스
7월27일 일본과의 경기가 종료된 후 파울루 벤투 감독이 선수들을 격려하고 있다.ⓒ연합뉴스

한일, 만 25세 이하 유럽파 선수 8명 대 25명

일본이 최근 소집한 A대표 선수 중 만 25세 이하 유럽파는 18명에 달한다. 한국은 김민재·황인범·이동준·이동경·정우영 5명뿐이다. 손흥민·황의조·이재성은 1992년생으로 이제 30대에 접어들었다. 손흥민이나 김민재가 개인 기량과 성과에서 일본 선수를 압도하지만 축구는 팀 스포츠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봤을 때 일본이 더 우상향할 가능성이 높을 수밖에 없다.

현실적 장벽은 있다. 병역 문제는 분명 유럽 진출의 걸림돌이다.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을 통해 병역 문제를 해결해야 부담 없이 유럽으로 향할 수 있다. 그러나 선수와 구단들이 유럽으로 향하는 데 도전적이지 못하고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다. 이적료로 충분한 보상을 받지 못하면 구단은 쉽게 보내지 않고, 선수들도 중국과 중동같이 큰돈을 벌 수 있는 무대를 먼저 본다.

반면 일본은 실패하더라도 이른 나이에 유럽으로 가려는 성향이 강하다. 지난 1년 사이 미토마 가오루·하타테 레오 등 여러 선수가 유럽에 새로 진출했다. 축구계 관계자는 “일본에서 손흥민 같은 월드클래스가 안 나올 순 있지만, 많은 선수가 유럽에서 단계적 성장세를 보이며 유럽파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며 “유럽에서 클래스 높은 선수를 넘어서기 위한 경험치가 한일 각급 대표팀 간 격차를 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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