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석發 나비효과? ‘명예’에서 ‘멍에’ 된 ‘윤핵관’
  • 박성의 기자 (s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8.29 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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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 책임론‘ 발발에 안철수도 ‘윤핵관’ 거리두기
‘친윤 추천 찬스’ 없다?…대통령실 인사도 변화 감지

윤석열 정부의 실세라 불렸던 ‘윤핵관’(윤석열 대통령 핵심 관계자) 세력의 입지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친윤석열계 세력이 주도한 당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제기한 ‘가처분 신청 카드’로 무력화되면서다.

새 지도부 구성을 둘러싼 여권 내홍이 이어지는 가운데, 대통령실도 ‘윤핵관’과 거리를 두려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최근 대통령실이 진행한 고강도 감찰에 ‘윤핵관’이 추천한 인사들이 연이어 걸려들면서다.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는 핵심 요직에서도 ‘윤핵관’ 관련 인사들이 배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왼)과 장제원 의원. 사진은 자유한국당 시절이던 2018년 11월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두 사람의 모습 ⓒ연합뉴스
국민의힘 권성동 당 대표 직무대행(왼)과 장제원 의원. 사진은 자유한국당 시절이던 2018년 11월9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한 두 사람의 모습 ⓒ연합뉴스

‘실세’의 ‘실패’?…위기 직면한 권성동

‘윤핵관’은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만든 신조어다. ‘윤석열 캠프 핵심 관계자’의 줄임말로, 지난 대선 당시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익명 뒤에 숨은 ‘윤핵관’이 언론에 이상한 얘기를 하고 다닌다”고 비꼬면서 처음 사용했다.

대선이 윤 대통령의 승리로 끝나면서 ‘윤핵관’은 정부의 공신으로 부상했다. 리스트 상단에 가장 먼저 이름을 올린 인물은 장제원 의원이다. 실제 장 의원은 당선인 비서실장으로 인선(人選) 밑그림을 직접 그렸다. 여기에 윤 대통령과 막역한 사이로 알려진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 윤한홍 의원이 실세로 부상했다. 정치권은 이들을 이른바 ‘윤핵관 3인방’으로 분류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윤핵관’은 명예가 아닌 ‘멍에’가 된 모습이다. 이들이 이 전 대표와 일진일퇴 공방전을 벌이는 사이, 정부와 당이 위기에 봉착하면서다. 특히 권성동 원내대표의 경우 당내 입지가 정권 초와 비교해 180도 바뀌었다. 이른바 ‘대통령 문자 파동’ 등으로 위기를 좌초한 권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직무대행까지 도맡자,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당내에서 터져나오기 시작했다. ‘방화범’이 ‘소방수’로 나서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다는 지적에서다.

각각 4선, 3선, 초선인 윤상현·유의동·최재형 의원은 29일 기자회견을 열고 권 원내대표의 자진사퇴와 함께 새 비대위 대신 최고위 복원을 촉구했다. 이들은 “법원의 판단을 국민의 판단, 국민적 명령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당의 위기는 지도부에서 촉발된 측면이 매우 크다”며 “당헌·당규를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적법절차를 편의적으로 남용하도록 용인했다. 지도부가 자초한 비상상황이자 자해 행위”라고 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내린 결정, 국민의 상식과 부합하는 조치를 신속하고 과감하게 취해야 한다”고 했다.

5선 중진인 조경태 의원은 28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새로운 지도부에 혼란한 상황을 수습할 수 있는 정통성을 부여해야 한다"며 "이미 권성동 원내대표는 그 정통성을 상실했다”고 권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했다. 이어 “절차적 정당성도 갖추지 않고 출범한 비대위, 그에 따른 가처분 인용, 대통령께서 금주령을 내린 행사에서 원내대표의 음주.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행동이 맞느냐”고 지적했다.

‘윤핵관’이 코너에 몰리자, 당권 주자가 이들과 선을 그으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당초 친윤계로 분류됐던 안철수 의원이 ‘권성동 사퇴론’에 불을 지폈다. 안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 글에서 “저는 윤석열 정부의 출범에 책임 있는 정치인으로서, 혼란한 당 상황에 대해 분명한 제 생각을 말씀드리는 것이 국민에 대한 도리라고 생각한다”며 권 원내대표가 사퇴하고 새 원내대표를 선출해 당 대표 직무대행 체제로 돌아가자고 주장했다.

안 의원은 “권성동 원내대표께서는 스스로 현명하게 판단해서 구성원들의 집단지성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즉시 여건을 만들어주셔야 한다”며 “새로운 원내대표를 뽑아 직무대행 체제로 돌아가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어렵고 더디더라도 정도를 걸어야 한다. 국민 앞에 부끄럽지 않은 선택을 해야 한다”며 “그것이 국민의 마음을 얻고 당과 윤석열 정부를 살리는 길”이라고 말했다.

‘윤핵관’이 수세에 몰리자, 이준석 전 대표의 ‘우군’들도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이다. 김용태 전 최고위원은 이날 페이스북을 통해 “사법부의 판단을 무시하며 반헌법적 행위를 지속하는 ‘윤핵관’들에게 경고한다”며 “당장 법원 결정문의 취지에 맞게 비대위를 해산하라”고 요구했다. 이어 “집권여당을 너덜너덜하게 만든 윤핵관들에게 일말의 반성할 기회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해달라”며 ‘지금처럼 계속 무소불위의 어거지 행보를 보이신다면 저 또한 결코 좌시하지 않겠다“고 경고했다.

 

대통령실도 ‘윤핵관 거리두기’?

여권 일각에선 대통령실도 ‘윤핵관 거리두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최근 대통령실이 진행한 고강도 감찰에서 적발된 인사들의 상당수가 ‘윤핵관’이 추천한 인사로 알려지면서다. 실제로 이날 사의를 밝힌 홍지만·경윤호 비서관을 비롯해 인사 개입 문제로 사퇴한 시민사회수석실 A비서관과 문건 유출 문제로 인사위원회에 회부된 같은 수석실B비서관 등이 친윤계 의원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인물들로 전해진다.

여기에 시사저널 취재 결과, 대통령실이 김무성 전 의원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내정했다가 최근 철회 방향으로 선회한 것으로 알려졌다.(▲[단독]김무성,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내정 취소’ 움직임) 김 전 의원이 ‘가짜 수산업자’ 사건으로 재판을 받게 됐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장관도 아닌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에 대한 인사검증이 고강도로 이뤄지는 것은 이례적이라는 평가다. 여권 일각에선 김 전 의원과 ‘윤핵관’ 장제원 의원의 친분 탓에 대통령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후문이 들린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한 의원은 “계파를 만드는 건 늘 권력을 가진 사람과 권력을 갖고 싶어하는 사람이지, 권력이 없는 이들이 아니다. (당의 문제를) 야기한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국민이 가장 잘 알 것”라며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당과 대통령실 모두 자성하지 않으면 다음 총선에서 크게 심판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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