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국가 배상해야”…대법 판례 7년 만에 뒤집혔다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2.08.30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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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 양승태 대법원 “긴급조치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 국가 배상 책임 없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김명수 대법원장을 비롯한 대법관들이 30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 대법정에서 열린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 관련 전원합의체 선고에 입장해 자리에 앉아 있다. Ⓒ연합뉴스

박정희 정권 때 발령된 '긴급조치 9호'로 체포·처벌·구금된 피해자들에 대해 국가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 "긴급조치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이므로 국가에 배상 책임이 없다"고 했던 대법 판례가 7년 만에 뒤집힌 것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30일 A씨 등 71명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낸 손해배상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로 판결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대법은 "긴급조치 9호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 수사와 공소 제기(기소), 유죄 판결의 선고를 통해 현실화했다"고 판단했다. 

대법은 이어 "이런 경우 긴급조치 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해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위법하다"면서 "긴급조치 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 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고 판시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인 2015년 3월 대법원은 "유신헌법에 근거한 대통령의 긴급조치권 행사는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이므로 대통령의 이러한 권력행사가 국민 개개인에 대한 관계에서 민사상 불법행위를 구성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판결했다.  

1975년 5월 제정된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 긴급조치 제9호'(긴급조치 9호)는 유신헌법을 부정·반대·왜곡·비방하거나 개정이나 폐지를 주장·청원·선동·선전한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게 했다. 긴급조치 9호로 희생된 피해자들은 2013년 국가배상소송을 제기했다. 1심 법원은 1년 넘게 심리한 끝에 2015년 5월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그해 3월 나온 대법원 판례를 근거로 한 판결이었다.  

당시 대법원(주심 권순일 대법관)은 2013년 전원합의체 결정을 준용해 "긴급조치 9호는 민주주의의 본질적 요소이자 유신헌법과 현행 헌법(1987년 헌법)이 규정한 표현의 자유, 영장주의와 신체의 자유, 주거의 자유, 청원권, 학문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한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것이므로 위헌·무효"라고 하면서도 국가에 배상 책임은 없다고 봤다. 

대통령은 국가긴급권의 행사에 관해 원칙적으로 국민 '전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질 뿐 국민 '개개인'의 권리에 법률상 의무를 지는 것은 아니라는 대법의 논리는 사회적 논란을 낳았지만 이후 판결은 대법 판례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긴급조치 피해자들은 2심에서도 패소 판결이 나자 2018년 다시 대법원의 판단을 받기로 했고, 대법원은 판례 변경 논의를 위해 사건을 대법관 모두가 참여하는 전원합의체에 회부해 심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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