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당의 비상 상황’까지 판단한 사법부를 우려함 [쓴소리 곧은 소리]
  • 박형명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prev04@naver.com)
  • 승인 2022.09.02 15:05
  • 호수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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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부는 종교·정당 등 헌법상 고도의 자율성이 보장된 단체 문제에 판단 자제해야
유신 때 ‘김영삼 총재’ 무효화시킨 가처분 결정 연상돼…정치의 사법화 걱정스러워

이번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에 대한 직무를 정지하는 가처분 결정이 내려졌다는 뉴스를 보고 문득 옛날 사건이 떠올랐다.

때는 유신체제가 절정에 달했던 1979년 9월이다. 그해 5월에 있었던 신민당 전당대회에서 대여 강경투쟁론자인 김영삼(YS)이 총재에 당선되어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신념으로 민주화 투쟁을 주도했다. 그러자 일부 당원(그 배후에 정권이 결탁되어 있었던 일은 이제는 비밀도 아니다)이 신청인이 되어, 전당대회에 참석한 대의원 중 일부가 자격에 하자가 있어 총재로 YS를 선출한 결의는 무효이므로 무효인 본안소송에 앞서 긴급하게 총재의 직무정지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당시 서울민사지방법원 수석부가 그 신청을 인용하는 결정을 내림으로써 갑자기 YS가 야당 총재에서 물러나게 되어 큰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른바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형식으로 정당의 정치행위를 통제하게 된 것이다.

그 당시에도 해결책은 있었다. 정당의 자주성, 자율성, 정치행위의 독립성과 아울러 사법의 자제(재판의 내재적 한계)를 내세워 현저하고 명백한 절차적 정당성 침해가 없는 한 정당 내부의 결의행위는 사법 심사의 대상이 아니라고 해 각하(却下)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당규에서 정한 대의원 선출 방법을 위반한 하자를 지적하고 이를 이유로 YS를 야당 총재에서 배제하는 결정을 했다. 당시 권위주의적인 군사정권하에서 신청을 배척하는 결정을 하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으로 짐작은 하지만, 과감하게 나서지 못했던 우리 법조 선배들의 용기와 혜안 부족이 아쉬운 대목이다(물론 이 가처분 결정을 시작으로 YS에 대한 의원직 제명, 부마민주항쟁 등으로 이어져 결과적으로 유신정권의 종말이 조금 당겨지지 않았을까 하는 점에서 약간 긍정적인 측면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서울남부지방법원 민사51부(재판장 황정수 수석부장판사)는 8월26일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왼쪽)가 ‘주호영 비상대책위’를 상대로 제기한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이로써 주호영 비대위원장(오른쪽)의 직무가 정지됐고 국민의힘은 수습책을 둘러싸고 내분과 혼돈에 빠져들었다ⓒ연합뉴스·시사저널 박은숙

현저하고 명백한 절차적 문제 없는 한 ‘사법의 자제’ 필요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러 이제는 정당 내부 의사결정 행위가 법원의 가처분 대상이 된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이번 사건만 해도 당 대표가 자기가 대표하던 당의 상임중앙위원회, 최고위원회 결정에 대해 그 효력의 배제를 구하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한 것인데, 이에 대해 국민이 특이하거나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 것 같다. 이번에 신청을 받아들이는 결정이 내려졌기에 비로소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현상이 과연 정상인가.

법원은 예전부터 단체 내부 의사결정에는 가능하면 관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천명해 오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향하는 헌법 원칙에 따라 단체의 자주성과 자율성을 존중한다는 취지다. 따라서 단체 내부 의사결정 과정에서 절차적으로 문제가 되지 아니하면(합법성의 통제 영역이다) 가급적 그 결정을 존중하는 결정을 해왔다. 그 단체 중에서도 더 자주성과 자율성을 인정받아온 단체가 종교단체와 정당이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정치적 결사체인 정당의 경우 더욱 자주성과 자율성, 독립성이 필요하고 내부 의사결정은 존중되어야 할 것이다.

법원은 분쟁을 심판하고 최종적으로 해결하는 국가기관이다. 따라서 법원의 후견적 기능이 일정 부분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자체적으로 분쟁을 해결할 능력과 의지가 있거나 고도의 자율성, 자치가 보장되어야 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법원이 그러한 기능을 발휘할 필요가 없다. 모든 분야에서 문제점을 찾아내 해결하고 정의를 선언하겠다는 법원의 태도는 국민의 모든 생활을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좌파의 통치이념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이러한 광범위한 후견적 기능은 자유와 자율을 존중하는 우리 헌법의 기본 원칙과도 맞지 않는다. 재판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는 없다.

 

정치권도 내부 문제 해결에 사법부 끌어들이지 않기를

국민의힘은 정권 창출에 성공했으면서도 이전투구(泥田鬪狗) 모습을 보이며 혼란을 키워왔고 국민에게 힘이 되기는커녕 근심거리가 되었다. 이러한 모습을 비상 상황으로 규정하고 비대위를 만들어 자체적으로 정리해 국정을 제대로 주도하는 정당으로 자리매김하겠다는데 왜 법원이 나서서 이를 말리는가?

이번 결정문에도 절차적으로는 커다란 하자가 없다고 하면서도 실체적으로 비상 상황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비대위를 가동시켜서는 안 된다고 했다. 민주적 정당성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위법하다는 것인데, 이러한 판단은 기존에 견지해 왔던 단체 내부 의사결정을 대하는 태도와도 사뭇 다르다. 법원이 섣불리 끼어들어 오히려 민주적 정당성을 훼손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도 든다. 정당에 필요한 것은 법원의 후견적 기능이 아니라 자체적으로 해결해내는 뛰어난 정치력이다. 정치의 사법화가 걱정되는 무척 아쉬운 결정이다.

이참에 정치권에 한마디 덧붙이자면, 제발 분탕질 쳐서 국민을 걱정시키는 일을 그만했으면 좋겠다. 분탕질을 치면 지지고 볶든 정치력으로 자체 해결하고, 공연히 법원을 끌어들여 재판 작용 전체에 대한 신뢰가 흔들리도록 하지 않기를 바란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박형명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박형명 변호사·전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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