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배상’ 판정에 가시방석 앉은 尹정부 수뇌부
  • 이혜영 디지털팀 기자 (zero@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1 1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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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덕수·추경호·김주현 등 책임론 불씨에 곤혹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가 31일 오전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국무위원들과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오른쪽)가 지난 5월31일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함께 세종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정부 주요 참모진이 한국 정부에 날아든 거액의 배상 후폭풍에 곤혹스런 입장이 됐다. 미국계 사모펀드 론스타가 제기한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ISDS) 중재 사건에서 한국 정부가 3000억원 상당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정이 나오면서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매각 절차 및 의사 결정에 관여한 인사들이 현재 윤석열 정부 주요 경제 정책을 주도하고 있어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책임론을 둘러싼 공방은 이어질 전망이다. 

참여연대는 1일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약 2800억원(이자 제외)을 배상토록 명령한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ICSID) 판정과 관련해 한덕수 국무총리와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관련자들에 대한 조사와 처벌을 촉구했다. 

참여연대는 "배상액이 청구액보다 훨씬 적으니 문제가 안 된다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며 "대한민국 경제 법질서를 유린하고 농락한 일개 사모펀드의 사기 행각을 묵인하고 사실상 조력해 온 금융감독 당국의 책임을 분명히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회 청문회와 검찰 수사를 통해 '모피아'(옛 재정경제부 영문 약자와 마피아의 합성어)들이 론스타의 '먹튀' 행각을 위해 복무했다는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고 엄정한 법의 심판을 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체는 또 중재판정부에 제출된 정부 측 문서와 진술서, 판정문의 투명한 공개, 공공정책 및 사법주권을 위협하는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제도'(ISDS) 폐기도 함께 요구했다.

전날 ICSID 중재판정부는 하나금융지주가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한국 정부가 승인을 지연, 매각 가격이 낮아진 것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봤다. 중재판정부는 "당시 한국 금융위원회가 매각 가격이 인하될 때까지 승인을 지연한 것은 권한 내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공정·공평대우 의무 위반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다만 론스타도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은 등 책임이 있다며, 배상 책임은 론스타 측이 청구한 금액의 일부만 인정했다.

전국민중행동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통상위원회, 민병덕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론스타 사태 전반에 대한 진상 규명과 책임자 문책을 요구했다. 이들은 "론스타가 이미 챙겨간 4조7000억원과 이번에 추가로 챙겨갈 3000억원 이상(이자 포함)의 투기이익은 모두 국민 혈세이자 노동자의 피눈물"이라며 중재 판정문을 공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역시 논평을 통해 국회 차원의 진상 조사와 재발 방지책을 요구하면서 "론스타의 불법 인수·매각을 도운 '공범' 김대기·추경호·김주현·이창용 등은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고 모든 공직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비판했다. 

시민단체에 이어 야당인 더불어민주당도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당시 승인 절차에 관여한 인사들에 대한 책임론에 불을 지피는 모양새다. ​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왼쪽두번째), 김종우 민변 통상위원회 변호사(왼쪽)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9월1일 국회 소통관에서 론스타 배상 판결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박석운 전국민중행동 공동대표(왼쪽두번째), 김종우 민변 통상위원회 변호사(왼쪽) 등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9월1일 국회 소통관에서 론스타 배상 판결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론스타가 이의를 제기한 하나금융지주의 외환은행 지분 인수 승인 지연 당시 금융위 부위원장은 추 부총리가 맡고 있었고,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위 사무처장이었다.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당시 이명박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비서관이었다.

추 부총리는 론스타 사태의 출발점이 된 2003년 외환은행 지분 인수 당시 재정경제부 은행제도과장을 지냈기 때문에 한국과 론스타의 '질긴 악연'에 더 깊숙이 관여돼있다. 한 총리는 2003년 당시 론스타의 법률대리를 맡은 김앤장의 고문이었고, 2006년 감사원의 론스타 특별감사 때에는 노무현 정부 경제부총리였다.

공교롭게도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인수하고 매각하는 '첫 단추'부터 이후 과정까지 윤석열 정부의 주요 인사들이 줄줄이 연결돼있는 셈이다. 론스타 사태 책임론은 한 총리와 추 부총리가 임명됐을 때도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첨예한 공방이 일었다. 한 총리는 김앤장이 당시 론스타를 대리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며 관련성에 선을 그었고, 전날 역시 "관여한 사실이 없다"며 동일한 입장을 내놨다. 

추 부총리는 전날 배상 판결에 대해 "상당히 유감"이라면서 "정부는 론스타 행정조치에 있어 국제규범 조약에 따라 공정·공평하게 대우했다. 이번에 (세계은행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가) 대부분은 우리 정부의 입장을 받아들였지만 일부를 받아들이지 않고 손해배상 결정을 했다"며 법무부의 판정 취소 신청 검토 등 후속 대책에 집중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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