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핵관과의 ‘헤어질 결심’, 벼랑 끝 윤석열 구할까
  • 김종일·이원석 기자 (ide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2 14:05
  • 호수 1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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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성동-장제원’ 2선 후퇴…尹, 여권 권력지도 새로 짠다
김대기로 기우는 무게추…‘윤핵관’ 다음은 ‘검핵관’ 개편
尹, 원내정당화 고심 속 與 새로운 지도체제 나올지 주목

윤석열 대통령은 지금 총체적 위기다. 취임 초 50%대였던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반 토막이 났다. 윤 대통령을 뒷받침해야 할 국정의 세 축인 ‘당·정·대(대통령실)’는 모두 크게 흔들리고 있다. 집권여당은 리더십이 붕괴해 대혼란 상태다. ‘새 비상대책위원회’ 출범을 향한 경로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지만 그 운명은 법원이 쥐고 있다.

정부는 헛발질의 연속이다. ‘만 5세 입학’ 정책 대참사가 대표적이다. 한덕수 총리는 아예 잘 보이지도 않는다. 보건복지부 장관은 100일 넘게 공석이다. 당·정·대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야 할 대통령실은 중심을 잡기는커녕 가장 크게 흔들리고 있다. 업무능력과 비위 등의 문제로 대대적 인사 개편과 감찰이 진행되면서 대통령실에는 ‘피바람’이 불고 있다. 

ⓒ연합뉴스

당·정·대 모두가 벼랑 끝 위기 상황이다. 지금 수습에 실패하면 사태는 정말 심각해진다. 윤 대통령은 과연 어떤 수습책을 준비하고 있을까. 파편적인 뉴스가 쏟아지고 있다. 대통령실에 휘몰아치는 대규모 인사 개편, ‘윤핵관’(윤 대통령 핵심 관계자)들의 2선 후퇴, 비대위 체제로의 강행 움직임, 점점 커지는 이준석 전 대표에 대한 사퇴 압박 등에 김무성 전 의원에 대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내정 철회 움직임까지. 집권세력에서 터져 나오는 뉴스들은 무질서와 대혼돈 그 자체다. 대체 윤 대통령은 어떤 그림을 그리고 있는 걸까.

이럴 때는 ‘멀리’ ‘넓게’ 봐야 한다. 디테일의 함정에 빠지면 안 된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 회복해야 할 핵심 가치는 결국 세 가지로 정리된다. 먼저 사라진 ‘법과 원칙’을 다시 세워야 한다. 현재의 당정 모습을 민주적이라고 하기는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그리고 ‘일하는 당·정·대’를 회복해야 한다는 주문도 뒤따른다. 민생우선주의를 실행할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것도 과제다. 집권세력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야 하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회복해야 하는 게 급선무다. 국정동력은 다른 곳이 아니라 국민의 신뢰, 민심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이제 곧 추석이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성난 민심이 추석 밥상에 오르지 않게 서둘러 질서를 회복해야 한다. 위기 수습의 총책임자는 당연히 윤 대통령이다. 윤 대통령은 과연 어떤 수습책을 준비하고 있을까.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묘수(妙手) 대신 정수(正手)를 고심하고 있다. 열쇳말은 ‘윤핵관 정치와의 결별’이다. 짧은 정치 경력으로 취임 초 여의도에 의존했던 국정 스타일을 새롭게 짜겠다는 것이다. 흔들리는 기존의 권력 축을 아예 무너뜨리고, 새롭게 집을 지어 ‘윤석열의 정치’를 선보이겠다는 구상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이 여권의 권력 지형을 ‘그라운드 제로(0)’에서 새롭게 짜려고 하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의미심장한 분석이다. 그만큼 상황이 위중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다음 총선까지 이제 겨우 1년7개월 남았다. 7개월 안에 국정 지지율이 회복되지 않으면 윤 대통령은 ‘탈당하라’는 요구에 직면할 수 있다”고 했다. 사실상 지금이 사태 수습의 마지막 기회라는 뜻이다. 과연 윤 대통령은 ‘무질서와 대혼돈’의 파탄에 빠진 여권을 벼랑 끝에서 구해낼 수 있을까. 시사저널이 핵심 포인트를 살펴봤다.

ⓒ시사저널 이종현

[그라운드 제로 1] ‘윤핵관’ 2선 후퇴, 이준석 아웃 

‘윤핵관 중 윤핵관’으로 꼽혀왔던 장제원 국민의힘 의원은 8월31일 “앞으로 윤석열 정부에서 어떠한 임명직 공직도 맡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장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최근 당 혼란에 대해 무한 책임을 느낀다”며 “이제 지역구 의원으로서 책무와 국회 상임위 활동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했다. 계파 활동으로 비칠 수 있는 모임이나 활동 또한 일절 하지 않겠다고도 했다. 앞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새 비대위를 출범시킨 뒤 원내대표직에서 물러날 뜻을 시사했다. 

두 사람은 ‘검사 윤석열’을 정치 한복판으로 끌어내 정권교체까지 완성시킨 주역이다. 지지율만 있고 세력은 없었던 혈혈단신 ‘정치 초짜 윤석열’이 여의도 정치에 안착할 수 있게 교두보 역할을 하며 ‘정치적 기승전결’을 엮은 이들이 바로 권·장 의원이다. 이들은 대선 때부터 윤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불리며 캠프 운영을 주도했고, 대선 후에는 새 정부의 조각(組閣) 인선은 물론 대통령실 구성에도 적극 관여했다. 여권에서는 “윤 대통령이 검찰총장직을 던지고 대선후보를 거쳐 대통령이 되기까지 이들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다”는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이들은 정권 출범 100일 만에 개국공신에서 정권의 가장 큰 부담이 돼버렸다. 윤 대통령 국정 지지율 급전직하의 주된 원인으로 이준석 전 대표와 윤핵관의 갈등, 그리고 ‘권·장 대결’로 표현되는 윤핵관 사이의 권력투쟁이 꼽혔기 때문이다. 이에 ‘윤핵관 투톱’의 2선 후퇴는 겉으로는 ‘백의종군’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윤 대통령이 국정 쇄신을 위해 ‘윤핵관 정치’와의 결별을 결심한 것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윤 대통령이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떠받치던 윤핵관이라는 토대를 당·정·대 모두에서 허물고, 여권 내 역학구도 변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는 해석도 나온다. 최근 대통령실 인사 개편의 주된 대상이 두 의원의 추천 또는 관여를 통해 인선된 이들이라는 점도 ‘윤핵관 투톱’의 퇴조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윤 대통령의 ‘헤어질 결심’에는 ‘이준석 정치와의 완전한 결별’도 포함돼 있다는 분석이다. 국민의힘이 최근 법원의 가처분 인용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새 비대위’ 출범에 속도를 내는 이유가 바로 이 전 대표와의 완전한 결별에 마침표를 찍기 위해서라는 설명이다. 여권 사정에 밝은 장성철 공감과논쟁정책센터 소장은 “최고위 체제로 복귀하면 이 전 대표를 자를 수 없다. 비대위로 가야만 완벽하게 몰아낼 수 있다. 그래야 ‘이준석 체제’가 무너졌다고 규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장 소장은 “이 전 대표를 국민의힘 계열에서는 정치를 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지가 대통령에게는 강하다. 아니면 왜 이런 무리수를 두겠나”라고 했다.

 

[그라운드 제로 2] ‘김대기’ 앞세우고 ‘검핵관’ 노린다

권력은 공백을 용납하지 않는다. 윤 대통령 입장에서는 윤핵관의 2선 후퇴는 정치적 기반의 상실을 의미한다. 그 자리를 반드시 다른 세력으로 채워 공백을 없애야 한다. 일단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에서의 완벽한 ‘윤핵관 지우기’에 나서고 있다. 현재 대통령실 직원 총원 420명 중 20%가량이 교체 검토 대상인데, 이들 중 대다수가 ‘윤핵관 관련 인사’라는 말이 파다하다. 그리고 ‘윤핵관 지우기’ 작업은 ‘감독 김대기-연출 검핵관’으로 진행되고 있다. 

사실 격세지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김대기 비서실장은 자리가 위태로웠다. 윤핵관 측에서는 대통령의 낮은 국정 지지율과 국정 혼란에 대한 책임을 김 실장이 져야 한다며 ‘김대기 교체론’을 강하게 윤 대통령에게 요구했다. 대통령실 개편 방향을 두고 ‘윤핵관’으로 상징되는 여의도 측근 그룹과 용산 대통령실 참모 그룹 간에 이견이 생긴 것인데,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은 김 실장의 손을 들어줬다. 

실제 김 실장은 오히려 장악력이 세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의 검찰 시절 측근 그룹(검핵관)의 보좌를 받으며 권력의 신주류로 등장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 대통령이 그리는 그림이 김 실장을 ‘검핵관’들이 떠받치는 구조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대통령실 사정에 밝은 여권 관계자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윤 대통령의 의중을 파악하려면 용산보다 여의도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는 말이 돌았다”면서 “윤 대통령이 이 구조를 처음부터 다시 세우려고 하는 듯하다. 그 중심에 김 실장이 있다. 대통령이 최근 확실히 힘을 실어주고 있다”고 했다. 

다른 시선도 있다. 윤 대통령이 잇따른 인사 실패와 ‘사적 채용’ 논란의 장본인인 ‘검핵관’들을 좋아서 ‘숙청의 무풍지대’로 두는 게 아니라는 분석이다. 복지부 장관 등 남은 정부 조각과 대통령실 인사 개편 후 새롭게 채울 인사 검증 등 후속 작업을 위해 ‘검핵관’들에 대한 조치는 뒤로 미뤘다는 설명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윤 대통령은 ‘인사 라인’을 문책하라는 민심을 엄중히 지켜보고 있다”면서 “‘윤핵관 지우기’로 진행되는 지금의 대통령실과 국민의힘 정리 과정이 끝나는 대로 이원모 인사비서관 등 인사 라인을 대상으로 하는 2차 인사 개편이 있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대통령이 일단 유임을 결정한 강승규 시민사회수석, 이진복 정무수석 등도 결코 안심할 때가 아니라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국정감사와 예산안 처리 등 급한 현안에 대처하기 위한 조치이며 지금 재신임의 유통기한은 정기국회가 마무리되는 연말까지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윤 대통령이 대통령실 비서관급 이하 실무진에 대한 감찰과 물갈이에 대한 지금의 반발 기류를 못 읽고 있는 게 아니라 시간차를 두고 진행할 것이라는 해석이다. 

한편 윤 대통령은 ‘김건희 리스크’와 관련해서도 참모들의 의견을 적극 받아들여 앞으로는 당초 약속한 것처럼 ‘조용한 내조’로의 방향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주변에 알렸다고 한다.  

 

[그라운드 제로 3] ‘원내정당화의 길’ 고민하는 尹

취재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새로운 정치체제에 대한 고심과 모색도 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계기는 ‘이준석 사태’다. 이 전 대표를 놓고 벌어진 징계와 불복, ‘정치의 사법화’ 등 일련의 사태가 이준석이라는 개인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개인이 당의 권력을 독점화하기 쉬운 ‘중앙당 체제’와 ‘제왕적 당 대표제’에 대한 문제의식이 생겼다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제왕적 당 대표 제도’를 대신할 유력한 대안으로 ‘원내정당화의 길’을 고심하고 있다는 설명도 있다. 원내정당화는 정당의 주요 권한이 중앙당이 아닌 국회 내 의원총회 등으로 이동하고, 원내대표가 정당의 실질적인 대표가 되는 것이다. 국회에서는 ‘미국식 원내정당 체제’로 불리기도 한다. 의원내각제뿐 아니라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미국이나 프랑스도 당 대표 제도는 없다. 정진석 국회부의장과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 등이 이 길을 주창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국민의힘 중진 의원은 “윤 대통령은 ‘제왕적 대통령’에서 탈피하기 위해 청와대에서 대통령실을 용산으로 이전했다. 임기 말에 결과적으로 윤 대통령의 가장 큰 성과가 될 수 있다”면서 “만약 윤 대통령이 ‘제왕적 당 대표’라는 문제의식을 갖고 집권여당을 원내정당화의 길로 이끈다면 새로운 바람이 불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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