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가설’로 뭇매 맞는 광주교육감…2년 전 데자뷔되나
  • 정성환 호남본부 기자 (sisa610@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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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교육감, 개방형 감사관에 ‘고교 동기’ 임용 논란…비난 여론 봇물
교육노조·시민단체 등 감사 독립성 저해 “신임 감사관 자진 사퇴해야”
일각 “2년전 ‘고발사냥’ 우(遇) 되풀이 우려…지금부터는 가설 검증의 시간”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이 8월 4일 광주학생해양수련원에서 열린 ‘2022년 고등학교 학생의회 자치활동 역량 강화 캠프’를 방문해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광주교육청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이 8월 4일 광주학생해양수련원에서 열린 ‘2022년 고등학교 학생의회 자치활동 역량 강화 캠프’를 방문해 학생들의 의견을 청취하며 소통하는 시간을 갖고 있다. ⓒ광주교육청

취임 2개월을 맞은 이정선 광주시교육감이 시련을 겪고 있다. 그 배경에는 크게 두 가지 악재가 도사리고 있다. 자신의 고교 동기를 시교육청 개방형 감사관 임명한데에 따른 감사행정 독립성 논란과 광주시의회의 주요 공약사업 예산 전액 삭감에 따른 정치적 후유증이다. 전자의 경우가 시민 눈높이에서 더 크게 벗어난 탓인지 더 혹독한 비판 도마 위에 오른 모양새다. 

이 교육감은 개방형 감사관 공모에 응모한 7명 가운데 면접 전형에 합격한 2명 중 유병길 전 광주시선거관리위원회 관리관을 최종 낙점했다. 이정선(63) 교육감과 유병길(64) 감사관은 호적상 나이는 한 살 차이지만, 순천 매산고 26회 동기로 3년간 학교를 같이 다녔다. 이에 대해 시교육청 관계자는 “감사관 응모자들의 자기소개서와 감사 운영계획서만 보고 서류전형과 면접전형을 실시했다”며 “인사 실무진들은 전형 과정서 학력 등은 비공개 블라인드여서 언론보도를 보고 나서야 교육감과 감사관이 고교 동기동창이란 사실을 알았다”고 해명했다. 

그럼에도 비판 여론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학벌없는 사회를 위한 시민모임은 1일 보도자료를 내고 “신임 유병길 감사관과 이정선 교육감이 고교 동기 동창이다”며 “감사행정의 독립성을 해치는 등 청렴도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란 여론이 지배적”이라고 비판했다. 광주 교사노조도 지난달 31일 낸 보도자료에서 “고교 동기 감사관이 이정선 교육감의 청렴도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으로 본다”며 “유병길 감사관은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사임을 촉구했다. 광주시의회 시각도 비슷하다. 시의회 관계자는 “의회와 언론이 보고 있는데 독립적인 위상을 가져야 할 감사관에 사실상 고교 친구를 앉힌다는 사실이 놀랍다”며 “감사 독립성을 해칠 수 있는 굉장히 우려스러운 일이 벌어졌다”고 지적했다.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감사관이 교육감 고교 동기이면(p) 감사행정의 독립성을 헤친다(q)는 것이다. 나아가 감사행정이 독립성을 잃으면 교육감의 청렴도 향상에 악영향을 미치므로(q) 사퇴해야 한다(r)는 것이다. 즉 p→q이고 q→r이라는 명제가 도출된다. 

이런 우려 탓일까. 광주시교육청은 민선 교육감 이후 외부 인사를 영입해 철저한 감사를 해 오고 있다. 감사관을 내부 인사로 둘 경우 동료와 조직을 감사하는 데 부담이 따르고, 실제 솜방망이 처벌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장휘국 전 교육감 시절에 개방형 감사관 제도를 도입한 후 검사 출신(김용철)과 감사원 출신(배민)이 감사관을 각각 맡았다. 

교육계 시선도 곱지 않다. 지역 교육계에서 잔뼈가 굵은 한 인사는 꼬집는다. “애초부터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 격(烏飛梨落)으로 의심살만한 일을 했다. 비록 인사혁신처의 인사위 심사를 거치고 블라인드 면접 등 정당한 절차를 거쳤다지만 하필이면 이정선 교육감의 고교 동기가 최종 낙점된 것은 세간의 상식으로도 쉽게 동의할 수 없다. 더욱이 지자체 등을 통틀어 선관위 출신이 감사관을 맡는 것은 이례적이다.” 

그렇다면 여론 주도층의 비판에는 잘못이 없는 것일까. 이들의 비판 요지가 교육감과 감사관이 친분이 두터우면 감사행정의 독립성을 헤친다는 가설(假說)에 기반하고 있다. 문제는 이 가설은 반례가 등장하거나 역이 성립하지 않으면 바로 거짓이 된다는 점이다. 실제로 교육감과 가까운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감사관이 얼마든지 소신껏 감사행정을 펼칠 수 있다. 또한 감사행정의 독립성을 헤치는 경우가 비단 교육감과의 친소관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는 사례도 현장에서 많이 나타나고 있다. 이외에도 영입한 외부인사가 스스로 독립성을 저버리거나 또 다른 외부요인으로 인해 독립성이 침해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가설은 검증을 통해 일정 한계 안에서 진리로 타당성을 갖는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면밀한 검증과 충분한 사실 뒷받침 없이 미리 침소붕대하는 것 아닌지 걱정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또 이 교육감 고교 동기의 감사관 임명이 감사행정 독립성을 저해한 한 원인으로 맞는지 지켜본 뒤 평가해도 늦지 않다는 주장이 즉시 자진사퇴보다 설득력을 얻기도 한다.

가설 수립·검증이나 비판에서 주의할 점이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주장 입증을 위해 유리한 증거는 받아들이고 불리한 것은 버리는 ‘확증편향의 오류’에 빠지는 것이다. 소위 끼워 맞추기식으로 가설을 세우거나 비판을 남발해선 안 된다는 지적이다. 멀리 갈 것도 없다. 불과 2년 전, 시교육청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은 장휘국 전 교육감에 대한 무차별적인 ‘고발 사냥’ 사건은 반면교사다.  

장 전 교육감은 일부 언론과 교육단체가 지난 2020년 제기한 ‘무차별 의혹들’로 인해 곤욕을 치렀다. 이들은 △친인척 인사교류 의혹 △선거 후 답례 의혹 △사립유치원 단체 식사 제공 의혹 △배우자 금품수수 의혹 등으로 장 전 교육감을 고발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결과 모든 의혹이 ‘혐의 없음’으로 결론났다. 3선인 장 전 교육감은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었고, 교육계 수장으로서 의지가 꺾였다는 게 교육청 안팎의 일반적 평가였다. 이뿐만 아니다. 교육 수장이 각종 의혹에 휘말리면서 교육감의 리더십에 상처가 나고 교육청의 행정이 위축되면서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 그리고 시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장 전 교육감이 전국 17개 시도교육감에 대한 직무지지도 평가에서 매달 하위권을 기록한 것도 이러한 의혹 제기가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분석도 나왔다. 그의 입장에선 천신만고 끝에 명예가 일정부분 회복됐지만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을 만한 일이다. 도를 넘는 비판이 독약이 된 대표적인 사례였지만 당사자 일부는 지금까지 뚜렷한 사과없이 다시 새 교육감에 대한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다. 심지어 한 활동가는 유 신임 감사관이 자진사퇴하면 자신이 개방형 감사관 공모에 직접 도전할 의향이 있다며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광주교육청 한 관계자의 말이다. “당시 1년가량 교육감을 괴롭혔던 각종 의혹으로 교육청 직원들도 마음이 편치 않았다. 공인에 대한 의혹 제기가 당연하지만, 모든 의혹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결론나면서 여론 주도 계층에 대한 책임성을 다시한번 되돌아보게 됐다.” 

이 시점에서 비판 자체를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설익은 가설로 민선 교육감이 단행한 인사에 대해 혹독한 비판을 왜, 그리고 무엇을 위해 하는지 원점에서 다시 짚어봐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2년 전 교육감에 행한 우(遇)를 되풀이하는 것 같아 하는 얘기다. 상상만 해도 입맛이 쓰다. 지금부터는 가설 검증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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