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환율’ 못 버틴 외인, 9월 되자마자 6200억원 팔았다
  • 허인회 기자 (underdog@sisajournal.com)
  • 승인 2022.09.0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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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리 인상 계속” ‘파월 발언’ 이후 ‘팔자’로 선회
달러 강세 흐름 지속 가능성에 환차손 우려한 듯
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5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서 직원들이 업무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올 하반기 들어 6조원에 가까운 국내 주식을 사들이며 한국 증시를 이끌었던 외국인 투자자가 지난달 29일부터 다시 ‘팔자’로 돌아섰다. 특히 지난 1일과 2일, 단 이틀 동안 외인의 순매도 규모는 6192억원에 달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 매파(통화 긴축 선호)적 발언을 쏟아낸 이후 달러 강세 기조에 꺾이지 않으면서 환차손 우려로 매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이에 강달러 흐름이 이어질 경우 외국 자본 우려가 현실화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5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외인은 지난 일주일 간(8월 29일~9월 2일) 유가증권시장에서 총 115억원을 순매도했다. 전주(8월 22~26일) 연일 매수를 이어가며 그 주에만 5291억원 어치를 사들인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외인의 매도 행렬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각) 잭슨홀 미팅에서 연례 경제정책 심포지엄 ‘잭슨홀 회의’에서 내놓은 제롬 파월 미 연준 의장 발언 이후 시작됐다. 당시 파월 의장은 8분간의 짧은 연설에서 물가 상승을 뜻하는 인플레이션만 약 45번 언급하며 고통이 따르더라도 미 물가상승률 목표치인 2%에 근접할 때까지 금리 인상을 계속하겠다고 말한 바 있다.

파월 의장의 발언에 외인은 즉각 반응했다. 직후 지난달 29일 열린 한국증시에서 외인은 936억원의 순매도를 보였다. 외인이 순매도를 기록한 건 지난달 12일 이후 약 보름여 만이었다. 특히 9월이 시작하자마자 단 이틀 만에 6000억원이 넘는 물량을 쏟아냈다. 외인은 지난 1일과 2일 각각 3621억원, 2570억원의 주식을 내다팔았다. 전주(8월 22~26일) 순매수(5291억원)보다 많은 물량을 이틀 만에 팔아치운 셈이다.

외인이 매도세로 돌아선 것은 달러 강세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나정환 케이프투자증권 연구원은 “원-달러 환율이 오르고 있음에도 지난 7·8월 외인은 코스피 시장에서 연속적인 순매수세를 보였다”며 “달러 강세가 어느 정도 고점에 근접했고 2023년 금리 인하 사이클 기대감이 반영되면 달러 강세가 진정될 것을 기대한 점이 일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하지만 잭슨홀 연설 이후 내년 미국의 기준금리가 높은 수준에서 유지될 가능성이 높아지자, 달러 강세 흐름이 예상보다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 순매도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추정했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AFP=연합뉴스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 ⓒAFP=연합뉴스

대한상의 “원-달러 환율 상승세, 내년 상반기까지”

원화 가치가 떨어지면 외인은 주식을 팔 때 불리하다. 원화를 달러화로 환산할 때 발생하는 환차손 때문이다. 그럼에도 한국 증시의 가치가 낮다고 판단, 저가 매수를 이어가며 달러 강세가 진정되길 기대했지만 이 같은 예상이 빗나갔다. 결국 환차손 규모가 확대되기 전에 매도로 전략을 바꾼 것으로 보인다.

외인이 환율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사실은 지난주 여실히 드러났다. 지난달 29일 1350.4원으로 시작한 원-달러 환율은 등락을 거듭하면서 지난 2일에는 1362.6원으로 마감했다. 환율이 1360원을 돌파한 것은 지난 2009년 4월 21일(장중 고가 1367원) 이후 13년 4개월여 만이다. 등락을 거듭하는 와중에도 외인은 지난주 환율이 가장 낮았던 지난달 31일(1337.6원)에 7518억원의 매수세를 보였다. 이는 지난주 유일하게 순매수를 기록한 날이다.

문제는 고환율로 인한 자본 유출 우려다. 지난 4일 대한상공회의소 SGI(지속성장이니셔티브)는 ‘최근 환율 상승에 대한 평가’ 보고서를 통해 “향후 미국의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에 중점을 두면서 내년 말까지 긴축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며 “원-달러 환율 상승세가 적어도 내년 상반기까지 유지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고환율 전망에 오는 20~21일 열리는 미국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정례회의에서 ‘자이언트 스텝(한 번에 0.75%포인트 금리인상)’이 결정된다면 금리 역전 폭 확대로 외자 유출 가능성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5일 서울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보다 2.4원 오른 1365원에 개장했다. 장 출발과 함께 전 거래일 기록한 장중 연고점(1363원)을 넘어서며 거래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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