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북핵 대응 실패에 대한 뼈저린 반성 있어야
  • 조경환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19 14:05
  • 호수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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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쓴소리 곧은소리 - 조경환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7차 핵실험 감행하면 한미 대응이 결정적 변곡점 될 것
압도적 전략자산과 억지력 시현하고, 외교·경제적 압박 크게 느끼도록 해야

북한 김정은 정권은 9월8일 핵무력의 지휘 통제와 사용 조건에 관한 명확한 지침을 담은 ‘핵무력정책’ 법령을 채택했다. 언제든 미국 및 남한 등에 대한 선제적 핵공격을 가능하게 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절대로 먼저 핵 포기란 없다. 그 어떤 협상도 없다”고 확언했다. 핵미사일의 질주 끝에 비핵화로 돌아갈 다리를 스스로 불태웠다. 마주 보고 달려가는 ‘치킨게임’에서 극약 처방이다. 한미가 겁을 먹고 방향을 틀길 요구한다. 한반도에서 패권을 틀어쥐겠다는 심산이다. 2018년 3월8일 대북특사로 간 정의용 당시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에게 비핵화 의지를 밝혔던 그다. 같은 달 31일 폼페이오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에게는 “내 아이들이 핵무기를 짊어지고 평생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도 했던 그다.

2019년 2월말 김 위원장이 전용열차로 60시간을 달려간 베트남 하노이, 그 북·미 정상회담장에서 트럼프 당시 미 대통령에게 면전 박대당한 이후 김 위원장은 협상의 문을 닫았다. 자력갱생과 정면승부를 내걸었다. 핵 사용의 문턱을 낮추어왔다. 올해 들어 극초음속·대륙간·잠수함발사·단거리 탄도미사일 도발만 18번이다. 서울과 미군 발진기지에 대한 ‘선제공격’은 2017년 8월8일 북한군 총참모부의 성명에도 나온 바 있다. “예견됐다. 놀랄 일도 없다”는 정부 진단이 안이한 듯 들리나 결코 틀린 말은 아니다.

근 30년간 계속돼온 북핵 저지 노력은 기어이 실패했다. 북·미 양자의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부터 2018년 6·12 싱가포르 합의에 이르기까지 다 무위다. 1997년 12월부터 8개월간 이어진 4자 회담도, 2003년 8월부터 5년을 끌어간 6자 회담의 다자 틀도 한계는 명확했다. ‘비핵화-경제지원-평화체제 구축’의 3단계 논리 구조는 북한의 잘게 쪼개 협상 이행을 지연하는 ‘살라미 전술’과 상습적 거짓말에 막혔다. 북한의 도발에 합의는 번번이 깨졌다. 협상 실패 뒤의 강경책도 위기 고조의 ‘벼랑 끝 전술’에 맥을 추지 못했다.

2018년 4월27일 당시 문재인 대통령(오른쪽)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정상회담에서 ‘도보다리’ 산책을 하며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한국공동사진기자단

北, 유화책 믿을 리도 강경책 겁낼 리도 만무

진영에 따라 대응은 고착됐다. 진보 정부는 유화적 ‘햇볕정책’에, 보수 정부는 한미 동맹에 기반한 ‘견제·봉쇄’에 기댔다. 북한이 그 유화책을 믿을 리도, 그 강경책을 겁낼 리도 만무했다. 북한에 자양분이 되고, 내부 결속의 동력만 됐다. 김정은 집권 초기를 상대한 박근혜 정부는 ‘통일 대박’을 외치며 북한에 다가가다가 강경 기조로 돌변했다. 순서가 잘못됐다. 2015년 8월 북한의 ‘목함지뢰’ 도발로 인한 남북 대치 국면에서 궁지에 몰린 북한이 타협을 제의하자 쉽게 꼬리를 내렸다. 내성만 키워주었다. 하노이 회담의 결렬은 문재인 정부의 정책 실패다. 북한과 미국의 의도를 오독했다. 희망적 사고의 낙관이 결렬 그 직전까지 지배했다. 김정은 집권기 10년, 비핵화 기회를 그렇게 소비했다.

역대 집권세력은 공히 ‘핵을 가진 북한’을 애써 외면하고 국내정치에 활용했다. 지금도 상대를 탓한다. 그 책임 회피와 비겁함이 오늘의 ‘사실상 핵 국가’를 배태했다.

핵무기를 가진 북한에 대해 억제력을 유지하며 계속 협상을 하자고 한다면, 누가 협상을 하든 더 어렵다. 비핵화 함수는 더 복합적이다. 비핵화의 첫발을 떼기도 전에 ‘한반도 평화의 봄’을 예찬했던 민족적 감상주의자, “김정은은 경제를 택했고 기업 CEO 같다”면서 돈으로 핵 거래를 장담하는 교조적 진보, “북핵은 생존용이며, 남한을 겨냥한 것이 아니다”는 맹목적 평화론자, 이들부터 회고와 반성이 있어야 마땅하다. 핵에는 핵으로 맞서야 한다는 단순한 현실주의자도 매한가지다. 이제는 국민 총의가 모아지면 좋겠다.

신냉전은 선명하다. 북한은 편승한다. 시진핑의 중국과 푸틴의 러시아는 합동 군사훈련을 이어간다. 시 주석은 9월9일 북한 정권 수립일에 729자 장문의 축전을 김 위원장 앞으로 보냈다. 푸틴 대통령은 중국통이자 친북파인 모르굴로프 외무차관을 최근 주중대사로 임명했다.

 

확장억제 조치의 구체화와 한국의 역할 정립 시급

북·중·러의 결집은 대북 제재 전열의 이완이다. 중·러의 비토는 유엔 안보리의 추가 제재 결의안 등 유엔 차원의 대응을 막는다. 안 그래도 5년째 수출입이 사실상 전면 중단되고 광업·중화학공업이 반 토막 나도 ‘물과 공기만 있으면’ 전체주의적 내핍으로 견뎌내는 북한이다. 가상화폐 탈취와 고숙련 IT 노동자 위장 취업 등으로 자금을 조달한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19일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 국장 조문에 이어, 20일 유엔총회 첫 연설 및 미·일·캐나다 정상과의 회담에 나선다. 서방은 물론 국제사회 전체가 동일한 위협 인식 아래 단일대오로 ‘북핵 절대 불용’을 실행하도록 설득하는 치열한 외교의 장을 기대한다. 한미의 포괄적 전략동맹이 눈앞의 실리 때문에 흐트러지지 않도록 다짐을 받아야 한다. 일본의 기꺼운 조력을 얻어내야 한다.

북한이 7차 핵실험을 감행할 경우 한미의 대응은 결정적 변곡점이다. 여느 때와는 달라야 한다. 압도적 전략자산과 억지력을 시현하고, 외교·경제적 압박을 뼈저리게 느끼도록 치밀하게 대비 중이라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북한은 예측불허다. 서해 섬을 기습 점거하고 전술핵 카드를 쓰면 ‘핵 인질’이 된다. 위기관리 국면이다. 우리 군의 북핵 위협 대응 ‘3축 체계’ 실효성 제고 및 미 확장억제와 연결, 그리고 확장억제 조치의 구체화와 한국의 역할 정립이 시급한 이유다. 대화의 문을 인내심을 갖고 열어놓되, 북한 같은 기저질환자에게 잘 듣는 처방은 찾으면 얼마든지 있다. 일례로 ‘유엔 회원국 특권 정지’는 2016년 대북제재 결의안 2321호에도 들어있다.

핵으로 ‘인민’을 먹여살릴 수 없음은 김 위원장도 잘 안다. 165개의 핵탄두로 인도와의 핵 경쟁에서 우위를 점한 파키스탄은 최근 석 달째 호우로 마을 300여 곳이 물에 완전히 잠겼다. 1500여 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이 약 3300만 명이다. 수인성 질병은 심각한 상황이다. 북한이 핵으로 옥쇄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잘 보여준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조경환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
조경환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

필자 조경환은

외교부 샌프란시스코 부총영사와 국가정보원 고위공무원을 지냈다. 행정학박사이다.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과 대통령 직속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을 거쳐 강원연구원과 통일연구원 초빙연구위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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