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일 벗은 신동빈의 진짜 야심작, 신유열
  • 오종탁 기자 (amos@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0 10:05
  • 호수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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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그룹 후계구도 대해부 ①롯데그룹] 신유열 상무, 일본에서 오랜 기간 출격 준비
한국 롯데 데뷔와 동시에 경영 행보 본격화한 배경 주목

대기업 총수 일가 3·4세들이 속속 경영 일선에 나서고 있다. 이들의 일거수일투족은 물론 소속 계열사 동향도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모습이다. 특히 글로벌 경제위기와 산업 패러다임 대전환기를 맞아 효과적인 세대교체, 신(新)성장동력 발굴 등은 개별 대기업의 명운을 가를 키워드로 꼽힌다. 시사저널은 연재 기획을 통해 오너가 있는 주요 대기업의 후계 구도와 관련 인물들을 차례로 조명해 본다.<편집자 주> 

“롯데그룹 후계자가 드디어 베일을 벗었다.” “3세 승계에 시동이 걸렸다.” 
최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67)이 동남아시아 출장 일정에 아들 신유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36)를 대동하자 쏟아진 대중의 반응이다. 롯데그룹 측은 “신 상무가 계열사 지분도 갖지 않은 상황이라 3세 경영을 논하긴 이르다. 경영수업의 일환일 뿐”이라며 확대해석을 경계하고 있다. 하지만 언젠가 신 상무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이 본격화하리라고 예측하는 건 어렵지 않다. 신 상무가 현재 롯데가(家) 3세 승계 구도에서 유일무이한 존재감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동생 신규미씨(34)와 신승은씨(30), 큰아버지인 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현 SDJ코퍼레이션 회장)의 아들 신정훈씨(29) 등 잠재적 경쟁자 중 지분 확보나 경영 행보에 나선 이는 아직 아무도 없다. 

2020년 1월22일 서울 송파구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창업주 영결식에 참석한 신유 열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왼쪽)와 사촌 신정훈씨(신동주 전 일본 롯데홀딩스 부회장 아들)ⓒ시사저널 박정훈

경쟁자 중 앞섰음에도 ‘조심 또 조심’ 

그럼에도 롯데 측이 승계에 관해 극도로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배경엔 신 상무의 국적·병역 리스크, 사업 실적 악화 등 복합적인 사정이 있다. 신 상무는 8월3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아버지 신 회장이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과 면담하는 자리에 배석했다. 이날 스포트라이트는 그룹의 공식 직함을 달고 처음 공개 석상에 나타난 신 상무에게 집중됐다. 베트남 현지 방송매체에 비친 신 상무는 무표정으로 말석에 앉아 미동도 없이 신 회장과 푹 주석 쪽을 응시했다. 아버지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겠다는 자세가 엿보였다. 한편으론 다소 얼어있는 것 같았다. 신 상무 옆으론 강성현 롯데쇼핑 마트사업부 대표이사 부사장,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 대표이사 부사장, 하석주 롯데건설 대표이사 사장, 안세진 호텔롯데 대표이사 사장, 김상현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 등 그룹 수뇌부가 나란히 앉아있었다.   

앞서 신 상무는 신 회장과 일본에서 전세기를 타고 동남아 출장길에 올랐다. 두 사람은 우선 8월29일 롯데의 해외투자 중 최대 규모인 인도네시아 ‘라인 프로젝트’(롯데케미칼의 초대형 석유화학단지 조성 사업) 현장을 찾아 프로젝트 진행 현황을 확인했다. 8월30일에는 베트남으로 날아가 다음 날 푹 주석을 만난 뒤 9월1일 하노이의 스타레이크 신도시(롯데몰 하노이와 롯데건설이 수주) 방문, 9월2일 호찌민 뚜띠엠 에코스마트시티(롯데건설의 대형 복합단지 개발사업) 착공식 등 모든 일정에 동행했다. 뚜띠엠 에코스마트시티 착공식 때 다시 언론에 포착된 신 상무는 신 회장을 시종일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했다. 신 회장이 축사하는 장면을 휴대전화로 촬영하기도 했다. 

신 회장은 베트남에서 에코스마트시티 착공식에만 참석하려던 계획을 조정해 푹 주석, 판반마이 호찌민시 인민위원장 등 베트남 정·관계 인사들과의 면담 일정도 잡은 것으로 알려졌다. 덕분에 신 상무는 현지 사업 추진을 위해 긴밀히 협력해야 할 파트너들과 교류의 물꼬를 트게 됐다. 

2022년 8월3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오른쪽에서 첫번 째)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에서 두번 째)이 면담 후 배석자들과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왼쪽부터)하석주 롯데건설 대표이사 사장, 신유열 상무, 안세진 호텔롯데 대표이사 사장, 강성현 롯데쇼핑 마트사업부 대표이사 부사장, 김상현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 이동우 롯데지주 대표이사 부회장 등이 배석했다.ⓒ베트남 VNEWS 유튜브 영상
2022년 8월31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오른쪽에서 첫번 째)과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오른쪽에서 두번 째)이 면담 후 배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이날 면담엔 (왼쪽부터)하석주 롯데건설 대표이사 사장, 신유열 상무, 안세진 호텔롯데 대표이사 사장, 강성현 롯데쇼핑 마트사업부 대표이사 부사장, 김상현 롯데쇼핑 대표이사 부회장, 정준호 롯데쇼핑 백화점사업부 대표이사 부사장 등이 배석했다.ⓒ베트남 VNEWS 유튜브 영상

 

2022년 8월31일 하노이에서 열린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과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국가주석(사진에선 안 나타남) 간 면담 자리에 신유열 상무(맨 왼쪽)가 배석해 있다.ⓒ베트남 VNEWS 유튜브 영상

3세 승계 정지작업 살뜰히 챙겨온 신동빈 

이번 일정은 신 회장의 8·15 광복절 특별사면 후 첫 출장이란 점에서도 특별했다. 사면이 발표된 직후 롯데는 정부와 국민에 대해 감사를 표시하며 적극적으로 국내외 사업을 추진해 복합 경제위기 극복에 기여하겠다고 밝혔다. 신 회장으로선 대형 사업들을 아우르는 동남아 출장이 경영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겠다는 의지를 나타낼 더없는 기회였던 셈이다. 이런 의미를 지닌 출장 일정 중 아들 신 상무를 대대적으로 노출시킨 것은 향후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둔 포석이란 해석을 낳았다. 

신 상무는 불과 2년여 전만 해도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재벌 3세였다. 2020년 1월 할아버지인 신격호 롯데 창업주 장례식 전까지 국내의 공개 석상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다. 다만 신 회장은 물밑으로 신 상무의 ‘스펙’을 만드는 등 후계자로 세우기 위한 정지작업을 살뜰히 해왔다. 

일본 국적(일본명 시게미쓰 사토시)인 신 상무는 1986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신 회장이 일본 노무라증권 영국 런던 지점에 근무하던 시절이다. 태어난 이듬해쯤 부모와 함께 일본 도쿄로 온 신 상무는 일본 사학 명문 아오야마가쿠인의 유치원, 초등학교, 중등학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아버지 신 회장, 큰아버지 신동주 전 부회장이 거쳐간 코스다. 2세들이 같은 재단 대학(아오야마가쿠인대)을 선택한 것과 달리 신 상무는 게이오대에 진학했다. 컬럼비아대 경영학석사(MBA) 학력은 아버지 신 회장과 동일하다. 신 회장은 2013년 자신의 출신 학교이자 신 상무가 재학 중인 컬럼비아대에 40억원을 기부하며 화제를 모았다. 

노무라증권 근무 이력도 아버지가 먼저 걸어간 길이었다. 신 상무는 2014년 노무라증권에 들어가 싱가포르 법인 등에서 근무하다가 2020년 상반기에 퇴사했다. 일본 롯데 계열사인 ㈜롯데에 부장급으로 입사하기 위해서였다. 해당 사실은 그해 10월에야 국내 언론에 보도됐다. 한국 롯데 경영진 대부분도 뉴스를 보고 알았을 정도다. 신 상무가 ㈜롯데에 입사한 시점 전후로 신 회장은 일본에 두 달 넘게 머물렀다. 당시 아들의 그룹 입성에 관한 제반 사항을 꼼꼼히 챙긴 것으로 전해졌다. 

신 상무는 ㈜롯데에서 유통기획부 리테일 담당으로 있다가 지난해 4월 일본 롯데홀딩스 영업전략부로 자리를 옮겼다. 올해 5월 그가 롯데케미칼 일본지사에 상무로 합류했다는 소식이 역시 시차를 두고 들려왔다. 이로써 신 상무의 ‘기본 이력 갖추기’가 마무리됐다. 신 회장은 1988년 일본 롯데상사에 부장으로 입사해 판매·영업 업무를 익히고 1990년 롯데케미칼 전신인 호남석유화학 상무가 되면서부터 그룹 경영 전면에 나서기 시작했다. 지금의 신 상무 나이와 비슷한 35세 때였다. 일본 재계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매출이 미미한 수준이고 롯데케미칼의 현지 인지도도 거의 없다”며 “신 회장이 신 상무를 롯데케미칼 일본지사 상무로 세우는 데 있어 당장의 실효성이 아닌 가문의 전통을 우선 고려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신 상무를 한국 롯데 경영 무대로 올리기에 앞서 일본 롯데홀딩스보다 한국 롯데 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의 직함이 훨씬 더 낫다고 판단했을 여지도 많다”고 덧붙였다. 

‘부친 판박이’지만 환경은 훨씬 더 악화 

신 상무가 신 회장처럼 국내 사업장에서 경영수업을 받지 못하는 상황은 그의 국적 문제와 관계있다. 신 상무는 일본 국적만 보유했다. 국민 정서상 일본 국적으로는 한국 롯데 경영권을 승계받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신 회장의 경우 일본과 한국 이중 국적 상태에서 일본 국적을 포기한 바 있다. 올해 만 35세인 신 상무가 곧장 일본 국적을 포기하면 병역의무를 이행해야 한다. 이에 신 상무가 병역이 면제되는 만 38세(2025년) 이후 한국으로 귀화해 국적과 병역 문제를 동시에 해결하려 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재계는 내다본다. 이 밖에 현재진행형인 2세들 간 경영권 분쟁과 그룹 지배구조 개편 난항도 변수다. 

한마디로 롯데의 3세 승계 의지는 확고해 보이나 갈 길은 첩첩산중이다. 신 회장 부자는 일단 성과 창출을 통해 리스크를 극복해 나가겠다는 1차 목표를 세운 듯하다. 롯데 관계자는 “기초소재 중심의 사업구조인 롯데케미칼은 첨단소재 분야 등 신사업 발굴을 위해 우수 인력을 대거 모집해 왔다”면서 “관련한 이론과 실무에 글로벌 네트워크까지 겸비한 신 상무는 회사가 추구하는 인재상에 부합한다. 오너 일가로서의 경영 수업 차원을 넘어 실질적으로 사업에 도움을 줄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 ‘신동빈-신유열’ 승계 구도 속 화학사업 더욱 부각  

신유열 상무의 존재감이 부각되면서 그가 새로 몸담게 된 롯데케미칼도 그룹 내 위상을 부쩍 키우고 있다. 롯데그룹은 화학사업 비중을 늘려가는 동시에 ‘신동빈-신유열’ 후계 구도를 자연스레 공식화하는 모습이다. 

롯데가 지난해 말 출간한 신격호 창업주 회고록 《열정은 잠들지 않는다》에는 화학사업 추진 과정과 발전상이 중점적으로 다뤄져 있다. “호남석유화학(롯데케미칼의 전신)을 반석 위에 올려놓고 싶어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MBA를 마치고 일본 노무라증권, 롯데상사에서 경력을 쌓은 차남 동빈을 1990년부터 5년간 호남석유화학에서 일하게 했다” “호남석유화학은 해외사업에 적극 나서면서 2010년 매출 14조원을 올렸다. 사업 초기 고전을 면치 못하던 회사가 그룹 내에서 유통에 이어 두 번째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래 지향적인 회사로 탈바꿈했다”는 등 신 창업주 회고를 책에 기록한 것은 신동빈 회장에서 신유열 상무로의 경영권 승계 작업을 철학적으로 뒷받침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2012년 롯데케미칼로 새롭게 출발한 롯데의 화학사업은 이제 유통을 뛰어넘어 그룹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됐다. 지난해 롯데그룹의 매출 중 화학사업군이 차지하는 비중은 33%에 달해, 27.5%인 유통사업군을 압도했다. 유통사업의 그룹 내 매출 비중은 2017년 41%였으나, 하락세가 이어지며 지난해 처음으로 20%대로 떨어져 화학사업에 첫 역전을 허용했다. 같은 기간 화학 사업군의 매출 비중은 27%에서 33%로 상승했다.

유통 사업 부진과 화학 사업 성장이 맞물리며 매출 비중 역전이 일어났다. 지난해 롯데 유통 사업군 회사 중 롯데쇼핑의 백화점 사업부와 롯데홈쇼핑 정도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연결기준 매출이 전년보다 줄었다. 반면 지난해 롯데케미칼은 매출이 45.7% 증가했다.

롯데는 화학사업에 대한 투자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롯데케미칼은 최근 발표한 2030 비전·성장 전략을 통해 2030년까지 총 10조원을 투자해 수소 에너지와 배터리 소재 사업을 키우고 글로벌 배터리 소재 선두기업으로 거듭나겠다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지난해 17조원인 매출 규모는 2030년까지 50조원으로 늘리겠다고 밝혔다.  

이미 신 회장은 호남석유화학에서 경영수업을 받은 뒤부터 해당 사업을 키우는 데 주력해 왔다. 향후 아들 신 상무에게 바통을 넘겨줘야 하지만 상황이 녹록지만은 않다. 올해 들어 원료 가격 상승과 수요 둔화로 롯데케미칼의 실적은 부진을 면치 못하는 중이다. 화학 부문 실적이 투자 지출 부담을 완충하지 못할 경우 그룹 전반이 흔들릴 수 있다. 롯데케미칼과 그룹 전체를 구해낼 실마리는 해외 투자와 신사업 부문에서만 엿보인다. 신 상무의 롯데케미칼 내 직책이 바로 해외 투자와 신사업 발굴 담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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