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혐오냐, 보복 살인이냐…‘신당역 스토킹 살인’ 본질은
  • 박나영 기자 (bohen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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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단을 위해 쓰는 용어를 문제로 보는 것이 더 문제”
진보당 당원들이 20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전 당원의 추모행동 돌입을 선포하고 '여성 혐오 젠더폭력' 근절을 위한 사회시스템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진보당 당원들이 20일 오전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전 당원의 추모행동 돌입을 선포하고 '여성 혐오 젠더폭력' 근절을 위한 사회시스템 마련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을 "여성 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고 발언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에 대한 비판이 거세지고 있다. 이를 두고 처방을 내리기 위해서는 진단이 필요한데, 진단을 하기 위한 용어 사용을 꺼리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아울러 여성 혐오냐 아니냐를 따지는 데 몰입하는 것은 책임 소재를 가리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도 있다. 

진보당, 녹색당, 전국여성연대 등은 19일 오전 여성가족부가 있는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수많은 여성들이 '내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었다'고 외치는데 여가부 장관은 누구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가"라며 "김현숙 장관은 망언에 대해 사과하고 사퇴하라"고 주장했다. 지난 14일 서울지하철 2호선 신당역에서 일어난 스토킹 살인사건을 두고 "여성 혐오 범죄로 보지 않는다. 여성과 남성의 프레임(틀)로 보는 것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 김 장관의 사퇴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들 단체에 따르면 올해 사법처리된 20대 스토킹 피해자 1285명 중 1113명이 여성이었고, 스토킹.성폭력 피해자 또한 절대 다수가 여성이었다. 이들 단체는 "한국 사회에서 이번 사건을 젠더폭력으로 보지 않는다면 도대체 무엇으로 볼 수 있단 말인가"라며 "윤석열 대통령은 이번 사건에 엄중이 대응하겠다며 '스토킹 방지법'을 보완하라고 지시했지만 성폭력이 왜 발생하는지 구조적 관점 없이는 성폭력 범죄를 종실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비판이 커지자 여가부는 학계와 여성계의 논의가 필요한 사항이라며 논란에 대한 언급을 피하는 모습이다. 조민경 여가부 대변인은 전날 브리핑에서 "학계에서도 논의하는 상황인 것 같고, 논의를 한 번 해야하지 않을까"라고만 답했다. 이를 두고 여성정책과 성폭력 방지 업무를 하고 있는 정부부처인 여가부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한 채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비판이 나온다. 

Ⓒ연합뉴스
16일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역무원 스토킹 피살 사건'이 발생한 서울 지하철 2호선 신당역 여자화장실 입구에 마련된 추모공간에서 헌화를 마친 뒤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나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신당역 사건은 명백히 여성 혐오 범죄다. 여성을 숭배하고 찬양하지만 한편으로 비하하고 사물화하는 전형적인 '미소지니(Misogyny) 범죄'로 볼 수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진단을 위해 쓰는 용어를 문제시하는 것이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기 위해서 용어를 붙이는 것이지, 갈등 조장을 위해 붙이는 것이 아니다. 본질을 알아야 이런 일이 또 발생하지 않도록 법적 문화적으로 적절한 처방을 할 게 아니냐"라면서 "용어 사용을 못하게 하니 처방을 할 수 없게 되는 꼴"이라고 설명했다. 

지금 여성 혐오 범죄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은 오히려 문제 해결과 멀어지는 길이라는 의견도 있다. 권김현영 여성현실연구소 소장은 "모든 젠더 기반 폭력에 여성 혐오가 깔려있는 것은 당연해서 논의할 필요가 없다"라며 "지금 여성 혐오 범죄냐 아니냐는 논의로 편 가르기 진영논리를 만드는 것은 황당하고,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안된다"고 비판했다. 그는 "현재는 스토킹 범죄 이후 피해자 구제를 위해 정부가 어떤 행정조치를 했고, 현재까지 왜 제대로 안되고 있는지, (일련의 사건들이) 여가부를 없애겠다는 정부의 논리와 어떤 관련이 있는지 등을 논의해야 할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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