론스타 사건이 남긴 교훈 [김상철의 경제 톺아보기]
  • 김상철 경제 칼럼니스트(전 MBC 논설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4 16:05
  • 호수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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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DS 절차 시작한 지 10년 만에 중재판정 나와
여론 의식한 외환은행 무리한 매각에 아쉬움

2012년 론스타가 우리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 분쟁 해결절차(ISDS)를 시작한 지 10년 만에 중재판정이 나왔다. 정부가 물어야 할 손해배상액은 약 2억1700만 달러, 우리 돈으로 3000억원 정도 된다. 여기에 지연이자를 더하고, 중재재판부에 낼 돈에 변호인단 비용이 추가된다. 소송에서 지연이자를 제외한 당초 론스타의 청구액은 46억8000만 달러였다. 청구금액의 4.6%만 인용됐다는 점에서 선방했다는 평가도 있지만 그렇다고 우리 정부가 이긴 건 아니다. 중재재판부는 소송 비용과 관련해 각자가 지출한 비용을 부담하고 중재 비용도 동등하게 부담하도록 했다. 한국 정부가 이겼다면 이렇게 비용을 부담시키지는 않는다.

ⓒ시사저널 박은숙
더불어민주당 민병덕 의원(오른쪽), 정의당 배진교 의원(오른쪽 세 번째)과 시민사회단체 대표들이 9월1일 국회 소통관에서 ‘론스타 배상 결과 관련 정당·시민사회단체 공동기자회견’을 하고 있다.ⓒ시사저널 박은숙

금융위의 부당한 영향력 행사가 관건

사실 처음부터 론스타는 터무니없이 부풀려 청구했다. 2년 전, 론스타는 우리 정부에 약간의 조세 분쟁과 하나금융에 대한 매각 건만 돈을 받겠다는 거래를 제안했었다. 론스타도 내심 무리한 주장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무리한 주장을 제외하고 보면 분쟁의 핵심은 역시 론스타가 외환은행을 매각하는 과정에 금융위원회가 부당하게 영향력을 행사해 론스타에 손해를 끼쳤는가 하는 부분이었다. 중재재판부는 한국 정부가 “권한 밖으로” 시간을 끌었고, 이로 인해 최종 매각가가 낮아졌으니 그 손해의 절반을 물어주라고 결정했다. 이 논점의 청구액은 4억3300만 달러였는데 그 50%를 물어주게 됐다. 이 문제에서는 승패를 반반으로 보는 게 맞겠다. 3000억원도 적은 돈은 아니다. 처음부터 제대로 했다면 물어줄 일이 있었을 리 없다. 론스타의 사례를 다시 들여다보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다.

2003년 8월 론스타는 1조3000억원에 주식매수 옵션 8000억원을 더해 모두 2조1000억원에 외환은행 지분 64.41%를 매입했다. 주가가 뛰자 인수 석 달 만에 주식 13%를 장내 매각해 1조2000억원을 번다. 3년이 지나고 본격적으로 재매각에 나섰다. 2006년 국민은행, 2007년에는 HSBC와 계약이 깨진 뒤 마침내 2012년 하나금융지주에 4조7000억원을 받고 넘겼다. 이 과정에서 금융 당국의 승인 지연으로 거래가 늦어져 손해를 봤다며 론스타는 우리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금융 당국이 승인을 미룬 공식적인 이유는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이었다. 2003년 11월 외환은행이 외환카드를 합병하는 과정에서 감자설을 퍼뜨려 외환카드 주가를 떨어뜨린 뒤 싼값에 주식을 샀다는 내용이다. 검찰은 주가조작 사건에 론스타가 개입했다고 보고 2007년 론스타코리아 대표를 증권거래법 위반 혐의로 재판에 넘긴다. 2007년 시작한 이 재판은 2011년 유죄로 결론이 났다. 재판 결과가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외환은행 매각 승인을 미루던 금융위는 2011년 11월에야 주식 매각을 명령했다.

하지만 중재재판부는 심사 절차를 지연시킨 것이 “정당한 정책적 목적” 또는 “정당한 규제 목적”이 아니라 “정치인들과 대중의 비판을 피하려는 정치적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공정하고 공평한 대우 의무를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주가조작 사건은 배상액을 요구액의 절반으로 줄이는 사유로만 인정됐을 뿐이다. 자칫 꼼짝없이 수조원의 돈을 물어줬을 수도 있었다. 중재재판부는 2011년 3월27일 발효된 새로운 한-벨기에·룩셈부르크 투자보장협정의 발효일을 기산일로 판단했다. 그 이전까지 적용됐던 과거의 조약은 보호의 대상이 되는 투자를 농업, 공업, 광업, 임업, 통신 및 관광 분야 사업으로 한정하고 있었다. 반면에 새 조약은 보호의 대상이 되는 투자를 모든 사업으로 확대했다. 이 때문에 론스타가 외환은행 지분을 HSBC에 매각하려다가 무산된 것과 관련된 분쟁을 포함해 2011년 3월 이전에 일어난 문제는 모두 중재 관할권이 없다는 이유로 각하됐다. 새 조약 발효 후 발생했다는 이유로 외환은행 지분을 하나금융에 매각한 것과 관련한 분쟁만 관할권이 인정됐다. 만약 새 조약이 일찍 발효됐다면 정부의 배상책임은 크게 늘었을 것이다.

여기서 더욱 중요한 대목은 ‘지연’이라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부작위(Inaction)를 규정을 위반한 행위(Action)로 판단했다는 점이다. 해야 할 일은 하면 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규정 위반이다. 하면 안 되는 일을 하는 것이 문제인 것처럼 당연히 할 것으로 기대되는 일을 하지 않은 것도 문제라는 말이다. 이건 생각보다 중요한 일이다. 행정 당국이 움직이지 않아 제도와 현실이 따로 노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론스타의 경우에만 적용돼야 하는 얘기는 아닐 것이다.

판정 결과가 알려지고 난 뒤 사건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는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도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정권이 바뀌고 2006년 뒤늦게 감사원은 외환은행이 론스타에 부적절하게 ‘헐값 매각’됐다는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검찰은 당시 변양호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등 4명을 배임 혐의로 기소했다. 하지만 법원은 부적절한 행위를 부인할 수는 없지만, 엄격하게 봤을 때 배임 행위나 의사가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이들은 2010년 대법원에서 무죄를 확정받는다. 정책적 판단에 형사적인 책임을 묻는 것은 무리다. 당시의 상황을 지금의 기준으로 재단하는 것은 옳지 않다.

 

정부, 판정 취소 신청한다지만 제한적

사실 당시 국내외를 불문하고 외환은행 인수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없었다. 유일하게 손을 들고 나선 것이 ‘사모펀드’ 론스타였다. 하지만 론스타의 외환은행 ‘인수 자격’에 대한 문제 제기는 가능하다. 근본적으로 론스타는 외환은행 인수 당시 부동산 등 비금융 자산을 초과 보유했기 때문에 한국의 은행을 매입할 자격이 없었다. 돌이켜본다면 아무리 급하더라도 원칙을 포기하지 말아야 했다. BIS 비율이 낮아 보완 노력이 필요했고 정상적인 매각이 불가능했다면 여론의 비판을 받더라도 당시 지침에 정해진 대로 경영개선 요구를 하고, 절차를 밟아 순서대로 경영진을 교체한 뒤 공적자금을 투입하는 편이 나았을 것이다.

편법은 언제나 대가를 치르게 한다. 지금의 경제위기를 이기는 방법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길게 보면 언제나 원칙대로 대응하는 것이 사회적 비용을 최소화하는 길이다. 론스타의 사례가 남기는 가장 중요한 교훈이 아닌가 싶다. 이제 중재재판부의 판정이 나왔고 앞으로 120일 안에 한국은 판정을 이행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ISDS는 원래 한 번의 판정으로 확정되는 단심제다. 판정 취소를 신청할 수는 있지만, 취소 사유는 매우 제한적이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의신청을 검토할 것이며, 승산이 있다고 했다. 법무부는 취소 신청과 판정에 대한 집행정지도 함께 신청할 방침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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