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6강’ 손흥민 아닌 김민재에 달렸다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3 15:05
  • 호수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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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 상대 포르투갈·우루과이의 호날두·수아레스 등 세계적 공격수 막는 게 관건
세리에A 최고 수비수로 평가받는 김민재의 비중 절대적

‘Mostro(몬스터)’ ‘Il muro(벽)’. 국가대표 센터백 김민재를 향한 이탈리아 언론의 찬사에는 항상 이 같은 표현이 따른다. 지난 8월 이탈리아 세리에A의 강호 SSC나폴리에 입단한 김민재는 불과 한 달 만에 최고의 센터백으로 등극했다. 유럽 축구의 빅리그 중에서도 최고의 수비수들이 우글거린다는 이탈리아 무대에 섰지만, 김민재를 향한 호평은 하루도 멈출 날이 없었다.

한국시간으로 9월19일 밀라노의 산 시로에서 열린 2022~23 시즌 세리에A 7라운드 AC밀란과의 경기는 김민재를 한 단계 더 올린 기회였다. 이날 나폴리는 원정임에도 지난 시즌 챔피언인 밀란에 2대1로 승리했다. 나폴리는 5승 2무를 기록, 골득실에서 아탈란타에 앞서 세리에A 선두가 됐다.

이날 김민재가 상대해야 했던 선수는 프랑스 국가대표 올리비에 지루였다. 김민재와 지루의 승부는 90분 내내 땀을 쥐게 만들었다. 전반 22분 지루가 헤딩을 시도하자 김민재는 경합에 나서 정확한 슛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3분 뒤에는 김민재가 견제했지만 지루는 발뒤꿈치를 이용한 이른바 전갈 슛을 시도했다. 후반 들어 김민재의 영리함이 돋보였다. 경합 과정에서 지루가 공을 따내더라도 나폴리 문전을 향하지 못하도록 위치 선정에 신경 써 상대가 등을 지게 했다. 지루는 헤딩에 성공해도 위협적인 장면을 만들지 못하고 뒤쪽으로 보내야만 했다. 그 와중에 후반 17분에는 페널티박스 안에서 살레마키어스의 결정적인 슛까지 몸을 던져 막아냈다.

하이라이트는 밀란이 펼친 최후의 공격이었다. 추가 시간이 6분이나 주어졌는데, 그 마지막 지점에 문전으로 날아온 크로스를 김민재가 막았다. 왼발을 높이 들어 밀란의 미드필더인 브라임 디아스의 스탠딩 헤딩슛을 막아냈다. 디아스는 김민재의 발이 높고 위험했다며 페널티킥을 주장했지만 느린 화면으로 봤을 때 깔끔하게 공만 걷어낸 묘기였다. 수비 직후 한 골 차 승리를 확신한 김민재는 포효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계화면은 곧바로 관중석에서 안타까움에 머리를 감싸쥐고 한숨을 쉬는 세계적인 수비수 출신의 파울로 말디니 AC밀란 단장을 비춰 이날 김민재의 활약상을 더 극적으로 만들었다.

나폴리의 수비수 김민재(왼쪽)와 AC밀란의 공격수 브라임 디아스가 9월18일 세리에A 경기에서 공중볼 경합을 하고 있다.ⓒAFP 연합

세리에A 수비수 가운데 평점 1위

지난여름 핵심 선수인 센터백 칼리두 쿨리발리를 첼시로 보낸 나폴리는 대체자로 김민재를 낙점했다. 지난해 여름 터키 쉬페르리그의 페네르바체에 입성한 김민재는 유럽 진출 첫해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나폴리는 곧바로 이적료 1950만 유로(약 265억원)를 투자해 김민재를 품었다. 베이징에서 페네르바체로 갈 때보다 몸값이 6배 넘게 올랐다. 다만 의심도 있었다. 터키의 쉬페르리그는 리그 랭킹 21위지만, 이탈리아 세리에A는 4위에 랭크될 만큼 세계 톱클래스 수준이다. 세계적인 리그에서 그대로 경쟁력이 발휘될지 의문이었다.

김민재 입성 당시 이탈리아 언론에서는 넓은 커버 능력과 지상볼 경합 능력은 매력적이지만, 힘과 공중볼 능력에서는 쿨리발리보다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한 달여가 지난 지금 김민재의 공중볼 경합 능력은 수치로 돋보이고 있다. 밀란전이 끝난 뒤 김민재는 세리에A에서 경기당 공중볼 경합 순위 1위에 올랐다. 경기당 평균 4회의 경합 성공을 기록했는데 2위인 칼렙 오콜리(아탈란타)보다 0.5회 많다.

나폴리의 루치아노 스팔레티 감독은 “김민재는 확실한 선수다. 쿨리발리와 비교해 묻는다면, 김민재는 나폴리에서 올바른 길을 가고 있다고 답하겠다. 상대와의 일대일 상황에서도 걱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직접 비교는 하지 않았지만 지난 수년간 세리에A 최고 수비수로 군림했던 쿨리발리의 공백을 완벽히 메웠다는 평가였다. 센터백 파트너인 아미르 라흐마니와의 호흡도 찰떡이다. 중앙 수비 조합의 견고함 속에 나폴리는 세리에A에서 두 번째로 낮은 팀 실점(7경기 5실점)을 기록 중이다.

평점만 봐도 김민재의 능력에 대한 호평을 읽을 수 있다. 유럽 축구 통계전문 사이트인 ‘후스코어드닷컴’과 ‘풋몹’ 모두 세리에A 전체 평점에서 김민재를 3위에 올려놨다. 김민재보다 앞선 선수는 AS로마의 공격수 파울로 디발라와 아탈란타의 미드필더 코프메이너르스였다. 세리에A 수비수 전체 1위라는 뜻이다. 챔피언스리그 두 경기에서도 리버풀, 레인저스를 상대로 완벽한 수비를 펼치며 유럽 전체의 시선도 모았다. 나폴리는 김민재를 영입하며 4500만 유로(약 600억원)의 바이아웃(이적 허용 금액)을 건 상태인데, 이탈리아 현지에서는 벌써부터 다음 시즌 프리미어리그를 비롯한 더 큰 자금력을 갖춘 클럽의 목표가 될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을 정도다.

 

최근 챔스리그에서 우루과이 누녜스·포르투갈 조타 등 거뜬히 막아

수비의 본고장에서 최고의 센터백으로 우뚝 선 김민재는 생애 첫 월드컵에 대한 기대감도 키우고 있다. 1996년생인 김민재는 지난 러시아월드컵 당시에는 대회 전에 부상을 당해 최종 엔트리에 들지 못했다. 카타르월드컵으로 가는 과정에서는 최종예선에서 압도적인 수비력을 선보여 조기에 본선행을 확정 짓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지난 6월 치른 브라질을 비롯한 친선전 4연전에는 가벼운 수술과 치료를 위해 제외됐는데 당시 우리 수비는 상대의 개인 능력을 저지하지 못해 우왕좌왕했다. 그만큼 김민재가 수비 부문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한다는 게 입증됐다.

일각에서 월드컵의 성공은 손흥민보다 김민재의 활약에 달렸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월드컵 본선 H조에서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을 상대해야 하는데 특히 우루과이와 포르투갈에는 개인 능력이 탁월한 공격수가 즐비하다. 우루과이는 베테랑 루이스 수아레스(나시오날), 에딘손 카바니(발렌시아) 외에도 떠오르는 신성 다윈 누녜스(리버풀)가 있다. 포르투갈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디오고 조타(리버풀), 주앙 펠릭스(아틀레티코 마드리드), 하파엘 레앙(AC밀란) 등이 호시탐탐 골을 노린다. 세계적인 공격수들을 얼마나 잘 제어하느냐가 16강으로 가기 위한 승리를 따는 출발점이다.

김민재는 최근 리버풀에 속한 누녜스와 조타를 챔피언스리그 경기에서 거뜬히 막아냈다. 뒤에서 기다리는 수비가 아니라 선제적으로 상대 공격수를 압도하는 수비로 눌렀다. 이탈리아로 건너간 뒤에는 상대의 장점을 무력화시키는 영리한 수비와 예측 능력까지 더해져 한층 업그레이드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과감한 빌드업 능력과 세트피스 가담 능력도 돋보인다. 김민재는 세리에A에서만 이미 2골을 기록하며 골 넣는 수비수의 이미지도 키워가고 있다. 김민재가 후방에서 지금과 같은 철벽을 쌓는다면 전방에서는 손흥민의 득점력을 활용해 벤투호가 월드컵에서 공수에 걸쳐 확실한 경쟁력을 발휘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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