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년 만에 깨어난 IMF 구제금융의 ‘망령’ [최준영의 경제 바로읽기]
  •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2 14:05
  • 호수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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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트러스 내각 출범하자마자 파운드화 지속 하락
화려했던 대영제국의 시대, 재정 악화로 저무나

영국 파운드화의 가치가 급락하고 있다. 미국 달러 대비 영국 파운드화 환율은 한때 사상 최저 수준인 1파운드에 1.0327달러까지 급락했다. 1985년 2월26일 기록한 1.05달러를 깬 것이며 1971년 이후 최저치다. 파운드화는 이날 1.05달러로 약간 회복됐지만, 이틀간의 거래일 동안 무려 7%나 폭락했다. 이대로 가다간 곧 달러와 1대1이 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온다.

주목되는 사실은 리즈 트러스 총리 내각 출범 이후 파운드화 가치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 트러스 내각의 콰시 콰뎅 재무장관은 9월23일 하원에서 소득세 인하, 법인세 인하 등을 통해 2027년까지 450억 파운드(약 68조8600억원)를 감세한다는 내용이 담긴 예산안을 발표했다. 여기에 더해 트러스 내각은 내년 4월에 소득세 기본세율을 기존 20%에서 19%로 낮추고, 최고세율은 45%에서 40%로 내리기로 했다. 이는 당초 계획보다 감세 시기를 1년 앞당긴 것이다. 당초 19%에서 25%로 올리기로 했던 법인세 인상 계획은 철회했다.

9월26일(현지시간) 영국 파운드화 가치가 1971년 이후 최저치인 달러당 1.0349파운드까지 떨어지면서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영국 런던의 한 환전소 모습ⓒAP 연합

대규모 감세 정책이 파운드화 급락 부추겨

대규모 감세에 따라 영국 정부의 부채 규모는 1900억 파운드(약 294조원) 규모로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세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여기에 더해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는 물가를 자극해 인플레이션을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확산됐다. 시장은 대규모 감세 정책이 세계적으로 금리가 인상되는 시기에 이뤄지는 만큼 영국의 부채 수준이 높아져 재정 악화로 이어질 것이라 우려하고 있다.

영국 정부는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국민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가정용 에너지 비용 상한선을 설정하고 가계에 직접 보조금을 지급하는 등 지원 정책을 약속했다. 이는 인플레이션을 강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파운드화 가치가 낮아지면서 영국 중앙은행은 긴급하게 이자율 인상을 검토하고 있음을 밝혔지만 파운드화의 약세는 계속되고 있다.

파운드화 가치의 급락에 따라 일각에서는 영국이 1976년 이후 46년 만에 다시 국제통화기금(IMF)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을 가능성을 거론하고 있다. 1974년 집권한 영국 노동당 정부는 공약으로 제시한 사회보장제도 확대를 위해 공공지출을 확대했다. 하지만 당시 영국의 상황은 좋지 않았다. 제1차 오일쇼크와 이로 인한 경기 침체가 지속되는 와중에 경상수지는 적자를 기록하면서 영국 정부는 대규모 차입을 기록하고 있었다. 영국 정부가 추진하던 적절한 경제 성장, 완전고용, 만족스러운 국제수지, 합리적이고 안정적인 가격이라는 4가지 주요 정책 목표 가운데 어느 하나도 달성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증가하는 적자를 감당하기 어려웠던 영국 정부는 1976년 적자 축소를 위한 지출 삭감을 시도했지만 내각 내부의 반대와 분열로 실패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플레이션은 심화돼 1974년 16.7%에서 1975년에는 25%에 이르렀다. 높은 명목 채권수익률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실질 수익률이 0에 가까워짐에 따라 투자자들이 영국 국채 매입을 꺼리면서 정부 재정은 더욱 취약해졌다. 영국은 1976년 IMF로부터 39억 달러의 구제금융을 받았으며, 당시 구제금융 조건으로 제시된 공공지출 축소, 금리 인상 등을 단행했는데 현재 상황이 당시와 비슷하다. 높은 인플레이션, 경상수지 적자 및 경제적 불확실성이 지속되면서 파운드화에 대한 평가절하 압력이 점차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국 파운드화는 1972년부터 1976년 사이에 20% 하락한 상태였다. 평소라면 일정 수준의 평가절하는 수출 경쟁력을 회복시키고 경상수지 적자를 축소해 주기 때문에 이러한 하락은 크게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지만 당시 영국 정부는 파운드화 평가절하가 수입 물가를 끌어올려 인플레이션을 심화시킬 것을 우려했고, 외환시장에 개입해 파운드화 가치를 유지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달러 등 외환의 부족으로 인해 지속 가능하지 않게 됐다. 1976년 초반 영국은 OECD로부터 53억 달러의 차관을 지원받았지만 파운드화 평가절하는 계속됐다. 3월 파운드당 2달러 수준을 유지하던 가치는 9월27일이 되자 영국 중앙은행의 방어선이던 1.77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더 큰 문제는 영국중앙은행의 외환보유고가 거의 바닥났던 것이다.

9월21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연설 중인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EPA 연합

영국 경제 펀더멘털에 대한 의구심도 커져

당시 캘러한 총리는 내각 일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IMF에 구제금융을 요청했으며, 11월부터 영국 정부와 IMF의 협상이 시작됐다. IMF는 공공지출의 대폭 삭감을 요구했지만 영국 정부는 이를 단호히 거부했다. 공공지출 감소는 실업률 증가와 세수 감소로 연결된다는 주장이었다. IMF와의 협상이 난항을 거듭하자 영국 정부는 독일과 미국에 자금 지원을 요청했지만 양국 모두 거부하면서 영국 정부는 고립무원 상황에 처하게 됐다. 결국 1976년 12월 영국 정부는 IMF와의 협상을 통해 구제금융을 받고 2년간 IMF 감시하에 미국이 조정관리자 역할을 담당하는 경제 신탁통치를 받게 됐다.

이후 영국 노동당 정부는 1979년 5월 총선에서 지지 세력인 노조의 반란으로 참패했으며, 대처가 이끄는 보수당에 정권을 넘겨주게 됐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영국은 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돼 오던 정부의 경제에 대한 적극적인 개입과 예산 투입으로 대표되는 케인스주의에서 벗어나게 됐다. 너그러운 재정지출을 매개로 형성된 국가와 국민 간 사회경제적 합의 역시 붕괴됐다. 이후 영국은 대처 총리가 주장하는 신자유주의와 작은 정부 및 민영화로 대표되는 혁명적인 변화를 겪게 됐다.

46년 만에 반복되는 파운드화 약세는 기본적으로 미국의 급속한 금리 인상에 따른 결과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 경제의 펀더멘털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음을 나타낸다. 장기 금리가 상승하면서 통화가치가 하락하는 현상은 경제에 대한 신뢰가 무너지고 있다는 전형적인 신호다. 선진국의 경우 미테랑 정부 시절의 프랑스나 볼커 취임 이전 카터 정부 말기의 미국과 유사한 상황이다. 파운드화 안정을 위해서는 중앙은행의 추가적인 금리 인상에 더해 영국 정부가 감세안을 철회하고 에너지 보조금 규모에 대해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조치가 필요하지만 정치적 상황을 감안해볼 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여기에 더해 영국의 경상수지 적자가 지난 1분기 517억 파운드(약 79조2000억원)로 사상 최대치를 기록하면서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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