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초도 못 뛴 이강인, 월드컵 출전 가능성 ‘불투명’
  • 서호정 축구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30 13:05
  • 호수 1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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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6개월 만에 A대표팀 소집됐지만 실전 투입 불발
벤투 감독, “이강인 뛰게 하라” 언론·팬 압력에 반발

“이강인!” “이강인!” 9월27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대한민국과 카메룬의 A매치 평가전. 후반 36분 파울루 벤투 국가대표팀 감독은 교체 투입된 지 10분 만에 허리 통증으로 다시 나오게 된 황의조(올림피아코스)를 대신할 이날의 마지막 교체카드로 백승호(전북)를 택했다. 관중석에서는 누군가의 주도라고 할 것도 없이 이강인(마요르카)의 이름을 연호했다. 워밍업 지역을 떠나 벤치로 돌아오는 이강인의 모습을 본 6만여 명의 팬은 벤투 감독을 압박하듯 더 목소리를 짜냈다.

하지만 벤투 감독의 결정은 단호했다. 백승호 투입 후에도 한 장의 교체카드가 남았지만 더 이상의 투입은 없었다. 앞서 9월23일 열린 코스타리카전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상대인 코스타리카는 6장의 교체카드를 모두 썼지만 벤투 감독은 5장만 쓰고 끝냈다. 본선에서 교체 한도가 5명이라는 점을 감안해 실전과 같은 시뮬레이션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다른 의미에선 1명을 추가 투입할 수 있는 여유를 외면한 셈이다.

손흥민이 코스타리카전 프리킥 득점의 기세를 이어 카메룬을 상대로도 헤더 결승골을 뽑아낸 한국은 1대0으로 승리를 거뒀지만 경기장, 그리고 온라인 커뮤니티의 반응은 시끌시끌했다. 끝내 이번 A매치 2연전에 투입되지 않은 이강인에 대한 격론이 곳곳에서 벌어졌다. 장시간 비행으로 한국까지 왔는데 끝내 쓰지 않으면서 이강인을 외면한 벤투 감독의 선택을 이해할 수 없다는 여론과 선수 기용은 감독의 절대적 권한이므로 존중해야 한다는 여론의 충돌이었다.

이강인은 올 시즌 맹활약 중이다.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6경기에 모두 출전해 1골 3도움을 기록 중이다. 현재 리그 도움 공동 1위, 기회 창출 부문에서도 1위를 기록하고 있을 정도로 기세가 좋다. 벤투 감독도 그런 점을 높이 사 지난해 3월 한일전 이후 모처럼 이강인을 A대표팀에 불렀다. 선발 당시만 해도 벤투 감독은 “이강인을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기술적으로 뛰어나고 판단력이 좋다는 걸 잘 알고 있다. 팀에 어떤 요소를 가져올지 지켜보자”고 말했다.

9월27일 서울 마포구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축구 국가대표 평가전 대한민국과 카메룬의 경기 종료 후 이강인이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다. 왼쪽은 벤투 감독 ⓒ뉴시스

이강인 활용 위한 새로운 전술적 플랜 준비 안 된 듯

벤투 감독은 이번 2연전을 통해 본선을 위한 실험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강인의 활용도 거기 포함될 것이라는 예측이 우세했다. 실제로 소집 초반 공개 훈련에서는 이강인의 강점인 킥과 침투 패스를 이용한 공격 전환 훈련이 나왔다. 그러나 실전에서의 선택은 달랐다. 주전으로 활약해온 황인범(올림피아코스), 이재성(마인츠)에 대한 벤투 감독의 신뢰는 굳건했다. 다음 옵션에서도 이강인은 권창훈(김천), 나상호(서울), 정우영(프라이부르크) 뒤에 있다는 현실만 확인됐다.

9월 A매치 2연전을 통해 하겠다던 실험은 이강인의 활용이 아니었다. 지난 6월 브라질·파라과이·칠레 같은 남미의 강호를 상대로 드러난 문제점이었던 수비형 미드필더가 주였다. 기존의 주전인 정우영(알사드) 이상의 비중으로 손준호(산둥)가 기용됐다. 특히 손준호가 선발로 출전한 카메룬전에서는 미드필드 후방의 안정감과 빌드업 때의 1차 패스의 안정감이 좋아졌다는 평가가 나왔다.

이강인을 활용하기 위한 새로운 전술적 플랜은 준비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벤투 감독은 대표팀이 오랜 시간 유지해온 전술적 틀 안에서만 이강인의 역할을 고심했는데, 이번 두 경기에서는 그럴 상황이 나오지 않았다. 벤투 감독은 카메룬전이 끝난 뒤 이강인을 출전시키지 않은 이유에 대해 “선발한 모든 선수를 출전시키기는 쉽지 않다. 상황에 따라 팀이 어떤 것을 필요로 하는지가 중요하다. 두 경기 모두 이강인이 출전하기는 좋은 순간이 아니라고 평가했다”고 설명했다.

9월에 소집된 필드 플레이어 중 이강인 외에 기용되지 않은 선수는 양현준(강원), 조유민(대전), 김태환(울산), 조영욱(서울) 등 총 5명이다. 이 중 이강인만 유럽파다. 카타르월드컵까지 남은 시간 동안 이강인이 테스트를 받을 기회는 없다. K리그에서 뛰는 국내파와 일본·중국에서 뛰는 선수는 10월말부터 11월초까지 리그 일정이 마무리되면 차례로 소집된다. 반면 유럽파는 FIFA가 월드컵 개막 일주일 전인 11월13일까지 소속팀 경기 출전을 보장한 상태다. 11월11일 국내에서 열릴 출정식을 겸한 평가전이 최종 명단 발표 전의 마지막 경기인데 여기에 유럽파는 뛸 수 없다.

유럽파에게는 실질적으로 마지막 소집과 평가전이었던 이번 9월 A매치에 이강인을 투입하지 않았다는 것은 월드컵 엔트리 진입 실패로 끝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말해 준다. 주전들의 줄부상으로 월드컵 직전 엔트리 변동 폭이 컸던 4년 전 러시아월드컵 때도 신태용 감독은 새롭게 뽑은 이승우, 문선민, 오반석에게 일정 시간을 부여하며 경기력을 점검한 뒤 최종 명단에 포함시켰다.

 

손흥민의 경험담 “이강인 향한 관심 지나치면 자칫 상처 된다”

벤투 감독은 자신이 지향하는 축구 철학과 전술을 이해하는 선수를 기용하며 안정성을 중시하는 타입이다. 지난 4년간 점진적으로 기용한 선수들을 이번에도 우선 신뢰했다. 그런 점에서 이강인이 최근 스페인에서 맹활약 중이라고 해서 대표팀에서도 선발로 당장 나서는 건 어려울 거라 예상됐었다. 하지만 교체 출전 방식으로 기용해 이강인이 벤투 감독의 틀 안에서 어떤 영향을 발휘할 수 있는지 정도는 체크했어야 한다는 전문가의 지적도 많다. 벤투 감독은 “훈련 역시 선수를 파악하는 방식이다”고 말하지만 실전은 훈련과는 다른 확인들이 가능하다.

이강인에 대한 관심이 큰 만큼 그를 향한 질문도 기자회견마다 꼭 포함됐다. 벤투 감독은 그때마다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코스타리카전이 끝나고는 “이강인만 뛰지 못한 게 아니다”고 답했다. 카메룬전 이후에는 여론에 더 직설적으로 반응했다. “귀가 둘이니까 (팬들이) 이강인을 외치는 걸 잘 들었다”고 말했다. 우회적인 표현이었지만, 이강인을 활용하라는 언론과 팬들의 목소리에 반발하는 심리가 드러났다.

10년 전 이강인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는 주장 손흥민은 현실적인 조언을 했다. 카메룬전이 끝나고 이강인에게 다가가 안아준 손흥민은 “많은 팬들처럼 나도 강인이가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경기하는 것을 보고 싶다. 하지만 감독님의 결정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서는 “모든 집중이 팀이 아닌 강인이에게만 가면, 강인이에게도 큰 상처가 될 수 있다. 나도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우리가 한 선수에게 너무 많은 것을 바라고 있지 않나. 이런 경험을 통해 더 성장하고 좋은 선수로 발전했으면 좋겠다”는 메시지를 냈다.

손흥민은 자신의 첫 프로팀이었던 독일 분데스리가의 함부르크SV에서 본격적인 두각을 나타내던 시절 대표팀에 와도 교체로 뛰거나, 스트라이커보다는 측면에서 뛰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에도 손흥민을 중점적으로 활용해야 한다는 언론과 팬들의 목소리가 많아 최강희·홍명보 감독 등의 활용 방식과 충돌한 적이 있었다. 그런 경험이 있는 손흥민 자신이 특정 선수에 대한 과도한 관심이 자칫 선수 개인과 팀 전체에 독이 될 수 있다고 조언한 것이다.

이강인은 아쉬운 대표팀 소집을 마친 뒤 “팬들이 많이 응원해 주셔서 감사했다. 소속팀에 가서 더 좋은 모습을 보이도록 노력하겠다. 선수로서 경기에 뛰고 싶은 건 당연하니까 아쉬운 건 사실이지만 (출전을) 내가 선택할 순 없다”며 현실을 받아들였다. 그러면서도 “월드컵에 대한 동기부여는 돼있다. 현재 내가 할 수 있는 건 소속팀에 가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드리는 것밖에 없다”며 월드컵 최종 엔트리 진입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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