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시즘의 후예’는 어떻게 이탈리아의 선택을 받았나
  • 클레어함 유럽 통신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9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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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로 기존 정치권 불신 극에 달해
멜로니, “새로운 정치인에 기회 주자”는 국민 열망에 편승

9월25일 이탈리아 의회 총선 결과에 대해 극우 성향 정당들을 제외한 유럽의 주류 사회는 불편한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다. 마침 올해는 1922년 이탈리아의 독재자 베니토 무솔리니가 집권한 지 100주년이 되는 해다. 이번 선거에서 압승한 극우 성향 정당인 ‘이탈리아형제들(FdI·Fratelli d’Italia)’과 당 대표 조르자 멜로니에 대해 파시즘의 귀환을 우려하는 불안한 시선이 무척 많다.  

9월26일 이탈리아 극우 정당 ‘프라텔리 디탈리아’(이탈리아형제들) 대표인 조르자 멜로니가 자신의 정당 캠페인에서 연설한 후 “감사합니다 이탈리아”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FP 연합
9월26일 이탈리아 극우 정당 ‘프라텔리 디탈리아’(이탈리아형제들) 대표인 조르자 멜로니가 자신의 정당 캠페인에서 연설한 후 “감사합니다 이탈리아”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다. ©AFP 연합

“무솔리니는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해야” 발언 논란

이탈리아는 마리오 드라기 전 총리가 18개월의 짧은 집권 후 올 7월 전격 사임하면서 내년 봄 예정되었던 총선을 6개월 일찍 치렀다.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이탈리아는 총선 결과 다수당 대표가 정부 수반으로 임명되기 때문에 26.2%로 최다 득표를 한 FdI의 당 대표 조르자 멜로니는 전후 68번째 정부의 수반이자 첫 여성 총리가 되는 셈이다. FdI가 참가하는 우파연합 연정은 내무부 장관을 역임한 마테오 살비니가 대표로 있는 동맹당(Lega·8.8%)과 전 총리 실비오 베를루스코니가 수장인 ‘전진이탈리아당(Forza Italia·8.1%)을 포함해 총 지지율 43.8%를 차지했다.   

2018년 총선에서 4.4% 지지율에 그쳤던 FdI는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며 지지 세력을 크게 확장했는데, 기본 정책 방향은 반이민 및 반난민, 반이슬람을 비롯해 성소수자 권리 및 임신중단권 반대가 주요 특징으로 보수적 기독교 가치에 기반해 대중의 인기를 얻고 있는 모양새다. 

하지만 파시즘과 확실한 거리두기를 하지 않고 있는 그의 역사인식 문제와 반EU(유럽연합) 성향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멜로니와 그의 당이 네오파시스트로 비판받는 이유는 이 당이 2차 세계대전 이후 독재자 무솔리니 정권에 향수를 가진 극우 세력 정당인 이탈리아사회운동(MSI)을 계승한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MSI의 로고였고 무솔리니 영혼을 상징하는 삼색불꽃 문장을 당의 로고로 하고 있다. 또한 멜로니는 언론 인터뷰에서 무솔리니를 “훌륭한 정치인”이라거나 “무솔리니는 역사적 맥락에서 평가해야 하는 복잡한 인물”이라며 애매한 입장을 취한 적이 있다. 아울러 무솔리니의 막내 손녀와 증손자를 각각 로마 시의원 및 유럽의회 후보로 당에서 추대해 따가운 시선을 받기도 했다. 

올해 45세의 젊은 정치인인 멜로니는 2012년 FdI를 공동 창당한 후 현재 당 대표를 역임하고 있으며, 2020년 9월 이후 유럽의회 내 보수&극우연합(ECR)의 의장 역할도 하고 있다. 이 ECR은 폴란드의 집권여당인 법과정의당(PiS)을 비롯해 9월11일 총선에서 크게 세를 확장한 스웨덴의 극우 정당 스웨덴민주당, 스페인의 극우 정당 복스당(Vox)을 포함한다. 

멜로니는 19세에 네오파시스트 단체 ‘학생운동(AS)’ 대표를 역임하며 정치활동을 시작했고 몇 년간 ‘극우 신문(Il secolo d’Italia)’ 기자로도 활동한 경력이 있다. 2008년 31세에 베를루스코니 내각에서 역대 최연소 청년부 장관으로 발탁돼 주목을 받기도 했다. 최근 한 여성이 흑인 이주민에게 성폭행당하는 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게재해 피해자 2차 가해와 반이민 정서를 유발한다는 강한 비판을 받은 데다 “난민을 막기 위해 군대를 동원해 해상을 봉쇄하겠다”는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다. 

 

‘EU 탈퇴’ 등 독자적 행보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이렇듯 수많은 논란을 낳은 멜로니가 전직 총리 4명이 출마한 선거에서 가장 높은 지지를 얻은 이유에 대해 여러 가지 분석이 나오고 가운데, 가장 많이 거론되는 평가는 이탈리아 국민이 가진 기존 정치 세력에 대한 불신과 정권교체 열망이다. 독일 매체 ‘머큐어’는 사설을 통해 “갑자기 이탈리아인들이 나치로 변모했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이번 총선에서 역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며 36%나 되는 유권자가 기권한 것은 정치 냉소에 대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볼로냐대학의 소피아 벤투라 정치학 교수는 “멜로니의 FdI는 주요 정당으로는 유일하게 지난 드라기 총리의 연정에 참여하지 않아 현 정부에 불만이 많은 대중으로부터 새로운 기대감을 얻고 있다”고 말했다. 멜로니에게 표를 던진 이탈리아 유권자들은 기존 정치권의 진보와 보수 세력에 모두 실망한 나머지 위험요소가 있더라도 새로운 정치인과 세력에 기회를 주겠다는 언론 인터뷰가 많다. 진보 세력의 분열도 언급된다. 우파는 한그룹만의 연정이지만 좌파는 세 그룹의 연정 체제로 크게 분열된 양상을 보였다.

독일 좌파당 소속 유럽의회 공동대표인 마틴 쉬르드완처럼 이탈리아의 우경화를 민생의 문제로 분석하는 이도 많다. 그는 “사회의 경제적 양극화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공공 서비스의 민영화 및 사회복지예산 삭감 등이 야기한 사회구성원들 간 유대감 감소가 이탈리아뿐만 아니라 유럽의 많은 국가에서 극우 세력이 성공적으로 세를 확장하는 데 토양을 마련해 주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탈리아는 EU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 규모지만, 팬데믹 전후로 2차 세계대전 이후 최악의 경기 침체를 겪고 있다. 2020년 한 해에만 경제성장률이 8.9% 감소했고 최소한 42만 명이 실직했다. 지난 10년간 국내총생산은 감소하는 가운데, 2021년에만 2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유입되었다. 이런 점들도 선거에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있다.  

역사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도 거론되고 있다. 이탈리아의 대표적 파시즘 연구자인 줄리아 알바네세  파두아 대학 교수는 “이탈리아 공교육에서 과거 전쟁범죄와 독재, 부정부패, 빈곤 심화 등 무솔리니와 파시즘의 역사적 책임에 대해 자세히 교육하지 않고, 언론도 역사에 무관심하다”고 분석했다.   

로마대 정치학 교수 로렌조 카스텔라니는 “멜로니가 경제정책과 EU 관계에 관해 아직 뚜렷하게 밝힌 게 없다”고 평가한다. 그럼에도 그는 ‘리틀 푸틴’이라고 불리는 헝가리 빅토르 오르반 총리와 가까운 관계이고 그간 국제 금융 질서 및 브뤼셀의 유럽연합 관료들에 반감을 표출해 왔다. 멜로니는 “이탈리아의 국익을 위해서는 EU를 탈퇴할 수 있다”는 발언을 한 바 있다. 극우를 제외한, 다양한 정치 스펙트럼의 정치인들이 그의 집권에 불안감을 표하는 이유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국가부채율이 높고, 막대한 금액의 ‘EU회복펀드’ 2200억 유로 지원에 국가경제를 의존해야 하는 멜로니 정부로서는 쉽사리 독자적인 행동을 취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그의 연정 파트너인 마테오 살비니는 대러시아 제재 완화를 주장했고,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푸틴과 오랜 친분관계를 유지해 오고 있으나, 멜로니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비판하고 우크라이나와의 연대를 강조해 왔다. 또 대러 제재와 나토 지지 입장을 견지하고 있어 당분간 EU 내 큰 정치적 지진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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