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의 매력 못 살린 철원역사문화공원 [김지나의 문화로 도시읽기]
  • 김지나 도시문화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09.29 1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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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도시 재현해 관광 활성화 시도했지만
특별한 역사 못 담아낸 평범한 공간 조성에 아쉬움
‘노동당사’ 등 시대적 상징 살리는 기획 내놓아야

지난 7월, 강원도 철원군의 노동당사 앞에 마을이 하나 들어섰다. 이 마을은 기차역, 학교, 은행, 약국, 소방서, 극장까지 웬만한 도시 못지않은 시설들을 갖추고 있다.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 모습이 현대가 아니라 1920~30년대를 배경으로 한다는 것이다. 그 시절 철원 일대에 자리 잡고 있었던 옛 도시를 다시 재현해놓은 ‘철원역사문화공원’의 이야기다.

몇 해 전만 해도 이곳은 평범한 농토였다. 하지만 바로 옆에 민간인통제구역으로 들어가는 출입초소가 있고 해방 직후에는 북한 땅이었다는 사실이 이 장소를 특별하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38선 이북 지역으로서 조선노동당의 철원군 당사가 위풍당당히 세워졌으며 아직도 대부분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덕분에 수많은 방문객들이 찾는 곳이기도 하다. 인근의 소이산을 올라가면 민통선 내에 펼쳐진 드넓은 철원 평야가 한눈에 들어온다. 누군가에게는 과거를 떠올리게 하고, 또 누군가에게는 미래를 상상하게 하는 진귀한 풍경이다.

그래서 철원군에서는 이 장소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자 했다. 그 결과가 바로 이번에 개장한 역사문화공원이다. 비옥한 땅 위에 사통팔달의 교통망을 갖추며 수많은 사람과 물자가 오갔던 한국전쟁 이전의 ‘도시 철원’은 이 지역만이 가진 독특한 관광자원이라 할만하다. 때문에 그 역사를 다시 부활시켜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자는 것이 이 역사문화공원의 비전이었을 테다.

철원 역사문화공원 입구 전경. 뒤에 보이는 산이 소이산이다. ⓒ김지나
철원역사문화공원 입구 전경. 뒤에 보이는 산이 소이산이다. ⓒ김지나

어색한 복제품들이 가린 철원만의 차별성

하지만 그런 특별한 역사가 무색하게, 완성된 역사문화공원은 실망감을 자아내는 모습이었다. 다른 여느 지역의 근현대시기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세트장이나 테마파크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월북 작가’라는 낙인으로 적절한 평가나 관심을 받지 못했던 철원 태생 이태준 작가의 작품을 각색해 길거리극으로 상연하는 프로그램이 유일하게 응원해주고 싶은 콘텐츠였다.

비어 있는 유휴지를 관광지로 활용하는 단순한 목적이었다면 그래도 괜찮았을지 모르겠으나, 이 장소는 다르다.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반공, 비극, 평화 등 다양한 메타포를 가져왔던 건축물인 노동당사가 그대로 남아 있다. 민통선 안으로 들어가면 철원역의 진짜 옛 터와 서울과 금강산을 연결하던 당시의 철로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옛날 도시의 중심도로였던 길을 따라 농산물검사소, 얼음 창고, 금융조합 건물 폐허의 풍경이 펼쳐진다. 모두 역사문화공원 내에 어색하게 지어 놓은 새 건물들의 오리지널들이다.

흔적조차 없이 사라진 건물들을 사람들이 체험할 수 있게 재현해낸 시도는 좋았다. 아직 볼 것이 부족하다는 세간의 평도 시간이 지나 좋은 콘텐츠들이 채워지면 어느 정도 가라앉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복제품들로 이루어진 가짜 장소로 인해서 진짜 장소의 의미와 가치가 퇴색되는 것은 어떻게 회복할 수 있을까. 관광객들을 불러 모아서 지역을 활성화한다는 명분은 그런 결과까지도 정당화할 수 있는 것일까.

철원 역사문화공원은 일제강점기 시절 번성했던 도시 철원의 풍경을 재현해 놓았지만 본래 장소와 괴리된 위치에 조성된 모습이 아쉬움을 남긴다. ⓒ김지나
철원역사문화공원은 일제강점기 시절 번성했던 도시 철원의 풍경을 재현해 놓았지만 본래 장소와 괴리된 위치에 조성된 모습이 아쉬움을 남긴다. ⓒ김지나

‘진짜’ 철원의 이야기 녹인 기획 이뤄져야

철원을 수차례 방문하면서 한국전쟁 전 철원의 모습을 기억하고 그 시절의 추억을 간직하고 계시는, 이제는 몇 분 남지 않은 이 지역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은 적이 있다. 그리고 나서 소이산 정상에 올라 철원 평야를 바라봤을 때, 그 사이를 가로지르는 길을 지날 때, 돌무더기만 남아 있는 옛 도시의 폐허를 발견했을 때, 이전에는 없었던 감흥이 밀려와 철원을 더욱 매력적으로 느끼게 했다. 진짜 스토리에서부터 파생될 수 있는 사람의 상상력은 생각보다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다. 지금 철원에 필요한 것은 이를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기획과 기술이다.

물론 이 지역에는 민간인출입통제선이라는 다루기 참 까다로운 문제가 있다. 지도 어디에도 표시돼 있지 않고 눈에 보이는 명확한 경계도 없는 이 선 때문에 DMZ 접경지역의 관광문화는 많은 제약에 직면한다. 하지만 철원의 역사문화공원은 출입초소를 지나지 않아도 된다는 상대적으로 좋은 여건을 갖고 있었다. 게다가 노동당사라는, 한 시대를 대표하는 유적 앞에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대규모 공간을 조성할 수 있는 기회였다. 그렇다면 그 기획은 조금 더 신중해야 했다. 앞으로의 운영전략에서는 지금보다 세련되고 장기적인 안목이 뒷받침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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