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든 티켓’ 경쟁 이젠 끝내자
  • 배현기 웰스가이드 대표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12 10: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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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ECD ‘코리아 리포트’에 언급된 한국 경제의 문제점
명문 대학 졸업 후 대기업 취직에만 몰두하는 문화도 지적돼

지난 9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간한 코리아 리포트가 화제다. 분량은 많지 않지만 우리 경제의 문제점과 과제들을 잘 정리해 놓았기 때문이다. 일부 언론은 ‘골든 티켓 신드롬(golden ticket syndrome)’이라는 용어를 부각시키기도 했다. 명문 대학에 진학하고 ‘대기업과 공공부문’(이하 대기업)에 취직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을 표현한 말인데, 우리 청소년 또는 청년들이 직면하고 있는 현실을 정확하게 짚었다고 생각한다.

ⓒ연합뉴스
명문대 진학 후 대기업에 취직하는 이른바 ‘골든 티켓 신드롬’이 최근 우리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사진은 한 유명 학원의 입시 설명회 모습ⓒ연합뉴스

‘골든 티켓 신드롬’의 실체

곰곰이 생각해 보자. 이런 경쟁은 우리 사회에만 존재하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어느 사회나 안정적이고 매력적인 직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이런 직장에 들어가기 위한 경쟁 역시 치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경쟁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청소년 또는 청년 시절의 경쟁이 개인의 인생을 사실상 결정한다는 데 있다. 대기업에 진입하면 편안한 인생이 보장되는 반면, 진입하지 못하면 영영 포기하게 만드는 구조가 문제인 것이다.

대기업은 급여 수준이 높고 복지가 잘돼 있으며 퇴직연금, 고용보험, 건강보험, 산재보험 등이 모두 구비돼 있다. 취직에 이어 결혼, 자녀 출산과 교육, 주택 마련 등이 가능하고 정년까지 근무하든 그 전에 퇴사하든 안정적인 노후를 담보할 수 있다. 법적인 안전장치 외에 노동조합이라는 강력한 보호막까지 갖추고 있다. 반면 중소기업 근로자나 자영업자, 그리고 대기업이라 해도 비정규직은 이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게 된다.

이러한 양극화, 정확하게 표현하면 대기업 정규직과 기타 근로자 사이의 지속적 차별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티켓 경쟁만 더 치열해지고 경제는 역동성을 상실한다. 진입 시점의 대기업 정규직과 기타 근로자 구조가 고착화되는 노동시장에서 정규직이든 기타 근로자든 생산성을 높이려는 그 어떤 인센티브가 있을 것이며 또 경쟁할 수 있겠는가? 각자의 리그에서 이뤄지는 경쟁을 제외하면 말이다.

이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동반성장, 창조경제, 포용성장 등의 시도가 그것이다. 표현의 차이와 추진 방법, 과정 등 여러 문제에도 우리 경제의 양극화를 개선하기 위한 노력으로 평가하고 싶다. 이런 관점에서 봤을 때 윤석열 정부는 과연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의문이 든다. 소모적인 여야 갈등과 정치 불안이 지속되면서 정작 시급한 경제문제는 실종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가 발표한 110대 국정과제에 따르면, 윤석열 정부는 역동적 혁신성장을 내세우고 있다. 양극화 관점에서 주목할 키워드는 ‘중소·벤처기업’(이하 중소기업) 중심, 공정경쟁·거래,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확산, 노동 가치 존중, 직업능력·훈련 강화 등이다. 전반적으로 규제를 완화해 기업의 활동 공간을 확대하되 중소·벤처기업을 육성하고 필요 인력을 확보하며 노동생산성을 제고하겠다는 취지로 이해된다.

이런 청사진에도 역동적 혁신성장 방향과 구체성은 모호하다. 오히려 정부가 내세우는 슬로건과는 반대로 대기업 중심의 경제구조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신냉전 형성과 공급망 재편이라는 흐름 속에 국가적 차원의 산업 전략이 강조되면서 기업 정책이 관심사에서 멀어지는 측면도 있는 것 같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런 최근 동향은 기존의 대기업 중심 경제구조를 더욱 고착화할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경제의 역동성을 확보하기 위해 양극화를 개선하겠다는 방향성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중심 경제구조로의 전환이 그것이다. 중소기업의 창업과 성장, 그리고 공정경쟁을 제약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사전적으로 예방하고 사후적으로 시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출 필요가 있다. 인수위 국정과제에 명시된 대로 기술 탈취를 근절하고 경쟁 제한 심사를 적극적으로 강화해야 한다.

둘째, 양극화를 근원적으로 해소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에서 전자를 억누르거나 후자를 육성하는 방향이 있을 수 있는데, 전자보다는 후자가 바람직하다. 하향 평준화보다는 상향 평준화가 전체의 후생을 증가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대기업을 억누르는 것이 자칫 중소기업을 더욱 약화시키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대기업에 대해서는 지원도 간섭도 없이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다.

 

인재 양극화 해소 위한 대책 재설계해야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관계를 단순화하면 협력 또는 경쟁 관계다. 협력의 경우 1차, 2차 벤더 등으로 표현되는 생산 과정에서의 수직적 관계가 대표적이다. 정부가 할 일은 갑(대기업)과 을(중소기업) 사이에 공정한 거래를 보장하는 제도를 만들고, 이를 위반하는 경우 제재와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원자재 가격의 급등으로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납품단가연동제 도입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물론 공정경쟁이 중소기업을 무조건 지원하고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독자 경쟁력이 없다면 기업은 장기적으로 생존할 수 없다. 이러한 경쟁력은 어디에서 올까. 중소기업에는 인적자본이 가장 중요하다. 하지만 중소기업은 우수 인재를 확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개발 인력은 고사하고 당장의 운영 인력도 확보하기 어렵다. 대기업 수준의 급여와 복리후생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커리어상 중소기업에 한 번 들어가면 대기업으로는 못 갈 것이라는 걱정도 크다.

교육의 다양성 확보도 좋고 노동생산성을 제고하기 위한 직업교육과 평생교육도 좋지만 그 결과, 역시 대기업 취업에만 매달린다면 양극화는 개선될 수 없고 역동적 혁신도 기대할 수 없다. 중소기업에도 좋은 인재들이 갈 수 있도록 인센티브 구조를 재설계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 “대기업에 가면 당장 그리고 퇴직할 때까지 편안하겠지만, 내 능력과 성과에 대해 큰 보상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런데 중소기업에 가면 당장은 어렵겠지만 큰 보상이 가능하다.” 이렇게 선택이 가능한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구조 재설계를 위해 중소기업에 대한 R&D, 투자, 판매, 금융, 세제 등 기존 지원 외에 인력(HR) 지원을 대폭 확대할 필요가 있다. 중소기업 근로자에 대한 병역대체복무제, 저축·대출 지원 등을 확대하고 급여의 실질 수준을 높일 수 있는 소득공제나 세액공제 혜택을 신설하거나 강화해야 한다. 특히 보너스나 스톡옵션, 성과 주식 등 당사자의 기여에 따라 주어지는 보상에 대한 세제 혜택을 대폭 높여줄 필요가 있다. 이런 보상제도를 도입한 기업에 대한 세제 혜택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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