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단주의 무한 관심으로 쓱~ 쓱~ 달린 SSG
  • 김양희 한겨레신문 기자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9 15: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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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야구 출범 40년 만에 사상 첫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대업 달성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 구단에 통 큰 투자와 남다른 애정 쏟아

와이어 투 와이어(wire to wire). 골프대회 때 자주 쓰이는 용어인데 1라운드부터 마지막 라운드까지 1위를 내내 유지하며 우승하는 것을 일컫는다. 그런데 국내 야구에서 처음으로 이 말이 쓰이게 됐다. SSG 랜더스가 개막일(4월2일)부터 지금껏 단 한 번도 1위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고 순위를 지킨 끝에 정규리그 우승을 거머쥐었기 때문이다. 프로야구 출범 40년 만에 최초다. 참고로 미국 메이저리그(MLB)에서는 지금껏 5차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 있었고, 2005년 시카고 화이트삭스가 시즌 내내 지구 1위를 지킨 뒤 월드시리즈 왕좌에도 올랐다.

ⓒ연합뉴스
프로야구 정규시즌 1위를 한 SSG 랜더스가 10월5일 잠실야구장에서 두산과의 경기 전 우승 기념식을 하고 있다. SSG 랜더스는 한국 프로야구 최초로 개막일부터 종료일까지 시즌 내내 1위를 기록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연합뉴스

총연봉 규모 1위인 SSG, 성적도 관중 동원도 1위

야구 전문가들은 SSG의 정규리그 우승을 “투자의 힘”이라고 말한다. 그만큼 신세계그룹은 지난해 1월 인천 연고의 SK 와이번스를 1352억원에 인수한 뒤 야구단에 많은 돈을 썼다. 일단 첫 시즌 개막 전에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이던 추신수를 연봉 27억원에 영입했다.

2021 시즌 뒤에는 더욱 공격적인 투자를 했다. 다년계약이 처음 허용되면서 예비FA 신분이던 한유섬(5년 60억원), 박종훈(5년 65억원), 문승원(5년 55억원)과 계약을 미리 마쳤다. 박종훈·문승원의 경우 팔꿈치 수술을 하고 재활 중이었는데도 다년계약을 했다.

시즌 직전에는 메이저리그 파업으로 계약이 늦어진 SK 왕조 시절의 주역 ‘빅리거’ 김광현을 설득해 팀에 복귀시켰다. 4년 151억원의 계약으로 총액 기준으로 역대 KBO리그 최고액을 보장해 줬다. 한유섬부터 김광현까지 SSG 구단이 지난 시즌 종료 후 쓴 금액만 331억원이다.

다년계약과 올 시즌 뒤 도입되는 샐러리캡 영향으로 SSG의 올해 총연봉 규모는 227억원에 이른다. 2021 시즌 총연봉(97억5000만원)과 비교하면 2배 이상 올랐다. 10개 구단 중 단연 최고다. 한화(47억원)보다 4배 이상 많다. KBO리그에서 선수단 총연봉이 100억원을 넘는 구단은 SSG가 유일하다. 연봉 총액이 가장 적은 한화가 올 시즌 성적에서도 최하위인 점을 보면 역시 투자와 성적은 비례하는 셈이다.

SSG 구단의 투자는 비단 사람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SSG는 올해 인천 홈구장인 SSG랜더스필드의 클럽하우스를 40억원을 들여 메이저리그급으로 고쳐 놨다. 목욕탕, 핀란드식 사우나를 비롯해 수면실까지 갖췄다. 민경삼 SSG 랜더스 구단 대표는 당시 “선수들이 잘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들고 싶어 선수들의 의견을 많이 반영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무엇보다 구단주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의 야구단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불가능한 일이다. 구단주의 무한 관심은 선수들에게 확실한 동기부여가 됐다. 그는 오프 시즌 때 주축 선수들을 초대해 직접 요리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여느 스포츠 구단주와는 다른 스킨십을 보여준다. 정 부회장은 자주 랜더스필드를 찾아 선수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있다.

과감한 투자와 구단주의 관심 속에 SSG는 개막달부터 치고 올라갔다. 4월2일 NC 다이노스와의 개막전에서 윌머 폰트가 보여준 9이닝 퍼펙트 투구는 예고편이었다. 폰트와 원투펀치를 이룬 김광현은 강속구를 앞세워 상대팀을 무력화했다. 4월 평균자책점이 0.36(4경기 25이닝 1자책)에 그칠 정도로 압도적인 투구를 보여줬다. 그는 더그아웃 리더로 후배 투수들의 귀감이 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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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18일 SSG-두산 경기를 관전 중인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연합뉴스

개막전부터 퍼펙트…대기록의 신호탄 쏘아올려

롯데 자이언츠에서 방출된 베테랑 노경은을 영입한 것도 신의 한 수가 됐다. 노경은은 전반기 동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면서 ‘회춘투’를 했다. 두산 베어스 시절인 2013년 이후 처음으로 두 자릿수 승수를 채웠고, 후반기에는 헐거운 불펜진에 힘을 실어주기도 했다.

타선에서는 한유섬의 방망이가 초반부터 힘차게 돌아갔다. 예비FA 부담을 없애며 잡생각이 사라진 것이 도움이 됐다. 한유섬은 개막 한 달간 타율 0.395, 3홈런 27타점의 클러치 능력을 선보이며 시즌 초반 SSG 공격력을 이끌었다. 그는 SSG의 마지막 안방 경기였던 9월30일 키움 히어로즈전에서는 연장 11회 끝내기 만루포를 쏘아올리며 SSG가 1위를 굳히는 데 밑돌을 놨다.

중견수 최지훈과 유격수 박성한의 성장은 팀 리빌딩에도 도움을 줬다. 최지훈의 경우 데뷔 첫 3할대 타율과 두 자릿수 홈런을 기록했다. 박성한 또한 그동안 팀의 숙원이었던 붙박이 유격수로 발돋움했다. 후반기 들어 체력적인 문제로 타율이 떨어지기는 했으나 공격에서도 쏠쏠한 활약을 보였다. 리드오프 추신수는 여전히 뛰어난 선구안으로 높은 출루율을 자랑했고, ‘홈런 공장장’ 최정은 투고타저 속에서 변함없이 홈런포(9월4일 현재 26개·리그 3위)로 무력시위를 했다.

선수 시절 ‘어린 왕자’로 불린 김원형 SSG 감독의 리더십도 간과할 수 없다. 2020 시즌 뒤 처음 사령탑의 중책을 맡은 김 감독은 지난해 선발진이 부상과 부진으로 완전히 무너진 가운데서도 마지막 날까지 가을야구 경쟁을 펼쳤다. 비록 6위로 포스트시즌 진출은 무산됐으나 사령탑 데뷔해의 경험은 그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쌍방울 레이더스를 거쳐 SK 와이번스에서 선수 생활을 했던 그는 은퇴 뒤 SK, 롯데 자이언츠, 두산 베어스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각기 다른 개성의 팀들에서 지도자 수업을 하면서 다양성을 갖추게 됐다.

세심한 성격의 김 감독은 ‘준비, 또 준비’를 모토로 삼는다. 평소에는 온화한 성격이지만 필요할 때는 선수들을 다잡는 카리스마도 있다. 현역 시절 함께했던 선수들이 현재 SSG 베테랑으로 있어 선수단과 융합도 잘된다. 그가 프로 감독 데뷔 2년 만에 팀을 정규리그 우승으로 이끌 수 있었던 이유다.

SSG는 성적과 비례해 올 시즌 관중 동원도 10개 구단 중 1위(평균 관중 1만3633명·총관중 98만1546명)를 기록 중이다. 올 시즌 평균 관중이 1만 명을 넘은 구단은 SSG와 더불어 LG 트윈스(1만2953명)뿐이다. 심재학 MBC스포츠플러스 야구해설위원은 “결국 투자의 힘이다. 오너의 관심 속에 팬들의 관심도 함께 늘었고 이는 관중 증가로 이어졌다. 프로 구단에는 오너의 관심이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줬다”고 했다.

정규리그를 1위로 마친 SSG는 이제 ‘SSG 랜더스’라는 이름으로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겨냥한다. 정규리그 1위 팀의 한국시리즈 우승 확률은 83.9%(31회 중 26회·단일 시즌 기준·양대 리그 제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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