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골프 세계 최강 코리아의 위상이 흔들린다
  • 안성찬 골프 칼럼니스트 (sisa@sisajournal.com)
  • 승인 2022.10.07 13:05
  • 호수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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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승왕·상금왕·올해의 선수 등 ‘타이틀 무관’ 전락 위기
5년 연속 휩쓸었던 신인상도 올시즌 또 태국에 내줄 듯

세계 무대를 호령하던 한국 여자골프가 ‘부진의 늪’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최강을 자랑하던 한국 선수들의 독주가 이대로 끝나는 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우승 가뭄’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지난해 빼앗긴 신인왕 탈환은 물론 고진영이 차지했던 상금왕 및 올해의 선수상도 올 시즌에는 불투명한 상태다.

LPGA투어는 1월20일 열린 개막전 힐튼 그랜드 버케이션스 토너먼트 오브 챔피언스 대회를 시작으로 10월3일까지 28개 대회가 막을 내렸다. LPGA투어는 10월20일 강원도 원주에서 열릴 BMW 레이디스 챔피언십, 일본에서 11월3일 개막하는 토토 재팬 클래식 등 아시아 투어가 진행되고 이어 미국으로 다시 돌아가 펠리컨 위민스 챔피언십, 시즌 피날레를 장식하는 CME 그룹 투어 챔피언십까지 4개 대회를 남겨 놓고 있다. 올 시즌 미국이 8승을 달성해 선두에 나섰고, 한국은 4승으로 2위다. 태국, 호주, 일본, 캐나다, 남아공이 각각 2승씩을 올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승수뿐만 아니고 올해의 선수 등 각종 기록에서 1위에 올라있는 선수가 현재 전무한 상태다. 올 시즌 네 번째 대회인 HSBC 위민스 월드 챔피언십에서 고진영이 우승했을 때만 해도 전망은 밝았다. 성급했지만 고진영이 총상금 500만 달러를 돌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또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서 정상을 차지하고 올 시즌부터 미국 무대 도전에 나선 최혜진에게 신인왕 탈환의 기대를 걸었다.

ⓒGetty Images/AFP
세계 최강을 자랑하던 한국 여자골프가 올 시즌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LPGA 신인상 타이틀을 되찾아올 것으로 기대를 모았던 최혜진도 좀처럼 반등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Getty Images/AF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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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티쿨을 앞세워 2년 연속 신인상을 거머쥐려는 태국의 기세가 무섭다. ⓒGetty Images/AFP

신인상 타이틀 탈환 희망이었던 최혜진, 현재 2위 머물러

하지만 연초 기대했던 희망이 점점 희미해지고 있다. 고진영은 단 1승에 머무르고 있는 데다 손목 부상으로 한 달간이나 대회에 출전하지 못하고 있다. 기대가 컸던 최혜진은 신인상 레이스에서 태국의 아타야 티티쿨에게 밀리고 있다. 아직 우승이 없는 최혜진에 비해 티티쿨은 벌써 2승을 올리며 신인상 포인트에서 독주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2년 연속 태국 선수가 신인상을 차지하게 된다.

사실 LPGA 신인상은 한국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다. 또 신인상 싹쓸이가 곧 한국 여자골프의 최정상을 담보하는 밑거름이기도 했다. 2015년 김세영, 2016년 전인지, 2017년 박성현, 2018년 고진영, 2019년 이정은6이 5년 연속 신인상 타이틀을 획득했을 때 한국 여자골프는 최정상이었다. 그런데 2020년 코로나19로 인해 대회가 제대로 열리지 못해 신인상 타이틀은 2021년으로 이월됐고, 지난해에는 메이저대회 ANA 인스피레이션에서 우승한 패티 타바타나킷(태국)이 받았다. US여자오픈에서 우승하며 LPGA투어에 데뷔한 김아림이 신인상 계보를 이어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7위에 머무르며 신인상의 대(代)가 끊긴 것이다.

2015년은 한국이 15승이나 올리며 여자프로골프의 최강국임을 입증했다. 2016년 9승, 2017년 13승, 2018년 9승, 2019년 15승으로 매년 최다우승국의 정점을 찍었다. 코로나19 상황에서도 한국은 2020년과 2021년 각각 7승씩 올렸다. 지난해에는 3명만이 우승했는데, 고진영이 홀로 5승을 올렸다. 우승은 대부분 고진영, 김세영, 박성현 등 역대 신인상을 수상한 선수들이 주도했다. 하지만 기대가 컸던 최혜진이 아직 우승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는 데다 LPGA Q시리즈에서 수석합격한 안나린의 성적도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최혜진은 CP 위민스 챔피언십 공동 2위, US여자오픈과 롯데 챔피언십에서 각각 3위에 올랐지만 우승과는 아직 인연을 맺지 못하고 있다. 안나린 역시 JTBC 클래식 프리젠티드 바이 바바솔에서 거둔 3위가 가장 좋은 성적이다. 홍예은은 본선 진출보다 컷 탈락이 더 많을 정도로 성적이 좋지 않다.

태국의 기세가 무섭다. 월드스타로 급부상한 ‘10대 기수’ 티티쿨이 2승을 올리며 신인상 포인트에서 선두를 달리고 있다. 티티쿨은 1369점으로 최혜진의 1161점보다 208점이나 높다. 현재로선 최혜진이 남은 4개 대회에서 최소 2승을 올려야 신인상 타이틀을 가져올 가능성이 커지는데, 현실적으로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은 데뷔 이후 신인상을 수상하고 매년 1승 이상씩 올리며 중심에 섰던 톱 랭커들이 극심한 부진을 보이면서 승수를 쌓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박성현, 유소연, 김세영, 박인비의 부침이 심하다. 박성현은 2018년 3승 이후 부상에 시달린 뒤 좀처럼 제 기량을 회복하지 못하면서 우승은커녕 컷 탈락을 되풀이하고 있다. 메이저대회 2승 등 통산 6승의 유소연도 2018년 마이어 LPGA 우승 이후 승수를 추가하지 못하고 있다. 스윙에 변화를 주고 있다는 유소연은 멘털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자가 진단했다.

12승의 김세영은 2020년 2승을 거뒀지만 지난해 롯데 챔피언십과 펠리컨 위민스 챔피언십에서 공동 2위를 하는 등 2년째 우승이 없다. 올해는 디오 임플란트 LA 오픈에서 공동 6위에 오른 것이 가장 좋은 성적이다. 박세리를 잇는 에이스였던 박인비도 그다지 좋은 성적은 아니다. 메이저대회 7승 등 통산 21승의 박인비는 2019년을 제외하고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매년 1승 이상씩 올렸으나 올해는 우승 소식을 전하지 못하고 있다. 무엇보다 박인비는 올해 15개 대회에 출전해 다섯 번이나 컷 탈락했고, 지난 8월 AIG 위민스 오픈 이후 대회에 출전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 이렇다 할 성적을 올리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 제니퍼 컵초(미국)가 3승으로 다승 1위에 올라있다. 이민지(호주)는 2승을 올리며 374만2440달러를 획득해 상금랭킹과 올해의 선수상에서 현재 1위에 올라있다. 1승의 리디아 고(뉴질랜드)는 평균타수 69.176타와 레이스 투 CME 글로브에서 2542.493점으로 1위에 랭크돼 있다. 그나마 한국계 외국 선수들이 1위에 다수 올라있다는 것을 위안으로 삼아야 할 형편이다. 고진영이 현재까지는 세계여자골프랭킹 1위(7.91)를 유지하고 있지만, 타이틀이 아닌 랭킹일 뿐이다. 그나마도 티티쿨(7.48)과 넬리 코다(7.14)가 바짝 추격하고 있다.

올 시즌 우승자 18명의 평균연령은 26.1세. 이 중 최고령자는 36세의 지은희이고, 최연소자는 19세의 티티쿨이다. 한국 선수들은 대부분 20대 후반에서 30대지만 3승의 컵초 등 우승자 대부분은 25세 이하로 나이가 점점 어려지고 있다. 따라서 한국이 다시 LPGA투어에서 최강국으로 도약하려면 젊은 피의 수혈이 절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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